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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이랑 삽화?가 특이한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사진을 오리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서 완성된 삽화. 샤방샤방하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제 스타일은 아닌데.. 아들은 재미있어 하고 좋아했습니다. 다 읽어주고 나서 그림 다시 보고 싶다고 뺏어가는 걸 보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게 바로 아그들 스타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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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제목도 특이한 <고만녜>.. 책을 읽어보니 글쓴이의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받은 이름이었습니다. 딸, 딸, 딸, 아들 뒤로 태어난 다섯째 딸.. 아버지는 딸은 이제 지겹다고 딸은 이제 그만!! 하며 고만녜라는 이름은 지어주셨다네요. 이름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 당시 딸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여섯째, 일곱째도 딸, 딸.. 제가 작가분의 할머니였다면 딸이름을 무심히 지은 하늘의 작은 복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쨌든 고만녜 할머니의 가족은 그림처럼 부모님과 아들 셋에 딸 여섯의 11명의 대식구로 일가를 이루고 추운 북간도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이 동화는 고만녜 할머니의 어린시절을 통해서 북간도로 이주했던 우리 동포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여자분이라서 그런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당시 딸들의 삶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스스로 읽고 싶어서 동생이 학교서 배워온 걸 따라 외웠던 고만녜할머니.. 여학교가 생겼다는 말에 배울 수 있다는 기쁨에 부풀어오릅니다. 할머니의 배움의 소망은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여학교를 보내는 대신 부모님은 어린 딸을 시집보냈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와 함께 읽어보시라고 더 이상의 누설은 하지 않겠습니다. 기대 안하고 읽어줬는데 아이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지금 아이가 얼마나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답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졌지만.. 가진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읽어주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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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미 작가의 외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백년 전 여자 아이의 삶과 시대상을 함께 배울 수 있다. 함경도 회령에서 살았던 고만례 가족은 1899년 땅이 기름진 북간도로 이주 하게 된다. 그 곳에서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아버지가 훈장 임에도 고만례는 글을 배울수가 없었는데, 그 당시엔 여자 아이는 살림만 잘 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딸 보다 아들이 귀한 대접을 받은 건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세명의 아들은 진묵,진국,진용 이라는 번듯한 이름이지만 딸 여섯은 막 지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머리가 노랗다고 노랑녜, 둘째는 귀하게 살라고 귀복례. 셋째는 얼굴이 고와서 곱단이, 넷째는 딸은 고만 낳으라고 해서 고만녜, 여섯째는 어린아이라고 어린아, 일곱째는 또 딸이라 내던졌다고 데진녜 였으니 말이다. 백 년 전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고만례는 서당을 기웃거리기만 할 뿐, 공부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열네 살 되던 해엔 마을에 신식학교가 생겼는데, 양복을 입은 젊은 선생님이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버려 마을이 발칵 뒤집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신식학교도 사내아이들만 다닐수 있는 건 서당과 똑같았다. 이번에도 만례는 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고, 할 수 없이 동생 진국이에게 글을 배우기로 했다.
가갸거겨 하며 한글을 배우는게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일 하면서도 외우기를 1년, 드디어 한글을 더듬더듬 읽게 됐다. 하지만 읽을수 있는 책이 없었기에 만례는 책 살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열심히 호박씨를 모아 중국 상인에게 일 전을 받게 됐으니 이제 책만 사면 되는데 그땐 책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동생이 아랫마을에 책장수가 왔다는 소식에 급히 달려간 만례는 드디어 한글로 된 책을 사게 되는데,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책 한권이 어린 소녀에겐 가슴 벅찬 행복을 안겨줬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여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이라도 만례가 학교에 가는 꿈을 이룰수 있을까 싶은데 아이고! 그만 열일곱 살에 시집을 가게 된다. 갑자기 낯선 곳으로 시집가게 됐으니 친정이 너무도 그리웠을 것이다. 내가 그 나이 땐 학교 다니고 엄마에게 응석만 부렸는데, 백년 전에 살았던 만례는 학교가 너무도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데다 가족과 떨어져 새로운 가정에서 살게 됐다.
그런데 만례의 시아버지는 트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셨나 보다. "학교가 생겼다는데 아가 생각은 어떤고?" 라고 물어보셨으니 말이다. 며느리를 학교 보낼 생각을 하셨으니 정말 멋지다. 학교에 꼭 가고 싶었던 만례가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되는데, 선생님이 제대로 된 이름이 없는 여학생들에게 이름을 지어오라고 해서 새로운 이름까지 얻게 된다. 신랑이 진묵 오빠의 이름을 따서 김신묵 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비록 3년밖엔 다니진 않았지만 김신묵은 다른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배움의 기쁨과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를 백년전의 고만례에게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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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것은 언제나 여성.
고만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딸은 그만 낳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것도 그렇고, 딸 많은 집의 넷째 딸이라는 것도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 그녀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은 글을 쓴 문영미 작가의 할머니라는 점인데, 그 말은 달리 말하자면 이 이야기가 고만녜라는 특정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북간도에서 일어난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 그것이 <고만녜>라는 그림책이다.
알고 싶지 않은 역사는 굳이 잘 알려들지 않고 알려주지 않은 탓에 구한말의 역사에 대해서는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작년과 올해 그 시기의 책에 대해 읽다보면 참 그때만큼 가슴아프고 힘없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고만녜네 가족도 그랬다. 북간도로 이주하면서 나라 잃은 마음이 얼마나 서러웠을 것인가. 그렇게 서러운 마음으로 살아야했던 조선족들의 수가 적지 않았으니 그 시절, 어찌 다들 잘 견디어 주었는지 고마울 뿐이다.
그래도 고만녜네 가족은 잘 적응해서 살았던 모양이다. 농사도 짓고 서당도 열고 딸들 출가도 잘 시켰으니 말이다. 더욱이 고만녜는 시집을 가서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처지가 되었으니 다행 중 다행인 경우라 하겠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것은 언제나 남자들보단 여자들인 것 같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꼭 잡아야했던 절실함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듯 고만녜 할머니도 찾아온 학업의 기회를 잡고 뜻을 키운 여인이었다. 여의치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남자들은 분명 대접받고 살았을 것이 분명하니 그런 절실함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고만녜 할머니는 북간도에서 김신묵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후 우리 나라로 건너왔지만 여기에서도 그리 편안한 삶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주름진 얼굴로 양심수 석방 운동에 참석한 모습을 보니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 뭉클했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그 어려운 시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부던히 자신의 삶을 살아있게 하고자 노력했다는 모습이 새삼 아름다워보였다. 또한 그런 모습들을 보며 지금의 여자들은 오히려 더 소극적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었다. 많은 권리가 있는 현재 우리는 그 권리들을 정당하게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좀더 당당하고 책임감이 있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보다도 사실 내 마음을 더 움직인 것은 이 그림책의 그림이었다. 흑백 사진 얼굴부분을 콜라주하여 몸동작을 표현하는 그림 기법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내용에 엄청난 활기를 주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가족 관계도를 이러한 기법으로 나타내 보고픈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우선 나부터도 진지하게 구상 중이니 말이다. 그림책에 있어 그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더더욱 그림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도 중요하고 의미있지만 그림이 없다면? 이야기의 소재는 좋지만 그림이 없다면 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이 그림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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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고종때 일본의 침략으로 삶이 힘들어진 고만녜의 가족들은 강 폭이 넓은 압록강에 비해 비교적 건너기 쉬운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 정착하여 살았다. 지금의 조선족들이 중국 동포라고 불리는 그들이다. 이 책은 100년 전의 세상을 아이들에게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제대로 된 신식 학교가 없던 시절, 별명처럼 아무렇게나 불리던 우리 할머니들의 이름들, 낮에는 집안 일을 도와 나물 캐고, 동생들을 돌보고, 방아를 찧고, 병아리 모이를 주는 여자 아이들,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밭에서 김을 메고, 소를 몰고 풀을 먹이는 남자 아이들, 겨울이 너무 추워서 옹기종기 집 안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잤던 북간도의 생활들… 지금과는 전혀 다른 100년 전의 생활 모습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상적으로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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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녜라 참 특이한 제목이다.~~녜라는 말은 한글 맞춤법에 맞지 않는 말 같은데 이런 틀린말을 당당히 제목으로 쓴 이유와 그 뜻이 무엇인지 책을 보면서 궁금해 졌는데 알고보니 사람의 이름이란다. 이 책 고만녜는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책이며 오락기며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들이 사줄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100년전의 삶은 그린 책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라고 할수 있는데 사실 이 때 태어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직도 생존하신분이 적지만 계신 그닥 멀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라고 할수 있다. 주인공 고만녜는 100년전에 태어난 여자 아이다.그 당시 여자아이는 지금의 여자 아이들처럼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여자아이는 태어나도 번듯한 이름 하나 없고 학교도 다닐수 없던-물론 가난한 집의 경우 남자 아이도 학교를 갈 순 없었다-시절을 보낸 우리 할머니들의 보통 모습을 대변하는 고만녜의 성장기를 담은 그림책이 바로 고만녜다 고만녜는 훈장댁에서 태어났지만 변변한 이름도 공부도 배운지 못한 여자 아인다.그리고 지금이라면 중학교에 다닐 17살에 중학생과 혼례를 치룬다.그리고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대고 배움으로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된다. 고만녜 할머니는 이후 김신묵이란 이름으로 개명하고 독립투사 문재린의 아내로,그리고 민주화 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로 그리고 배우 문성근의 할머니로서의 삶은 살다 가셨다. 이 책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며한 인물의 위인전은 아니지만 100년전 북간도에 살았던 우리 할머니의 평범한 모습과 여성들의 교육에 대해 요즘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심심할수 있는 내용을 오래된 사진처럼 보이는 일러스트가 생동감을 주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힘들었더니 시절의 모습과 배움에 대한 소중함과 기쁨을 알려주는 책이어서 읽기를 권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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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미 글 / 김진화 그림 / 보림
유주랑 신문에서 얼굴사진을 오리는데 남자는 안하고 여자만 할꺼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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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그림기법과 할머니의 할머니를 이야기하다. [ 고만녜/보림]
고만녜 문영미/보림(한국창작그림책) 나에겐 항상 인자하시면서 엄마품보다 더 그리운 분이 한분 계시다. 바로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일제해방기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거치셨으니, 우리 할머니에겐 뼈아픈 현실을 직접 몸과 마음을 겪으셨던 분. 내가 할머니를 보고 자라면서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큰 살림도 맡아 하시면서 7남매를 키우신 우리 할머니 밑에 손주들도 보고 아직도 정정하신걸 보면 참 마음이 애틋하다. 나의 할머닌 시대를 못 타고난 죄인만큼 한글을 배워보고 싶었으나 빠듯한 살림에 항상 지금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힘없이 써내려간 할머니의 한글 열정은 남다르시다. 오히려 나 어렸을 적엔 할머니도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한글 쓰시는 재미가 있으셨는데, 이젠 가느다란 손에 연필 쥐고 그래도 할머니 이름 석자, 할아버지 이름, 우리 이름을 써내려간걸 보면 보통 소학교도 제대로 못나와 일찍 결혼하신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이 더 고스란히 느껴지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이야기 바로 내 아이에겐 증조할머니뻘 되는 이야기를 1900년의 시대상에 거슬러 올라가 할머니의 빛바랜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는 보림한국창작 그림책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과 책 제목의 고만녜 아들 셋에 딸 여섯의 넷째 딸로 딸은 이제 고만 낳으라고 지어주신 고만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칼바람을 뚫고 북간도로 이사간 이야기, 남자 아이들만 한글을 배울 수 있었던 이야기, 신식학교가 생겼지만 어깨너머로 동생에게 배운 한글 이야기, 한푼 두푼 깨알같이 모아 한글 책 산 이야기, 여학교가 생겼지만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한살 어린 꼬마 아이에게 시집간 이야기. ... 시대적 배경이나 생활상, 소박함을 그대로 담아놓은 작가의 엄마의 할머니 이야기다. 이 고만녜 그림책을 보면서 흡사한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듯 했다.
책속의 깨알같은 재미는 바로 꼴라쥬 기법의 판화와 연필 등을 사용해 빛바랜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펼쳐보았다.
1900년대 사진을 프린팅해서 고만녜 필체도 따라 써서 색칠해 제목도 꾸며보고, 각기 조각 조각 오려낸 빛바랜 사진들로 1900년대 묘사가 될 수 있었다.
'땋아 올린 머리에, 한복도 차려입고,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어느날, 뒷뜰에 나무는 푸르고 잎이 무성하다' 하네요.
각기 다른 흑백 필름속 색칠놀이와 함께 오리고 붙여가면서 고만녜 책표지만의 느낌을 책표지로 꾸며보고, 연필로 쓱쓱 동구밖 넘어 친구네 집으로 가는 오솔길까지 그려준다. 옛날엔 외증조할머니께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어렵게 사셨지만, 항상 마음만은 꽃다운 열정과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아온 이유는 다 할머니께서 자리잡아서 이실꺼야. 하고 아이에게 넌지시 이야기 해주었다. [고만녜/보림한국창작]을 통해 내 아이에겐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우리집의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며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 살아오신 옛 이야기도 한 번쯤 시간을 내어 함께 이야기 나눠보기도 볼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박병재 이고요. 할머니는 김순희랍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러니깐 증조할아버지는 박찬수. 할머니의 할머니, 증조할머니는 김을분이예요. 가족의 이름 가지치기로 함께 하면 우리 가족의 이름, 우리 가족의 구성원 아는 것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며 되새김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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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이라고 하면 까마득히 먼~~ 옛날이아야기 같다. 밤마다 내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말이다. 하지만. 그렇지않다. 우리네 사는 이야기. 바로. 나의 할머니이야기다. 함경도 산골짜기 회령에서 북간도로 이사간 할머니의 어린 추억. 딸을 너무 많이 낳아 그만 낳으나라고 이름이 '고만녜'이고 남자들만 다니는 학교를 부러워했던 옛 여성의 이야기.. 할머니는 글자를 너무 배우고싶어 일곱살동생이 학교에 다녀오면 배우기도 하고 언니가 들려주는 춘향전을 스스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노력해서 글자를 떼고 글자를 떼었더니 책이 귀한때라 읽을거리가 없어서 호박씨를 열심히 팔아서 책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마음이 짠 하면서도 개척해가는 할머님의 그 마음에 생기가 넘친다. 고만녜할머니는 꼭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열일곱살에 시집을 가게되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너무나 반가운 소식.. 여학교가 생기고 시아버지가 거기를 보내주신다는,,,, 말그대로 '新세계'를 만나게 된다. 책속에선 우리가 가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지만 꼭 가본것처럼 본것처럼 여러 정보와 지식을 알려준다. 바로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과 같았을까?^^ 난 고만녜할머님시절은 보지도 가볼 수도 없지만 왠지 그 시절에 나 또한 할머니처럼 배움을 위해 열심을 다하지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명동여자소학교 1회졸업생은 단 세명. 그 중에 우리의 주인공 고만녜 할머님도 계신다 ㅎ 바로 이 글의 저자. 문영미작가님의 할머님이다. 행복은 단순히 머무는거에 있지않고 부지런히 열망하고 갈망하면 자신의 행복을 취할 수 있다는거.. 아마도 그만큼 어렵게 얻은것이니.. 소중함이 더 될테고. 그래서 행복감은 배가 되지않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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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박쥐와 올빼미처럼 장님으로 살고 짐승처럼 노동하며 벌레처럼 죽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1928)에 인용된 마거릿 뉴캐슬 공작부인의 말이다.
보림의 신간 "고만녜"를 읽으며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렸다.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똑같이 20세기 초반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시대의 여성의 지위는 마거릿 뉴캐슬 공작부인의 글과 같았나보다.
"고만녜"(사람 이름이다)는 북간도에 사는 소녀로 삼남육녀 중 사녀다. 아들들에겐 돌림자까지 붙은 진국, 진묵, 진국 등의 버젓한 이름이 있지만 딸 여섯은 다 복례니, 어린아니, 곱단이니 아기 때 붙인 별명을 언제까지고 쭉 쓰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고만녜의 이름 역시 "딸은 고만!"이란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고만녜는 글을 배우고 싶지만 학교는 남학생만 받아주고, 독학을 할래도 여자가 글을 배우는 것을 아버지가 알면 날벼락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의치 않다. 아버지 몰래 남동생에게 한글을 배우고, 돈이 없어 호박씨를 모아 팔아 소설책을 읽는 고만녜. 그녀의 꿈은 "여학생"인 것이다. 나중에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고만녜가 신식학교에 가는 장면을 읽으며는 왈칵 눈물이 났다. 그뒤로 고만녜에게는 신묵이란 새로운 "진짜 이름"도 생기고, 훈훈한 결말로 이 책은 끝난다.
한반도에선 20세기 초부터 여성이 정규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니, 제대로 사회에서 활동을 하거나 문예가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뒷 일이 될 것인지는 익히 짐작이 갈 것이다.
사실 요즘도 여성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고 사회의 문이 열려 있다고는 하나, 가사나 육아등을 거의 전적으로 담당하느라 시간을 내기 힘들어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비평한다. 그 글을 곁들이며 "고만녜"에 대한 서평을 마무리 짓겠다.
"지적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자유에 달려 있지요. 여성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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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목사의 조카딸인 문영미씨가 자신의 외할머니 고만녜씨의 어릴적 이야기로 만든 그림책이다. 우연히 오늘 오전에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서가 사이에서 본 그림책이다. 사진을 오려 붙인 듯한 독특한 그림에 끌려 책을 꺼냈는데, 내용이 재미있다. 백년전 북간도로 이주했던 자신의 외할머니가 17살 새댁이 되어 한글을 배우게 된 내용이다. 그 시대 여자들의 삶이 그랬듯이 고만녜 할머니도 학교에 다닐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개화한 시아버지 덕에 시집 간 새색시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평생의 큰 선물을 받게 된다. 여학생들이 제대로 된 이름이 없자 학교에서는 새로운 이름을 짓자고 한다. 고만녜학생은 남편이 지어준 "김신묵"이라는 이름을 얻게된다. 비록 오빠의 이름과 비슷한 남자이름이만,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준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백년 전 우리 할머니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읽고 나서도 학교에 가서 즐겁게 공부하던 새색시 고만녜학생이 자꾸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