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안도현 시인의 글을 읽을 때의 생각이 나네요. 책을 읽다가 새벽을 맞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는 말이었다고 기억됩니다. 그 시인은 특히 젊은 시인들의 시를 밤새도록 읽는 것을 좋아했답니다. 하지만 나는 젊은 시인의 시든 아니면 소설이든, 심지어는 만화책이든 정신없이 책을 읽다가 날새는 것도 몰랐던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 시인의 말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해요. 저두 이 책에서 정말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답니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그랬던 것처럼요.
"너무나 놀랍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더불어서 그토록 많은 모험을 겪으며 사랑하고 감탄한 인물들, 그를 위해 조바심하고 희망을 걸고, 그와 함께하지 않는 인생은 텅 비고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그런 등장인물들과 작별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남이 보는데서, 또는 나몰래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
이 말은 물론 주인공 바스티안에 대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의 얘기이기도 할 거에요. 그래서 바스티안이 책을 훔친 것을 무조것 탓하지만은 않을 것이고,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바스티안을 열심히 격려해줄 수 있는 것이겠죠. 작가인 미카엘 엔데는 '반지전쟁'의 톨킨 못지 않은 이야기꾼이며, 역시 이야기 나라의 다양한 존재들과 친하다고 생각해요. 한번 더 비교하자면, 톨킨보다 더 아기자기한 환상 세계의 존재들에 대해 얘기 해주지요. 무너져 가는 환상 세계의 여러 생물들은 꼭 '동물의 세계'등에 나오는 온갖 야생 동물들의 신비한 세상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존재로서의 경이를 느끼게도 해줍니다. 전 한참 자란 후에야 이 책을 읽어서 약간은 거리를 두고 책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보다 훨씬 어릴 적부터 이 이야기를 읽고 자라는 아이들은 정말 아기자기한 예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미카엘 엔데가 꿈같은 얘기만 늘어놓고는 현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에요. 저 역시 아이들이 꿈같이 행복하게만 지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는 꿈을 꾸게 해주는 것과 동시에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법 역시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일거에요. 그래서 미카엘 엔데의 동화는 어른도 같이 읽고 있는 것이겠지요. 엔데의 또다른 작품인 '모모'에서는 모모가 어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줍니다. 맑은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뿐 아니라, 그렇지 못한 어른들을 깨우쳐주기까지도 하는 거죠. 바스티안 역시 현실의 아이들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됩니다. 바스티안에게 어려운 현실은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남은 가정에 웃음이 사라져 버린 일이죠. 아마 바스티안에게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보다 어머니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는 가족관계가 더 견디기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환상세계에서는 영웅이 되어버린 바스티안은 현실세계로 돌아오기를 주저하게 되죠. 그러나 그것은 바스티안의 진심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바스티안이 돌아가야 하는 '현실'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바뀌고 있거든요. 이 책은 1권에서부터 현실세계와 환상세계가 다른 색깔의 글씨로 나뉘어 있어 현실변화를 보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 1권에서의 현실은 '책을 훔치고, 수업을 빼먹고, 학교 한 구석에 숨어있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면, 2권에서의 세상은 '많은 기억들과 가족이 있는' 그리운 대상으로 서서히 바뀌는 거죠. 바로 자신이 돌아와야 하는 현실을 올바로 보게 되는 힘을 바스티안에게 키워주는 데서부터 이 이야기의 또다른 재미와 효력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나는 바스티안의 입장이 되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환상세계에 묻혀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는 바스티안이 나와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현실에서 특별날 것 없는 내 존재가 세상을 구원하는 존재가 됨과 동시에 내가 항상 그리던 외모와 명성을 얻게 된다면, 그 세상에서 좀 오래 살고 싶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스티유의 생각이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아니라고 한다면 정말 솔직하지 않은 대답일 거에요. 바스티안에게 환상세계의 허구에 너무 빠져들지 말라고 경고하는 장면에서는 나 또한 같이 경고를 받았으며, 환상세계에서 내가 얻은 수확을 어떻게 현실세계로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야기가 현실세계로 돌아오면서 끝날 것을 예감한 나는 점점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스티안이 알게 모르게 망설였던 것처럼 말이에요.
결국 바스티안이 돌아왔고, 아버지와의 대화 속에서 잃어버린 가족의 존재감을 되찾았으며, 무섭게만 보이던 서점 주인과 의외의 경험담 속에서 이야기는 즐겁게 끝나게 됩니다. 적어도 하나는요. 미카엘 엔데는 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수많은 가지를 쳐 놓았고 항상 그것을 '이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넘기고 맙니다. 이 이야기를 언제나 하게 되는 것일까요. 아마 읽으면서 잠시 눈을 들어 스스로 꾸며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수 많은 가지들 때문에 이야기는 절대 끝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는 바스티안이 환상세계에 갔던 것처럼 다른 사람도 우연한 기회에 책에 빨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끝났던 것처럼 생각되는 얘기도 사실은 끝나지 않는 셈이 됩니다. 책을 읽다 책 속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이야기가 이 작품 뿐 아니라 사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 실감이 나니까요. 아니면, 바스티안이 또 다른 책에 빨려들어가 또다른 세상을 구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시 이것은 또 다른 얘기이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죠.^^
[인상깊은구절] 너무나 놀랍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더불어서 그토록 많은 모험을 겪으며 사랑하고 감탄한 인물들, 그를 위해 조바심하고 희망을 걸고, 그와 함께하지 않는 인생은 텅 비고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그런 등장인물들과 작별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남이 보는데서, 또는 나몰래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 스스로 경험으로부터 그 어느 것도 겪어 알고 있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지금 바스티안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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