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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를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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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는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인 안젤름 그륀과 아동, 청소년 교육 전문가인 얀 우베 로게의 2011년 11월, 화제작이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인 존재라는 타이틀 아래 두 저자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자녀 교육에 대한 혹은, 삶의 나아갈 바에 대한 깊은 공명을 준다.    이 책의 주요 개념은 힘의 원천으로서의 영성 Spiritualitaet, 가족,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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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는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인 안젤름 그륀과 아동, 청소년 교육 전문가인 얀 우베 로게의 2011년 11월, 화제작이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인 존재라는 타이틀 아래 두 저자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자녀 교육에 대한 혹은, 삶의 나아갈 바에 대한 깊은 공명을 준다. 

  이 책의 주요 개념은 힘의 원천으로서의 영성 Spiritualitaet, 가족, 대화, 아이들이 길을 구하다, 생의 동반, 종교적 의식의 가치 등이 될 것이다. 

  1, 2장의 주요 테제인 영성에 이어 무엇보다 흥미로운 주제는 3장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 성장기 아이들은 시작과 끝, 삶과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이러한 질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될 만한 힘을 원한다는 은연중의 질문이므로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비관적이고 슬픈 경험적 상황을 외면케 할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삶을 직면하고 스스로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훌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이어, 남은 4-6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인 존재인 아이들이 독립을 준비하는 시기인 사춘기에 어떻게 하면 회복력이 큰 아이로 키울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이 시기는 아이들의 독립을 준비하는 교육 단계로 독립을 향해 가는 자녀와 달리 정작 부모 세대는 한 곳에 머물러 자신의 내면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사춘기에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별과 분리. 실로 교육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자 교육의 실천적 향 방을 묻는 시대적 과제 앞에 이 한 권의 책은 우리 학부모들 뿐 아니라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현장의 관계자들께 그 핵심을 들여다보게 하는 훌륭한 책이라 여겨진다.

  이밖에도 이 책은 가정교육이나 학교 교육을 대학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쯤으로 여기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며, 후속 세대인 자녀에게는 개념 이해 중심의 철학이 아니라 묻는 법과 답을 찾아가는 법을 즐기게 하면서, 요즘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을 채워주고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묻고 관찰하며 깨닫는 배움의 길을 간다는 점에서 길잡이가 분명한 책이라 하겠다.

   “아이들은 철학자다. 아이들이 철학할 수 있으려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와 교육자, 이 두 거장의 참된 자녀 교육에 대한 지침이 자녀교육에 대한 그리고 정신적 성장에 대한 여러분의 시야를 한층 넓혀 줄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s******n 2012.07.03.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아이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묻거든...
"아이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묻거든..." 내용보기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공저자 중 얀 우게 로게는 잘 몰라도 안젤름 르귄은 워낙 탁월한 저술가라 그가 쓴 책을 읽는다는 건 행운을 넘어 영광이겠다 싶었다. 또한 그만큼 난 아이들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을 특별히 좋아한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책만을 보는 것도 조금은 야박한 독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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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공저자 중 얀 우게 로게는 잘 몰라도 안젤름 르귄은 워낙 탁월한 저술가라 그가 쓴 책을 읽는다는 건 행운을 넘어 영광이겠다 싶었다. 또한 그만큼 난 아이들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을 특별히 좋아한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책만을 보는 것도 조금은 야박한 독서는 아닐까?

 

그런데 이미 부모가 된 사람에게 이 책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얀 우베 로게는 몰라도 안젤름 르귄은 결혼하지 않은 카톨릭 신부다. 그런 그가 아이에 관해 썼다면 조금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지만 모르긴 해도 이 책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사실 독신인 카톨릭 신부가 아이들에 대해 글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목사든, 신부든 모든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어찌 성인들에게만 국한될 수 있겠는가? 아이들 깊이 이해하지 않고는 결코 인간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실 이 책은 아이들이 신에 대해서 물으면 부모는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책은 생각보다 포괄적이어서 오히려 아이들의 교육이나 상담에 관해 다루고 있다고 봐진다. 그리고 읽다보면 상당히 원리원칙적이란 느낌도 든다. 그래서 너무 이상적인 것은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릴만한 부분도 꽤 있어 보인다. 그게 어찌보면 카톨릭 신부에 학자가 공저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져보지만, 또 어찌보면 세상의 모든 부모가 아이를 원리원칙적이고, 이상적이게만은 키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역으로 이 책이 말하는 바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하나 아쉬운 것은, 역시 제목이 뜻하는 바에 조금 더 심도 깊은 다루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나만 하더라도 마냥 천방지축이던 아동에서 사춘기로 접어들던 시절 정말 신은 있지 않을까란 진지한 물음을 가졌더랬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신앙과는 상관없는 삶을 사셨던 분들이라(나중에 어떵 계기에 의해서 신앙에 입문하시긴 했지만) 그것을 부모님께 직접 물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배면에 신이 있다는 전제가 있지 않으면 물어질 수 있는 질문이라 결국 자연스럽게 신앙에 귀의하긴 했지만, 이것은 정말 자녀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물어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물론 당연히 신앙이 있는 부모는 신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에 관심이 없는 부모는 자신이 신앙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신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설혹 신앙을 가진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자신있게 신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질문은 추상적인 것 같아도 상당히 실제적이고,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야말로 거미줄에 걸려 넘어진 꼴이라고나 할까? 내가 신앙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성급히 대답하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그 어린 영혼에게 실수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 

모르긴 해도,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는다면 그건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일 것이다. 이를테면, 정말 악마와 천사는 있는 것인가? 천사가 나를 지킨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그 천사와 악마는 어디에서 났을까? 사람이 죽는다고 하는데 죽음은 무엇이며,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까? 아무래도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안 가질 수 없다. 이런 것들에 대해 부모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건 꼭 신은 있다로 준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앙을 갖지 않는 부모라도 아이가 나와 달리 그런 영적이고, 신앙적인 것에 대해 알고자 원한다면 그 의지를 꺾어선 안 될 것이다. 결국 무엇을 아는 건 그 아이의 몫이니까.  

 

사실 오늘 날은 아이들이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거나(그것은 거의 쓰레기나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들이 너무 많다),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선 너무 모르는 지식 불균형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근한 예로 컴퓨터 게임이나, 이상한 동영상에 대해선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또한 요즘은 트렌드가 무엇이고, 어디가면 무슨 물건을 어떻게 구입하는지에 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신에 대해 고상하게 묻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순수하게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 알고자 교회나 성당, 사찰을 다니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강제에 의해, 또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이 불순하거나,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곳의 문턱을 넘나들다 보면 어느 땐가는 진짜 신앙에 올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교육이란 게 백년을 내다보고 하는 것처럼 신앙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내 아이 수학이나 예술(또는 예능)에 뭔가의 소질을 보이면 혹시 내 아이가 천재는 아닌가? 의심하면서, 내 아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이나,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서는 왜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그것은 이 다음에 알아도 된다고 밀쳐둔다. 이 모든 것에 관해 책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번쯤 읽어도 좋을 책이다. 

난 특히 어린 아이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물음에 관한 부분이 많이 공감이 갔는데, 읽으면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신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책은 어른들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단계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가까운 누군가가 죽었을 때 아이들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혼란스러운 것이다. 책은 아버지를 갑자기 잃은 10살짜리 소년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읽으면서 14,5살 무렵이 아버지를 여의었다던 나의 아버지와 이 아이가 문득 오버랩이 됐다. 나의 아버지도 이 소년 같지 않았을까? 한동안 멍했다, 슬펐다를 반복하고, 또 어느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을 소년. 하지만 아버지는 집안에서 맏이셨기 때문에 이런 감정의 표현도 절제하면서 사셨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쉬운 건 살아계셨을 때, 아버지를 잃었을 때 느낌이 어땠냐고 당신께 여쭙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것을 묻는다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 답변을 들었더라면 훗날 난 좀 더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거의 아무 것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때 갑자기 아버지를 보내드린 것이라, 그후 난 오히려 어른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어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놓고도 저리 잘 살고 있지 않는가? 나라면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저분들이 저렇게 잘 사시는 것을 보면 가족이 없는 삶(특히 엄마, 아빠가 없는)도 살만한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단, 어른이 되면. 물론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되어 돌아가셨지만, 그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어서 결코 어른이 됐다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것이 덤덤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그분들이 보여주는 담담한 삶의 태도가 또한 맞는 것임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치 어제 부모를 잃은 것처럼 언제나 슬픔속에 살아간다면, 그를 보고 자랄 아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겠는가? 그들이 삶과 죽음에 관해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면 아이도 따라서 의연하게 그 고비를 넘길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도 세상을 의연하게 살아내셨던 것처럼. 그러니 아버지께 그것을 여쭙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 할 것은 없다. 하지만 아이가 죽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말해주는 것도, 그 아이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가까운 사람의 죽음대한 목도를 훨씬 의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보면 어린 아이는 길을 묻는 손님과 같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이들이 매순간 삶과 죽음에 대해 또는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대해 수시로 물어올 때 어른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른의 모범적인 삶일 것이다. 어른은 아이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예들을 보면서 비록 어른도 완벽하지가 않아서 때로 실수하고, 많이 힘들어 한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세상에 이런 좋은 책도 많이 있는데. 세상이 험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을지라고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여전히 두려움 없이 아이를 잘 키워 냈으면 좋겠다.

m****9 2012.08.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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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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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나면 집안일에 모임에 정신없이 보내기가 일쑤여서 책을 읽는다고는 소설이나 잡지 정도가 다인 내가 오랫만에 책을 읽었다. 안젤름 그륀 신부님과 교육 전문가가 쓴 글이라 그런지 쉽지는 않았지만 안에 들어있는 에피소드가 재미나고도 유익했다.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어렸을 때 나도 삶에 대해 우주에 대해 참 진지했는데.. 제목에 이끌려 호기심에 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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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나면 집안일에 모임에 정신없이 보내기가 일쑤여서 책을 읽는다고는 소설이나 잡지 정도가 다인 내가 오랫만에 책을 읽었다. 안젤름 그륀 신부님과 교육 전문가가 쓴 글이라 그런지 쉽지는 않았지만 안에 들어있는 에피소드가 재미나고도 유익했다.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어렸을 때 나도 삶에 대해 우주에 대해 참 진지했는데.. 제목에 이끌려 호기심에 집어 든 책이 자녀교육의 핵심이 들어있을 줄 몰랐다. 자녀 교육에서 영성이 갖는 의미로 믿음, 소망, 사랑을 꼽는데 어릴 때 부터 자주 접한 이 덕목에 영적 교육의 핵심이 담긴 줄 몰랐다.

내가 아이를 믿고 기다려 줄줄 알아야 한다는 것. 아이가 부모 뜻대로 안될지 모르나 그럴 수록 더 조건없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 참 알면서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삶의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서의 교육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쉽게 보면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 그 순간 행복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하긴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되니 지금 이 순간을 알차게 보내면 그 순간이 모여 하나의 원만한 삶이 되겠구나.

일반적인 얘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에피소드를 섞어가며 쓴 자녀의 영적 교육서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데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점검하게 한다. 올 여름 방학은 이 한권의 책으로 편안할 것 같다.

h****q 2012.07.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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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안젤름 그륀, 얀-우베 로게) 리뷰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안젤름 그륀, 얀-우베 로게) 리뷰" 내용보기
자녀 교육의 참 길을 발견하다 -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안젤름 그륀, 얀-우베 로게) 리뷰 - (원문보기: http://calamis.tistory.com/135)      저자: 안젤름 그륀(Anselm Grun) 1945년 독일 륀의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난 그륀 신부는 1964년 뷔르츠부르크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바로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에 들어갔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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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의 참 길을 발견하다

-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안젤름 그륀, 얀-우베 로게) 리뷰 -

(원문보기: http://calamis.tistory.com/135

 

 

저자: 안젤름 그륀(Anselm Grun)

1945년 독일 륀의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난 그륀 신부는 1964년 뷔르츠부르크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바로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에 들어갔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리엔과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논문 [구원의 십자가를 통해]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3년 동안 뉘른베르크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성베네딕토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 수사 신부이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3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그 가운데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하늘은 네 안에서부터]·[행복한 선물]·[참 소중한 나]·[다시 찾은 마음의 평안]·[50가지 예수 모습]·[죽음 후에는 무엇이 오는가?] 등 다수의 책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1976년 첫 영성 책 [깨끗한 마음]이 나온 이래로 지금까지 200여권이 출판되어, 28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며, 총 1,400만부가 판매되었다. 동양의 명상법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안셀름 그린 신부는 우리 시대의 가장 많이 읽히는 영성작가이기도 하다.

 

"얼른 일어나라니까!"

 

오늘 아침에도 유치원에 가야 하는 큰 아이가 늦잠을 자길래 몇 번을 달랬는데도 안일어나자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읽어보아도 단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강조할 뿐 그 근원적인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하!" 하는 깨달음보다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안젤름 그륀, 얀-우베 로게, 로도스, 223쪽, 2012)

 

 

* 콜라 VS. 녹차

 

뭐랄까, 콜라와 같은 청량음료를 마시고 목젖에 바로 느껴지는 상쾌함이 아니라 따뜻한 녹차 한잔을 마실 때 속이 편안해 지고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이 책은 내게 그런 여유로움을 전해준다. 아마도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것만을 전달하려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과 내면의 영적세계를 터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답 3번!"이라고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정답이 3번일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 근원을 마음 깊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본문 내내 강조되는 학적인 설명에서조차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보통 자기계발서나 육아도서를 보면 실험을 주도한 학자의 이름과 과정, 결과 등이 자세히 설명된다. 그것을 통해 "이래도 내 말을 안 믿을래?"라고 말하듯 자신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설명이 있지만 그에 대한 근거가 보이질 않는다. '연구 결과에도 나와 있다'라고 하지만 그 흔한 주석 하나 달려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이야기들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가지 않는다.

 

 

 

* 성직자와 교육자의 그 오묘한 만남

 

이 책은 독일 성 베네딕도회의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장인 안젤름 그륀과 아동·청소년 전문가인 얀-우베 로게가 이메일로 주고 받은 내용들을 하나로 묶어낸 것이다. 그다지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저자들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건 부모가 아이를 교육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뭐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주로 다루는 개념인 영성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신성함에 대한 것이 아닌 영성을 통해 흔히 말하는 교육에 대한 짐을 들어주려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저자 중 한 명이 성직자이다 보니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배제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거부감을 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영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종교적인 부분이 강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리라. 그리고 그것을 자녀의 교육에 적용하자니 다소 애매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믿음, 소망, 사랑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 등 자녀 교육과 관련하여 다루기에는 너무 깊고 무거운 주제들 역시 조금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부담감을 또 다른 저자인 교육자가 잘 받쳐주고 있다.

 

 

 

* 인문학을 담은 자녀 교육 지침서

 

책에는 그 흔한 사진 자료 한 장 찾아볼 수 없다. 6개의 챕터로 분류되어 있지만 그 나눔이 무색할 정도로 한 번에 읽게 된다. 또한 본문 여기저기에 인용된 철학자를 비롯한 성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인문학 도서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일반적인 자녀교육서와 다른 이유다. 그래서일까, 자녀교육 전문가가 핵심을 짚어 주면서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인생의 경륜을 통해 나오는 진한 경험담을 편안하게 듣는 느낌이다. 단순히 자녀 교육에 대해 정답을 갈구하는 부모들에게 '효자손'처럼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이야기 하고 성장 과정의 희로애락을 언급함으로써 가려움증의 근원을 찾아서 더 이상 가렵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린 아이들부터 사춘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자녀'라고 말할 수 있는 전연령층을 아우른다. 심지어 부모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그 놀라운 관계성, 그리고 영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이 애초에 말하고자 했던 부모들이 느낄 수 있는 '완벽'이라는 압박감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의도는 이 책을 통해 성공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 총평

 

가끔 보면 책을 읽을 때 머리말이나 들어가는 글을 읽지 않고 본문으로 바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책을 쓰면서 머리말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그 책을 읽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머리말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이 책 역시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그 마음은 유지되었다.

 

너무 지적이거나 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종교적인 색채를 최대한 절제한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자극적이지도, 즉흥적이지도 않은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녹아든다.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그 순간엔 좋아도 그 뒤는 왠지 개운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상이 행복한 것처럼 이 책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내 마음에 스며든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고난 후의 그 감동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 놓치기 아쉬운 문장들

 

"당신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자책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 자책해서도, 그렇다고 자신을 용서해서도 안됩니다. 자신을 믿고, 자신이 뿌린 씨앗이 아이의 마음에서 싹을 틔우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 pp.8, 9

 

"풀을 잡아당긴다고 해서 더 빨리 자라는 건 아니다." - p.11

 

아이들은 많은 것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많은 걸 받을 수 있다. 곧 교육은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즉흥성과 창의성이 넘치는 상호 교감의 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분명 영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푸근한 느낌이 든다. - p.22

 

자신의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들, 즉 성공한 인생은 물론이고 실패한 인생까지 인정한 사람들만이 남은 삶을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 p.31

 

누가 봐도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 아이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아이를 인정하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아이를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교육의 결과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록 그렇게 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 p.38

 

완전함을 추구하다 보면 완벽주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창의성을 억누르고, 놀라움이 들어설 자리를 없애며, 교육과 가족의 일상에서 기쁨을 제거한다. 완벽주의에 빠진 부모는 자기 비난과 질책에 사로잡히기도 쉽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부모 자식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압박감에 시달리는 부모는 이를 자식에게 전가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압박감을 고스란히 견딜리 만무하다. 반항할 것이고, 저항할 것이며, 온갖 방법을 동원해 부모의 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다. - p.41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는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지지해주는 부모다. - p.41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라." - p.43

 

실수를 받아들이면 발전의 기회가 열린다. 실수는 선물이다. 실수를 통해 더 강해질 수 있다. 이를 두고 '실수의 친화성'이라 부른다. 중요한 건 실수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실수의 친화성은 삶에 대한 자세를 바꾼다. 문제가 생기면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어려움에 부딪히면 자신감을 키우는 기회로 여긴다. 실수는 자신의 약점뿐 아니라 강점을 가르쳐준다. - p.43, 46

 

부모에게도 영성이 필요하다. 영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내면에 숨어 있는힘의 원천에 다가단다는 의미다. 많은 이들에게 이 원천은 삶에 영감을 주는 신적인 힘이다. - p.49

 

믿음은 경청에서 출발한다. 아이드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고, 그들이 중요한 메시지를 보낸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 p.61

 

아이들의 생명력을 사랑한다면,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골치 아픈 세상사를 잊을 수 있는 귀한 휴식의 장이 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노동만을 요구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힘을 주는 존재이며,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 같은 생명력과 자유를 상기시키는 존재다. - p.127

 

부모는 항구다. 현실을 탐험하러 떠난 아이가 폭풍이 불거나 괴물을 만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항구다. 부모는 아이의 신호를 간파해 적절하게 해석하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위로받고 싶어 할 때는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한다. 아이가 슬퍼할 때는 달래주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외치는 두 가지 목소리를 잘 간파해낼 때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붙잡기'와 '놓아주기'다. 아이는 성장하며 이 두 가지를 요구한다. - pp.134, 135

 

반항기는 아동이 성장할 때 정상적으로 거치는 단계이며, 자율과 자립으로 가는 건강한 과정이다. "싫어"라는 말에는 아이의 자기 의지가 담겨 있다. - p.200

 

아이들은 철학자다. 아이들이 철학할 수 있으려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묻지만, 완벽한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관심과 호기심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을 원한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 자신과 의식을 행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영성 실천 방법을 택해야 한다. 영성을 실천할 때는 결코 기본 원칙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순하게 살아라!" - p.223

 

 

 

* 오타리스트

 

  • p.74 아래에서 9째줄: '더 이성' '더 이상'

  • p.89 위에서 2째줄: '안 그랬고' → 문맥상 '안 그랬다고'로 바꾸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듯

  • p.89 아래에서 7째줄: '신 나는' '신나는'

 

 

 

 

자녀 교육의 참 길을 발견하다 -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안젤름 그륀, 얀-우베 로게) 리뷰

calamis

(http://calamis.tistory.com)

 

 

 



c*****s 2013.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내용보기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자녀교육에 관한 책이고  평상시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아 이벤트 도서로 받게 된 책이다.   자녀교육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를 '영적인 면에 대한 이해'라고 보고 그 측면에서 자녀교육의 해결책을 풀어냈다. 신학자와 교육학자가 같이 쓴 책이라 특정 종교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기가 불편할 수 도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내용보기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자녀교육에 관한 책이고  평상시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아 이벤트 도서로 받게 된 책이다.

 

자녀교육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를 '영적인 면에 대한 이해'라고 보고 그 측면에서 자녀교육의 해결책을 풀어냈다.

신학자와 교육학자가 같이 쓴 책이라 특정 종교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기가 불편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한(?) 사람중에 하나인 나도 잘 읽었으니 종교적인 거부감에 대해선 걱정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책의 작가는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현재 독일의 뮌스터슈바르자크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는  안젤름 그륀 박사와 아동청소년 교육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인 얀 우베 로게 박사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내게 든 생각은

자녀교육을 하려면 일단은 '아이'라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거란 것이다.

자녀교육의 방법에 대한 책과 그 노하우는 세상 천지에 넘쳐나는데

막상 그 대상인 '자녀'라는 존재 자체를 알려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이란 어떤 존재이며

그 고귀한 내면을 가진 아이를 키울땐 어떤 면에서 노력을 하며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학자가 쓴 책이라 그 의미를 '영성'이란 면에서 풀어서 자칫 사람들에게 책이 참 어렵게 다가갈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출판사의 책소개를 인용해보자면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영성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영성으로 이끄는 교육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속의 ‘신’을 만나는 일이다.

마음속의 신을 만나는 일은 다름이 아니라 사랑, 공감, 인내, 관용, 용서와 같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태도를 실행해 나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덕목은 ‘단순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랬다

처음엔 영성을 찾고 그영성을 바탕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통에 당췌 무슨 소린지 몰라 해매었으나

저 설명을 들으니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머리로는 익히 알지만 가슴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랑, 공감, 인내, 관용, 용서와 같은

정신적인 면을 잘 다스려서 이미 고귀한, 위대한 영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주는것이 자녀교육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짐을 덜어주는 것이란 거다.

그 의미를 책에서 찾아보자면

 

p7. 영성은 우리의 짐을 덜어줍니다. 기술만능주의와 물질주의에 경도된 교육관

     너머에서 올바른 삶으로 가는 오솔길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죠

     영성교사 메리 버마이스터는 이 진리를 간단명료한 공식으로 만든바 있습니다

     '단순하게 살아라!'

     이 문장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영적 태도가 나옵니다.

     '살아라'를 강조할 경우, 이 문장은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충실해지라는 의미입니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태도가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인 거죠

     자녀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자신과 주변 세상을 인식하고, 자연과 하나되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삶이 제공하는 모든 감정을 몸으로 느끼며 소소한 일상에 감동하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인생길에 동행 할 수 있음을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단순하게'를 강조하면 영성에 대한 또 다른 의미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성은 날로 더해 가는 세상사의 복잡함을 줄이는 데 기여하죠

    '단순하게'란 그냥 내버려 두는 자유방임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으로 눈을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부모에게 적용하면 여유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저 서문에 다 나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중 한 명인 얀 우베 로게 박사의 자녀교육관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첫째, 경계의 경험과 규정

둘째, 인내

셋째, 여유

넷째, 위대한 감정의 경험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첫번째와 같은

아이들이 경험하는 갖자기 감정을 지지하는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삶에 동행을 하면서 갖자기 경험을 함께하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면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아이들도 본인이 겪게 되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인정하게 되면서 내면적으로 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로 인내란 지금 이 순간에 머문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성장의 각 단계를 허겁지겁 쫓기듯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아프리카 속담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했다

"풀을 잡아당긴다고 해서 더 빨리 자라는 건 아니다."

그러니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동행해주어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추격이 아니라 동행이다

 

셋째로 여유이다 

인내는 여유와 깊은 관계가 있다

여유란 나태하고 무관심한 자유방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허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아이를 교육하는 사람의 인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부모 스스로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스스로 불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감정의 경험

이것은 '아이들은 경계를 원한다.'라고 말 할 수 있는데

경계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그들이 얼마만큼 가도 좋은지, 경계를 넘어서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알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아이들에게 경계를 지어줄 부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명확하고 믿을 수 있는 기준을 원하는데 그 말은 곧 부모가 책임을 의식하고 아이를 믿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실례로 아이들이 경계를 배워가는 과정중에 '도둑질'이 있다고 한다

P93에 아이들이 도둑질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보통의 부모들은 본인들의 자녀가 도둑질이라걸 하면 크게 충격을 받으면서 해결책에만

급급하지 왜 아이가 도둑질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안한다고 한다

여기에 나와 있는 아이들의 도둑질의 이유들이 재미있다

 

일단 아이들은 '도둑질'의 의미를 모른다

그래서 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하면 어찌 되는지 알고 싶을 뿐이란 것이다

이것이 곧 경계를 시험하는 아이들의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그 행위를 하고 나서 부모에게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반응을 가지고

아이는 해도 되는 행위, 해서는 안될 행위의 경계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간혹 의도적으로 경계는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쁜짓인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면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은 경우

또는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경계를 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럴때 일수록 중요한 것이 아이들이 경계를 넘는 행동을 저질렀다해도

지금 있는 그대로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영적 교육이라고 한다

꼬마 도둑도, 아니 꼬마 도둑이야 말로 기댈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아이가 직접 되어 본것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지 읽는 내내 감탄이 나왔다

정말 한마디로

아이들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볼때  자녀 교육의 관건은 부모의 자질과 자세인것 같다

책에서 말하는 신을 만나는 일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인것 같다

 

책은 저자의 이 4가지 교육관을 구성으로 하여

실사례들을 들어가며 자세하게 풀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은

'아이들은 길을 묻는 손님이다.'라는 구절.

 

P35. 부모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성장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적절한 순간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동행과 관계의 기본 원칙이다.

      아이는 길을 묻는 손님이다. 한동안 옆에 서 있지만, 곧 제 갈 길을 찾아 집을 나선다.

      어쩌다 집에 들러 그동안 겪은 모험담을 들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되면 다시 길을 나설 것이고, 그러다 어느날 슬쩍 다시 들러 새로운 모험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수영을 가르치는 것도 아이를 양육하는 것도 결국 '붙잡기와 놓아주기'의 균형에서

     비롯된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칼릴 지브란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부모)은 활이며, 당신의 자녀는 그 활이 쏜 살아 있는 화살이다.

     사수는 무한의 오솔길에서 과녁을 바라보며 화살이 더 빨리, 더 멀리 날아가도록 있는

     힘껏 당신을 잡아당긴다.

     사수의 손이 잡아당김을 기뻐하라.

     수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 멈춰 서 있는 활도 사랑한다."

 

더 이상의 표현과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내가 볼때는 이 저자들은 기독교와 불교, 두 종교의 장점을 모두 섭렵하신 분들 같다.

말 그대로 이것이 아이와 부모의 관계 아니겠는가...

 

 

 

 

v****a 2012.08.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