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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면과 뒷면.
책의 내부.
현준이 훔친 책. 가상의 책이 아니라 실제 출간된 책이다.
현준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난 박동주와 아르토에 대해서 얘기하게 된다. 동주와의 만남에서 현준은 아르토의 족적을 밟아보고 싶은 욕망에 빠지고 박동주라는 사내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현준과 동주는 그렇게 아르토를 쫓아간다.
현준과 동주의 아르토에 대한 탐구는 내 자신도 함께 참여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이 책을 대하기 전엔 아르토에 대해서 전혀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내겐 한 예술가를 알게 한 계기가 되었다.
아르토를 찾아가는 길목 여기저기엔 많은 지적 즐거움도 남겨 두었다. 영화에 대한 얘기며 카프카, 조이스, 울프를 언급하기도 하고 폴 오스터 소설의 한 문장을 읊어대기도 한다. 비틀즈 노래에 대한 배경도 알려주고 ‘브루클린 풍자극’이며 조너선 사프란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체 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대한 얘기 등으로 작가의 풍부한 식견을 소설에 녹여놓았다. 감탄하는 한편으로 이런 작품들을 놓치지 말고 접해봐야겠다는 유혹이 강하게 들었다. 소설을 넘어서 하나의 예술 지도서 같았다.
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작가가 앙토냉 아르토를 알리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아르토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잔혹극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움직이는 것은 모두 잔인하다’ 또는 ‘왜 잔인한가?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아르토의 말로 소개하는 데 그친다. ‘우리는 거짓으로 이루어진 환경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다.’라는 아르토가 쓴 문장으로 부연 설명하고 있지만 역시 연극에서의 잔혹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감을 잡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대화식 연극에서 탈피해서 동적 연극으로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한 적이 있는 아르토는 연극이 영화에 밀린 나머지 진부하고 판에 박은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안으로써 연극은 아주 오랜 원시 연극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잠자는 감각을 뒤흔들고 억눌린 무의식을 해방시키고 잠재적인 반항을 밖으로 표출하자는 것이다. 진정한 연극은 삶이기에 실제 삶의 잔혹한 양상을 띠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바탕 때문일까? 한때 인기 가수였던 현준 아버지의 죽음, 다른 남자와 살게 된 현준의 어머니, 이루어질 수 없었던 옛 애인 경후의 자살, 911 그라운드 제로에서 만난 오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현준마저 잔혹한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의 삶도 찬찬히 살펴보면 잔혹한데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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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한다는 사람들. 확실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유전자는 평범한 나와는 다른 그 미묘한 뭔가가 있다. 남다른 정신세계와 남다른 촉.. 때론 그 촉이, 그 정신세계가 거북하고 껄끄럽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촉이 그들을 그들 스럽게 만드는 혼이 아닐까? 편안하지 않은 소설을 만났다. 읽는 동안 우울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새로운 느낌이 소설을 만나는 건 나쁘지 않았다.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년 9월 4일 ~ 1948년 3월 4일)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연출가다. 그는 일찍부터 시작(詩作)에 손을 대어, 평생 시인으로 있었으나, 파리로 가 뒤랭의 아트리에로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 피토에프의 극단에 속했고, 1927년에는 극작가 로제비트라크와 '알프레드 자리 극장'을 창립하여, 양 대전 사이의 전위극, 특히 초현실주의 연극의 대표적 연출가가 되었다. 그는 당대에 영화에도 관심이 있어 잔 다르크의 수난과 같은 영화들에도 출연하여 연기를 하기도 하였으나, 곧 영화에 관심이 떨어져 그 이후로 영화에서보다는 연극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연의 평이 좋지 않아, 1932년에는 다시 '잔혹의 연극(Theater of Cruelty)'을 설립, <쌍시>를 상연했으나 이것도 실패로 끝났다. 그 후 발광하여 병원에 수용되었고, 전후에 퇴원을 하자 곧 사망하였다. 이처럼 연극인으로서의 아르토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 인격과 혁명적인 연극 관에 의하여 바로나 장 빌라르 등 젊은 연극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출처 : 위키백과 중)
이 책은 존재 자체가 예술이 된 잔혹극의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로 시작된다. 우연히 동주가 앙토냉 아르토의 책을 안고 자는 모습을 본 나(임현준)는 그 책을 훔치기로 한다. 이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인연은 한국에 돌아와 찾게 된 극장에서 운명처럼 이끌린다. 현준은 마음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젠 이 세상에 없지만 과거 정신 병력으로 의심받던 가수 아버지, 그로 인해 연인과 헤어짐을 강요받았던 일, 그리고 죽어버린 연인 경후. 현준은 동주와 함께 어떤 이끌림에 의해 아르토를 찾아 다양한 명소와 예술적 혼을 찾아 나선다.
미치도록 좋아한 작가나, 가슴 뛰도록 행복한 작가는 없었다. 얼마나 좋아해야 작가의 예술혼을 찾아, 그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고 작가를 이해하는 것일까? 작가라고 모두 조금 특이한 정신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개중에는 평범한 인생을 살면서 글을 쓴 사람이 있고, 태어나 죽으면서까지 독특한 광기와 정신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다가 죽은 작가보다는 다양한 예술혼을 불사른 작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된다. 아르토도 그랬을까? 잔혹의 연극을 창시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앙토냉 아르토란 인물을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프랑스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지 못하는 작가였고, 작가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이 무에 재미있었겠냐만 서도 그의 인생도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그가 남긴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하는 현준과 동주는 그 안에서 지금 겪고 있는 아픔들을 치유해 나간다. 마음속에 담긴 아픔과 서글픔 그리고 인생의 버거움까지. 현준은 그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간다. 만약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이렇게 그 작가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인생은 돌고 돌며, 다양한 인생이 있다지만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은 똑같다. 아픔의 크기나 슬픔의 크기, 그리고 행복의 크기.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을 느끼는 무게는 달라진다. 한 시대를 결코 행복하거나 풍요롭게 살지 않았고, 정신이 온전하다 취급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태어나 살고 살았고, 아픔을 겪었다. 인간이란 그리고 삶이란 무엇인지, 작가의 삶을 찾다보면 오늘의 내 모습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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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이 우연히 끌려 책을 훔치면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그 책의 주인인 동주과 마주치게 된 현준... 존재자체가 예술이 된 잔혹극의 창시자 '아르토' 를 연구하는 동주.. 그런 그와 아르토에게 끌리게 된 현준의 여정을 따라 이 책은 진행된답니다. 더블린, 아일랜드, LA... 세계를 넘나들며 나오는 예술가들... 베케트, 반 고흐와 같은 그나마 익숙한 예술가들과... 이 책에서 계속 등장하지만 참 낯설기만 한 아르토의 이야기...
정신병력이 있었다는 만나지 못한 친아버지와 착실한 주부로 살아온 어머니.. 양부 사망 이후 어머니의 변화... 친아버지 때문에 경후와의 만남을 반대당했던 현준.. 그녀의 손에 남은 세개의 반지와.... 떠나버린 경후.. 그리고 동주... 아르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훔쳐든 내 남자의 책은.. 내 마음을 훔쳐 이리저리로 이끌고.. 취재를 목적으로 떠난 출장 여정에서 아르토는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두꺼운 책도 아니고, 읽기 어려운 책도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왠지 모를 혼란스러움을 느꼈고, 어설픈 영문학도였던 내 지식을 넘어서는 예술의 이야기는 영문학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켰답니다.
아르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은 왠지 모르게 친숙하고 끌리는 작가.. 이제 그의 작품을 찾아보아야 할 때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