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인간에게 두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파라노이아(paranoia, 편집증)형과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 분열증)형이라 하는데, 편집증형은 과거의 모든 일을 적분하여 짊어지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10억이 있는 구두쇠가 5만 원 더, 10만 원 더 하면서 혈안이 되어 긁어 모으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지요. 분열증형은 그때마다 시점 제로에서 미분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지금>의 상황을 예민하게 살피면서 순간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도박꾼 같은 사람이 그 전형이 되겠습니다. 편집증형의 전형적인 행동은 <정주(定住)하는>것이 될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그곳을 중심으로 영토의 확대를 도모하는 동시에, 재산을 산더미처럼 축적하며, 아내를 성적으로 독점하고 태어난 자식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가정의 발전을 도모합니다. 이 게임은 도중에서 그만두면 지게 되죠. <그만둘 수 없다, 멈출 수 없다>를 계속하여, 어쩔 수 없이 편집형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병이라고 하면 병이지만, 근대 문명은 이런 편집증적 추진력에 의해 여기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한, 수월하지는 않다고 해도 그 나름대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태가 급변하기라도 하면, 편집증형은 약해져 잘못하다가는 울타리 안에 틀어박혀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다가 목숨을 바치게 되는 사태가 올지도 모릅니다. <정주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등장하는 것이 <도망치는 사람>입니다. 이 녀석은 무슨 일이 있으면 도망을 칩니다. 머무르지 않고 아무튼 도망을 칩니다. 그러기 위해선 몸이 가볍지 않으면 안 되겠죠? 가정이라는 중심을 갖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선에 몸을 두면서 살아 갑니다. 재산을 부지런히 모으거나, 가장으로서 처자식 위에 군림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때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이용하고, 대를 이를 아이도 적당하게 씨를 뿌려놓고 뒷일은 운명에 맡겨버리는 거죠. 의지가 되는 것은 사태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센스, 우연에 대한 직감, 그것뿐입니다. 어때요? 정말 분열증형이고 할만하죠? 저야 말할 것도 없이 편집증형의 인간입니다. 그동안 한우물을 파며 지속적인 지식과 부의 축적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슬슬 도망치고 싶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당연히 <도망치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더 위험하고, 더 힘들고, 아무 보장도 없는 길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매력이 있으니까요.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었다고요? 사실 그런지도 모르죠. 벌써 아이둘에 와이프 하나를 부양해야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면서는 벌어먹을 능력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도망가는 대상을 '기존에 당연시 되던 생각'으로 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일하고 많이 소비하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큰 집과 좋은 옷을 포기한다면 덜 일하고 그 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시도 읽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면 더 좋지 않을까요? 어딘가에서 읽은 우화하나가 생각나게 하는 책입니다. 어떤 사람이 평생 소원이 돈을 많이 벌어 해변에 집을 짓고 배를 타며 낚시나 하면서 소일하며 보내는 것이답니다. 그래서 그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정말 밤낮없이 일해서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되어 뜻대로 되었답니다. 어느날 해변을 거니는데 젊은 청년이 허름한 옷을 입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낚시 도구를 챙기며 빈둥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속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어 그 젊은이를 붙잡고 일장 훈시를 했답니다. "알았지?.....자네도 나처럼 열심히 일해서 한가로운 노후를 보내는 게 어떤가?" 그러자 그 청년은 불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답니다. "글쎄요....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네요. 전 이미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