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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노래를 들었지. 펑펑 울고 싶었기 때문이야. 미래는 너무 불투명하고, 믿음조차 부질없어. 손끝만 대어도 바스러질 거 같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 것 같은 너와 나야. 이런 연약하고 약해빠진 관계가 싫다. 돌아보지 않으려 해. 이 결핍의 관계를 그만 끊으려 해.
언젠가 이별의 경험을 하고 난 그날, 당시의 내 심정을 끄적끄적 휘갈겨 써놨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은 나만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지금 보면 손발이 오글오글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 이별의 감정조차도 이제는 메말라 퍽퍽할 정도로 아득히 먼 기억이다. 실연의 바다에서 탈출하지 못할까 봐 허우적댔던 그날들이 존재하기는 했던 건지. 누구의 아픔에는 같이 눈물 흘려주면서 정작 내 아픔에는 인색하다. 10~20대 초반 시절의 그 어리고 철없던 내가 아니야. 그만큼 세상을 알고 사회를 알아가는 만큼 내 감정도 퇴색해 버렸다.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듯이 이별에 대처하는 법도 잃어버린듯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따라가기엔 현실적으로 가로막힌 장벽이 너무도 높다. 그렇다 해도 나는 이상주의자이기에 마음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어릴 때는 오랜 연애는 지겹다고 뿌리치기 일쑤였고 진지하게 연애에 임했을 때 올곧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 내 심장을 찔렀다. 먹지 않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나를 보며 뭐 이런 바보 같은 년이 다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들더라. 몰랐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기도 하다는 것을. 물론 지금은 내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 싶게 낡은 기억의 한 부분이다. 나는 추억을 먹고 살지도, 추억에 지배되지도 않는다. 현재에, 앞으로 내 심장의 반을 채워줄 누군가를 위해서 언제나 부재중인 채로 기다린다. 청승 떨며 죽어라 눈물짓고 식음을 전폐하는 것도 다 한때더라. 몸뿐 아니라 마음도 성장 하는 거 빈말이 아닌가 보다. 아니 어쩌면 상처에 무뎌지고 단단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다음번에는.. 덜 상처 받도록, 덜 아프도록, 그렇게... 나를, 나의 마음을 제련하는 거겠지.
가요의 이별 가사가 모두 내 이야기인 것 같고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밥은 길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돌덩이 같았으며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별은 한낱 꿈일 거라고 되뇌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그랬던 적도 있었지. 때론 너무나 무덤덤 해져 있는 나 자신이 더 슬플 때도 있다. 그렇게 예쁘게 마음을 주고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은 아련함 때문에.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투닥거리다가도 돌아서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설사 이별을 감행했더라도 그 사람이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기를... 행복을 빌어준다는 가식적인 말은 못하겠다. 내가 행복해야 상대방의 행복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옴으로 인해 빌어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이별했을 때보다 더 못할 짓은 이별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이다. 백영옥의 소설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안쓰러운데 짜증도 물밀듯 밀려오는... 얼마 전 나의 오랜 친구가 이별 했다. 그 녀석은 20대 초반부터 연애를 밥 먹듯이 했으며 이별도 시시껄렁하게 받아넘겼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언젠가는 이별 앞에서 통곡할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자에게는 대성통곡? 그 정도도 약과다. 역시나 그 녀석은 내가 지켜본 10년(오래도 끌었다. 이 짜쉭!)이 지난 뒤에야 제대로 된 사랑을 했다. 아니 제대로 된 사랑을 햇다는 건 올바르지 않다. 이제서야 사랑을 알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듯싶다. 연애할 때는 두문불출하던 녀석이 이별하자마자 나를 가장 먼저 찾았다. 물론 나는 그동안의 행실이 괘씸했지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고 별다른 지청구 없이 녀석의 하소연과 푸념을, 이별에 익숙하지 못한 불완전한 넋두리를 처음에는 그저 들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인내심은 바닥났고 급기야 쓴소리를 뱉어냈다. 그런데도 그 녀석은 뭐가 좋은지 역시 '너(나)답다. 네가 그래서 좋다.'같은 시답잖은 말을 하며 외려 나에게 고마워했다. 아무도 자신에게 쓴소리를 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나만이 위로보다는 바른 소리를 해주었다고.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생각났는가 보다고... 난 항상 그랬으니까.. 듣기 좋으라고 마음에 없는 소리보다는 부정적이더라도 현실적인 말을 해줄 수 밖에 없었으니까.. 삶은 이상을 꿈꾸지만 어찌 됐든 사랑도 현실이니까. 그 당시만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다. 어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지켜보는 일이란... 정말이지 싫다....
설사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 모임』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마음이 그러했다. 사랑하다가 헤어지고, 누가 누구에게 이별을 고한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헤어짐'인 거니까. 더는 그 사람과의 시간이 현실이 아닌 추억이 되어버리고 우리의 미래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거니까, 이별하는 그 순간부터.
정말이지 밥맛 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모임을 찾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대로 나름의 실연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색이 각양각색이듯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아픔을 떠나보내려 이곳을 찾는다. 알고 보면 의도적으로 기획된 만남이지만 어차피... 우리의 만남과 이별도 때로는 의도적으로 흘러갈 때가 있는 법이기에 이를 통해 실연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질 수 있다면 의도적이든 기획한 것이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사랑할 때는 모르지만 사랑을 떠나보내고 나면 왜 그리 후회되는 일들만 가득한지 모르겠다. 이 소설 안에서도 역시나 그렇게 후회하면서 떠난 사랑을 다시 만나려는 여인과 떠난 사랑에 아파하면서도 새 삶을 시작하려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나름대로 사랑에 실패하고 사연을 가진 여러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별한 그 순간에는 세상에 오직 나만 이별하고 나만 아프고 나만 사랑에 실패한 듯한 고립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길거리를 나가봐라. 길에 차이는 것이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실연 속에서도 훗날 다른 사랑은 싹트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만 그렇게 사랑했고 실패했다면 다른 사랑은 생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런 비슷한 말을 주워들은 거 같다. 사랑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옮겨가는 것뿐이라고. 이보다 더 잔인한 말이 어디 있을까. 너와 나의 사랑이 죽어버린 비극 앞에서 다시 한번 그것도 가장! 가슴을 마구 때리고 할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은 낫지 않을까. 너와 나의 사랑은 죽어버렸다. 하지만 내 사랑은 여전하다. 그 사랑이 비록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아닐지언정, 최소한 양심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내 사랑은 몇 번을 다시 탄생하고 몇 번이나 소멸 되었다. 지난 사랑은 묻어두는 거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멀고 먼 저장고 깊숙이. 그러니 언젠가, 한 번쯤은 꺼내서 추억할 날도 있는 거겠지. 그렇기에 눈물범벅의 안녕이 아닌 웃으면서 '안녕' 하는 날도 언젠가는 오게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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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하더니, 어제 밤에는 열대야로 잠들지 못했다. 밤이 지니고 있는 열기는 이상하게 마음을 달뜨게 한다. 열기와 동반된 컴컴한 어둠은 휘황찬란한 달빛으로 착각하기 좋은 밤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그런 착각이 있는 밤에 읽기 좋은 소설이다. 실연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상한 공감대는 살아가면서 한번쯤 겪었던 이별을 떠올리게 하고, 실연과 어울리지 않는 조찬모임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대부분의 이별은 밤에 이루어지지 않나? 그럼 일곱 시 조찬이라는 것은 새로운 만남을 뜻할까? 내 멋대로 해석하며 책을 펼친다. ![]()
소설의 주인공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소설처럼 굴곡진 삶을 살았던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과 이름이 같은 윤사강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소설<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 , 열일곱 살의 소녀 세실처럼 사강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채 성장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세실의 아버지와 소설가 사강과 자신, 그리고 사강에게 찾아온 사랑 또한 평범하지 않은 사랑이었다. 유부남과의 사랑에서 상처받은 것은 사강 뿐이지만, 사강은 한편으로 그 사랑으로 인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조차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속 주인공과 닮아있다. 사강의 인생에서 사랑은 다른 연인들처럼 기쁨과 환희로 다가왔지만 점점 자신에게 씌여지는 책임감과 죄책감은 자신의 사랑 또한 포기하게 하는데 , 사랑은 자신의 자유보다 더한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강은 아버지의 불륜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인생의 한 과정을 겪으면서 사랑과 삶과 이별과 아픔은 하나의 번복성의 원칙을 띠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슬픔들을 있는 그대로 진정으로 대면하는 용기야말로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는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실연 이후에야 사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슬픔이여 안녕> 의 주인공 세실이 말한 슬픔이여 안녕! 이란 말의 뜻이 이별이 아닌 만남의 인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유부남이었던 직장상사와의 이별 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귀에 사로잡혀 나가게 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지훈’을 본 순간 떠오르는 말과도 같았다.
십년의 연애를 한 지훈과 현정, 두 연인을 헤어지게 한 것은 아마도 오랜 권태와 같은 것 같다. 오랜 연애에 친숙하지만 지루함을 느껴오던 현정, 지훈에게 있는 바보형 명훈의 존재, 고아라는 수식어는 지훈을 오랜 세월 괴롭혀온 상처이다. 현정과의 사랑은 지훈에게는 어쩌면 사랑보다는 쉴 수 있는 안락함 같은 것이었지만, 현정은 그런 친숙함이 지겨움이 되자, 지훈을 떠나려 한다. 이별의 전조를 알아차린 지훈은 먼저 이별을 통보하는데 현정의 반응은 “고마워” 한 마디였다. 어느 날 트위터에서 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을 본 순간 이끌리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같은 끌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연이 어긋난 뼈를 다시 맞추듯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사물을 그와의 기억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p53
겉으로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을 위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결혼정보회사의 이벤트성으로 기획된 만남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성공에 목말라있는 정미도의 확신에 찬 기획이었으니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정미도의 선택이자 이 비밀스러운 모임의 발단의 시작이라는 것.
연애의 처음 시작은 보드라운 솜털 뭉치처럼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늑대만한 사나운 개로 변신해 죽도록 짖어대는 과정과 비슷했다.p163
사강과 지훈과 미도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훈과 현정의 이야기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지훈과 현정처럼 우리가 오랜 연인이기 때문이다. 십년의 연애와 십년의 결혼생활중에 우리도 한번의 이별을 해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물론 많은 인내와 참을성을 요구하고, 전혀 모르는 '타인'이라는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생이 걸리는 일이다. 현정이 지훈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왠지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사강과 지훈이 만나서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을 때, 그리고 현정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을 사강에게 털어놓는 지훈을 보며 사랑은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실연당한 사람들은 미도의 확신처럼 헤어지고 만나고 사랑을 이룬다.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사랑과 삶과 이별과 아픔은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서로 번복하다가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슬픔들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용기가 생겼을 때, 바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그때야 말로 슬픔에게 큰 소리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슬픔아 , 안녕이라고 !!!!!!! 안녕은 이별의 말이 아닌 새로운 만남의 인사라는 것을..........
내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그것을 맞이한다.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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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자세히 보지 않고 언뜻 봤을땐 표지가 이쁘네. 제목을 읽기도 전에 무지 기네. 제목을 읽어내려가며 웃음이 잠시 머금었다. 실연이라는건 정도의 차가 있겠지만 일단은 아픔이요 상처인데 이런 사람들이 일곱 시에 조찬 모임을 한다! <이책은> 서평단 모집 이벤트 당첨 도서. 출판사서 '조드'때 100명의 서평단을 공격적으로 모집하더니, 또 100명 모집. 욕심은 났으나 눈치를 본 건 시간이 없는 일상서 밀린 책들도 있어서다. 거기다 마감 날짜를 당첨발표날로 기억했으니 ㅠㅠㅠ. 하여 이벤트 도전을 위해 들어간 페이지서 마감은 되었으나 92명이라는 숫자를 발견하고는 기냥 도전 응모글을 남겼고, 이렇게 운좋게 당첨되었다나!!!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 읽은 소감>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라. 그렇담 실연당한 후에 난 뭘했나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실연이라는 단어를 적용시키자면 단 한 번이었다. 오히려 여러 명에게 실연을 줬다. 그게 어떤 이에겐 큰 상처로 남아있음을 몇 년 전에 알기도 했다. 첫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아이와의 이별이 아픔이기는 했으나 죽을만치 힘들다라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건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의 감정하고는 다르다. 태어나서 그런 아픔은 처음이었으니까 그 감정이 많이 오래 머물렀었다. 깊은 정도가 농축이 된게 아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고 어떤 상황앞에서 감정이 많이도 통한다 여겼던 적이 있었기에 그 아이라면 이 상태를 알텐데 라는 미련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정미도.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사실상의 가장이다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밥벌이를 위한 일을 한다. 허나 그 일에서의 성취욕이나 성취감만큼은 결코 남에게 뒤질세라 매우 열심이다. 그렇게 노력하는 삶 가운데 여행을 어쩌다 떠나는게 숨통 트여주는 일이건만, 그마저도 가장 싼 여행을 하다보니 누리고 즐기는 여행이기보다는 나도 그 곳에 다녀왔어 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자신을 위한 호사에 인색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은 슬퍼보였다.
첫째임에도 그렇게 진취적일 수 있는 미도를 보며 그게 부러웠다. 자신의 삶을 조금은 많이 버거워하고 지쳐하면서도 동생을 알뜰살뜰히 살피는 마음이 예뻤다. 고객관리를 위한 고객마음상태 읽기 등 세심함과 꼼꼼함이 어우러져야 하고 창의성을 요하는 직업이 그녀에게 잘 맞았던 듯 싶다. '실연'이 곧 새로운 사랑을 위한 시작점이라 외치는 그녀의 말이 안녕은 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첫만남의 인사이기도 하다는걸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계기가 된다.
윤사강. 자신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사실이 천추의 한이 되는 여자. 그건 자신의 부모가 이혼을 했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을게다. 여자들을 국적을 불문하고 좋아하는 아버지는 천상 예술가. 그런 타입의 남자를 좋아했던 어머니는 염려가 많은 사람이 자연 되어갈 밖에. 사강에게 의지하는 마음과 간섭이 최고의 애정표현인양 어머니는 관심이 많았다. 두 분의 이혼을 말리고 싶었던 행동으로 자신의 손을 그어서 흉터가 남았는데, 스튜어디스가 되어 유부남 조종사인 기장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역시 기장의 흉터를 만져보고 싶은 마음 때문.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란다고 다 상처만 있는 사람은 아닐터인데 사강은 유달리 그게 심했던 듯 싶다. 아버지의 부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마음으로 지낸 것 같다. 그랬기에 자신의 흉터가 생긴 연유가 깊듯 기장의 흉터의 원인을 풍문으로 들었어도 그에게 마음이 쏠렸나보다. 또, 하늘 위의 삶이다 보니 한정된 공간에서의 호흡 등이 정들게 했을지도 싶다. 그렇게 사랑을 했건만 기장이 이혼하고 같이 지내자는 말에 가차없이 이별을 통보한 사강. 그건 그녀의 상처가 그렇게 깊어서 기장의 아내에게 자신의 어머니같은 고통과 상처를 줘서는 안됨을 깨달은 현명함이었지만 그녀가 감내하기에 아프고 아펐다.
이지훈. 컨설턴트 강사인 그는 노력하여 성취하는 타입. 그런 노력이 그를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여자 친구와도 잘 지냈다. 동창였기에 느끼는 공감대가 비슷하거나 같았고 서로의 눈빛만 봐도 잘 감지하는 사이. 그게 편해서 십 년을 만났더니 그게 따분하고 권태로워져서 여친에게 결별을 당한 이유가 된다. 많이 아픈 쪽이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하는 어느 대사처럼 지훈은 교통위반 딱지를 무려 8장을 받고는 100만원이 넘는 과태료까지 안겨준 여친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건강한 남자인지라 그녀와의 섹스도 일상처럼 해야함을 일깨워주는 발기. 그녀가 미치도록 그리운 날들. 이성으론 상처받았으나 감정은 기막힘에도 그녀가 그립다. 그러다 깨닫는다. 그녀가 떠났음을...
여자와 남자는 신체구조부터 다르니 생각하는 방향도 다르다. 여자는 관계지향적이나 남자는 미래지향적이라는 글을 본 순간 그대로 외웠다. 그건 공감했기에 그대로 새겨진거다. 서로가 다름을 먼저 인지한 상태서는 편한데, 사랑을 할수록 소유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문제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상대를 대입시켜서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티격태격이 된다. 마치 속은 것 같은 마음이 들고 분통터지고 속상하다. 서로가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데 그건 젊은 열정이라서 냉정이 자리하기 전이라 더하다. 때문에 열정과 냉정 사이를 적절히 유지하는게 좋은데 그게 그리 쉬운일인가. 따라서 사랑엔 유효기간이 있다느니...
현정. 있을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현정에게 지훈만큼 편하고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교사인 현정은 어머니와의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모녀 사이를 가깝게 하지 않는다. 그런면에선 지훈도 상처가 있는데 서로 그 면을 잘 존중했달까 잘 이해했다.(허나 지훈이 나중에 사강에게 고해하듯 말한 부분에서 차마 여친에게 하지 못했음을 밝힌다)그렇게 서로를 원하던 시간들이 차츰 권태로움으로 자리함을 현정이 못견뎌했다. 익숙함을 남자는 바라고 여자는 안정됨을 원했다면 얼른 결혼해 아이라도 낳던지 라는 생각을 이 부분서 했다. 그리 오랜동안을 즐기기(?)만 했으니 말이다.
놓친 고기가 커보인다고 했던가. 떠난 남자가 아닌 떠나보낸 남자가 한동안은 홀가분하더니 그 남자만한 남자가 없으니,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런가. 어머니에 의해 결혼정보회사 회원이 되고 맞선을 보나 족족이 퇴짜를 놓는다. 퇴짜 이유가 이유같지 않아서 블랙고객으로 분류되나 정미도가 보건대 그건 맞선을 보기 싫어서 하는 행동. 그렇게 미도와 친구가 되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지훈이 돌아오게만 해달라는 현정. 비 온 땅이 굳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나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건 현정의 미련이었음을 알게 되는 기회가 오니 비로소 '좋은 이별'이 된다.
백영옥 작가의 '스타일'을 꿈꾸는현자 님의 책 나눔으로 몇 년 전에 읽었다. 크게 머리 아픈 책이 아닌 가벼운듯 생각할 꺼리를 주는 책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은 느낌이 조금은 다르다. 김인숙 작가의 '미칠 수 있겠니'를 대했을 때처럼 사람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고나 할까. 실연이란 감정이 주는 아픔이 있어서 공통된 감정을 가지기도 했지만 왠지 그 책을 생각나게 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건 어떤 감정에서의 옹이가 생겨 단단해짐을 말함이겠지. 허나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선 둘만이 아는 언어가 분명 있다. 그건 둘만이 공유하는 언어였으니 다른사람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내성이 생겨도 극복하기 어려운 사랑도 있을게다. 허나, 끝이 좋은 이별을 했다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함에도 조금은 편안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이별이 중시되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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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고 나서 사랑하게 된 사람들. 실연당했습니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를 주최합니다.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먹어주실래요? 어느 새벽 이런 글을 본다면, 마침 당신이 그 때 실연당한 상태라면, 이 당돌한 제안에 응할 것인가? 아마도 난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야?” 하며 이런 글을 무시해 버렸을 듯하다. 하지만 호기심과, 더 내려갈 곳 없이 바닥을 친 사람들 중에 포기의 심정으로 슬금슬금 이 조찬 모임의 문을 열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날,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 모임에는 실연당한, 실연당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각기 사연을 갖고, 눈물을 쏟아 내기 위해서, 잊어버리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이젠 그만 버리기 위해서.. 이야기는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중 몇몇 사람을 뒤를 따라가며 진행된다. 세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며 실연 후 그들의 방황과 방황 끝에 도달한 세계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오랜 연애를 정리하고, 혼자의 시간이 어색한 기업체 연수 강사 지훈. 프랑스 작가 프랑소와즈 사강과 같은 이름을 가진 스튜어디스 윤사강. 모든 일의 배후이자 기획자인 정미도. 이 책, 리뷰 쓰기가 힘이 든다. 책장을 덮고, 떠오르는 얼굴 때문에 내용을 회상하기가 어렵다. 사강의 아버지가 매 해 다른 나라에서 보내준 그 나라 언어로 출판된 프랑소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Bonjour)은 헤어질 때의 인사(Adieu)가 아니라 만날 때의 인사라고 한다. 영어로는 "Hi~" 가 될 것이다. 그 날, Hite 맥주 병 뚜껑을 동전으로 긁어서 te를 지운 [Hi]를 만들었다. 동료들과 함께 한 술자리 테이블 아래로 병뚜껑을 긁어 만든, 몰래 만들었지만 꽤나 정성껏 모양을 낸 [Hi]를 그녀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가 내 맘 안에서 ‘안녕하기를’, 아픔 없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모든 것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은 맥주병 뚜껑 하나로 시작된 인연은 예정된 이별 앞에서도 깊어만 갔다. 세상에 오직 우리 둘 뿐인 시간이 있었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르고, 눈을 뜬 채 꿈을 꾸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젠 서로의 온기도, 기억도 희미해져 가지만, 아직도 술에 취하면 병적으로 맥주병 뚜껑으로 [Hi] 를 만들고 있다. 이런 나를 동료들은 처연하게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신청할 때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실연당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떠났지만, 나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내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소설 속 실연당한 그들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을 가감 없이 보게 되었다.
바보다. 나는 바보였다.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이 ‘굿바이(Adieu)’가 아니라 ‘헬로우’ 여서 다행이다. 나도 이제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나의 ‘실연’을.. 하지만, 끝끝내 고집한다. ‘실연’이 사랑의 ‘실패’는 아니라고..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사랑의 실체가 있다면, 이별의 실체도 있을 것인데, 과거의 달콤한 기억에 젖어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 들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대면을 한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프다. 비겁하게 도망만 치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어리석은 모습을.. 술의 힘을 빌려야만 드러나는 과거의 망령을.. 껍질을 깨고 나올 땐 고통이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 질 것이다. 이제껏 키 크기를 포기한 채 어린 아이처럼 굴었다면, 이젠 내 영혼을 살찌울 우유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술 한잔 마셔야겠다. 떠나버린 사랑을 위해 한 잔, 떠나보낼 기억을 위해 한 잔, 다가올 새로운 인연을 위해 한 잔,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 이번엔 소주…… 사족]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대면하는 것은 아프다.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이 늪을 건너야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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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나에게는 몇 번의 사랑이 왔고, 몇 번의 사랑이 내 앞에서 조용히... 신기루 처럼 사라졌을까? 사랑은 참 묘하다. 사랑을 많이 하고, 많은 이별을 겪게 되면 나름의 면역체계들이 질서 정연하게 마음과 몸을 무장할 것도 같은데 사랑은 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이별 또한 늘 아프다. 그렇다고 나에게 엄청나게 많은 사랑이 왔다 갔느냐..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아닌 것 같다. 두 번은 내가 찼고(?), 한 번은 내가 차(?)였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님... 이 나라에선 다신 볼 수 없는 옛 사랑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차인 사랑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되었다.
20대... 나의 사랑은 건방짐의 연속이었다고 할까? 어디서 그런 건방짐과 자신만만함이 흘러나왔는지 모르겠다. 당연하듯 배려 받았고, 당연하듯 사랑 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많이 미안했다.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 사랑은 참 묘하다. 곁에 있을 때 죽을 힘을 다해 사랑하면 나중에 이별하고 나서 크게 미련이 없다. 하지만 곁에 있을 때 나처럼 건방진 사랑이었다면... 헤어지고 나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 사람이 날 생각할 때 아픈 기억만 떠오르게 될 것 같아서, 힘들게 한 기억만 생각나게 될 것 같아서 아프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듯 이별을 통보 받은 사람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관한 문구를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곳에서 실연당한 사람들과 아침을 먹고 추억의 물건을 놓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만약 내가 실연당한 그 시절에 그런 모임이 있다면... 나가고 싶었을 것 같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이 나처럼 실연을 당(?)한 것일까 하는 호기심과 위로의 방법으로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을까?
실연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더 활발히 사람을 만나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활동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 동굴 속에 들어간 곰 마냥 한 없이 가라앉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떤 부류일까?
스튜디어스 사강은 유부남을 사랑했고 그와 이별을 했다. 오랜 시간 같은 사람을 사랑한 지훈은 그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미안해. 잘 살아’로 끝나는 네 가지 종류의 이별 메시지. 두 사람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서 서로의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사강은 지훈의 로모 카메라를, 지훈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을.. 그 물건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실연의 아픔을 이겨 나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물건들.. 그건 가슴시린 기억의 일부일 뿐 아니라 추억을 상기 시키는 재생 버튼과도 같다. 그 물건들을 다른 이에게 줄 수 있을까? 다른 이에게 준다고 추억까지 정지 버튼이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면서 내가 그 사람에게 줬던 물건을 돌려받는 치사(?)한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돌려받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지금은 한국에 없는 그 사람에게 100통 가까이 썼던 편지들... 그 편지만큼은 돌려받고 싶다. 어차피 그 사람 손에서 찢겨지고 태워질지 모를 편지들... 내 추억이 그렇게 상처 받는 게 싫어서 내가 직접 손대고 싶었는데 그것만큼은 줄 수 없다고 그 사람은 말하고 떠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실연의 아픔(?)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란 녀석이 퇴색시키고 엷은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다. 지금 당장은 죽을 것 같던 이별도 나를 성장시키고 어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젠 그 이별의 아픔을 발판으로 더욱 통 큰 사랑을 펼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미친 듯이 사랑하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행복하게 사랑하자. 그런 시간들 마저 훗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을 더욱 성숙 시킬 테니까... 실연.. 아프게만 생각하지 말자. 나를 또 다른 나로 변화시키고 어른이 될 수 있게 만드는 삶의 밑그림이라 생각한다면.. 까짓것... 아파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아파하자. 아파하고 나면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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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형 인간, 그들은 한 마디로 능력자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조소하듯 말한다. 아마 저자는 그들에게 조금의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사회적으로 우수하고, 타인들에게도 위압적인 존재들을 그렇게 넌지시 무시하고 있는 것이지 않으랴. 아침에 일찍 일어나가를 좋아하고, 잠시도 쉬지 않으면서 열심히 사는 그들, 서술자는 말한다. 기내 면세점에서 똑같은 물품을 늘 두 개씩 사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부인이 여럿이고 자식들이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참으로 매력적으로 인물 소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거창한 아침 형 인간들을 이야기하면서 글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런데 제시한 아침 형 인간이라기 보단 세상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을 조금의 억지를 섞어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아침에 레스토랑에 모여 빈 공간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모델이 되어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이 글은 그 레스토랑에 모인 인물들의 살아가는 삶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사랑에 실패했다는 공통점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사랑에 실패하고 트위터를 통해 그러한 모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넌지시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해볼 수도 있지 않으랴 하는 생각에 그 레스토랑을 찾게 된다. 레스토랑은 그들이 모임을 이루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동질성을 느끼고, 때로는 위로를 받으며 또한 새로운 삶을 모색해 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곳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옮겨진 무대로 서로에게 위선적인 위로를 수용토록 하는 공간이라 나는 생각된다. 그곳에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인 사강이 참여하게 된다. 그녀는 스튜어디스로 아내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가 헤어지고 그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련된 사연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간다. 이지훈은 영문학을 전공한 자로 회사에 취업을 한다. 그도 조찬 모임의 레스토랑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는 회사에서 뜻과는 관계없이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된다. 그리고 그 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자신이 살아온 밑바닥의 삶을 소재로 해, 청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강사로서 훌륭한 성과를 낸다. 하여 타 사회나 다른 단체에서 초빙되는 그런 강사가 된다. 그러한 그는 여자들에게도 인가가 높게 되고, 현정과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사랑은 일상이다. 먹고 사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그들은 사랑의 개념을 지닌다. 때론 부부처럼, 때론 오누이처럼 그들의 관계가 지속된다. 늘 함께해도 이상함이 없고 떨어져 있어도 무방한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서로에게 밀착되기 시작하면서 둘은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정이 4가지 방법으로 절연을 통고한다. 그런 후 지훈은 이 모임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기념품 교환이라는 내용에 매력을 느끼면서 그곳에 이르게 된다. 이 글의 내용이 그런 식이다. 이렇게 사랑에 실패하고 찾아온 사람들로 모여진 것이 일곱 시 조찬 모임이다. 정미도는 이 조찬 모임을 기획한 사람이다. 그녀는 여행사가 가이드로 첫 직장을 가지면서 사내 커플이 된 사람이다. 그의 남자 친구는 김지혁이란 사람이었고, 둘이 갈라설 때 어느 한 사람은 직장을 떠나야 하는 보편적인 룰 때문에 남자가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홧김에 자신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실패한 인생들을 많이 만나는 결혼정보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그곳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만든다. 그것이 이 글의 제목과 동일한 이벤트다. 그녀는 그것을 성공리에 만들기 위해 아무에게도 이야길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간다.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엮여진 이야기다. 글은 이 프로젝트가 이루어진 경위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이지훈과 헤어진 교사 현정은 그녀의 중요한 고객이었다. 현정은 지훈과 결별한 후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깊이 관여했는가를 알게 되고, 그가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결혼정보회사가 뭔가를 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 일로 실연과 결혼이라는 메리트를 가지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7시 조찬 모임>이란 것을 통한 두 사람의 재결합을 이루어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 속에 지훈의 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그것이 둘이 헤어지게 된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사강은 스튜어디스다. 그녀는 스튜어디스로 생활하면서 몇 명의 사람들과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헤어진 후 책을 선물로 받는다. 그 책이 다국어로 된 <슬픔이여 안녕>이란 책이다. 그 책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를 추측해 나가는 과정에 그녀가 어떻게 실연당한 사람들의 모임에 나오게 되었는가가 밝혀진다. 그녀가 신출내기일 때 뜨거운 물을 기류로 인해 조종사였던 정수에게 잘못 부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호텔로 인사를 하러 가게 되고, 함께 엮여지는 과정까지가 잘 드러난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사강의 주도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읽을 수 있다. 그녀는 실연당한 모임에 가서 교환품으로 필름을 사용하는 사진기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 사진기 속에 필름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상한다. 그 사진은 제주 올레길에서 찍은 미지의 연인들이 들어 있다. 사강은 그 사진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남자에게서 안면이 있다는 것을 ᄇᆞᆯ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사진을 돌려줘야할 의무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둘의 관계가 지속되어 진다. 사강이 내놓은 교환품은 책이다. 그는 그 책이 정수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내어 놓았다. 그러나 결국엔 그 책이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온 생일 선물었음이 나중에 밝혀진다. 지훈이 사강이 탄 비행기에 오르게 되고, 사강과 동료인 미소가 그에게 반하여 그의 책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긴다. 지훈은 미소에게 전화를 걸어 사강을 잘 아느냐고 묻고 자신의 지식 속에서 일곱 시 조찬 모임에서 만난 사강을 떠올리며 만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미소가 깜짝 놀라 사강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둘은 서로 연락이 된다. 그리고 서로 버리고 싶은 기념품을 바꾼 것을 알게 된다. 사강은 그에게 필름 속에 들어있었던 사진을 건네주게 되고, 둘은 서로의 상황을 인식하게 된다. 지훈의 형이 정박아가 되고 부모들이 어떻게 그를 대했으며 그것이 현정과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했는가도 밝혀진다. 이야기의 내용이 묘하게 연결되면서 끝을 향해 달려간다. 줄거리가 퍼즐을 맞춰나가는 듯 조직된 전체를 가지면서 조각조각 분해되어 있다. 우리는 작가의 솜씨에 의해 그것들이 하나하나 엮여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된다. 사강은 정수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그의 아내와 함께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고, 지훈은 현정과 다시 관계가 연결되어 서로 만남을 만들고 있다. 미도는 자신이 계획한 이 프로젝트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연출한 것이 아니라 결혼정보회사 사장이 관련해서 모든 것을 기획해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두 3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어나가면서 하나로 통합해 나가는 솜씨를 보이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괴리감을 느끼는 정서들이 많이 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마음에 흡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구성상의 묘미는 매력적이나 이야기 속에 담긴 정서는 세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닐 듯하다.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면에 있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간 요소가 많이 보인다. 여러 사람들을 엮어나가고 그들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그렇게 느껴진다. 사람의 만남에 대한 진지성, 사랑에 대한 정결함 등이 글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에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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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통해 확산된 공지를 통해,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 모임’ 사람들은, 모임과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는 레스토랑에 모인다. 스물한 명이 오전 일곱 시에 식당에 모여 밥을 먹고, 실연당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네 편의 영화를 보고, 차마 버리지 못한 실연의 기념품을 교환하는 의식을 치르는 가운데 세 사람의 인연이 교집합을 형성한다.
백영옥 작가의 3년 만의 신작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은 칙릿[Chick Lit]소설의 변주라고 해야 할까? 당차고 톡톡 튀며 속도감 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은 상처에 어지간히도 단련된 윤사강, 이지훈, 정미도 이 세 남녀의 관조적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심장을 울렁거리게 하는 감성적인 문체와 본문 곳곳에 장착되어 있는 기성작가들의 인용문 등은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두고픈 빛나는 언어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연(失戀)의 의미는 연애에 실패하는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의 ‘실연’이라는 정의는 트라우마[Trauma : 정신적 외상이나 충격]에 해당된다. 외도한 아빠가 실연의 대상일 수도 있고, 원하는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간절히 꾸는 꿈이 그 대상일 수도 있다. 수컷들이 과시적으로 만드는 근육들이 근육을 파괴하는 과정처럼, 반대파들에게 독살당할 것을 두려워한 중세 유럽 귀족들이 매일 미량의 독을 섭취함으로서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것처럼, 십 년의 연애기간을 견뎌낸 습관 또한 부드럽게 낡아가는 오래된 가죽처럼 내성을 키울 거라 믿었던 지훈의 이야기는 실연의 대표적 이미지다.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 불러올 수 있는 흔한 착각과 오해를 제거하고 있다. 뻔한 사랑은 있어도 이별 후에 오는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윤사강과 이지훈은, 서로 의도하지 않은 맞교환된 기념품으로 인해 뭔가 새로운 사랑이 움트는 전주곡으로 비친다. 그러나 생뚱맞게도 그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둘만의 공간에서 입술은 주고받되 사랑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둘만의 의식(?)을 통해 상처받은 내면의 고통을 서로 이해하고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의도한 것이겠으나,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를 기대했던 내겐 실망이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숨은 뜻은, 실연의 상처를 서로 보듬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방황을 거두고 일상으로 회귀할 수 있으며, 이러한 에너지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파생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닐까? 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다. 본문에 여러 번 회자되기도 했고,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어 부제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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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니라 표지가 예뻐서 끌렸다고 하고 싶은데...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 나아질까요? 내 기억이 지워지나요? 달라..질까요...? 제목을 보고 흠칫 했습니다.그리고 표지가 정말 예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고른 건 제목이 아니라 예쁜 표지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는데, 도착한 예스24 박스에서 꺼낸 책 뒤표지에 적힌 글귀에 가슴이 쿵- 당신과 헤어진 후, 주변은 모든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조용했다, 너무나.
오전 일곱시에 조찬모임을 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자신만만한 사람들이라는 설명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 그러한 사람들과 거리가 먼 21명의 (혹은 20명의) '유령'들이 함께 아침을 먹고 영화를 보고 한때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기념품을 교환-사실은 폐기-하려 모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거기 모인 그들처럼 실연당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됩니다. 내 감정을 표현해주고 위로해 주며 감정몰입이 쉽게 됩니다.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던,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각기 다른 방향에서 서로를 보았던 사강, 지훈 그리고 미도. 세 명의 사연이 각각 시작되면서 또 서로 얽히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 집니다. 서로 얽힌 인연의 실타래가 점차 풀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전혀 억지스러움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사강. 아버지가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해서 아들과 딸에 구분없이 결정되었던 이름을 가진 스튜어디스. 제가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녀의 직업 덕분에 이 소설은 더욱 흥미와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책 말미에 작가의 말에 K항공사의 파일럿과 비행 승무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정말 디테일 하나까지 신경써서 진짜 스튜어디스의 삶을,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릴 적 이혼한 엄마와 살면서 말없이 책만 읽던 그녀는 백과사전에서 '날짜변경선'을 본 이후 스튜어디스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저도 사강처럼 SFO 가는 길에 처음으로 날짜변경선을 통과했어요. 저는 그때 시간을 거슬러 간다는 기분에, 하루를 더 벌었다는 만족감에 들떠서 신기해하고 재밌어 했던 기억이 있어요. 물론 한국에 돌아올 때는 그만큼 하루를 잃어버렸지만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죠.^^;; 그런데 사강은 우산을 쓰고 하늘 위에 떠 있는 사람들이 투명한 날짜변경선 위에 둥둥 떠서 시계태엽을 감고, 풀고 다시 조이는 상상을 했다는 표현을 보고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래서 작가와 나는 상상력에서 차이가 있구나 감탄 했어요. 지훈. 그는 기업교육 컨설턴트로 나와 요즘 트렌드를 보여 줍니다. 저자의 전작들은 읽지 않았고 드라마로도 나온 '스타일'과 같은 칙릿 작가라는 건 알았는데 역시나 트렌디 하네요. 그의 오랜 연인이었던, 그러나 헤어짐을 통보하고 떠나 그가 조찬모임에 나가게 만든 현정. 그리고 이 모임을 기획한 미도.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그들의 연애는 이미 끝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삶은 죽을 거란 걸 알지만 '죽어간다'라고 하지 않고 '살아간다'라고 말하듯, 언젠가는 헤어질 거란 것을 알지만 사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진심이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것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줄 사람이 없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 지라도. 개인적으로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많이 나오지 않아 좋았어요. 특히나 사강의 이야기. 저는 부도덕한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기에 분량이 더 많았더라면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요. 모두 과거형으로 표현해주고 심지어 반전까지! 놀라웠고 깔끔했습니다.
도쿄에서 대지진의 여진으로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던 밤. 공원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어둠 속에서 서로만을 믿고 의지하며 걸어가는 장면이 가장 좋았습니다. 더 이상 표지판이 가르쳐주는 방향이 아니라, 닫혀있던 감각들이 말해주는 대로. 검정색 재킷을 입은 모습이 어둠 속에서 거의 느껴지지 않던, 자신의 몸에서 기적같이 돋아난 또 다른 그림자 같던. 저는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또한 그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다른 이들에게 한번도 말한 적 없는 자신의 아픔을, 상처를 털어 놓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독이며 위로합니다. 그건 잃어버린 연인들 앞에서도 꺼내놓지 못했던 이야기 였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도덕성이나 현실의 장벽 이전에 그들의 사랑이 끝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강은 기념품 가게에 발신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 받은 선물을 내 놓습니다. 헤어진 그가 보낸 것일 거라 추측하면서. 일본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판 '슬픔이여 안녕'은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의미가 오독됩니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으나 많이 들어본 제목. 프랑스어로 'Adieu', 영어로 'Good bye' 일줄 알았어요. 그런데 '안녕'은 프랑스어 원본에서는 'Bonjour' 입니다. 영어로 'Hello' 혹은 'Good morning'의 뜻이죠. 주인공 이름에 영감을 준 것으로 잠깐 등장하는 줄 알았던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슬픔이여 안녕! 슬픔에게 손짓하고 반갑게 인사하며 맞이하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실연에 대처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미도가 말했듯 일단 헤어져야 다시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슬픔이여 안녕. 그런데 오랫동안 슬픔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어색하네요. 그럼 이건 어떨까요? 이렇게 인사해요. 슬픔아 안녕! 너를 만나고 더 좋은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다행이야. 다행이었다.
사실 저는 실연당하지는 않았어요. 실연이라 할 수 없는 아주 짧은 기억 밖엔 없지만 비슷한 기분을 느꼈기에 쉽게 빠져들었죠. 제목을 보고 놀라신 분들, 그런 모임 있으면 나가서 치유 받고 싶으신 분들, 주변이 모든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조용한 그 기분을 아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몇년 전 읽은 독일 여성작가의 소설이 생각이 났어요. 역시, 세상 곳곳에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실연은 계속되고 또 사랑은 계속 됩니다. 개인적으로 그 책 보다 이 책이 훨씬 더 깊이 있고 센스 있게 위로해줍니다. :)
* 가장 센스 있던 부분* 사람은 태어나서 수도 없이 많은 오답을 써. 실연은 살면서 쓰게 되는 대표적인 오답인 거야. 오답이 대수야? 오답은 그냥 고치면 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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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한 거리, 내가 최고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좌절에 하염없이 거닐던 그런 거리. 그해 여름은 나에게 최고로 불행한 순간 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 보이고, 나만 불행해 보인다. 그런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가다 보니 내 마음속에 불행도 슬픔도 점점 살아진다. 걷는다는 거, 나의 불행,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 걸 그 시기에 절실히 느껴서 그런지? 실연당한 사람들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자기가 최고로 불행하다고 죽고 싶다고 느낀다면 하염없이 다른 일에 집중을 하다보면 점점 그 아픔들이 살아질 것이다. 백영옥 작가님의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은 작가님과의 만남에서 먼저 책을 살짝 소개받은 책이다. 작가님의 낭독으로 책을 접해서 그런지 내용이 나에게 잘 전달되는 것 같다. 활짝 웃던 작가님의 얼굴이 사실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래서 그런지 실연도 긍정으로 이겨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실연당했습니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실연당한 사람들은 위한 영화제를 주최합니다.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먹어주실래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으로 바로가기. 아버지가 프랑스와즈 사강이라는 작가를 좋아해서 이름을 사장으로 지은 윤사강은 기장인 정수와 이별을 하고 조찬 모임에 참석했다. 정미도 그녀는 조찬 모임을 진행하게 된 사람이다. 이지훈은 정현정과 이별을 하고 조찬 모임에 참석을 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 모임>은 아침 7시에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다. 그들은 일곱 시에 모여서 아침을 먹고 8시에 영화를 4편이어서 본다. 거기서 느끼는 그들만의 마음. 거기에 일별의 증표인 그들만의 물건 그것을 모임에 내 놓으면서 각자 하나씩 선택한다. 승무원인 윤사강은 <슬픔이여 안녕>이란 책을 내 놓고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강의를 하는 지훈은 카메라를 내 놓는다. 서로 상대방의 물건을 잡음으로서 그들은 아픔을 살짝 공유해간다. 카메라에 들은 필립을 인화하면서 사강은 지훈을 찾기 시작한다. 그 속에 들은 연인들의 사진 왜? 헤어 진거지? 지훈은 슬픔이여 안녕을 한국판으로 사서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만남이 참 특별했다. 그들이 만나는 날 일본에 지진이 일어났고, 두려움을 둘이 같이 헤쳐 나가고, 윤사강은 어릴 적에 헤어진 부모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지훈은 부모님의 죽음, 조부모가 키워준 이야기, 형의 아픈 내용, 서로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치유해 나간다. 그리고 이별이란 아픔을 잊어가는 그런 내용이다. 이별이란 게, 실연이란 것이 꼭 부 연인간의 일은 아닌듯하다. 우리는 살면서 무슨 일에 많은 실연을 당한다. 그리고 많은 이별도 한다. 그럴 때마다 너무 아파하고 죽을 만큼 힘들어 하지만 절대로 죽음을 택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그 아픔들도 살아지는 것 같다. 그 아픔으로 인해 다른 것을 깨닫고 다른 것을 배운다. 그런 일들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것 같다. 슬픔, 아픔, 고통 나만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말자. 모든 이들이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 것들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하자. 그러면 새로운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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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절이 통째로 찢어져 사라진 후의 일임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한번이라도 사랑의 실패는 맛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것이 남녀간 이성간의 사랑이건 혹은 가족이나 형제 그 외의 사람들간의 사랑이어도 좋다. 누구에게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가 있다.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잘 이겨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혹은 그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픔 속에 평생을 방황하는 사람도 있고 실연의 아픔을 트라우마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그 시간을 이겨내는 것이 잘 이겨내는 것이고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의 슬픔의 깊이와 모양은 나와는 어떻게 다를까? 인간은 내가 처한 아픔이나 슬픔은 무척 크게 느낀다.하지만 그것이 내가 아닌 타인일 경우에는 '별거 아니네.' 하고 나와 비교하게 되고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내 것의 깊이가 점점 사그라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실연 당한 사람들이 아침 일곱시부터 밥이 넘어갈까. 평범한 삶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텐데 남들처럼 일곱시에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내가 아픔에 처하면 세상에 그런 상황은 나하나처럼 여겨지지만 여기 모인 21명의 사람들만 봐도 이별이나 슬픔은 평범한 것,살아가다 보면 우연하게 만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 일곱시 조찬 모임에 온 사강과 미도 지훈, 그들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고 깊이는 얼마나 될까?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자신 안에서 끄집어 내지 못하고 가두어 두었던 그들이 모임에 참석하여 앞자기의 빈 의자를 보는 순간,사강은 그동안 담아 두었던 눈물을 쏟아내듯 진심으로 자신 안에 갇혀 있던 눈물을 쏟아 낸다. 봇물처럼 가두고만 있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고 자신의 슬픔 뿐만이 아니라 상흔이 어린 이별의 물건들을 보면서 타인의 슬픔까지 보게 된다.
사강,그녀는 아버지와 정수로부터 두번의 아픔을 겪는다. 어린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딸에게 남겨 놓고 아버지는 그렇게 모녀를 떠나갔다.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아픔만 남겨 놓은 아버지,그 아버지의 빈자리에 함께 비행을 하는 조종사 정수가 들어오게 된다. 강인하고 굳건할 것만 같던 정수에게서 아픔을 보게 되고 나약함을 보고는 둘은 서로의 가슴에 오게 된다.하지만 그는 사강과 함께 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가정이 있는 남자,이혼을 하고 그녀에게 오겠다지만 그렇게까지 가정을 깨면서 자신의 사랑으로 안고 싶지 않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의 삶을 그에게 던져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곤 그녀는 정수를 품었던 그 시간들을 쏟아내듯 그들의 아이를 잃고 만다. 그 공허함으로 그녀는 어쩌면 이 모임에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그런가하면 지훈은 현정과 오랜시간 친구로 지내다가 헤어졌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지 못하는,현정은 지훈의 가정사를,그중에서도 자폐를 가진 형의 아픔을 안아주지 못했던 것. 사랑이면 서로의 모든 것을 감싸주고 토닥여줄줄 알아야 하는데 그저 바라다 보이는 자신들만 보았던 것. 지훈 또한 현정이 어머니를 품지 못한다. 딸의 일이라면 너무도 나서서 딸의 길 앞에 먼지를 쓸어주는 엄마,그녀는 어쩌면 마마걸처럼 늘 엄마의 그림자 뒤에 숨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그렇게 그들 또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미도는 조찬 모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처림 아픔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녀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님 때문에 소녀가장처럼 가정을 책임지며 살았다. 그녀에게 남겨진 동생 미우를 책임지며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 왔다. 그런 그녀가 밝히는 '조찬 모임'의 본 취지는 지훈을 잊지 못한 현정이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잘짜여진 각본처럼 완벽하게 모임은 성사되어지만 그들이 나중에 나누어 갖게 된 이별의 상흔이 묻은 '물건'인 지훈이 가져 온 '로모 카메라'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해외판 때문에 지훈과 사강은 다시 만나게 되고 타인에게 쏟아내지 못했던 자신들의 아픔을 이야기 함으로 인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게 되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의 아픔을 보느라 타인의 아픔 따위 보이지도 않았고 귀굴이게 되지도 않았는데 로모카메라속 사진과 슬픔이여 안녕에 담긴 진실이 전해지면서 그들은 '과거'와 화해를 하게 되고 '슬픔이여 안녕!' 처럼 정말 슬픔과는 이제 작별을 하고 밝은 미래와 악수를 하게 된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이라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아픔의 그 진공된 시간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세상에 '실연'만 있는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의 임의에 의해 결속된 모임이라고 해도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곱시 조찬 모임'을 하게 되기 까지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그런 이별연습이나 슬픔을 보내는 연습이 모자랐던 그들은 타인의 아픔으로 인해 내 슬픔과 아픔이 희서되면서 평범한 일곱시 조찬을 맞을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국 고사에 자신의 아이를 잃은 여인이 현자를 찾아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한다. 그는 여인에게 슬픔이 한가지도 없는 집의 오얏씨를 가져 오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여인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슬픔이 없는 집의 오얏씨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정녕 그런 집이 존재할까. 내 슬픔만 보고 타인의 슬픔을 보지 못했기에 다른 집에도 그런 아픔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니는 집집마다 다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다. 비로소 깨닫는 여인,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행복만 사랑만 계속 되는 그런 시간속을 살겠는가.그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을 듯 하다. 망망대해에 바람과 파도가 없다면 항해는 어떠할까? 삶 또한 사랑도 이별도 실연도 모든 것은 삶이라는 연장선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 그 시간을 잘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어른이 되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지훈을 다시 만난 현정 또한 자신의 과거의 시간과 안녕을 고하고 미래의 시간속으로 달려 갔듯이 정수 또한 비록 잘 안되는 식당을 하고 있고 아내에겐 엄격하지만 그의 딸에겐 딸바보 아빠처럼 다정하다. 그 또한 그의 삶 속으로 힘차게 아내와 함께 걸어 갔다. 지훈과 사강은 어떨까? 그들도 과거와 화해를 하고 트라우마처럼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슬픔과 실연'에서 일곱시 조찬 모임을 통하여 또 다른 슬픔으로 인해 자신의 슬픔과 실연을 희석시킴으로 인해 둘은 서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실연의 아픔이 떠나고 그 자리에 대신 사랑의 봇물을 가두게 되었다. 인생이 늘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은 모두 '행복'속으로 '사랑' 속으로 다시 힘차게 달려간다. 그것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메세지다. 스스로 그들의 아픔을 읽어나가며 내 안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슬픔과 아픔의 찌꺼지를 모두 흘러가 버리고 화해와 용서 그리고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사족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스티브 잡스 또한 우리의 곁을 너무 바람처럼 떠나가가 버리고 말았다.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실연도 없다. 모두것은 지나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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