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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초파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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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 지식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중세시대에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지식이 과학의 발달로 거짓이라는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지식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마찬가지로 상대적 지식으로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 1+1=2 라는 지식은 상대적 지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결국 지식은 어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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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 

지식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중세시대에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지식이 과학의 발달로 거짓이라는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지식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마찬가지로 상대적 지식으로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 1+1=2 라는 지식은 상대적 지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결국 지식은 어떤 문제를 다루느냐에 따라 절대적일 수도 상대적일 수도 있다. 과학 수학등과 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분야는 절대적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 사회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은 개인이 살아온 역사와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13.왜 사물은 늘 변함이 없는가 

이 질문의 전제는 사물은 늘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규칙성이라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 봄이 되면 꽃이 핀다는 사실 등은 우리의 후험적인 지식을 통해 규칙성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의 규칙성은 어떤 힘에 의해 작동하는 것인가? 자연 내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없으면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신의 존재이다.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는 의식적인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자연의 규칙성을 찾아내는데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한다. “...한마디로 신은 초월적 존재다. 문제는 이런 수식어들이 아주 인상적으로 들리지만 그 때문에 신이 어떻게 물리적 우주와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우주를 탄생시키고 질서를 유지하는지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신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p.213-214”

 

14.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뭔가가 있는가 

무엇인가 있다는 말은 그것이 생기게 된 원인이 앞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태초에 결국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 수도, ‘일 수도 있다.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태초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알고자 한다. 그것은 존재라는 것은 결국 유한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삶에 끝이나 고통이 없다면 누구도 세계가 왜 존재하는지, 왜 바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냥 당연한 것으로만 간주될 것이다.

p. 223.”

 

15. 무엇이 공간을 채우는가 

철학의 큰 관심사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관념적인 방법에 의해서인지 경험적인 방법에 의해서인지이다. 관념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감각으로 보는 세상은 피상적인 것이며 말 그대로 진짜는 감각으로는 인지될 수 없다는 것이며, 경험적인 방법은 우리가 감각으로 인지하는 세상 또한 진실한 세상이라는 논리이다. ‘무엇이 공간을 채우는가?’ 라는 파트는 바로 이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가 물체를 인식한다는 말은 물체의 본질을 인지한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대상의 작용, 즉 대상이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효과와 힘 때문에 인지되느냐 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물체의 본질, 다시 말해 관념론자보다는 경험론자들의 의견에 동조한다. 이 장에서의 결론은 이렇다. 단지 힘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p .247”

 

16.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자라온 환경, 배경 지식, 경험이 다 다르다. 당연히 관점이 다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포인트도 다르다. 같은 그림은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사람 간의 이런 차이점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다시 이야기한다. 차이점이 있지만 보편적인 공통점도 분명 존재한다고.... 아름다움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지는 아름다움도 존재한다. 일출, 석양,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은이는 세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 안에 음악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

달콤하고 조화로운 소리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배신과 책략과 모략에 능하다.

영혼의 움직임은 밤처럼 둔하고

감정은 저승처럼 어두우니

그런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 p.262

 

17. 신은 과연 필요한가 

신과 과학이라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다. 신이 창조한 인간과 자연은 결점이 없는 존재이며 그것에 반박하거나 딴지를 거는 행위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의 결점을 인정하고 자연현상을 설명하려는 학문이다. 결국 중심에 신이 아닌 인간을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학문이다. 그럼에도 과학기술발달의 최고점에 달해 있는 현대에도 신, 즉 종교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행동과 의식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서로를 연결해주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종교라는 것은 필요하다.

 

18. 무엇을 위해 사는가 

태고 적부터 인간의 눈은 두 군데를 향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초월적 선택 그리고 내재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현실의 유한성과 고단함을 부정하고 삶 너머를 바라보는 삶을 초월적 선택이라고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죽음 이후의 삶이 아마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럼 당연히 내재적 선택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말한다. 삶의 고단함과 유한성을 인정하면서 그래도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삶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매일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 세계는 비록 단조롭고 익숙한 경험이 반복되지만 인간 존재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내재적 선택에서 보면 아기의 웃음, 무용수의 우아한 동작, 좋은 목소리, 연인의 몸짓, 심지어 지나치는 빛과 그림자나 바다의 속삭임도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삶의 과정에는 삶은 넘어서는 것도, 삶의 분리도 없다. 이 모든 과정이 지향하는 단 하나의 목표는 없다. 다만 그 과정 자체에서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삶에는 유일한 의미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p.286”

 

19. 나의 권리는 무엇인가 

인간이 무리를 짓고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법, 규칙 그리고 도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사회에 속해 있는 우리는 그 규율들에 영향을 받으며 당연히 우리가 가진 권리 또한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애매모호하거나 추상적으로 설명된 우리의 권리는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지은이는 말한다. 자유와 권리라는 개념은 구체화되어야 한다. p .306” 명확하게 기재되고 설명된 인간의 권리만이 억울함과 부당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것이다.

 

20. 죽음은 두려운 것인가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두렵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종교적 의미에서 죽음이후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죽음을 경험한 이의 경험담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미지로 남아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의미를 빼고 자연적 의미에서 죽음을 바라보면 죽음이후에는 이다. 죽은 이는 아무것도 느끼지도 보지도 못한다. 다만 남아 있는 자들의 슬픔만 있을 뿐이다. 결국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기 전에 가지고 올 공포와 고통, 그리고 무엇보다 남은 자들의 슬픔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의 죽음 또한 두렵지만 당연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탄생과 죽음은 인간 삶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l*******g 2016.03.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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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초파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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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기계 속의 유령인가  사물과 신체의 물리적 체계에서 어떻게 의식적 경험이 생겨날까? “뇌-신체 체계는 거대한 기계다. 이 기계는 정보를 유령에게 전하고 유령에게 지시를 받아 신체를 반응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기계속의 유령). p. 16” 감각을 받아들이는 신체와 그것은 인식하는 정신이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신, 즉 의식의 작용은 신체로 나타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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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기계 속의 유령인가 

사물과 신체의 물리적 체계에서 어떻게 의식적 경험이 생겨날까? -신체 체계는 거대한 기계다. 이 기계는 정보를 유령에게 전하고 유령에게 지시를 받아 신체를 반응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기계속의 유령). p. 16” 감각을 받아들이는 신체와 그것은 인식하는 정신이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신, 즉 의식의 작용은 신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의식의 표정은 신체의 손, , 얼굴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의식=초현실적 존재보다는 의식=신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2.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분명 내부적인 성질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 존재여부를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외부에서 자극을 받고 거기에 대한 반응은 독자적인 인간의 본성을 거쳐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충분히 인간의 본성은 주체자의 말, 행동 등을 통해 이해가능하다. 그 본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똑같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교육과 경험으로 체득하고 교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절대적인 옳고 그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와 환경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판단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4.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플라톤에 의하면 뭔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참이라고 생각하는가, 참인가, 참이라는 생각이 정당한가를 물어야 한다. p .66” 자동차 바퀴가 세 개 인 것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많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참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눈을 통해 직접 자동차 바퀴가 세 개인 것을 인공위성의 사진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즉 경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참이라는 정당성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우리가 겪은 경험들은 새로운 경험들에 의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 새로운 정보로 갱신된다.

 

5. 인간은 합리적 동물인가?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작가는 이성을 이론적 이성, 실천적 이성, 두 가지로 분류한다. 이론적 이성은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지침을 세우는 데 사용된다. 그것은 사태를 인식하고 인지하는 기능을 한다. 반면 실천적 이성은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즉 우리의 행동을 사태의 인식에 비추어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나 욕망에 비추어 조정하는 것이다. p.79” 이론적 추론(이성)은 다시 선험적 추론과 후험적 추론으로 분류된다. 선험적 추론이란 굳이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미루어 알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로, 나는 지금 임신 중이라는 말을 통해 굳이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선험적 추론이 절대적이어서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변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에 타당한 선험적 추론이라고 여겨졌던 견해가 의심스러워지면 지적인 대격변이 일어난다...... 그 결과 우리가 선험적이라고 부르는 진술과 추론은 절대적으로 옳은 게 아니라 우리가 쓸데없이 포기하지 않으려 버티는 것으로 전락한다. p 83-84” 후험적 추론이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선험적 추론보다 더 확신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

실천적 이성은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권위 있는 기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명확한 행동 방침(p.87)”을 말한다. 그렇다면 실천적 이성 또한 절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행동의 기준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동 판단기준이 현대의 행동 판단기준에 적합할 리가 없다.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합리적(이성적)동물인가? 결국 우리가 이성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절대적인 확신성과 신뢰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 의견을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6. 어떻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앞의 질문처럼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어떻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성립될 수 없다. 거짓말이라는 말뜻 자체가 없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있거나 사실인 척한다는 의미인데 합리적인 인간인 우리가 왜 스스로 거짓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즐거움과 거부감은 믿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데 자극이 되지만 이성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의 개연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믿으려 할 뿐이다. p.101” “자기 자신의 결점과 결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리 약한 자부심이라도 해도 그것을 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p.102-103” 인간은 이성적 보다는 감성적인 동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7. 사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이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 곡선을 따라 정확히 수치로 표시가능하고 예측가능한 곳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인 인간은 그 시장 속에서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자기에게 최고의 이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작가는 반박한다. 시장이 자체 힘으로 무난하게 최선의 결과 향하는 능률적이고 법칙에 따라 굴러가는 기계가 아니라는 쓰라린 사실이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시장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지진, 수도관 속의 급류처럼 혼란스럽고 항상 예측불가능하다.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신념이 매우 다양하며, 남들의 영향에 극히 민감하다.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든 참담하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p.123”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예측가능하지도 않다. 감정적인 욕구에 따라 서로 협력할 수도, 경쟁할 수도, 그리고 연합할 수도 있다. 결국 개인의 욕구를 통제하고 개인의 도덕심과 정의감을 불러일으킬 사회(국가)가 필요하다.

 

8.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다. 같은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언어체계를 사용한다. 그 말은 언어가 품고 있는 그 의미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특별한 사항이 아니라면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의 폭과 너비 그리고 경험에는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언어라도 개인이 품는 내면적 의미는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언어의 기호적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를테면 수학에서 수식을 풀 때 풀이 과정은 개인차가 나지만 도달한 답이 서로 같다면 답이 같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리는 서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다.

 

9. 기계도 사유할 수 있는가 

컴퓨터는 01의 수의 배열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정확히 수치화할 수 있다. 사유라는 의미에는 추상화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는 사고도 있다는 말이다. 숫자의 조합인 컴퓨터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유는 주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는 누군가에 의해 정보가 입력되고 정보를 요청할 때에만 계산을 통해 요구하는 답을 주는 식이다. 게다가 인간 사회 안에 포함된 문화적 언어적 요소들이 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 결론을 도출하는 컴퓨터는 존재할 수 있어도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것과 같은 로봇의 등장은 어렵다.

 

10.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욕망을 추구하는 동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인간은 공감, 동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로서 일생을 살아간다면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줄 이유도 받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도덕이라는 단어자체가 필요 없다. ‘선하다, 악하다라는 말 자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간의 교류와 소통을 필요로 한다. 태초부터 인류가 사회라는 무리 안에서 형성한 DNA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새겨져 있다. 무리에서 형성된 이런 도덕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행동하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추방당한다. 인간이 선한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일 뿐만 아니라 생존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l*******g 2016.01.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