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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대구갈 일이 생겨 차를 몰고 내려간다고 했더니 아내가 기를쓰고 반대를 했다. 무조건 기차타고 가라는 것이다. 눈이라도 내려 도로가 엉망이 되면 어쩔거냐는 것이다. 하긴 최근 눈이 자주내리기도 하거니와 폭설이라도 만나면 낭패니 일단 기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가기로 한 날이 다가오자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하니 눈은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슬며시 아내에게 차를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안된단다. 장거리 운전은 사고위험이 있으니 안된다는 것이다. 좀 편하게 차를 가져가야겠다고 마음먹은 후라 아내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아이들도 데려가기 때문에 비용면에서나 도착해서 이동의 편리성을 보나 차를 가져가는 게 훨씬 낫다고 침을 튀기며 반복해 설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무래도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없겠다 싶어 체념은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내가 했던 말이 있다. '사고날 사람은 뭘 타고 가던 사고나게 돼 있어.' 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재판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먹히지도 않을 말을 토로했듯 말이다. 아내가 그 말에 귀를 기울였을리는 만무했다.
나는 사람의 운명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믿는 편이다. 그렇다고 종교를 가진 건 아니고 굳이 내가 믿는 신을 말해야 할 땐 그냥 천지신명이라고 한다. 모두가 천지신명의 뜻이라 생각해 버리면 편할 때가 있다. 사고가 예정된 사람은 기차를 타고 가든 걸어내려가든 사고를 당하게 마련이다. 내가 선택해서 피할 수 있었던 사고조차도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런 결정을 이끈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보이지 않는 힘을 확신하는 건 아니고 단지 믿는 편이란 얘기다. 내게 닥친 문제들이 예상 외로 술술 풀릴 때가 있다. 도저히 답이 안나올 것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신기하게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때는 나를 굽어살피시는 조상님이 계신 게 틀림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아인슈타인도 "우주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지 않은가. 교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공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곤 한다. 적절한 비유같진 않지만 일단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할 일은 아닌 건 확실하다.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_(P.84)
그런 나에게 《타력他力》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 건 이상할 것도 없다. 평소 어렴풋이 믿음을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확인시켜줄 책 같았기 때문이다. 왜 보이지 않는 것을 이 책이 보여줄 거란 기대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읽고 나서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타력만을 좇다 길을 잃고 다시 첫 장부터 다시 들어야했던 책. 고타마 싯다르타를 인용하고 고승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불교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면 쉽게 떨치지 못함을 다시한 번 확인하게 해준 책이기도 했다. 불교도가 아니면서 최근 '법구경'이나 '중론'을 자주 들여다보며 부처님의 말씀을 자주 접한다. 세상을 통찰하는 또 다른 관점이라고 여기며 불교적 세계관을 무척 흥미롭게 보고 있다. 이 책이 내 눈에 띈 이유가 단순히 타력이란 제목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내 관심이 불법 쪽으로 쏠리다보니 나와 이 책이 연을 맺게 된 건 아닐까 생각된다. 보이지 않는 힘이 다시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오늘은 무척 반가운 전화를 한통 받았다. 최근 업무 때문에 꼭 한번은 만나야했던 분인데 내게 전화를 먼저 걸어온 것이다. 언제나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야 했던 분인데 신기하게도 때맞춰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예전 같으면 천지신명께서 힘을 쓰셨구나 했겠지만 이제 이 보이지 않는 힘을 '타력'이라 칭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쓸데없는 노력을 하기보다 이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받아들이면 편할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때 타력의 힘이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맡겨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여기고 오히려 관심을 내게 돌려놓기만 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관심을 더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는 나말고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세상의 아래쪽에서 위쪽까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때라야 보이지 않는 힘을 감지할 수 있다. 저자 이츠키 히로유키는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 현실을 직시한 궁극의 마이너스 사고에서 진정한 플러스 사고가 나온다고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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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교 정문 앞의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초등학교 6학년생의 절단된 머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잘린 머리의 입 안에는 "경찰 여러분, 나를 좀 멈춰줘.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어 죽겠어." 라는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후 이 살인자는 계속되는 살인행각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살인을 즐길 수 있다. 내가 일부러 세상의 주목을 모으는 것은, 지금까지 그리고 이제부터 투명한 존재로 있을 나를, 적어도 당신들의 공상에서만이라도 존재하는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라는 성명을 신문사를 통해 발표합니다. 마치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 일은 실제로 1997년 일본 효고현 고베시 스마구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의 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신기하게도 정말 마치 한 편의 소설과 같이 생생한 모습을 하고서 우리를 묘한 곳으로 인도하는 듯합니다. 소설처럼 살기를 바랬던 제 자신이 이토록 흉흉한 세상 안에서 실제로 살고 있구나를 느끼며 순간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신을 '투명한 존재'라고 말했던 이 범인의 서글프고 아픈 문장을 바라보고 동정하는 마음,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결국 자신을 '사카키바라'라고 불러주길 바랬던 이 사건의 범인은 14살의 소년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말세'라는 말은 인류가 기억할 수 있는 역사의 가장 오래된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우리 곁에 맴돌고 있었던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진정한 말세는 바로 지금이다. 이 징조는 세상이 망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농업의 발전, 과학의 발전, 의학의 발전을 이루며 지금 현재의 인류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번영을 누리고 풍요로운 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이츠키 히로유키는 실제로 우리는 가장 빈곤한 시대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연쇄 살인사건 뿐만 아니라 옴진리교 테러사건과 같은 흉흉한 사건이 연일 터지는 이 세상이, 그리고 고베 지진의 사상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이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말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란 것이 무의미해진 세상입니다. 우리는 10년 뒤, 혹은 2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고, 꿈꿀 수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이 일,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이 회사가 내일 당장 사라질지도 모르는 판국에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미래에 대한 꿈을 품으며 은행에 저축해온 돈이 은행의 파산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TV의 올림픽 중계 방송에서 '아쉽게도 은메달'이라는 해설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현재 갖고 있는 직업이 자신만의 일이라고 여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회사는 직원 한두 명쯤의 대체자를 손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투명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츠키 히로유키의 『타력』은 이토록 영혼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격려'가 아닌 '위로'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말없이 옆에서 그저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어줄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따뜻한 감동이 물결치는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무엇보다 또렷해서 이것은 이것이라고 단언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낮은 곳에서 이 글을 '모범'으로 여기지 말고 '견본'으로 봐달라는 어조로 겸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웃음을 유지하며 사람을 벨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사와 같은 모습의 글입니다. 그래서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100장의 이야기 속에서 모두 다 한듯해 보입니다. 결국 판단과 결정은 우리의 몫이지만 말입니다. 책은 굉장히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호넨, 신란, 렌조라는 일본 불교 사상가들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의 말 속에서 현재를 살아갈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 중하나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타력'이란 것입니다. 우리를 이끄는 각종 힘들 중에서 '자력'이라는 어머니가 본인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타력'이라는 아이를 그녀 안에 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스스로를 너무 밀어붙이지 말라고 하며, 세상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조금 더 넓게 보라는 말을 합니다. 딱히 콕 찝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제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인지라 저는 그런 이야기였다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렇게 저자가 전혀 의도치 않았던 깨달음을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얻어가는 것, 이것도 일종의 타력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게 자기책임인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우리를 살게 하기도 하고, 의욕조차 생기게 해주지 않을 때도 있는가 하면, 또 생각지도 못한 용기와 투지를 가져다줄 때도 있습니다. 만일 언젠가는 '타력의 바람'이 불 거라고 믿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에게 타력이 찾아오고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도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계에 영원히 바람이 불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6쪽)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꿔 말하면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커다란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커다란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했다는 생각은 얕은 생각으로, 그 밖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운명론도 아니고 숙명론도 아닙니다. 사람은 그것을 알 때 자기를 초월한 커다란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85쪽) 크게 웃고 크게 울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감정의 자유로운 진폭인 것입니다. 깊이 절망하는 인간만이 희망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지독하게 고민하고 지독하게 번민하는 인간만이 진정한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120쪽)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이익공여 사건은 사회적인 범죄입니다. 책임자에게는 공공의 적이라는 표현이 딱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매스컴은 죽음을 통해 쉽게 용서해주는 식의 논조를 보입니다. '주인님' 의식의 안일함 속에서 언제까지고 응석을 부리고 있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164쪽) 소설가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히 발언해야 합니다. 혼돈의 세계에 직면한 사실을 얼버무리며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하는 등의 기묘한 말을 하지 말고, 삶과 죽음의 큰 스토리를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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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누구에게든 '독불장군'이 없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개인주의와 물질 만능,출세지향적인 생각이 어느때보다도 팽배한 요즘에는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돌봄의 여유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부모형제끼리의 왕래나 인사도 많지 않고 기념일이나 상이 당해야 마지 못해 가봐야 하고,형제,친척끼리도 서먹서먹하고 형식적인 인사로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좋든 싫든 생계를 위해 뛰어야 하는게 세태가 아닐까 한다.물론 부모형제끼리 우애와 왕래가 빈번하고 혈육의 정을 돈독하게 다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돈과 물질,출세지향적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물질적,정신적 여유가 거의 없다는 사회 구성원간의 교류,왕래가 부족하다는 것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율 1위,행복도 최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은 경제 위기와 함께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부조화와 불협화의 커다란 간극,아파트 및 고급빌라가 들어서고 담장이 쳐지며 이웃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누가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나와 가족 위주로만 생각하는 세태에서 진정한 공동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TV를 비롯한 매체에선 지치고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격려의 소리만 있을 뿐이고 동정과 위로,연민의 따뜻한 말과 손길은 없는 것도 눈에 띈다.'힘내!'라는 말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가 죽고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더 이상 재기할 가망이 없는 이들에겐 '힘내!'라는 소리는 한같 공허하고 뜬구름같은 소리일지도 모른다.소외되고 재기가 어려운 이에게는 두 손을 마주잡으며 그 사연을 충분히 들어주며 살아갈 방도를 함께 생각하고 사회에선 더 이상 낙오자가 아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할것이다.그 어느때보다도 사회 구성원간의 위로와 연민의 정을 보여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게 돈과 물질,권력으로만 서열을 매기고 절대 다수인 서민층은 늘 허리띠 졸라매고 살려고 해도 상층부에선 '아서 먹고 살아라는 식'이니 삶의 질도 떨어지지만 팍팍함만 가중될 것이다.
개인 및 사회에는 위기라는 문제가 늘 상존한다고 생각한다.개인이 할 수 없는 능력밖의 일은 사회와 국가가 대신 채워주고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희망을 심어 주어야 제대로 된 타력본원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돈과 물질을 기초로한 신자본주의 그늘 하에서 서민들에겐 절대적으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모두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 치는 마당에 돈과 물질,힘이 넘치는 부류들이 이들을 감싸 동류의식을 한껏 발휘해야 하는 것도 타력의 본질일 것이다.
작가 이쯔키 히로유키는 태어난 환경,성장과정이 그리 유복하지는 않은거 같다.만주에서 태어나 조선에서 일본의 종전을 맞이하면서 부모를 여의고 홀로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방랑객과 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는거 같다.대학시절엔 학비를 제때 못내어 제적을 당하면서 수많은 고뇌와 갈등,방랑을 거듭하면서 작가로 거듭나기까지 삶의 굴곡이 컸는데,그에게 힘이 되어준 15세기 일본의 3인의 종교가(불교)는 그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의 끈을 안겨준거 같다.즉,정토교의 호넨(法然),진종(眞宗)의 확립자인 신란(親鸞)과 렌뇨(蓮如)의 신앙에서 그는 삶의 좌절 속에서 희망을 찾고 그들을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는거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불가사의한 감각을 맛보며 자신을 초월한 우주의 파동 같은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앗'이라든가 '아아'하고 한숨을 내쉬며 돈오의 세계로 들어갈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순간 온몸에 활력이 넘치고 흥겨워지는 느낌이 들며 신진세포가 늘어나고 활기를 띠는 순간이 있다.그것은 기묘한 감각이고 우주 속의 티끌과 같은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기도 한다.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안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 본문-
특히 저자는 렌뇨의 사상에 흠뻑 빠진거 같다.원리원칙적인 신란보다는 모순 투성이이지만 현실감각을 제대로 흡수하여 살아가려는 렌뇨의 융통성 있는 삶의 기질이다.현실과 어떻게 타협하고 타협하는 인간에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면서 현실과 부딪히게 되고,자신이 소속된 조직을 살리면서 자신도 살리는 길을 필사적으로 찾아던 것이 저자의 삶의 이력이 아닐까 한다.노(老)작가답게 삶의 실타래와 사연,지혜가 100가지 단상 속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그 무엇이 최고이고 이상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 줄줄 아는 관용과 위로의 정신이 진정한 타력본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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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든지 세상을 살아가는 여정에 예기치 않는 일들로 인하여 위기에 직면할 때가 있다.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은 사태도 있다. 생사를 가르는 중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명예, 지위, 일까지도 한 번에 잃어버릴 수 있다. 실업은 물론이고, 파산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위기에 직면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대처 여하에 따라 그 위기가 최소화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위기로 인해 헤어나지 못할 곤경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 책은 32년에 걸쳐 나오키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소설 <청춘의 문>으로 초판 발행부수 100만 부라는 출판업계 최고의 기록을 달성한 일본 문학계의 거장, 이츠키 히로유키가 인생에 대해 쓴 에세이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애독서로 알려진 책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고승의 세상을 살아가는 100가지 지혜를 들려주는 <타력>에서 자신의 기업 경영 철학인 상생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타력은 불교 ‘타력본원(他力本願)’에서 유래한 말로 책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힘으로 해냈다는 얕은 생각을 버리고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되어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걸어온 녹록치 않은 인생에서 발견한 보석같은 깨달음을 100개의 문장으로 요약하여 담았다. 이 안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왔던 호넨, 신란, 렌뇨 스님 등 일본 고승들의 지혜를 엮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타력의 길 또한 어렵구나’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만 하는 시기도 있다. 그럴 때는 스스로 책망하지 말고 ‘흠, 아무래도 타력의 바람이 불지 않는 것 같군’ 하고 가만히 목을 움츠리고 있으면 된다.”고 하면서 “반대로 생각 이상으로 만사가 잘 풀릴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고 자신감도 점점 더해간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내 소관이 아니다.’ 그렇게 중얼거려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순풍이 불어 그 ‘타력’이 만사를 내 실력 이상으로 잘 풀리게 해준 것이라고. 그럴 때는 겸허하게 ‘타력’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타력본원’은 안이한 ‘타인의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가, 헌법, 정부, 병원, 학교, 기업, 세상의 양식, 매스컴, 은행, 그 밖의 모든 것에 의지하는 마음을 버릴 때 생겨나는 진정한 자력의 확신이야말로 ‘타력본원’의 모습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자립의 용기를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타력’이며 커다란 우주의 생명력인 ‘본원’이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자기 혼자 했다는 생각은 얕은 생각으로, 그 밖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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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이츠키 히로유키의 《청춘의 문 1, 2》를 읽고 마성의 소년 신스케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는데... 뭐, 남자들이 생각하는 마초 중의 마초. 마성의 남! 좌! 인 것인가...! 라는 것이 사실 그때의 생각. 여튼, 그래서 그 저자인 이츠키 히로유키의 책에 대한 살짝의 거부감이 들기도 했는데, (나는 XX 유전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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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 그래서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자기 혼자 힘으로 했다는 생각은 얕은 생각임으로, 그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 이 책의 내용은 그렇다.
얼마 전 SBS 힐링캠프 ‘박진영’ 편을 본 적이 있다. 그도 저자와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뭐 결론이 우주나 신의 영역으로 가서 조금 멀리 갔다 싶긴 했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도 그 생각 자체에는 동의한다. 사람 저마다 성장해온 과정은 다르겠지만, 시간이 지나 ‘왕년에 말이야~’ 하면서 드라마를 풀어놓을 법한 인생의 순간이 있었다면, 절망적이던 그 상황이 시간이 지나 순식간에 역전되고 훗날 그게 다시 도움이 되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의아해 했었던 사람이라면 ‘타력’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남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중 한사람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일들... 인생 속에서 수많은 변칙이 있었고, 훗날 그 변칙에 감사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래서 현재 인생의 항해 중 풍파를 겪고 있다면, 토닥여주면서 나 이외의 사례를 통해 보다 잘 말해줄 수 있다면 이 책이 으뜸일지도 모르겠다.
자기의 삶은 자신이 풀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서점가 트렌드인 ‘힐링’ 관련 서적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야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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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 채숙향 옮김
지식여행 2012.07.10
일본인이 지은 책은 많이 접해 보진 않았지만 조금은 근시안적인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그걸로 일본의 국민성을 헤아릴 순 없지만 일본이라는 사람들의 정서는 우리와 많이 다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자력의 반대말인 타력, 나를 비우는 의미로 받아드리면 한번 만나보았다. 출판사의 서평에 마음이 혹하긴 하였지만 과연 이책이 내 마음음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 하는 생각이 더 컸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 정말 무던히 자력으로 뭔가를 이뤄 볼려고 생 몸부림을 쳤던 10~20대가 떠오른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력으로 할 수 잇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는것을 시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한 마음을 내려 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저자인 이츠키 히로유키의 경험과 삶의 농축엑기스 같은 타력에서 100가지의 생각을 나누며 그의 사견들에 대해서 수긍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건 영 내 가치관과는 참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의 국민성과 일본인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잘 몰라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보다는 영 정서에 맞지 않아서 이 책을 끝까지 봐야하나 하는 답답함도 내면에서 들려 오는 듯 하였다. 결국의 그의 정신적인 지주와 같은 종교의 이야기 속에서 그의 사견을 드러내고 극서을 토대로 100가지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음.. 그렇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장도 있었지만 아직은 인생을 많이 살지 못했거나 내가 조금은 편협한 생각이 틀 속에서 갇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몰입하며 볼 만한 책은 아니였다. 현대지성인으로써 시대를 읽는 눈을 따라가보며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감흥이였던것 같다. 물론 저자의 타력으로 모든 것의 결론을 모으며 삶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며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잇는 마음을 엿보는것은 나의 정신건강에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 보아도 어쩔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것 . 삶의 무게와 깊이가 더해 질 수록 당연히 느낄 수 있는 시각일것 이다. 조금은 내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답답한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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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구나. 이젠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겠구나. 그저 흐름에 맡겨야 할 뿐...’하는 생각이 절실했던 경험. 뭐라고 딱히 근거를 들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말 절실하게 그 느낌이 마음 속에서 부터 느껴지던 날이었다. 그 때 느꼈던 것이 ‘사람의 힘이 아닌 어떤 힘’이었다. 종교적인 신이라던가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뭔가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런 존재의 힘이랄까.
<타력>이란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그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다. 내가 그 때 느낀 것이 ‘타력’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렇다면 그 ‘타력’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책 소개에 누누이 나오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커다란 힘, 우주의 에너지’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타력. 그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무척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공감의 내용은 ‘딱 거기까지만’ 이라고 해야겠다.
<타력>은 일본의 유명 원로작가인 이츠키 히로유키의 작품이다. 그는 유년시절을 한국(그의 표현에 의하면 식민지)에서 보내다가 일본의 패망이후 난민생활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간 경험을 갖고 있다. 책 소개에 의하면 이 책은 일본에서 100만부 판매를 달성하고,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애독서라고 ‘알려졌다’는 문구 때문에 더 주목을 받은 듯하다.
이 책은 ‘타력’이라는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저자인 이츠키 히로유키가 100가지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타력’에 대한 내용은 초반의 일부분에 해당할 뿐, 전체적으로는 전쟁 전후와 현대 일본의 사회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 정도가 잡다하게 나열되어 있다. 또한 신란과 렌뇨나 옴진리교 등 일본 불교나 일본의 굵직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몰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책을 읽다 보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다시 한 번, ‘일본인은 우리와 달라도 참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된다. “마비키(間引き:어려운 시절, 식구를 줄이기 위해 부모가 아이를 죽이는 일본의 옛 관습)”나 일본을 들끓게 했던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인사건 등에 대한 서술을 들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화가 나고 기가 막혔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의 편협한 시각이다. 여전히 ‘한국’이 아닌 ‘식민지’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거슬릴뿐더러, ‘식민지에서 종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입장인지 저절로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하며 ‘식민지 시대의 죄를 논한다면, 원죄는 위기의식이 없었던 점에 내재되어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패전 인정 발표를 앞두고도,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어리석은 민중들은 시대를 낙관하고 있을’만큼 위기의식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그 시대의 일본의 잘못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어리석은 일본인”에 대해서만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내면적으로 일본의 제국주의 등에 대한 자성은 전혀 없이 ‘패전 후의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할 뿐이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선량하고 마음씨 고운 인간은 묵묵히 쓰러져갔다’는데 과연 ‘이 땅에서 쓰러져 간 선량하고 마음씨 고운 수많은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과연 한 번쯤이라도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는지 의문이다.
그는 현 시점의 일본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낯설고 기묘한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섬나라 일본의 문화와 감성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풍부한 일본인의 센티멘트가 유럽의 근대의식이 주류를 이루면서 건조해졌다’는 그의 논리는 참으로 단편적인 시각으로 보일 뿐이다. 그것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혹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동안 어느 나라나 겪는 감성의 메마름일텐데, 그것에 대해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그저 ‘서양 문물의 유입이 인간의 마음을 메마르게 했다’는 핑계를 대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언뜻언뜻 일본인의 면면이 보이기도 하고, 우리네 정서와는 참으로 다른 그들의 관습에 놀라기도 한다. ‘약점이나 핸디캡이 있는 인간은 국민으로서 실격’이라며 생산성만을 최고로 여겼다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죄악시 해왔다는 문화적 배경을 들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인의 국민성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이건 사족이겠지만, 이건희 회장이 공감했다는 부분은 어디일까 하는 가벼운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가 공감했다는 부분이 ‘짚신을 버리고 구두를 신어라’는 부분인지, ‘정예부대를 데리고 일을 진행할 때는 엘리트뿐 아니라 무능한 인간, 잡동사니가 들어오지 않으면 진짜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부분인지 혹은 다른 어느 부분일지… 듣기로는 단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영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라고 언급을 한 것이 ‘이건희 회장의 애독서’라고 부풀려진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 책은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봐야할는지.
책을 읽고난 뒤의 찜찜한 기분은 아마도 이 책이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책이어서 그런 것 같다. 작가의 국적이나 배경을 떠나 순수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마음을 위로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아마도 “일본”이라는 간극을 극복하기에는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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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 받치고 있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꿔말하면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은 우주의 커다란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커다란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 했다는 생각은 얕은 생각으로,, 그빡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책의 서문은 이렇게 타력을 설명하고 있다.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한 힘.. 어쩌면 나라는 존재만의 힘이 아닌 조금은 겸손한 마음 상태를 가진 종교적인 마음 자세를 이름이리라.
저자는 일본 불교 정토교의 시조 호넨, 신란, 렌뇨.. 3인의 가르침에서 책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엮어 나가고 잇다. 총 100편의 글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종교적 가르침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현대라는 세상에서,,,한신 대지진의 참상 속 상황이나,,사린 가스를 퍼드린 옴진리교의 종교적 혼돈이, 과거 신란이나 렌뇨가 살았던 500~700년 전의 세상과 너무나 유사하게 혼란의 세상임을 말하며,, 이런 혼란의 21세기에 어떻게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상적 버팀목을 렌뇨라는 정신적 지주를 통해 해결하려는 마음 자세를 글로 엮어내고 있다. 전후 60년 엄청난 경제 성장은 이루었지만,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사실등을, 그리고 물질적 풍요로운 세상에 한신 대지진 등의 몇배에 달하게,,자살자가 일년에 30,0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사상적 버팀목이 없어서 아닐까? 반문도 해본다.. 그렇게 그렇게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서라도 출구를 찾으려는 내용들...
이건희 회장의 애독서라고 책은 소개되어 있지만,, 일본의 종교적인 사고를 너무나 대비해서 표현하고,, 일본의 그런 역사적 사실에 나 자신이 조금은 문맹이기에 책의 내용을 전부 받아들이기가 조금은 어렵다. 그리고 책이 쓰여진 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 전인 2,000년 이전에 쓰여진 것 같은 내용이어서,, 현실감에서도 조금 뒤져있는 것이 아쉽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내용 그대로의 타력이란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아주 종교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 아주 현실적이지도 않은 여러가지 생각을 모은 책.. 이렇게 표현해야 하려나??? 아뭏든 삶을 조금은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깊게 하게 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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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잠시 많은 생각을 오고 가게 된다. 항상 책을 살펴 볼 때,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저자의 머릿말을 보게 된다. 저자의 트라우마. 어린시절 식민지에 살았으며 불우한 어린시절로 인해 책을 낼 수가 없었다. 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갇혀서 강하게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렇게 살펴본 저자의 머릿말을 시작으로 이책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에게 운은 그저 머피의 법칙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그저 운이라. 내가 운이 좋았다. 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저자는 그것을 '타력'이라 말한다. 긍정적인 힘으로 인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내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이를 기르단, 회사일을 보던지, 무슨 일 순간순간 일을 다해야 한다. 그 일을 힘들여 놓고 나서야 그 결과를 기다린다. 그리고 단지 운이 좋았다라는 표현보다는 '타력'그 강력한 외부의 힘과 내 운명으로 그 힘이 좌우된다고 한다. 책을 봐도 조금은 어렵다. 갑자기 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내 몸의 병은 외부. 스트레스 외부적인 요인의 의해서 병이 생긴다고 표현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100가지의 힌트. 그 힌트만을 믿고 있으면 모든 풀리지 않는 인생살이는 해결이 되는 것일까? 내 트라우마도 해결이 되어서 더이상 그로 인해 타력은 없는 것일까? 나를 잡아주는 그 이끄는 힘. 종교적으로 표현이 되면서, 그 힘이 해결이 되었을 때, 강하게 표출이 되는 것보다는 조금은 바람과 물. 하늘의 순리에 맞쳐 해결하는 것도 좋아보인다. 그 힘이 타력이라면 '타력'으로 믿고 싶어진다. 다소 제목조차 조금은 허망하다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어서 끝을 맞치게 되었지만,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섞여지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 일본의 대지진 이후. 많은 이들이 피폐해진 정신을 다잡아 놓고 싶어하는 저자의 생각으로 엿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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