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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없는 여름
남자없는 여름 남자없는여름 아니 여름에 남자가 없다니.. 반대로 여자없는 여름... 듣기만해도 어리둥절하다. 왜 남자없는 여름일까? 그것도 2011년 페미나상 노미네이트로 전세계 30개국 독자들을 홀린 소설이라하는데, 거기다가 책의 표지는 여자혼자 바다로 뛰어드는 듯한 모습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여자가 주인공이다..주인공인 컴럼비아 대학교수인 미아 프레드릭센은 어느날 남편으로부터 휴식기를 갖자고 말하는 순간분터 요즘 흔히 말하는 멘탈 붕괴가 되어 버린다. 정말 어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혼도 아니고 갑자기 잠시만 휴식기를 갖자고 하다니. 그로인해 미아는 정신병이 생기고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퇴원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가슴에 남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하며 살기를 원하는데 이때가 바로 여름이었다. 미아는 고향에서 살면서 고향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통해서 점차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자기 자신의 자아 역시 찾아간다. 이 책 남자 없는 여름은 1인칭 시점의 소설로 맨 처음 글의 첫글부터 왜 남편없는 여름을 보내게 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는 점차 미아의 갈등과 심리를 보여주는 소설인데. 우리 사회의 한 단편을 모두가 알고있지만, 모두가 모른체하는 이야기들을 꼭 끄집어 냄으로써 모두에게 폭로하고자 하는 책이었던것 같다. 그러면서 여자들도 남자없이 더 잘 할 수 있으니, 있을때 잘하라는 듯한 느낌을 받은것 또한 사실이나, 한편으론 남자들이 좀 많이 고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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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프레드릭센, 나는 정신병원에 갇혔다가 풀려난 이후 뉴욕을 떠나 고향인 미네소타의 본든으로 향한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보리스,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된 나의 남편의 ‘일시정지’ 때문이다. ‘일시정지’는 보리스가 함께 일하던 프랑스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이제 둘이 한 공간에 머물 수 없는 상황 그러니까 결혼 생활의 ‘일시정지’를 의미하기도 하며, 이러한 사태의 원인 인자 중 하나인 그 프랑스 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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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가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사실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괜히 어떤 부부를 관찰하게 된 것처럼, 그것도 관심 있는 부부.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좀 알고 있고, 그래서 좀더 알고 싶은 그런 부부.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었다. 표현도 전개도 간간이 걸렸다. 수월하게 넘어가는 듯 싶다가도 소설이 아닌 것처럼 정신 집중을 요구하는 내용의 전개.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이유로 인내심을 갖고 읽었음을 적어 두어야겠다. 마치 두 사람이 부부인 이유를 알아내겠다는 것마냥. 먼 나라 사람이기도 하고, 그만큼 정서도 다를 테니 내가 굳이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이들 부부라면 어떤 대화를 나누며 어떤 태도로 서로를 대할 것인지 단순히 궁금하기도 했고 이 책을 통해 일부 짐작하고 싶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다지 성과를 얻은 것 같지는 않다.
제목만 보고 제법 강렬할 줄 알았다.(어떤 책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던 것인지 기억에 없다.) 남자 없이도 얼마나 잘 살아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글인 줄 알았으니까. 삼십 년이나 함께 살았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살겠다고 떠났다면, 일반적인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마음 단단히 먹고 홀로서기도 잘해 내기만 하더니,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도 못했다. 글쎄, 이게 현실과 더 가까운 모습일까. 떠난 남편을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하고 여전히 그리워하면서 정신병을 앓고 자신을 추스르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상황. 답답하기만 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시가 위로가 될 수는 있겠다는 것을 알겠다. 다친 마음을 시를 쓰거나 시를 가르치면서 치료할 수도 있겠다는 것. 그래서 시가 이렇게 오래오래 우리 옆에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난 남편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겨내고자 여주인공이 안간힘을 쓰는 과정, 그 과정에 시가 있었다는 게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정도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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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적이고 까칠한 한 여자가 남편의 일방적인 "일시정지"라는 통보를 받고 조금은 미친다. 나는 다른 여자가 생겼으니 더이상 결혼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남편의 말이라면 솔직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긴 하겠지..
어쨌든 어느정도 정신병동에도 입원했을정도 자괴감까지 느껴는 삶에 몰린 그녀는.. 어머니가 계시는 어릴때 자라난 곳으로 폐허가 된채, 귀향하게 된다.
어쩌면 너무 오래 떠나왔기에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고 살아가며 껍데기로만 연명하고 있었던건 아닌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때, 내가 떠나온 곳.. 언제든 나를 반겨주는 곳으로 가보는건 진리인듯..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이란 위태로운 삶을 지탱해 주는 하나의 동아줄 같은 거니깐..
어쨌든 어머니와 어머니의 관계속의 할머니들과, 시인의 경력(?)으로 시에 대한 강좌를 하는 강사로서 이웃으로서.. 여러 관계속에서 다각도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최근까지 남편과 아이의 삶, 시인으로서의 삶으로만 몰입하고 지나치게 편협하게 스스로를 가둬놓고 살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조금은 느슨한 삶을, 유연한 일상을 보내며 강박적이었던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된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관계 속에서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고 있으니, 지난 시간속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걸 속박하며 애써 괴로움으로 아파하고 있었던걸 깨달으니 얽혀서 꼬이고 끊어질 듯 스스로를 괴롭혔던 문제가 하나둘 자연스럽게 풀려나며,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의 책이다.
왜 제목이 거창하게 "남자 없는 여름"이라는 건지에 대해서 책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해봤는데, "남자"라는건 어쩌면 엄마로서, 아내로서 삶을 단정지어버리고 살아왔던 그녀에게서 -타의에 의해서지만- 일단 분리되고 나서 하나의 존재로서 스스로가 만들어낸 인간관계속에서 병들고 지쳐있던 자아를 조금은 편안하게 헤아리게 함으로 앞으로서 삶에대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그런 시기를 "남자 없는 여름"이라고 한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남자들은 흔히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는 시기"가 있다는데, 어쩌면 남자에서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보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폴 오스터의 부인으로 폴 오스터다운 문체와 내용상의 어떤 걸 찾으려고 한다면 조금은 더 흥미롭겠지만, 그녀 스스로가 이 책을 통해서 "폴오스터가 없는 자신만의 문학"을 봐달라고 호소하는게 아닐지..
어떤 것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보면 그림자 정도는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뚫어지게 앞을 응시해봐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 시리 허스트베트, 남자 없는 여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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