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고조선이 있기 한참 전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동물들이 살아 있고, 사람과 신선, 혹은 신과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던 시절들이 과연 있었을까? 각기 식물과 동물들에는 그 식물과 동물들을 관장하는 신격인 존재가 있고, 그 신들과 같은 존재와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 상상 속에만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그곳.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욕심과 야욕과 경쟁이 함께 한다. 누군가를 무시하고, 천하게 생각하는 것.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지만 그럼 이야기 자체가 만들어 지지 못할까?
세상에는 세 사람이 있게 되었다. 바람과 물의 아이들이 자유로이 날개를 펼치며, 하늘에 가까운 이들이므로 ‘천인’이라 하고, 흙과 나무의 아이들이 낮은 곳을 즐기는 까닭에 ‘비인’이라 하고, 쇠와 불의 아이들이 가장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았으므로 그들이 스스로를 ‘상인’이라 불렀다. 씨를 뿌려 경작하는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상인들의 수가 늘고 그들의 피 속에 욕심이 자리 잡았다. 상인들은 늘어나고 우두머리를 만들고 나라를 만든다. 천인은 날개가 달려 상인이 함부로 할 수 없다 생각하지만 비인들은 달랐다. 아무것도 거둘 줄 모르고 뿌릴 줄 모르는 쇠약한 짐승 비인... 상인들은 그들을 인간이라 부르지 않고 비인이라 칭하며 그들을 괴롭힌다.
갈은 비인과 상인이 사이에서 태어난 뿔 달린 아이다. 어느 날 비인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맞고, 그걸 막는 어머니마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런 갈을 기류원은 데려다 키운다. 갈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자 천인의 신분을 가진 이린이 갈을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 날 류원은 갈을 불러 이야기 한다. 세상을 처음 만드신 분. 아홉 감님. 감의 수와 똑같은 아홉 개의 붓을 감들께서 인간들에게 내리셨다. 천인에게 셋, 상인에게 셋, 비인에게 셋. 이젠 그 아홉 붓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을 아홉 감이 바라시는 조화의 땅으로 만들 길이 그 붓 안에 있으니 그걸 찾아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 갈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여행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연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갈은 아홉 개의 붓을 다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사람들의 한을 치유하고 사람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갈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을 혼돈의 세상으로 만들고, 위험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그들에겐 욕심이 있고, 한이 있고 복수가 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마음의 한을 위해 타인을 힘들고 아프게 한다. 또 한 사람은 아직 어리고 성숙하지 못한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 사람은 그건 몰랐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험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 권력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 안전이, 우선시 되었을 거라는 갈의 마음을...
아픈 사람 낫게 하려는 마음, 도움 되는 물건 만들어 주려는 마음, 잘못 태어난 것을 온전하게 해주려는 마음, 물을 모야 사람들 목마르지 않게 하려는 마음.... 내 마음이되 나를 위한 마음이 아니라, 그걸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마음. 주인의 마음을 나타내고, 주인의 마음을 타인에게 전하는 것. (375)
아무리 훌륭한 도구도 주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익할 수도, 아주 위험할 수도 있다. 아홉 개의 붓을 모아 자신의 힘을 강하게 하는 자와 사람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자. 당장의 이익은 없을지 몰라도 그 힘이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지혜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살아오기 이전... 아주 오래 전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먼 옛날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고 행복이다.
아홉 개의 붓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도 숨어 있을까? 우리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그 아홉 개의 붓은 함께 뭉쳐져 힘을 발휘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어 줄까? 어느 시대건 세상을 위협하는 자들은 있었다. 그 사람들의 욕심을 제로로 만들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들이 있다. 평범하지만 한 목소리를 내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내는 국민들.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아홉 개의 붓은 우리들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상상으로 책을 덮는다. |
|
제 4회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당선작《아홉 개의 붓》, 상인 어미와 비인 아비 사이에서 태어난 '갈'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한골 마을의 큰 어른인 '윗손' 류원의 보호아래 그의 집에서 자라났다. 류원은 '갈'에게 아홉 개의 붓을 모아 달라는 부탁을 하고 '갈'은 아홉 개의 붓을 모으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정에서 처음 만난 것이 천인 '재찬'이며 그 다음으로 만난 사람이 비인 '아리'다. 아홉 개의 붓 가운데 셋은 상인의 것, 셋은 비인의 것, 그리고 나머지 셋은 천인의 것이다. '갈'이 그림 그리는 붓을 가지고 있고, 비인 '아리'가 피리를 붓으로 가지고 있다. '새벽돋이' 마을에서 만난 '윗손'의 막내아들 시겸이 상인의 세개 붓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 듯.
역사로 불리기 보다 신화로 존재했을직한 나라 한, 이 책의 배경인 한국은 부족 사회를 지나 나라를 이루는 과정 사이를 말하는 것 같다. 참 여기에 등장하는 아홉 감은 먹는 감이 아닌 신을 말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천인과 상인 그리고 비인을 만들어 낸 태초의 신들이 바로 감님들이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으니 왜 감님들을 말 많고 탈 많은 상인들을 만들어 낸 것일까? 그들이 있음으로 천인과 비인이 멀지않은 미래에 소멸의 길을 걸어가게 될것 같은데. 그들이 삼인을 하나로 모을 인재로 내세운 '갈'이란 소녀가 그들의 뜻대로 '아홉 붓을 모두 모은다는' 목적을 달성하여 화합을 이뤄낼수 있을까? 또 한가지 아무리 훌륭한 도구라도 주인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익할수도 위험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만약 그런 붓이 내 손에 쥐여진다면 나는 어떤 소망을 빌게 될까?
떠돌이 풍각쟁이 출신의 비인 아비와 고아 출신의 상인 어미 사이에서 태어난 갈, 다정다감한 그들의 생활이 깨진것은 갈이 세살 되던 해 아비가 비인이라는 정체가 들통나면서 였다. 갈의 아비의 정체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몰려와 아비를 때려죽였고 어린 딸마져 죽이려는 것을 말리던 어미는 그들에 의해 타살 당하고 만다. 어미가 딸을 감싸다 맞아 죽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혈육인 갈은 마을의 큰 어른인 '윗손'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한골에서 '윗손'으로 마을을 다스리는 이는 기류원이라는 사람으로 '갈'을 구할 당시 그의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아직 어린 소년이 더 어린 소녀를 구해준 것이다. 그후 그는 '갈'의 이름을 지어주었고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12살 차가 나는 소년과 소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그들 사이에 로맨스를 기대했었으나 그 기대는 실망을 안겨주었다.
'가서 아홉 붓을 모으거라. 이 세상을 아홉 감이 바라시는 조화의 땅으로 만들 길이 거기에 있다.' (p.38) 아홉 개의 붓을 모으라며 류원이 해준 말이다. 이제 스무 살이 된 갈은 주인 기류원의 명령으로 세상을 떠돌며 감이 세상에 남긴 아홉 붓을 찾아 여정을 밟아간다. 여행 도중 '재천'이라는 떠돌이 약장수를 만나고 그와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그림자의 숲에서 첫번째 붓의 주인(아리)을 만났고 그녀 또한 가족들을 떠나 나머지 붓을 찾기위한 동행자가 되었다. 여정이 단순히 순조로운 것만 있는것은 아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삶이 피팍해진 사람들에게서 먹을거리를 구하기란 무척이나 힘들었고 어린 아리가 병들기까지 했다. 아홉 개의 붓과 아홉 명의 주인을 모두 만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갈의 꿈은 이루어질까?
천인·상인·비인으로 나뉘어진 세상을 보면서 마치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괴롭히는 작금의 현실을 연상하게 되는 이유는? 바람의 감과 물의 감이 천인을 만들었으며, 흙의 감과 나무의 감이 비인을 만들었고, 쇠의 감과 불의 감이 상인을 만들었다. '바람과 물의 아이들이 자유로이 날개를 펼치며 하늘에 가까운 이들이므로 '천인'이라 하고, 흙과 나무의 아이들이 낮은 곳을 즐기는 까닭에 '비인'이라 하고, 쇠와 불의 아이들이 가장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았으므로 그들 이 스스로를 '상인'이라 불렀다.' (p.33) 천인과 비인, 상인이 세상에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다수를 차지하는 상인들은 수가 많지않은 비인들을 동물처럼 취급하고 박대하기에 이른다.
천인, 비인, 상인으로 구분되는 그들을 보며 얼마전부터 읽고있는 이환의《숲의 종족 클로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클로네가 생각났다. '클로네'는 이환이라는 판타지 작가가 새로이 만들어 낸 종족으로 클로네 종족의 왕자인 세이라키아 폰 라반트가 그 주인공이다. '검은 벨벳 같은 머리카락, 상아로 빚은 것 같은 새하얀 피부, 미의 여신이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것 같은 섬세한 이목구비, 와인을 떨어트려 물들인 것 같은 붉은색 눈동자' 이것이 세이를 주변 사람들이 세이의 외모에 대해 표현해낸 말이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터라 작라를 가리지않고 골고루 보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좋아하는 작가는 따로 있는 편이다.《숲의 종족 클로네》의 저자 이환이 그렇고,《묵향》의 저자인 전동조의 강력 팬임을 자임한다. 책은 '해피앤딩을 끝을 맺는게 가장 행복한 마무리야'를 외치면서도 오늘도 공포·추리·미스테리물을 찾아 헤메는 나는 뭐니? |
|
몇 주전에 읽고는 잊고 있었다. 가독성이 뛰어나서 하루만에 다 읽고나서는 이 신예 작가에게 푹 빠져 있었는데, 다른 책을 넘기고 있자니 또 다른 내용에 빠져 버리기 일수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을 하는 책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는 생각이 드는게 아닌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아홉개의 붓이> 떠올랐다. 그렇지? 그렇게 책 표지가 떠올랐고, 갈무리 해놨던 책의 내용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곱게 한복을 입은 소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 소녀가 여간 이상한것이 아니다. 머리에 뿔이 있는 소녀. 뭘까? 그 소녀가 들고 있는 붓이 '아홉개의 붓'인가? 아니면 붓이 아홉개라는 말일까?
바람과 물의 아이들이 자유로이 날개를 펼치며 하늘에 가까운 이들이므로 '천인'이라하고, 흙과 나무의 아이들이 낮은 곳을 즐기는 까닭에 '비인'이라 하고, 소와 불의 아이들이 가장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았으므로 그들이 스스로를 '상인'이라 불렀다. (p.32)
신화적인 요소가 훨씬 강한 나라가 '한'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홉개의 붓>의 배경은 한이다. 이 한을 만든 신적인 존재가 '아홉의 감'이다. 아홉 감은, 빛과 넋과 시간, 바람과 물, 흙과 나무, 쇠와 불의 감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이 하늘 세상에 살던 감들이 혼돈의 세상을 하늘 세상과 닮은 모습으로 빚기로 마음먹고, 삼인(천인, 상인, 비인)을 만들어 현세로 보내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들의 모습이 지금의 세상과 비슷해 져 버렸다. 아무런 힘도 없던 상인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그들은 하늘을 나는 천인은 신적인 존재로 생각을 하고, 함께 하지만 욕심 없는 비인은 낮게 여기고, 자신들의 노비나 가축쯤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세상에 한골이라는 작은 마을의 높은 어르신 류원은 17년 전에 맞아들여 키운 ‘갈’이라는 아이에게 아홉 감과 아홉 붓의 이야기를 들려주게된다.
감의 수와 똑같은 아홉 개의 붓을, 감들께서 인간들에게 내리셨단다. 천인에게 셋, 상인에게 셋, 비인에게 셋. 똑같이 그렇게 주셨단다. (p.28)
상인과 비인 사이에서 태어난 상인들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는 비극을 겪었지만, 갈은 류원의 호의아래 아가씨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상인보다 오래 살수 있는 비인. 비인의 피를 받았기에 17세 소녀임에도 보통의 소녀티가 나지 않는 갈은 류원이 말한 '감'을 찾아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왜 갈일까?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감'의 주인이었으니까. 그녀가 만든 붓으로 그린 그림은 향기가 났고,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천인인 이린이 갈의 뿔을 없애 주면서 갈은 상인 소년의 모습으로 세상으로 나아간다. 세계를 창조한 감(신)들은 자신의 힘을 아홉 붓에 나눠 두었고, 그것을 모두 모으게 되면 세상은 삼인이 모두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된다고 류원은 말했다. 갈이 세상속으로 나가면서 갈과 함께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약초를 쓸줄 아는 재찬, 비인이면서 피리로 물을 불러들일 수 있는 아리, 나무칼을 사용하는 시겸. 여러 형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붓'이 하나씩 갈에게 모여지기 시작한다.
가독성도 좋고, 그리 두껍지도 않은데, 아홉개의 '붓'이야기가 설렁설렁 쓰여진 부분이 없다. 갈과 일행들이 들리는 곳마다 '붓'은 있었지만, 이 붓은 주인과 함께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홉개의 붓>은 '붓'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곳이든 그들이 가는 곳엔 천재가 만들어낸 삼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모두 같았을까? 인간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잔인해 진다. 인간이 아닌이들로 인해 자신들이 살 수 없다고 믿게 되고, 그들이 벌인 일이 아니라도, 말 못하는 이들에게 덮어 씌여버리기도 한다. 소수의 약자에가 다수는 왜이렇게 악해지는걸까? 갈이 가는 모든 곳에 '비인'들은 숨죽이고 두건과 모자로 뿔을 가리고 있다. 물론 모두다 그런것은 아니다. '짚풀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함께 공존하고 살아가는 곳도 있기는 하다. 눈살이 찌뿌려지기도 하고 미소가 머금기도 하는 곳들을 지나면서 갈의 일행들은 붓, 피리, 방울, 나무깎는 칼, 종, 도기, 뜨개바늘, 옥돌과 끊임없이 악인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영암'의 옥달까지 모으게 된다.
붓을 모으는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했나? 그건 곧 삼인의 권력이야. 수단으로서 그만한 수단이 없지. (p.279)
아홉개의 붓이 모여지면 아홉 감이 바라신 세상, 조화의 세상, 누구도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누구도 아래에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이 된다고 류원은 갈에게 분명 말했었다. 그랬기에 갈이 움직였고, 아리와 시겸이 함께 했었다. 이부명이 갈을 쫒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기 전까지 갈은 류원을 의심치 않았었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품게 만들어 버린다. 어린 소녀가 의지하던 재찬이 천인인 '이진'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아니 류원과 함께 했던 이린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갈이 품었던 생각은 어떤것이었을까? '붓'을 찾으면서, 갈과 함께 하는 이들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넋업사리를 선택하는 어린 소녀 아리도, 비인인지 상인인지 알 수 없었던 시겸도, 천인이면서 불량품이라 생각하는 재찬도 모두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면서 이들은 아홉 개의 붓을 다 모은다. 붓이 다 모이면 천지가 바뀐다고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이전과 똑같았다. 오로지 갈이 그렇게 믿고 따랐던 사람이 힘을 위해서 '붓'이 필요했음을 알게 될 뿐이었다.
붓이 무엇일까? 감이 만든 아홉개의 붓은 분명 세상에 존재했다. 갈이 만난 인물들은 뿔이 있던, 날개가 있던 모두 사람이었다. '붓'은 그들의 삶에 이야기였다. 간절히 염원했을 때 만들어 진다는 '붓'. 자신의 욕심이 아닌 남을 위한 염원이 담겼을 때 '붓'은 향기를 내고 물을 모으고 소리를 냈다. 권력이 아닌, 사랑과 희생이 있을때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과 재찬, 아리와 시겸은 '붓'을 모으면서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낸 '붓' 역시 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또 다시 그들은 움직일것이다. 사라지는 '붓'과 다시 생겨나는 '붓'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서로 감싸주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움직일 것이다. 천인과 비인과 상인, 그리고 비인이면서 상인인 이들은 어쩌면 지금도 '붓'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
|
어릴 적 해리포터 시리즈를 처음 읽을 때부터 판타지 장르에 매우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책의 출간소식은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우리 고유의 환상성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영미 판타지인 해리포터와 달리 국내 작가들이 쓴 것들은 한국인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영어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이름도 죄다 영어 이름에 지명도 직업도 온통 영어 투성이었다. 심지어 개성도 없었다. 어느 책을 읽었는지가 헷갈릴 정도로 책마다 드래곤이나 엘프들이 줄기차게 등장하고 그 놈의 마법이란 것도 '파이어볼', '매직 애로우' 등 새로이 지어낼 생각은 없는 것인지 모두 똑같았다. 개성이라곤 없이 그저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내용들에 질려 판타지라는 것에 손을 대지 않은지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차에 이 책을 보니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 든 생각은 '아, 판타지 문학상 이라는 게 생겼구나. 책 표지만 봐도 기대가 되는데?' 였다. 책 표지부터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것 같아서, 큰 기대를 품고 책을 구입했다.
이 책에는 외래어 따위가 하나도 없다. 순수한 한국 자체만을 보여주면서도 판타지를 살려낸 점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소설'이라는 심사평이 더욱 이해가 됐다. 읽는 내내 신선한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며 떠올리는 이미지들도 모두 한국적인 순수한 색채가 선명히 남았다. 한국의 전통미를 그리면서도 무척 세련된 느낌을 주어서 좋았다.
내용면에서는 사실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주인공인 '갈'은 마을에서 처참히 죽어간 부모님으로 인해 홀로 남겨진 자신을 거두어준 기류원 아래서 자라고, 아홉 개의 붓을 모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처음에는 류원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에 붓을 모으는 여정을 떠났지만 소중한 동료들 만나고 동시에 붓들을 모으는 과정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 붓을 모으는 동안 갈에게는 원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돕는 과정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던 것은 맹목적으로 비인들을 미워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너무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억지스러운 느낌이 다소 있었고, 가는 마을마다 해결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마치 <명탐정 코난> 만화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였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구성에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 책을 읽는 데에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인들이 단지 한이 '미개하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호의를 모두 무시하고 벌레 마냥 대하고,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잘 살고 있는데도 굳이 시비를 붙여 끌어내 죽이기 까지 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심지어 상인들이 덜떨어진 존재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 또한 천인, 상인, 비인의 조화를 해치는 데에 상인이 일조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역시 결말부이다. 책을 펼치면서 '어라, 드래곤볼인가?'하고 피식 웃으며 혹시 결말도 소원을 멋지게 이루는 것으로 끝나면 어쩌나 했던 마음은 기우였나보다. 반전을 가져온 점도 매우 좋았고,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 다시 여정을 떠나는 모습은 책을 덮는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어쩌면 주인공인 '갈'은 여정을 떠나기 전에 이미 행복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시겸, 아리, 재찬이 언제나 여정을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므로.
내용면에서 조금 더 다양한 모습들을 그려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한국적 판타지가 어떤것인지 궁금했던 내 마음을 충분히 충족시켜 준 것 같다. 또한 '갈'의 아름답고 선한 내면의 과정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
|
판타지는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판타지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예전에 퇴마록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그리고 드래곤 라자가 인기가 있었을 대 아마 그때부터 한국형 판타지는 무엇인가의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한국형 판타지는 무엇일까? 한국이 전면에 나와야 할까? 아니면 동양적 세계관?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얼마 전 처음 무협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은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했지만 무협은 어쩌면 중국의 판타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공법으로 빠르게 달리고, 몸을 단단히 해서 검으로도 상처를 입힐 수 없고, 내공을 사용해 검기를 날리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판타지일 것이다. 거기다 대륙적 스케일과 남자들의 야망은 아마 '중국적이다'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느낌을 준다. 고전 봉신연의나 서유기도 동양적 판타지일 것이고 내가 여러 번 읽은 구운몽도 동양적 판타지라고 봐야할 것이다. 읽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십이국기도 동양적 판타지로 정의한다고 알고 있다. 그럼 더 확장하면 결국 한국의 판타지는 무엇일까? 한국이 소재로 되어야 할까? 쉽게 정의내려지지 않는다. 퇴마록(치우천왕기, 왜란종결자, 퇴마록으로 이어지는 세계관)과 이영도의 새 시리즈(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는 사람들이 한국적 판타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무엇이 한국적 판타지일까? 아홉 개의 붓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새로운 형식과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퇴마록이나 이영도의 새 시리즈와는 좀 다르다. (이영도의 새 시리즈 중 피를 마시는 새는 곧 읽을 예정이다.) 얼마 전 읽은 한국 신화도 그렇고 한국 신화나 전설, 이야기에는 중국, 서양과는 다른 한국만의 뭔가가 있었다. 아홉 개의 붓을 읽으면서 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국 신화를 읽으면서 느꼈던 뭔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걸 말로 설명하려면 난 더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퇴마록이나 새 시리즈와 다른 정말 뭔가가 있다. (퇴마록이나 새 시리즈가 한국적 판타지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다른 책들도 읽고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설명하기 힘든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지. 절판된 것이 아쉽지만 꼭 구해서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
|
현직 수학 교사이자 국내 판타지문학 전문 웹진인 「거울」의 필진이기도 한 작가가 수년 간 틈틈이 작업해 완성한 작품인 《아홉 개의 붓》은 고대 한국의 환상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 안에 담은 작품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영웅 하나에 의해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고전적인 판타지와는 다르게, 《아홉 개의 붓》은 ‘붓’이라 불리지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신비한 도구의 주인인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건 해결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새로운 이야기 전개 방식을 취한다.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려는 주인공의 꿈과 맞물려 아름답고 환상적인 결말에 도달하는 스토리는, 완벽한 화음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떠올리게 한다. |
|
나는 책을 아주 빨리 읽는 편이다. 소위말하는 요즘 유행인 힐링도서들도 길어야 세시간정도 걸린다. 아홉개의 붓은 처음 40페이지까지 그런속도로 읽다가 책을 덮고, 한참을 지나서야 오늘 새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의 시작을 집중해서 천천히 읽으려 애썼다. 판타지문학을 읽어보지않은(해리포터조차도!!!) 나에게 이 소설이 만들어놓은 인물과 세계관을 머릿속에 그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
|
책을 선택하기 전에 그 책의 간단한리뷰를 읽고 읽는편이다. 근데 드래곤볼이야기와 비슷하다는평 을 읽고 나서인지 내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만 났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어서 끝까지 읽었다. 생각보다 결말이 허무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한글로 표현한 여러가지 용어들은 내용에 집중하기가 힘들었지만 나름 한글스러움이 묻어나서 나쁘지않았다. 단지 지은이도 약간 어려운문체에 신경이 쓰였던지 독자가 읽다가 헷갈릴까바 걱정을 한탓인지 아홉개의 붓이 무엇인지 왜 찾는지 끝임없이 글로쓰고있는데...한 열번이상 같은내용을 읽으려니 짜증이 좀 났다. 좋은 메시지는 독자가 직접 느끼게 할수있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은 없었나보다. 내용중에서 유난히 넋업사니라는 내용이 많이나온다. 한마디로 무녀라는 말인데 유난히 무녀에대한 에피소드도 많고 계급중에서도 높은 어르신으로 지나치게 많이 쓴것이 저자 아는사람이나 가까운 가족중에 무녀가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야기의 반이상이 무녀가 해결하니 말이다. 계급사회에대한 책 내용은 느낀바가 많았다. 상인들은 100년정도 밖에 살지못해서 더 살아보려고 아둥버둥대는 그래서 욕심에가득찬 인간들.. 그래서 공감가는 내용이다 . 저자가 수학교사라 교실에서 일어나는 계급에대한 문제도 녹아내린것같다는 평도 보았는데그건 아닌것같다. 그럼 학교에서 천인은 누구인가? 학교계급을 빗대면안되겠다. 학교든 어디든 인간은 상인과 비인중간쯤 되겠지...참 많이 생각하게하는책이다. |
|
추석 연휴동안 읽었다. 동생이 구입해서 가져왔는데 좀처럼 읽혀 내려가지 않았다. 물론 추석명절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한몫을 담당했는데 거기에다 처음 환타지 소설을 읽은지라 모든 단어들이 낯설기까지 했다. 역시 나는 이런 류의 환타지와 SF들이 나에게는 맞지 않다라는 걸, 평생 왜 읽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였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는데 날개를 가진 천인, 그냥 평범한 상인, 이마에 뿔을 가진 비인(뿔달린 소설 앞표지에서 부터 거부감이 확~~~)이다. 주인공 갈은 비인인 아버지와 상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비인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무참히 죽음을 당한 데서 류원이라는 웟손이 구해 겨우 목숨을 건진다. 류원 밑에서 자라면서 그림을 그리고 붓이라는 걸 만들면서 세상의 신(내 식대로 풀이하자면)이 내려준 아홉개의 붓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 나서 류원은 그녀에게 아홉개의 붓을 찾아오라고 부탁한다(왜 정확히 찾아 오라는지, 물론 세상의 조화를 위해서라는 게 있긴 하나 정확한 이유가 보이질 않아 이건 뭐야 이랬다.). 세상에는 아홉개의 붓이 있는데 이걸 모으면 천인, 상인, 비인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서 기꺼이 갈은 길을 떠난다. 이 마을 저마을 다니면서 재찬을 만나고, 넋업사니의 운명인(무당의 운명인) 아리를 만나고, 시겸을 만나면서 (이둘 모두 붓의 주인들 중 하나이다.) 붓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뭔가 벌어질 거 같은, 즉 큰 일이 벌어질 거 같은 암튼 뭔가가 잔뜩 기대하게 만드는데, 왜 여기서 소설의 구성단계가 생각나는 건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이였나??? 설마 절정 부분이 마을을 혼란에 빠뜨리고 다니는 나그네와의 반전의 그 장면인가? 뭔가 밋밋하고 뻥찐 기분은 뭘까?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생각지도 않던 이 소설을 쓴 글쓴이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했다. 처음으로 환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글을 읽었다니, 그만큼 난 환타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홉개의 붓을 다 모으면 뭔가 벌어질 거 같은데 그러지 않은 걸 보니, 그리고 갈을 포함한 네명의 객들이 다시 여행을 떠나는 걸 보니 혹시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라느 조심스레 말을 꺼내본다. 아무래도 속편이 펼쳐져야만 이 이야기가 끝을 화끈하게 맺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센 적을 만나서 싸우고 주인공과 조연들이 위기를 겪고 늘 그랬듯이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헤쳐 나가야지만이 이 글을 읽으면서 고조된 감정들을 확 풀어주지 않을까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소설쓰는 작가의 상상력은 참 대단하다. 등장인물의 이름 짓는거에서, 마을 이름, 개연성 확보, 듣도 보지도 못한 단어들까지. 넋업사니, 윗손, 감(먹는 감 아님) 등등. 망상의 망상만을 주로 하는 내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
|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