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나...아직도 2천원 짜리 책이 남아 있더군요. (더구나, Yes24에서 주문해서 천 육백원) 막상 배달되어온 책의 조그만 크기까지 확인하고 나니 감동은 더 했습니다. 범우사 문고판... 내가 마지막으로 문고판을 읽었던 게 언제였더라. 작가 송경아씨가 '내 생애 최고의 소설은 <바다의 침묵="">이었다'고 말한 어느 웹진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송경아씨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녀가 엄청난 독서가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죠. 이제는 문고판 밖에 남아있지 않은 <바다의 침묵="">을 서둘러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바다의 침묵="">안에는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바다의 침묵="">, <무력>, <베르덩 인쇄소=""> 등 모두 인상적이고 훌륭한 작품들이었습니다. 20년 전에 번역된 소설이라 어쩐지 고답적인 (문어적인) 번역체가 거슬렸지만, 그래도 원작의 정신과 품위까지 해치지는 못하더군요. 제 생애 최고의 소설이라 말하지는 못하지만,(저는 제 생애 최고의 소설 한권을 도저히 꼽을 수가 없네요. 그런 선택을 할 능력이 제겐 없습니다.) 소설이 담아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베르코르의 작품들은 레지스탕스 활동을 치열하게 벌였던 작가 자신의 저항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바다의 침묵="">, <베르덩 인쇄소=""> 두 편은 저항의 대상이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바다의 침묵="">의 장교는 독일인이고, <베르덩 인쇄소="">의 인쇄소 주인은 페탱 장군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인간적이며 선을 추구하는 인간들입니다. 다만 잘못된 국가와 이념 안에 속했을 뿐이지요. 그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신념 안에서 해답을 얻고자 애쓰지만, 결국엔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가를 깨달아 갑니다. 레지스탕스의 입장에서 서술된 소설이었다면, 이 소설들이 이토록 설득력을 지니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피해자 혹은 희생자들의 당연한 몸부림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이 경우엔 무엇이 옳고 그른가와 관련된 주장은 힘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편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가해자이자 적의 편에 서있는 인물들이 스스로의 신념에 질문을 던지는 모습은 당연한 장면이 아닙니다. 그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들의 고민은, 결국 읽는 이들의 고민이 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민들이기에 더욱 순수하고 진지하게 와닿습니다. 그렇다고, 작가 베르코르가 오직 설득력을 지닌 인물을 찾을 속셈으로 적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건 아닐 겁니다. 그는 '적'이라는 커다란 집단과 그 집단 속에 살아 숨쉬는 개개인의 인물을 떨어뜨려 볼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은 저항의 대상이지만, 독일인 가운데에도 프랑스인처럼 고민하는 인물이 있음을 안다는 것...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모든 일본인은 제국주의자이고 모든 북한사람은 공산당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적들과 맞서기엔 훨씬 편리하니까요. 베르코르의 소설을 통해 너른 폭과 깊이을 지닌 저항 정신을 만나보았습니다. 문득 이러한 정신이 작가 개인만의 것인지, 프랑스인들 전체의 것인지가 궁금해지는군요... 천 육백원, 햄버거 한 개 값을 치루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베르덩>바다의>베르덩>바다의>베르덩>무력>바다의>바다의>바다의>바다의> |
오랜만에 발견한 숨겨진 보석이다. 진짜 프랑스에는 글 잘 쓰는 작가들이 수두룩 빽빽하구나 싶다. 비슷한 상황을 다루는/쓰여진 소설들은 많이 있지만, 이 소설만의 독창적인 관점,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 긴장감을 부여하는 문장, 딱 필요한 만큼의 길이 등 고루 완성된 수준의 소설을 찾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표제작은 미워해야하고 미워할 수 밖에 없지만, 자꾸 관심이 가고, 그러다보니 자꾸 애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친밀감이랄까 서로 관심과 온기를 주고 받고 싶은 마음이랄까가 어쩔 수 없이 생기지만, 또 그게 교환이 될 수는 없는 상황의 설정이 그래서 너와 나 모두 인간일 뿐인데, 왜 우리는 어찌하여 이렇게? 라는 유효한 질문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작품은 <베르덩 인쇄소>이고, 특히 담담하게 휘리릭 지나가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시금 치를 떨게 할만한 결말은 정말이지 훌륭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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