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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自省錄)』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저술로서, 보기에 따라서는 퇴계의 주저(主著)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학문과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이다.
퇴계 선생은 『자성록(自省錄)』의 서론에서
군자란 인(仁)의 완성을 지향하여 발분노력(發憤勞力)하는 인간상을 말한다. 인(仁)을 완전히 실현한 인간의 극치가 성인(聖人)이다. 공자는 “옛 사람들은 자기를 위한 공부를 하였지만 지금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무릇 일상생활에서 수작(酬酌, 본래는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뜻이었으나, 말을 주고받거나 사람과의 접촉, 교제 등을 뜻하는 말로 쓰임)을 적게 하고 기욕(嗜慾)을 조절하여 마음을 비우고 한가롭고 즐겁게 지낼 것이며, 그림이나 글씨 또는 화초의 완상(玩賞)이나, 냇가의 물고기와 산의 새를 보는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생각을 즐겁게 하고 뜻에 맞는 것을 항상 접하기를 싫어하지 않아서, 심기(心氣)가 늘 화순(和順)한 상태에 있게 할 것이며 어긋나게 하거나 어지럽힘으로써 원망하거나 성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법(要法)입니다.”
- 제자 남시보(南時甫, 남언경)에게 답하는 글 중
이러한 귀한 글들이 쓰인 곳이 도산 서당 (陶山 書堂)이다. 선생은 도산서당에서 ‘냇가의 물고기와 산의 새를 보는 즐거움’을 통해 ‘심기(心氣)가 늘 화순(和順)한 상태’를 지양하셨다.
계상서당에 비바람부니 침상조차 가려주지 못하여 거처 옮기려고 빼어난 곳을 찾아 숲과 언덕을 누볐네 어찌 알았으리 백년토록 마음 두고 학문 닦을 땅이 바로 평소 나무하고 고기 낚던 곳 곁에 있을 줄이야
이 책 “도산서당 (陶山 書堂)”은 건축학 전공 김동욱 교수가 그 전문성을 최대한 기울여 펴낸 책이다. 퇴계 선생과 도산서당 나아가서는 도산서원에까지 확장되는 과정을 세심하고 깊이 있는 글과 사진, 그림으로 퇴계 선생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시골에 작은 집을 하나 장만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으나 도산서당을 짓고 거기서 여생을 보낸 퇴계의 행적을 살피던 중 스스로 그 꿈을 접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집을 장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에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삶을 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점에 깊이 공감한다.
아무리 멋진 집에 살지라도 그 살아가는 삶의 영혼이 한없이 가난 할 수도 있고, 아무리 비가 새고 바람이 들이치는 집일지언정 거처하는 영혼이 맑고 향기롭다면 곧 그곳이 천국이 아니겠는가. 퇴계 이황은 무엇을 얻기 위해 도산 서당을 지을 때까지 다섯 차례가 넘도록 터를 옮기고 집을 새로 지었을까? 그가 마침내 지은 도산서당은 과연 어떤 모습의 집이었고 또 이황은 이 집에서 무엇을 했나? 이황이 세상을 뜬 후에 제자들이 세운 도산서원은 도산서당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나? 저자의 이런 물음들의 답을 찾아 함께 나서보는 길이 참 좋다.
도산 서당은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한 집이다. 도산서당을 출입하는 제자들은 이 집에서 스승의 검소함을 배우고 또 집에 대한 스승의 지혜를 보았다. 집에 대한 개념이 사는(生) 것이 아니라 사는(買)것으로 바꿔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도산서당이 도산서원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집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산 증식의 일환으로 사두는 집이 아니라 어디에 몸을 두던 내가 이 세상에 빛이 되고 희망이 되는 꿈과 생각을 담는 집이어야 할 것이다. 퇴계 선생의 도산 서당은 영남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큰 자리를 이루며 많은 학자들을 배출해서 이 땅 이 나라가 이 만큼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을 심어주었고, 지금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