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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최초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한 장 지글러는, 그 동안 많은 저술로 기아와 빈곤에 대한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 시킨바 있다. 그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한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하여 빚어지는 구조적 기아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탐욕의 시대]에서는 기아의 원인은 바로 빈곤이며, 그러한 빈곤은 북반구가 남반구를 지배하기 위해 부채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는 모든 사람이 굶주리지 않을 권리인 식량권과 새롭게 기아의 원흉으로 부상한 바이오연료와 식량 투기꾼들의 실상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해마다 수천만명의 인간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기아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또한 5초마다 열살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다. 지금 전 세계의 농업은 지구인구의 2배인 120억명을 문제없이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온갖 풍요가 넘쳐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기아로 인한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5살 미만의 아이가 자라면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경우, 그 아이의 육체적, 정신적 결핍은 그 아이가 평생 지고 갈 십자가가 된다고 한다. 설사 5살 이상이 되어 삶이 기적처럼 달라진다 할지라도, 그 결핍은 평생 메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기아는 조직적인 범죄라고 장 지글러는 말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사망요인이면서, 가장 무관심한 형태로 방치된 천형이라고 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구사회는 맬서스가 내세운 이데올로기에 의식을 저당 잡히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기아피해자들, 특히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기아로 인한 사람들의 대규모 죽음에도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2차 대전 중, 나치의 차별적인 식량정책에 의해 대량학살을 겪고 난 후, 기아를 뿌리 뽑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며, 어떠한 운명론적 태도도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였고, 그 결과 유엔 산하에 세계식량농업기구(FAO)를 발족시키기에 이른다. 이른바 식량권이 인권의 한 부분으로써 태동하게 된 것이다. 식량권이란 간단하게 말해 굶주리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또한 유엔은 1963년 긴급 식량지원을 주요 임무로 하는 세계식량계획을 창설하여 식량권을 확보하고 늘어만 가는 재앙에 신속하게 대처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과 미국이 용병처럼 부리는 국제기구 3총사,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에게 식량권이란 판단착오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인간의 권리란 오직 시민권과 정치권으로만 압축되었고, 그들 뒤에 버티고 있는 거대 다국적기업에게 식량권이란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권리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기아는 생산성 향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며, 생산성 향상은 거대자본과 첨단기술이 필요하고, 그것은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 언제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에 불과했다. 그러기에 이들의 사주를 받은 미국과 국제기구 3총사는 오로지 자유로운 시장경제만이 기아라는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여태껏 떠들고 있다. 우리도 1997년 외환위기 때 겪어 본 것처럼, 이들로 인해 상품과 서비스, 자본, 특허의 이동이 자유화되고, 공공영역은 민영화되었다. 그 결과 사회의 양극화는 심각하게 진행되고, 특히 남반구국가에서 영양실조와 기아로 인한 희생자수는 가파르게 증가함을 FAO의 조사보고서는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FAO와 세계식량계획은 이들에게 눈에 가시였고, 결국 선진국들과 미국의 용병단체들의 비협조, 방관, 기만 등으로 이들은 무기력해 질 수밖에 없었다. 쌀, 밀, 옥수수를 기초식량이라고 부른다. 전세계 인구의 85%가 이들을 식량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과 2011년 기초식량의 가격이 급등했다. 각 나라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일부 국가에서는 정권이 전복되기도 했다. 이들 가격급등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가뭄과 같은 기후환경, 흉작이나 육류소비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거대 다국적기업과 헤지펀드로 대표되는 뱀상어 같은 곡물 투기군들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녹색 금이라 불리는 바이오연료는 유기농을 뜻하는 바이오(bio)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혼동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국적기업들은 이들 연료의 생산방법과 환경비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기후변화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선전하기에 이른다. 바이오에탄올 1리터를 제조하기 위해 4천 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이들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심기 위해 숲이 불타고, 식량재배 농지가 점점 축소되고, 가족단위 농업을 파괴하고, 단일경작으로 재앙을 준비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는 세계에서, 수백만톤의 식량을 연료로 태워 없앤다는 것은 천인공노할 짓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식량투기꾼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가격 급등현상을 조장한다. 그들은 세계은행의 자금으로 남반구 국가들의 토지를 갈취한다. 물론 이것은 굶어 죽어가는 국민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는 부패한 정치지도자들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경제 속에서 어떻게 해야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세계 각지에서는 저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그리고 농민단체들이 식량권을 위해 다국적기업의 신식민주의적 행태에 대항하고 있다. 결코 쉽지는 않은 길이지만 바이오연료 생산기업과 식량투기꾼들의 활동을 저지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시장체제는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가장 튼튼한 벽도 조그만 균열에서 무너지듯이, 이 체제에 그러한 균열이 최대한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장 지글러는 역설한다. 기아로 대량살상의 위협을 받는 수억명의 세계시민들과 우리 모두가 전적으로 연대를 할 때, 더 이상 세계는 굶주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아는 먼 남반구 국가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북한만해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고, 아니 우리 주위만 둘러보아도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이런 기아문제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장 지글러는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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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난한 자들이 도움을 받기를 원하지만, 나는 빈곤이 아예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 빅토르 위고 “우리가 냉소주의에 빠질 때 이 세상에 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기억하면 다시 용기를 얻게 된다.” _칼 세이건 2차 세계대전 동안 희생된 군인, 민간인 사망자 5,600만 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기아 또는 기아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영양실조, 결핵, 빈혈 등으로 수백 만 명의 어린이와 성인남녀가 죽었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입증하는 일뿐만 아니라 유럽 주민들을 굶기는 범죄적 행위에도 정력을 쏟았다. 그는 기아 전략을 통해 독일의 식량 자급을 확보하고, 독일제국의 법에 나머지 국민들을 복종시킨다는 두 가지 목표를 지향한 것이다. 전쟁을 선포한 후 히틀러는 점령국에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식량을 탈취했다. 정복당한 국가들은 식량을 모두 빼앗겼다. 점령국들마다 수만 명의 주민들이 기아 또는 기아로 인한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1945년 5월 8일 제3 제국의 멸망 후에도 유럽에서 기아의 고행은 즉각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농업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경제도 파탄지경에 이르렀으며, 각종 하부구조가 엉망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서 기아와 영양불량, 영양실조 또는 면역체계의 와해로 인한 질병이 만연했다.
전쟁과 나치즘, 대량 학살이 자행되던 강제수용소의 참화와 모두가 공유해야 했던 고통과 기아의 공통된 경험과 기억이 세계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가 발족하게 만들었다. 1945년 유엔이 창설되자마자 UN은 산하에 최초의 전문기관으로 세계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를 발족시킨 것이다. 그리고 1948년 12월 10일 유엔의 64개국 회원국이 모인 파리 총회에서 인권선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인권선언의 제25조는 식량권을 명시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인류, 자기와 동류인 존재가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인권선언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재앙이 늘어만 가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1963년 한층 더 높은 방침을 채택하여, 긴급 원조를 담당하는 세계식량계획을 창설한다. 1946년 UN은 세계차원에서 최초로 기아와의 투쟁을 선포했다.
나치즘으로 인한 기나긴 암흑시대를 겪고 난 터라 기아를 뿌리 뽑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며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떠한 운명론적 태도도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에 모든 회원국이 동의한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때라 회원국 간의 이념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2차 세계대전 중 경험한 기아가 그만큼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그것이 공통의 기억이자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기아는 조직적인 범죄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풍요로 넘쳐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전 세계의 식량 생산량은, 현재 지구 인구를 충분히 먹이고도 남을 정도이다다. 그러나 유례없는 곡물 풍작이 이어졌던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도 영양실조를 경험하고 기아로 희생당한 희생자의 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지금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 일곱 명 중 한 명은 기아 또는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5초마다 한 명씩 열 살 미만의 어린이가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 충분한 식량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기아로 죽는 사람들이 발생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의 거대한 참극이다.
식량 불안을 겪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군사적 갈등이나 정치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기아는 다른 무엇보다 정치 문제이다. 기아가 집요하게 지속되는 것은 토양이나 지형이 아닌 인간의 습성 때문이다. 거기에 천재지변이나 코로나 팬더믹 같은 전염병까지 더해지면 이러한 국가의 국민들은 더욱 기아에 취약해진다. 그중에서도 농촌과 도시 빈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입는다.
세계은행의 기준에 따르자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67억 인구 중 약 12억 가량이 ‘극단적 빈곤’(하루 1.25달러 미만의 수입) 상태인데, 이들 중 75%가 농촌에 거주한다.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민들이나 농지 소유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소작인들, 영세농민, 계절 농업노동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적대적 기후와 날씨의 재앙, 메두기떼의 습격, 정치적 불안과 전쟁 등으로 항시적으로 기아의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농촌에서 일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이나 농지나 소작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도시로 유입되어 도시 빈민이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신자유주의=신식민주의, 경제제국주의
문제는 기아가 구조적인 대량 살상이자 대량 학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언론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아는 더이상 공동의 경험이나 기억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미 기아의 기억을 상실한 소위 ‘선진국’들이나 ‘강대국’들은 거대기업들과 손잡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을 수탈하고 있다. 지난 날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온갖 재화들을 수탈했듯이 말이다. 더욱이, 미국이 용병처럼 부리는 국제기구들인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은 신자유주의를 수호하는 십자군 원정대를 자임하고 있다. 이들에게 인간의 권리란 시민권과 정치권에 한정될 뿐 식량권은 인권에 포함되지 못 한다. 세계무역기구나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이 국제기구들은 강대국, 부자 국가들의 클럽이 되었다. 그러나 남반구 지역 국가들의 상당수가 정권 연장을 위해서 서방 국가들의 개발 지원금, 자본, 차관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원조를 빌미로 공공영역의 민영화와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
남반구의 가난한 국가들이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영양실조와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942년 시작된 세계적인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의 조사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00년 사이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하는 구조조정안을 실행에 옮긴 국가들에선 거의 예외없이 수백만 명의 기아 피해자가 발생했다. 국제통화기금에서 제안하는 구조조정 계획은 예외없이 당사국의 예산에서 보건 위생과 교육 부문 지출 감소, 기초식량에 대한 지원금 폐지, 빈공 가정에 대한 지원 폐지 등을 포함하고 있을 뿐더러, 공공 서비스 역시 구조조정 계획이 제일 먼저 노리는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제통화기금은 농가공식품 분야의 거대 다국적기업을 위해 남반구 지역 시장을 개방했다. 예를 들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아이티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쌀의 자급자곡이 가능했다. 수입쌀에 30%의 관세를 붙여 외국산 쌀의 덤핑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을 받으면서 쌀에 대한 보호관세가 30%에서 3%로 떨어지면서, 아이티 국내 벼농사는 파괴되었고 쌀을 생산하던 농민 수십 만명의 삶도 와해되었다. 아이티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난한 빈곤국인데, 2000년대 초부터 아이티 정부는 예산의 80%를 식량 수입에 할애하고 있다. 국내 벼농사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의 걷잡을 수 없는 붕괴와 약화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들 국제기구들과 강대국들의 배후에는 기라성 같은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있다. 식량 생산과 무역이라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들의 지배력이 점점 커지면서 식량권 행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 농가공식품 분야에서는 세계 200위까지의 기업들이 전세계 생산량의 4분의 1을 좌지우지하는데, 이들은 식량과 관련하여 생산에서부터 가공과 상품화, 소매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독점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기아가 세계 농업의 불충분한 생산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농사 공정을 최대한 산업화하고(그러기 위해 최대한의 자본과 첨단기술을 동원해야 하고, 가족 단위의 ‘비생산적’ 농가들을 배제해야 하며), 세계 농업 시장을 최대한 개방해야 한다(자유로운 시장의 지지가 있어야 생산 경제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요약하자면 오로지 시장 자유화와 민영화를 통한 자유로운 시장경제만이 기아라는 재앙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이 다국적기업들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매우 유감스럽게도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역시 이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즉, 세계기구들과 강대국,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전세계의 빈곤과 기아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경제제국주의에서 에너지제국주의로 기아와 관련하여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바이오 연료(또는 농업 연료이다. 왜냐하면 바이오 연료가 기아의 새로운 원흉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이오’의 ‘bio’가 유기농을 가리킬 때의 bio라고 생각해서 바이오 연료가 청정하며 환경친화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바이오 연료의 ‘bio’는, 연료(에탄올 또는 디젤)가 유기물질(바이오매스 biomasse)에서 생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이오 연료는 ‘검은 금’으로 불리는 원유의 보완재로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녹색 금’으로 여겨지고 있다. 농업 연료의 제조와 상용화 과정을 장악한 농가공식품 분야의 다국적기업들은 이것이 고갈되어가는 화석연료를 대체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항할 수 있으며, 이로써 기후변화로부터 환경과 인류 전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바이오 연료가 기후 변화에 맞설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기만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농업 연료를 생산하는 방법과 환경 비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농업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매일 10세 미만 어린이 9천 명이 오염된 물을 마신 탓에 사망한다. 설사와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간염, 말라리아 등 오염된 물을 마심으로써 걸리게 되는 병들로 인해 죽는 사람들이 개도국 사망자 수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런데 바이오 연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것은 연쇄적인 식수 부족을 초래하게 된다. 인간이 먹기에 충분한 식량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기아가 발생했던 원인 중 하나는 인간에게 돌아가야 할 식량들이 육류 생산 등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더해 바이오 연료 생산을 위해 본래 인간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산된 수백만 톤의 식량들이 원래 용도와는 전혀 다르게, 에너지 자원을 만들기 위한 연료로 태워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5초마다 열 살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죽어가는 세상에서, 연료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굶주린 배를 채워줘야 할 식량을 태워버린다는 건 반인류적 범죄이다.
더욱이 농업 연료는 사회적으로나 기후의 측면에서도 재앙을 초래한다. 농업 연료는 식량 재배지 면적을 줄이고 가족 단위 농업을 파괴하며 세계의 기아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농업연료용으로 생산되는 작물 재배를 위해 아마존과 중앙아프리카의 열대림 등의 원시림을 파괴함으로써 지구의 주요 ‘탄소저장고’들이 사라지고 있다.
Stop Hunger. Start Peace: 무관심과 냉소가 키우는 굶주림, 기아는 숙명이 아니다. 이렇듯 기아의 폐해가 심각하고 그것이 개인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매우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기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2차 대전 이후 공동의 합의를 도출해냈듯이 인류 전체의, 적어도 국가들 간의 합의를 이끌어낼 방법이 있을까?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는 강대국들과 자신들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다국적기업들과 그들의 용병으로 전락한 세계기구들을 견제하고 ‘굶주리는 세계’를 구하는 건 가능할까? 자국 정부가 보호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어떤 식으로 ‘세계’가 구할 수 있을까? 내정 간섭의 의심을 받지 않고 국제사회가 특정 국가의 지도자들이 부정부패하거나 부정부패 세력과 결탁하는 것을 감시하거나 저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당 국가의 국민들(주민들)을 결집시키고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할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이러한 고민들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 장 지글러는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두 가지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l 남반구의 적지 않은 나라에서 관행처럼 자행되는 지도자들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 지도자들의 매관매직, 권력과 지위, 그러한 사회적 지위에 으레 따라붙기 마련인 것으로 인식되는 돈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차단해야 한다. 제3세계 일부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공적 자금 유용, 국회의원들의 개인적 치부는 추악하다 못해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부패가 만연한 곳일수록 나라는 글로벌 금융 포식자들에게 팔려 거덜이 나고 그럴수록 이들 포식자들은 손쉽게 세계를장악할 수 있다. (pp.328-329) l 식량권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기초식량에 대해서는 투기 거래를 금지하며, 식량으로 쓰이는 작물을 바이오 연료 생산에 투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농가공식품 거래 부문의 문어발식 카르텔을 원천봉쇄하며, 농지 갈취에서 농민을 보호하고, 인류 문화 자산으로서의 식량 생산 농업을 보존하고, 이의 향상을 위해 세계적 차원의 투자를 고취한다. (p.330) 장 지글러는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각국의 의지뿐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가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할 뿐, 도덕적 신념이나 열정, 정의감, 연대감 등에 의해 행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기아로 대량 살상의 위험을 받는 수억 명의 세계 시민들과의 전적인 연대다.
2020년 노벨평화상은 유엔 세계식량계획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세계식량계획은 기아와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가장 큰 인도주의 기관”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세계식량계획이 분쟁지역에 기아를 막아 평화에 기여한 공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급증한 것을 감안한다면 노벨위원회가 세계식량계획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이유와 이것이 가진 함의는 더욱 명확해진다.
가령, 세계식량계획이나 옥스팜을 후원한다거나 이들이 하는 활동을 지지한다는 서명을 하는 것 은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죽음은 빈곤과 기아를 통해서 온다’(p.177)는 것을 알고 기아에 무관심이나 냉소로 일관하지 않는 것, ‘식량은 공공재화로 간주되어야 한다’(p.189)는 것을 알고 이러한 일을 하는 단체들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것,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연대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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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얘기하는 마지막 장에 인용된 빅토르 위고의 말, '당신은 가난한 자들이 도움을 받기를 원하지만, 나는 빈곤이 아예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문제를 대할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에 따라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등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됩니다. 굶주림에 초점을 두자면, 더 많은 식량을 가난한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해결방안이 될 것이고, 불평등이 그 원인이라고 보면 당장 눈 앞의 먹을 것을 넘어서 분배와 정의를 해결해야 합니다. 당장 굶고 있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쥐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지만, 구조적으로 그런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 근원적인 문제를 같이 들여다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현재 전 세계인을 먹이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한 편에선 굶주리고 있거나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굳이 우리 땅에서 자란 먹거리가 아니더라도 반도체를 팔아 쌀을 사 먹을 수 있으면 좋은 게 아니냐고 강변하는 이들에게 식량권 혹은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어떻게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 전 지구적인 굶주림의 한 가운데에 식량을 '돈'으로, 이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존재함을,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음을 봅니다. 반도체를 팔아 식량을 살 수 있으면 우리가 굳이 농사를 안 지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강변하는 이들이 사적 이익을 취하는 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식량권이란, 인권이나 생존권처럼 인간에게 주어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폐기하는 순간, 우리에게 언제든 생존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오랫동안 인간이 가진 식량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가진 자들과 싸워 온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식량으로 잇속을 챙기는 기업들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전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희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현 유엔사무총장인 반기문에 대한 저자의 입장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전임 코피 아난 총장에 비해서 너무 유순하다는, 어찌보면 강대국들의 입장에 서서 싸우지 않으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입지전적인 인물이긴 합니다만, 유엔이라는 거대 조직을 이끌고 가기엔 한계가 뚜렷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미 선출될 때부터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올랐다는 이유가 아닌, 정말 세상의 불평등과 부패, 정의롭지 않은 존재들과 치열하게 싸웠다는 이유로 존경을 받는 이가 다음 유엔사무총장이란 자리에 올랐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 멀리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배고픔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도 책임이 있다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저자가 얘기했던 것처럼, 수익을 위해 전 지구를 헤집고 다니는 헤지펀드는 결국 우리 주머니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 투자하는 종잣돈을 매개체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혹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하는 작은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겐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세계화를 통해서 고삐가 풀린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와 함께 우리의 의무와 관심도 세계적인 차원까지 확장이 되어야 하고, 저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도 연대할 수 있어야 진정 세계화를 통해 이 지구의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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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빼앗긴 대지의 꿈 그리고 이번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까지 저자 장 지글러의 모든 책을 읽었다
저자는 유엔식량조사특별기획관으로써 세계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야만적인 행동들을 파헤치고 고발한다 그리고 얘기한다 모두 함께 일어나서 다시 문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5초 마다 한 명씩 어린이가 죽어가는 이 현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다국적 기업 제품의 불매 저자의 책들을 널리 알리기
그래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자처럼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늦지 않았겠지..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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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화두에 눈을 어디다 두워야 할지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오로지 한 가지만을 부르짖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장 지글러,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기아’이다.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못 먹어 굶어죽는단 말인가 싶겠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아프리카 대다수의 국가에서,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와 남아메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기본적인 식생활을 영위치 못해 생명을 잃고 아니면 평생 극복이 불가능한 장애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따금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는 하는 깡마른 아이들의 유난히도 맑은 눈동자를 기억하는지. 그들의 생활 터전은 곡식이 자라기엔 너무도 메말랐고, 그들의 삶의 방식은 진보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굶어 죽는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선 남아도는 음식물을 감당 못해 쓰레기로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의 제목은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빼앗긴 대지의 꿈> 등 그간 저술해온 책들의 완결판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저자는 만연해 있는 기아를 의지의 문제로 해석한다. 일찍이 멜서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자연상태로 둔다면 과잉인구로 인한 빈곤의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예측을 하였다.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지 그는 도덕성의 회복, 즉 성적 방종 등을 막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그의 주장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빈곤층의 인위적인 산아제한 등을 통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인간적(!)인 처사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뿌리가 바로 멜서스적 사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빈곤은 곧 불확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음으로써 자신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려 드는 것이지,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일종의 미봉책에 불과할 뿐,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하여 가난한 사람이 저절로 부유해지는 일은 발생치 않는다. 오히려 많은 국제기구들의 잘못된 경제정책 강요가 오늘날 빈곤의 주된 요인이라고 저자는 본다. 우리도 겪어 보았기에 잘 알고 있는 IMF가 대표격이다. 자본의 유연성을 증대시키는 온갖 정책을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국가들에 도입하려 드는데, 이제껏 각국이 축적해온 경험이나 문화적 차이 따위에 대한 존중은 이로부터 찾아볼 수 없다. 요구하는 내용은 너무도 획일적이고, 조치를 따름으로써 겪게 되는 것은 실패뿐이다. 수치상으로 나아졌을지라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그나마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국가들마저도 식량주권을 무국적 자본에 내어주고야 만다. 식량 생산을 담당해왔으며 가난하긴 했으나 적어도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은 자연스레 피폐해진다. 아무 문제없이 농사를 지어오던 땅이 하루아침에 출입금지 지역으로 돌변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형편없는 임금을 제공받는 소작농이 되거나, 그게 싫다면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을 강요받는다. 세계식량계획과 세계식량농업기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한때 세계식량계획은 긴급식량 지원의 임무를 잘 수행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제한된 그마저도 매년 줄어드는 예산을 가지고 늘어만 가는 기아 인구를 살려야 하다 보니 가치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엄정한 심사를 통해 선별한다.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결정하는 모습이 나치의 만행과는 엄연히 구분된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삶이 대체 무가치할 수 있단 말인가. 세계식량농업기구의 모습은 더 웃기다. 예산의 70퍼센트가 인건비이며, 나머지 30퍼센트 중 15퍼센트는 외부 컨설턴트 사례비로 쓰이고 있다. 남은 15퍼센트만을 기술협력, 남반구 지역 농업개발, 기아와의 투쟁 등에 쓸 수 있다. 선진국들은 충분한 예산 지원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아놓고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적극적으로 기아 문제의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며 직격탄을 날린다. 마치 누워서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바이오연료 문제에도 주목한다. 기존에 식량으로 사용되던 옥수수가 이제는 연료 만드는 데에 쓰인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자의 설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인도주의보다 돈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인 듯. 세상에 빈곤을 가져다 준 것도 위정자들의 의지였다. 그들은 제 배를 불리는 대신 대다수가 굶주리는 질서가 형성되는 데에 동의했다.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의지에 달렸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에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보고서가 세상에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바꿔 먹으면 된다? 참 대책치고는 쉬워 보인다. 하지만 마음을 달리 먹어야 하는 이들이 전혀 그리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니, 세계가 언제 어떻게 뒤바뀔지를 알 수 없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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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님에게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장 지글러 UN 식량특별조사관님? 저는 대한민국에 사는 남준식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실 '기아'하면 아프리카의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저 불쌍하다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아주 강인하였죠. 왜 지구 반대편은 굶주릴까? 120억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추측해보았어요. 아마 사회의 부조리아닐까?라는 추측을 품고 읽기 시작했죠.역시나.. 구호활동의 활동상의 모순이며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 몇 안되는 다국적기업과 정치집단의 악습, 환경파괴 등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하려 했던 현실을 조목조목 집어내고 있었어요. 이런 모순되고 불합리한 세계질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기아의 진실들. 직접 아프리카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니시면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미래에 제가 필요로하는 자세였는데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 사회는 단지 UN 이나 FAO와 같은 국제구호에만 떠맡기는게 옳은 것일까요? 당연히 아닐꺼에요. 장 지글러(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이러한 활동은 응급조치에 불과할겁니다. 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살인적이고 부패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읽는동안 느낀 것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아무리 어떠한 내부의 노력과 외부의 손길이 있다하여도 그 사회 자체가 문드러 빠졌다면 소용이 없다는 걸요. 따라서 기아의 비극이 만연하는 제3세계의 국가들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국가를 설립하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되는 거겠죠 무엇보다 저를 포함한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나몰라라 하지말고 관심을 가져주고 지속적으로 도와주었으면 기아문제는 꼭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아는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의 산물이니깐요. 끝으로 저에게 기아란 무엇인지, 그 출구는 어디인지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 지글러 유엔식량특별조사관님, 희망은 있는 거겠죠? 아니, 희망은 어딘가에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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