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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를 들은 건, 몇달 전에 읽었던 논문에서였다. Bulletine of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보통 BAMS라고 불리는데) 2002년 논문중, ROSS N. HOFFMAN이란 사람(Chaos 이론으로 유명한 로렌츠의 제자라고 한다)이 쓴 "CONTROLLING THE GLOBAL WEATHER"라는 게 있었다. 일기 혹은 기후에 대한 정확한 예측의 가능성에 대한 비전이랄까.. 뭐 그런걸 적은 논문으로, 연구결과 보고라기 보다는, 현황과 가능성을 리뷰하는 성격의 논문이었다. 최근에 혼돈이론에 약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찾아보게 된 논문인데, 일기와 기후의 예측성, 나아가서 통제 가능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혼돈이론에 이야기하는 대로, 시스템 자체가 가진 혼돈적인 특성때문이라는게 일반적으로 알려져있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30년 내에 그 문제가 어느정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그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 당장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2-30년 내에 어느정도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가능해 보인다.
하여간, 이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논문 서두에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중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부로 이 작품을 수소문한 것은 아니고, 우연히 친구가 이걸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빌려보기로 한 것이다. 나같은 대기과학/기상학 혹은 지구과학을 전공하는 이는 이 작품이 그러한 관점에서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다보면, 이 작품은 토목공학을 전공하는 이들, 특히 엔지니어들이 아주 흥미를 가질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우주공학(너무 광범위할지 모르겠지만) 전공자들도 흥미롭게 볼만할 듯하다. 그리고 SF 독자들은 그런 맥락과 함께 아서 C. 클라크 적인 인간존재/진보/종교/외계문명에 대한 흥미로운 문제제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동시에 환경론자들이나 유네스코와 같은 기관과 관련된 사람들은 나름대로 불편한 마음으로 이런 작품을 보게 될 듯하다.
이 작품에서 주로 그려지는 인간의 주요한 두가지 특성은, 도전/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전진욕망과 신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어떤면에서는 퇴행적인 회귀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주인공 엔지니어를 통해 전진에 대한 욕망이 대표된다면, 서두에 등장하는 신화에서부터 비롯되는 공원과 종교, 그리고 그 엔지니어의 작품에 대한 인류의 명명에서 회귀욕망이 상징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노 정치가와 중간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외계문명의 시선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참으로 고전적인 주제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궁극적으론 순환론적 역사관나 다수의 문명비판적 SF들이 꾸준히 맥을 이어가는 핵심문제의식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바벨탑의 상징에서부터 말이다.
흥미롭게 읽히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여전했다. 수천년이라는 시간의 공간을 설정했을때, 당대에 중요한 윤리적 문제는 가볍게 치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말이다.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 당대의 주역들이 직면하게 되는 어쩌면 근시안적인 윤리와 책임의식, 그리고 도전정신에 어쩔 수 없이 묻혀버리게 되는 아주 많은 일들...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문명의 지성체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증법적인 긴장을 겪지 않은 지성체가 있다는 것 또한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게 또한 지구인으로서의 내 한계다. 소설에 담긴 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선택들은, SF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어쩌면 그 입장에 있는, 개개개의 위치에 충실한 이들로써는 어쩔 수 없다고밖엔 할 수 없는 아주 전형적인 것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말한 두가지 욕망의 긴장을 염두에 두고,그리고 각각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가정할때 이 소설은 거의 반전이 없는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인간문명의 단면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앞으로 위성관련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이 작품은 꾸준히 기억 한구석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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