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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 시초가 중요했다. 동을 향해 쏜 화살은 동으로밖에 갈 수 없듯이 시초에 결정된 방향은 전통으로 굳어지기 십상이었다.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초전에 이기는 군대는 계속 이기는 습성이 생기고, 지는 군대는 계속 지는 습성이 생겨 여간해서는 승세로 돌아서기 어려웠다. 예로부터 명장으로 이름난 장수들이 특히 초전에 용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으로 두 나라 수군이 대결하는 이 전투 역시 예외일 수 없고, 장차 바다의 주도권을 잡고 못 잡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이순신은 꼼짝 않고 적과 우군의 움직임을 바라고 있었다...이 전투에서 이순신 휘하 전라도 수군은 적선 21척을 쳐부수고, 원균 휘하 경상도 수군은 5척, 도합 26척의 적선을 바다에 수장했고, 숱한 적병들을 살상하였다. 약 반수의 적 함정을 놓치기는 했으나 우리는 단 한 척, 단 한 명의 손실도 없는 압도적인 승리, 그것도 한나절의 번개 같은 전격전이었다. 우연한 승리가 아니었다. 이순신은 이길 조건을 구비해서 이겼고, 적은 질 조건을 구비해서 진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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