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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제 아무리 오래된 글이더라도 시공을 초월해 만인으로부터 사랑받는다. 장르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세태를 촘촘히 분석한 글의 경우 때를 놓치면 시의성이 떨어지고야 만다. 신문 등에 수록됐던 오래된 사설을 통해 옛 삶을 상상해 보곤 한다. 숨이 막힌다. 미치도록 가난했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견딘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를 읽으며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표현을 싫어했다. 지독할 정도로 의지가 읽히지 않았기 때문인데, 모두가 애써 난국을 돌파하려 들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를 어찌 됐건 살았다. 누군가는 혹독한 투쟁을 감행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아예 전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책이 쓰여진 건 2012년이다. 얼마 아니 된 거 같은데 벌서 8년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잘 와 닿지가 않아 2012년 대통령을 검색했다. 지금은 구속수감중인 인물이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에 사람들은 화답했고,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보답(?)하려 들었다. 다양한 개발을 통해 경제 부흥을 꿈꿨던 시도는 신통치 않은 결과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2012년은 대선이 있던 해다. 사람들은 1년 남짓의 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선택이 언제나 현명하지는 못하다는 걸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진 못했다.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당시로서는 알지 못했다. 충분히 구조될 수 있었던 이들이 수장되는 사건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해선 안 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적어도 2012년에는 그와 같은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미 현실이 부정적이었으므로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었으며, 많은 일들을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게 됐다. 고로 이 책이 2012년 아닌 지금 쓰여졌더라면 다수의 내용이 달라지리라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그러나 찬찬히 내용을 훑다 보면 변화라 하는 것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확신이 서기도 한다. 여전히 누군가는 다른 이들보다 많은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든다. 그들이 보이는 뻔뻔함은 어찌 많이 배운 사람이 저렇게까지밖에 못하는가 의아함을 부르고는 한다. 단지 의구심만 든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로 인해 발생한 부조리는 책에 적힌 내용과 오늘날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여전히 많은 수의 비정규직이 세상에 존재한다. 아예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았기에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도 증가했다. 대학은 점점 더 높은 가격을 부르며 세를 과시 중이다. 필수가 되어버린지라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지불하고 나면 수업을 들을 여력이 닿지 않아 휴학을 밥먹듯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이들이 태반이다.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겐 서로가 희망이다. 남의 문제라며 외면하는 이들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저 하나 살기도 급급한 게 현실이다 보니 연대는 예전보다 더욱 어려워졌다. 파편화된 삶, 중천을 떠도는 자들은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훨씬 늘었다. 책에는 구제역과 살처분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동물의 감염병을 막기 위해 멀쩡한 동물의 생을 빼앗는 일이 방역의 이름으로 자행됐다. 다분히 이상한 방식이라 칭할 법도 한데, 지금도 방법에는 큰 차이가 없다. 현재 인류는 코로나19로 불리는 감염증과 싸우고 있는데, 구제역과 코로나19가 꼭 같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저자가 취한 관점은 여러모로 유효하게 느껴졌다. 개개인의 동선을 추적하고 공개하는 일련의 시스템은 충분히 효과적인데 반해 개인정보의 노출이라는 부작용 문제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하다. 방식은 다르지만 방역이 권력이자 정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비리가 비리인 줄도 모른 체 떵떵거리는 이들과 함께였다. 그 시절엔 정상이 아닌 것이 정상인양 군림했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정의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연결어가 필수였던 시대로부터 우린 얼마나 멀어졌는가. 또 한 번의 선택(선거)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대를 날카로이 읽어낼 줄 아는 능력은 필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