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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 것이 미안해지는 책' 꿈꾸는 황소'
"인간인 것이 미안해지는 책' 꿈꾸는 황소'" 내용보기
제인 구달과 이효리가 극찬한 감동우화라는 말에 읽게 된 꿈꾸는 황소 무슨 이야기일까 마음을 졸이면서 읽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동물학대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이슈화되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뿐이라니 그들을 보호해줄 법의 울타리를 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직 인간이라는 이름하에 말 못하는
"인간인 것이 미안해지는 책' 꿈꾸는 황소'" 내용보기

 

제인 구달과 이효리가 극찬한 감동우화라는 말에 읽게 된 꿈꾸는 황소

무슨 이야기일까 마음을 졸이면서 읽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동물학대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이슈화되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뿐이라니 그들을 보호해줄 법의 울타리를 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직 인간이라는 이름하에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학대하는 것을 보면 욱하고 화가 치밀어오른다.

동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딱하기는 하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최고가 아닌데 동물은 그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동물도 식물도 사실은 인간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전제하에 읽게 된 우화라서그런지

내 마음을 울렸다.

 

고웰 농장의 황소 에트로

그는 다른 소보다 똑똑하고 생각이 많은 소이다.

사랑하는 소도 있으며 농장주의 아들이 불러주는 자장가를 유심히 들을 만큼 감성파이기도 하다.

검은 황소와의 대결

내 암소라고 말하는 소와의 일들은 소들도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존재임을 말이다.

 

엄마소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애틋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자작나무 건물에서 목격한 소들의 죽음과 살육의 과정은 정말이지 끔찍해서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이것이 단지 우화일까?
많은 동물들이 대부분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같은 인간으로서 너무도 미안하다.

 

고기를 먹고 있는 이상 가죽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이상

나역시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라는 책에는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로 인하여 각종 질병이 발생하고 목숨 빚을 갚아야함을 말해주고 있다.

섬뜩하고 동물의 고통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채식만을 했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육식을 안할 수가 없다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숭산스님의 책에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동물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여 복수를 하러 온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불필요한 육식을 삼가하고

동물역시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임을 사람들은 알아야한다.

 

'이것은 황소에 관한 이야기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는 서두의 이야기가 와닿는 것은 왜일까.

 

 

s*******5 2012.07.28.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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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 -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는 것, 그보다 잔인한 운명은 없다
"꿈꾸는 황소 -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는 것, 그보다 잔인한 운명은 없다" 내용보기
슈트 컨베이어에 있을 때는 소처럼 행동할 필요가 전혀 없어. 아직 모르겠어?  슈트 컨베이어에서는 날뛰고 발길질하고 공격을 하거나 뿔질을 할 필요가 없어.  내가 진실을 말해 줄게. 이제 이 농장 생활은 끝났어. 소들도 세련되게 사는 거야. 인간의 은혜를 받는 거야.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추위와 배고픔에서 구원을 받는 거야. (p.112)      요상한 소 한마리가 있다. 만
"꿈꾸는 황소 -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는 것, 그보다 잔인한 운명은 없다" 내용보기

슈트 컨베이어에 있을 때는 소처럼 행동할 필요가 전혀 없어. 아직 모르겠어?  슈트 컨베이어에서는 날뛰고 발길질하고 공격을 하거나 뿔질을 할 필요가 없어.  내가 진실을 말해 줄게. 이제 이 농장 생활은 끝났어. 소들도 세련되게 사는 거야. 인간의 은혜를 받는 거야.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추위와 배고픔에서 구원을 받는 거야. (p.112)

 

 

 요상한 소 한마리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를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죽고 말 것이다. 우리가 굶어 죽으면, 그들 또한 굶어 죽는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이곳의 법칙이다.(p.10) 라고 생각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다른 소들과 함께 사람을 기다리는 이 녀석은 황소다. 고월 농장에서 엄마소와 함께 살고 있던 이 녀석은 스스로 '에트로'라고 부른다.  에트로는 프랑스어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에트로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아무도 듣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녀석의 눈에 슈트 컨베이어는 별 세계였다.  그러니, 그곳으로 간 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것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심지어 에트로의 엄마소까지도 말이다.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어린 소를 버려두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까?    

 

 지적인 황소 에트르는 농장에 있는 소년이 말하는 말도 정확이 이해하고 똑똑하게 알아 듣는다. 에트르는  소년과 농장주와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대부분의 말을 배웠으니까 말이다. 어느 황소도 말을 배우고 노래를 하려하지 않는다.   오직 소년만이 노래를 할 줄 안다. 암소는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에트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에트로는 다르다. 단지 아무도 못 알아듣는 다는 것 밖에.  주고 받는 말이라고는 '앙프'와 '엉프'밖에 없는 소떼들.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 녀석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왜 암소가 그의 눈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덕위의 산 밑에서 만난 암소는 그의 그녀가 되어버렸고,  애트로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재는 내 암소야. 검은 황소 넌 절대로 그녀를 가질 수 없어.  잘들어! 나도 너처럼 풀을 먹어.  나도 너처럼 뿔이 있어.  나도 너처럼 성질 있는 황소라고."(p.67)

 

 가족애를 지니고 있는 특별한 존재, 에트르.  그에게 암소는 그저 그런 소가 아니었다.  농장의 절대권력인 검은 황소에게서 지켜내야 할 존재였고, 그가 책임을 져야만 할 존재였다.  암소와 암소가 낳은 수송아지까지도.  그렇게 암소와 수송아지를 지키고 있는 에트르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기회라고 믿었다.  별 세계로 가는 슈트 컨베이어.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맛보는 너무나 맛있는 건초들.  그곳에 수송아지가 들어오지 못함이 가슴 아팠다.  새끼를 지켜야만 하는데. 그러고 에트르는 보게 된다.  평소 막연히 짐작만 하던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의 암소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보면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수송아지를 지키기 위해서.

 

 그제서야 에트르는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소가 개를 앞지를 수 없는 발, 울지 못하는 눈동자, 먹기만 할 뿐 소리 내어 외칠 수 없는 입을 가지고 태어난 하등동물이라고 생각 한다.'(p.126)라고 말이다.  소들은 주는 대로 먹지 않고 굶을 수도 있지만 어느 소도 그렇게 하는 소는 없었다.  심지어 에트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에트르의 발밑에 소년이 있을 때,  에트르가 농장의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갔을 때, 따라오는 것은 오로지 수송아지 밖에 없었다.  송아지와 함께 한 길. 송아지는 농장의 케일이 먹고 싶었을 것이고,  목초지의 풀이 먹고 싶을 것이고, 목장 생활의 가장 큰 덫인 익숙함이 그리울웠을 것이다.  하지만 에트르는 절대로 다시는 농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송아지의 무지의 유혹은 이렇게 고통을 넘어서고 있었다.

 

 에트르와 어린 황소의 앞날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에트르에 말처럼 인도로 가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절벽넘어 알수 없는 곳으로 가면 새로운 목초지가 있을까?  꿈을 꾼다.  오로지 황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꿈꾸는 황소>. 에트르는 꿈을 꾼다.  꿈을 꾸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꿈을 꾼다. 암소와 수송아지와 함께 하는 꿈을 꾼다.  진짜 황소처럼 살고 싶었던 에트르.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인 제인 구달이 권하고 있고, 채식주의자라는 이효리가 권하고 있는 책. 이들이 권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물과 인간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더라도, 아니, 그런 물음을 생각 조차 하지 않더라도, 에트르가 말하는 것은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는 것, 그보다 잔인한 운명은 없다 가 아닐까?   에트르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실망하지 않기를. 그래도 에트르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절벽까지 가서 그 끝을 내려다본다.  내 아래쪽, 내 시야가 닿는 그곳에, 수천 마리의 소들이 울타리가 둘러진 목초지 안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p.168)

 

 



d****2 2012.07.12. 신고 공감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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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에 대한 책임의식의 필요를 촉구 하는 우화.
"내 식탁에 대한 책임의식의 필요를 촉구 하는 우화." 내용보기
왜 채식을 시작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답을 주기 지친 나는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해 시작했다고 말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채식을 했던 동기와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내 의지를 관철시킬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싶더라.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던 시기에 고무되어 엄청난 량의 책을 읽었던 당시보다 설득력 떨어지는 논
"내 식탁에 대한 책임의식의 필요를 촉구 하는 우화." 내용보기

왜 채식을 시작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답을 주기 지친 나는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해 시작했다고 말 하기 시작했다그러다 문득 채식을 했던 동기와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내 의지를 관철시킬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싶더라.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던 시기에 고무되어 엄청난 량의 책을 읽었던 당시보다 설득력 떨어지는 논거로 인해 전처럼 이해시키기 위해 말 꺼내는 것이 쉽지 않다.

다시 내 채식생활을 활성화시키고 주변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영상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 보지만 역시 제대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책이 최고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편이 아닌지라 요새 뭘 볼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 와중에 백마디 말 보다 강한 한 권의 소설이 나왔다.

제인 구달이 극찬했다 하니 관심이 가고 표지에 요새 완전 호감형 캐릭터인 이효리씨의 모습에 서탐발동!

잡설이 길었으니 책 소개를 기대하고 들어왔을 사람들에게 미안하니 이제 좀 책 얘기를 해 봐야겠다.

 

 

"이것은 황소에 관한 이야기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시작에 있어 황소에 관한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하면서 아닐 수도 있다며 '왜 일까' 한번 생각하게 한다.

단순하게 황소에 대한 시선만 쫓아갈 수도 있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채식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 혹은 적어도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우회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거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투영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지금 길을 선택하는 데 망설이고 있으며 조직과 체계에 대한 납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크게 공감할 만한 책일 것이다.

생각하는 황소 에트르를 통한 우화로서 사회소설이라 할 만한 토대와 구성을 갖추고 있다.

 

'에트르'란 이름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일까 

농장을 통틀어 생각하고 말 할 줄 아는 가축이 없는 가운 데 홀로 이름을 지녔다는 것은 결국 누가 지어줬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고 가치를 부여했던 것 같다.

농장의 사람들 중에서도 에트르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고 그가 사랑한 소년 자크조차 무관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붙여줬을 리도 없다.

존재에 대한 증명 없이 살기엔 아까운 존재 에트르.

충분히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을 정도로 에트르는 사고하고 판단 할 줄 안다.

생각하고 말 할 줄 알기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누구나 통찰력이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에트르의 사고력이 신퉁방퉁하다.

 

그는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만 결국 예기치 못했던 상황과 직면하거나 판단착오로 인한 안타까운 결과를 겪는다.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움직였지만 지나고 나면 뭐가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자괴감을 느낀다.

에트르의 잘못이 아니다.

황소 에트르는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 맞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냈고 어려운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행위 자체가 대단하다.

문제는 사람이다.

 

우리가 편하자고 길들이기 시작한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야생에선 적응할 수 없어 인간의 울타리를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소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게 불가능한 현실이다.

지금 사육되는 모든 가축에게 자유를 주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필요이상의 육식을 제한했으면 한다.

또 사육에 있어서도 공장식 사육방식의 개선이 필요하고, 사료보다는 여물위주의 섭취, 인도적인 도살방식의 도입이 절실하다.

어차피 식품용으로 키워지는 데 어떻게 키워지든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질문자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우리는 뭐 영생을 위해 태어난 것인가 

 

사람을 비롯 모든 사물은 생성되는 순간 낡아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죽는다고 다들 손 놓고 손에 잡히는 것이나 먹고 아무데서나 자진 않는다.

유한한 인생을 인식하면서도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며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욕구를 잃지 않는다. 바로 그 유한성이 삶에 대한 의지를 더 확고히 해 주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의 인생에 대한 자세는 이렇게 건강하고 활기찬데 다른 개체라고 무시하고 짓밟을 순 없다.

 

적어도 가축들이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인도적인 방식으로 사육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축사를 운영하지 않는 입장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바랄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강경함이 깎이고 깎여 다소 온건한 체제를 추구하게 되어 지금에 와선 환경적, 사회적으로 윤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강제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육식을 즐기기 위해 시작 된 공장식 가축사육과 비인도적인 도살이 아무렇게 않게 이뤄지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인 영향력이 없는 나로서는 채식을 하면서 개인적인 실천을 시작했는데 온라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보다 덜 외롭고 든든하게 유지하고 있다.

일단은 나를 비롯한 채식인들이 채식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사람들이 알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게 지속하고 있다.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직업의 성격상 성향을 확고히 한다는 게 힘들 텐데도 앞장서서 나서는 걸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화 받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영향력에 놀라며 감사하게 된다.

 

이효리씨의 채식선언 이후 그녀의 팬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유기견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물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늘어난 것은 좋지만 확고한 그녀의 발언에 시시비비를 가리며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최근에는 이하늬씨가 고기 먹는 영상이 돌면서 대역죄를 진 사람인 양 비난하며 댓글을 올려대는 사람이나 일부러 더 선정적인 사진과 글로 기사화시키는 기자들을 보면 '눈먼 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 답답함이 밀려오면서 당사자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걱정이 된다.

더 이상 왈가왈부 것은 싫지만 그녀는 단지 직업에 의해 액션을 취했을 뿐인데 그 프로의식을 칭찬해주진 못할망정 안주를 위해 씹어댈 뿐인 행태야 말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이상하게 채식을 하면서 심성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는데 사회적으로 설득을 시키는 입장에 처할 때마다 억울한 마음과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전투적인 태도가 되는 때가 생긴다.

하지만 내가 이상한 거니까 채식인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비건 채식을 하며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으니 그 분들을 통해 채식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내가 채식을 시작한 시점에 비해서는 채식과 채식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아마 불리한 상황에도 무릎 쓰고 나서주는 공신력 있는 사람들과 예전에 비해 점점 성숙해지는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덕분인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주의자들을 비난하진 않는다.

소수자들의 단체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홀로 의지를 관철하기 어려워 주변에선 투쟁으로 비칠지는 모르겠으나 근본 취지는 '화합' '공생'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냥 '왜 채식이 필요한지'알리고 싶고 함께할 수 있다면 행복할 뿐이다.

 

꿈꾸는 황소를 통해 식품 관련하여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에 대한 사회적인 윤리문제에 대해 아는 것도 지각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진실은 불편하기에 피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직면하여 한 발짝 성숙해야 한다.

미숙하고도 미숙한 나이기에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고쳐야 할 것도 많아 타인에게 뭘 권한다는 게 부끄러운 처지이지만 지각은 하기에 함께하자 권한다.

아직도 채식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환경 혹은 식품윤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그저 쉽게 생각을 유도할 수 있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j*****4 2012.07.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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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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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30년 넘게 커온 터라 소가 주는 우직함은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든든함으로 와 닿는다. 어릴때 부터 소 우리에서 함께 커 왔고 부모님도 가족처럼 여긴 [한우]들과의 일상이 나에게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소들과의 일상에서 느끼던 느낌과는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 꿈꾸는 황소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결코 가볍지 않고, 편하지 않으며 제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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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30년 넘게 커온 터라 소가 주는 우직함은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든든함으로 와 닿는다. 어릴때 부터 소 우리에서 함께 커 왔고 부모님도 가족처럼 여긴 [한우]들과의 일상이 나에게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소들과의 일상에서 느끼던 느낌과는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 꿈꾸는 황소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결코 가볍지 않고, 편하지 않으며 제목과는 또다른 숙제와 와 닿게 만들 황소에 관한 우화였다.

소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들과 다름없는 우리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였다.

[꿈꾸는황소] 에트로의 이야기

주인공의 이름도 에트로로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일상을 꾸려가는 그의 사고와 시선과 독백들이 결코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농장안에 살아가면서도 주어진 현실에 결코 안주하지 않는 황소이기에 순간순간 만나게 되는 일상이쉽거나 편안하지 않으며 녹녹치 않는 힘겨움의 일상이 읽는 내내 불편하게 하였다.

생각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지는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에트로가 살아가는 농장에서 수 많은 황소와 가축들이 있었음에도 누군가가 보았을때는 변함없는 평온함의 일상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에트로의 눈에 비친 일상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잔인한 일상의 단면을 만나는 듯 하였다. 에트로를 제외한 많은 동물들이 그저 그 일상에 아무 생각없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으로 받아드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현실적인 모습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나의 일상일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생각이 앞섰다.

꿈꾸는 황소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아무생각없이 앞만 향해 달려가면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비꼬기라도 한 것 처럼 느껴졌다. 에트로의 암소이야기도 지켜주지 못했던 수송아지의 이야기도 죽으라 몸부림치며 일상에서 [에트로]이기에 더 절망적인 불편함이 오히려 내게는 생각할 과제를 주었다. 동물과 사람들이 행복한 공생을 위한 방법은 없는 걸까?

에트로의 이야기가 그저 어느 농장에서 일어난 사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일상이며 생각의 전환을 알려주는 에트로의 삶을 통해서 작은 파장 들이 점점 더 많은 숙제와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다.

g******8 2012.07.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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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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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채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유명인사들의 채식주의 선언도 이유가 있겠지만,최근 비양심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육가공식품에 대한 진실과 여러 책들에서 공개되고 있는 육식과 환경과의 영향관계가 많이 알려지면서 육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읽은 <꿈꾸는 황소>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소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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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채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유명인사들의 채식주의 선언도 이유가 있겠지만,최근 비양심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육가공식품에 대한 진실과 여러 책들에서 공개되고 있는 육식과 환경과의 영향관계가 많이 알려지면서 육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읽은 <꿈꾸는 황소>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소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소설이지만,황소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우리 인간과 너무나도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인 황소 에트르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황소다. 다른 황소들과 달리 에트르는 울타리를 탈출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 다른 황소들의 끔찍한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후 탈출을 결심하지만,결국 탈출에 성공했음에도 무방비상태에서 코요테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잃고 할 수 없이 다시 농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그토록 바랬던 탈출이었지만,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에트르의 현실이 가슴 아팠다.

 

황소의 입과 몸을 빌린 우화였지만,우화라서 우리에게 충분한 교훈을 주는 책이었다. 책에서 황소를 죽이는 장면도 그렇고 다른 장면들은 우리가 왜 고기를 먹어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설명해야 할 만큼 작은 충격을 주었다. 180여 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분량이지만,황소 에테르의 시선에서 봐도 충분히 우리에게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꾸민 부분은 아마 마지막 코요테들의 공격으로 결국 에트르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 뿐인 것 같다. 나머지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결국,이 작품에서 작가는 황소 에테르와 우리 인간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작품에서 에트르만이 모든 일의 원인,결과를 알고 있었지,다른 황소들은 그저 먹고 자고 하는 기초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그 사이에 에트르가 한 소년과 교감을 나누는 부분을 등장시키고 있다. 비록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이 작품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에트르와 소년과 소년의 노래를 좋아하는 부분은 작품에서 그나마 한가닥의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2012/8/28

l*****3 2012.08.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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셍각하는 황소, 에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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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이 황소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존재라는 뜻의 '에트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에트르는 자신의 갈라진 발굽과 등에 붙은 파리, 입안 가득 들어 있는 풀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하게 ‘생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는 울타리 안에 갇힌 채 자유를 갈망한다. 이 농장 안에서 그가 바라는 자유는 엄마와 다른 소들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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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이 황소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존재라는 뜻의 '에트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에트르는 자신의 갈라진 발굽과 등에 붙은 파리, 입안 가득 들어 있는 풀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하게 ‘생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는 울타리 안에 갇힌 채 자유를 갈망한다. 이 농장 안에서 그가 바라는 자유는 엄마와 다른 소들이 들어가고 난 뒤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자작나무 건물안에 있을 걱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 도착한 에트르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그곳은 소들의 무덤이자 잔인한 죽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무덤덤한 도살자의 칼 아래 머리가 잘려나간 소들은 뼈와 살이 발라지고 내장이 해체되고 만다. 잔인한 살육 현장을 목격한 그는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숫송아지를 데리고 울타리를 넘어선 새로운 세상, 초록색 풀이 넘실거리는 자유의 땅으로 탈출하려 한다.

울타리 안의 먹이와 보살핌에 길들여진 다른 소들은 에트르의 말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자유를 갈망하는 에트르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더 높이 더 멀리 날기를 꿈꾸는 갈매기 조너던과 닮아있다. 에트르는 “자신이 한 번 느낀 감정을 무시하며 사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라며 목숨 건 탈출을 감행하지만 결국은 농장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가끔 나는 내가 지금처럼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울타리 밖을 내다보기보다는 울타리 안을 바라보며 사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울타리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소들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짧은 후회의 에트르의 이 한 마디가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되려 내 가슴에 얹힌다.

 

굳이 울타리란 경계로 이쪽과 저족을 구분하지 않았어도, 헌법상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문서화 해 놓았어도, 어쨌든 세상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양분화 되고 자유를 담보로 한 없는 자의 노동력의 착취로 가진 자의 주머니만 두둑해 질 뿐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 울타리에 갇힌 소와 다를바 없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나는 채식주의자도 동물보호단채 회원도 아니다. 그렇다고 육식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식탁에 올라 올 가축이 그들의 명을 다할 때까지 사육두수를 제한하거나 방목을 통한 쾌적한 환경에서 자리길 희망한다, 또한 윤리적인 도축과정을 거치길 바란다. 소비자의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말이다. 인간은 소나 가축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누가 알겟는가. 자유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닐수 있음을.

k******2 2012.07.2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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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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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표지와 뒷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제인구달이 권하고 최재천이 옮긴 절망과 희망의 노래' 왜 난 이 책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것일까? 절망과 좌절의 노래만 들은듯한 내가 이상한것인걸까..? 이 책은 에트르(être : 존재하다) 라는 이름을 갖은 황소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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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표지와 뒷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제인구달이 권하고 최재천이 옮긴 절망과 희망의 노래' 왜 난 이 책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것일까? 절망과 좌절의 노래만 들은듯한 내가 이상한것인걸까..?
이 책은 에트르(être : 존재하다) 라는 이름을 갖은 황소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에트르는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또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황소임을 자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어미소가 어떻게 자신을 떠나갔는지 기억하고 있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살이 쪄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사라지던 어미소는 에트르의 울음소리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 컨베이어 벨트 끝에 소들을 위한 이상향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벨트를 타고 사라진 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대로 그 곳은 그런 이상향은 아니다. 자신의 암소와 함께 그 벨트에 올라탄 에트르는 황소라는 이유로 도축에서 겨우 벗어날수 있었지만 자신의 암소와 그리고 다른 소들의 죽음을 목도한다. 겨우 다시 농장으로 돌아온 그는 사람들의 대화속에서 들은 인도라는 나라.. 소를 신성시하는 나라를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송아지뿐 아니라 다른 소들도 이끌고 그 곳으로 향하려고도 했지만 다른 소들은 그를 따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노래를 들려주던 농장주의 아들이 자신의 이름조차 모른다는걸 알게 되는데.. 스스로 '존재한다.' 라고 생각했고 다른 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의 생각이 철저히 틀렸음을 알게 되었을까? 그의 분노는 결국 상대의 존재마저 지우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송아지와 인도를 향해 떠나는 에트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자신의 송아지마저 잃게 된다. 꿈이라면.. 이런 악몽이 다시 있을수 있을까?


무지의 유혹은 고통을 넘어선다.


그가 자신을 따르지 않는 소들을 보며 생각했던 그 말.. 주어진 삶에 그저 익숙해져 살아가는 것과 주어진 삶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에트르가.. 결국은 다시 농장으로 돌아올수밖에 없었던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복잡해질수밖에 없었고 이 책에서 희망을 읽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해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a******e 2012.07.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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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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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이슈가 되는 유명인사 이효리와 동물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제인구달이 추천한 것만으로도 관심이 갔던 <꿈꾸는 황소> 처음엔 <동물을 먹는 다는 것에대하여>와 비슷한 인문일반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황소입장에서 쓰여진 우화이다. 가볍게 읽으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충격적이라 채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수 있었던 것같다. 평소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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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이슈가 되는 유명인사 이효리와 동물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제인구달이 추천한 것만으로도 관심이 갔던 <꿈꾸는 황소> 처음엔 <동물을 먹는 다는 것에대하여>와 비슷한 인문일반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황소입장에서 쓰여진 우화이다. 가볍게 읽으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충격적이라 채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수 있었던 것같다. 평소에 제인구달이나 이효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긴했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채식은 사실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같다. 부정적이기라기보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바라보는 입장에따라 내용이 크게 달라짐을 느꼈는데, 황소의 입장에서 농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빠져보면 내가 황소였다면 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쳐진다.

 

 

이 책의 주인공은 프랑스 말로 '존재'라는 뜻의 에트르라는 황소이다. 에트르는 이 농장안에서 유일하게 생각할 줄 아는 황소이다. 다른 황소들은 그저 사람이 주는대로 먹고 주어진대로 환경에 순응하지만, 에트르는 농장주인의 아들의 노래듣는 것을 좋아하고, 물가에 비친 자신을 알아차릴 정도로 지적능력(?)이 뛰어나다. 또 겉으로는 평화롭게만 보이는 농장이지만 에트르는 울타리밖의 자유를 갈망한다. 암소들과 살찐황소들이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않는 자작나무 건물을 자유의 통로라고 생각하고있는 에트르는 암소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수송아지의 아빠가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작나무 컨베이어에 들어가게되고 끔찍한 현실과 직면한다. 그곳에는 자유가 아닌 잔인한 학살이 벌어지고있다. 자신의 암소가 분해되는 과정을 지켜보게되고, 차마 덤비지못했던 검은 황소가 무기력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바라봐야했던 에트르는 자신의 아들 송아지를 데리고 농장을 탈출한다. 하지만 결말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입장에 따라 모든게 달라지지만, 사실 가볍게 읽히는 우화치고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농장주인의 입장에서 였다면 그냥 평화로운 일상에 갑작스러운 늙고 뚱뚱한 황소의 말썽과 사고 정도였을 것같은데, 황소입장에서 바라본 이야기는 숨이 막힐정도로 무섭다. 궁극적인 자유가 있을 것만 같았던 공간에서는 잔인하게 죽어가는 황소들이 있다. 황소들의 죽음은 단지 황소들의 죽음이 아니다. 곧 에트르의 미래이고 사랑하는 아들의 미래이다. 자작나무 건물에서 소가 도살되는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서 그런지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정말 무서운 느낌이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바로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을 것같다. 하지만, 채식에 대해,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있고 무분별한 육식을 자제할 수는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p********8 2012.07.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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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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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육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을 읽고나서 보니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지능적인 황소 에테르를 통해서 인간의 이기심과 사육되는 소들의 비참한 운명을 작가분이 잘 묘사했다. 울타리 안의 사육되는 삶에 만족하며 살던 에테르는 자기를 좋아해주던 암소의 최후를 목격하고 나서 울타리 밖의 자유로운 삶을 원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가 낳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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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육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을 읽고나서 보니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지능적인 황소 에테르를 통해서 인간의 이기심과 사육되는 소들의 비참한 운명을 작가분이 잘 묘사했다. 울타리 안의 사육되는 삶에 만족하며 살던 에테르는 자기를 좋아해주던 암소의 최후를 목격하고 나서 울타리 밖의 자유로운 삶을 원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가 낳은 자식 송아지는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할 수 없다는 부성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울타리 안의 다른 소들은 그런 에테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에테르는 자식 송아지를 빼내기 위해 울타리를 부수고 나가지만 자기가 생각하던 울타리 밖의 모습은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책은 그렇게 읽기 어려운편은 아닌데 다 읽고 나면 여운을 주는게 강하다. 하지만 책을 읽었다고 육식을 안하거나 이러지는 않을 것 같다. 책을 읽고 아쉬운점은 책의 상태가 안좋다는 것이다. 페이지가 2겹씩 붙어 있는 면이 몇쪽 있어서 손으로 직접 떼느라 책이 지저분해졌다. 이점 수정바람.


a********r 2012.08.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