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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감시받고 감시하는 삶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미 그렇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 드물고, 인터넷의 발달로 사생활 침해는 극에 달아있다. 보안과 침해가 양날의 검이 되어있다. 기술의 발달을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문화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기술적인 방법으로 주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케팅이다. 좋은 상품을 홍보하고,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치우친 가치관을 주입하고, 선입견과 편견을 과반수의 생각이라고 사람들에게 생각하게 하려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상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하는 법을 배워아 한다. 자신의 생각을 지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숨은 가치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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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에서는 빅 부라더라는 인물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개 위해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텔레 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하여 어떠한 소리나 동작도 낱낱이 포착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다 사상경찰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개개인을 감시하며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렇게 지내다보니 그런 삶에 익숙해져 버린다 작품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도 하루 종일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한다 이런 상황은 조지 오웰이 작품을 썼을 당시에는 단지 미래에 대한 공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은행 백화점 관공서 등 곳곳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우리는 일거일동을 감시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얼마의 현금을 인출하는지 어떤 물건을 사는지 어떤 문서를 발급받는지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노출된다 심지어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의 초정밀 카메라로는 우리가 안방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찍을 수 있다 더불어 도청 장치를 통해 통화 내용이 새어나갈 수도 있고 휴대폰의 전원을 켜놓은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우리의 신상 정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작품이 출간되었던 1949년 당시보다도 정보 기술의 발달로 개개인의 사생활과 신상정보가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오늘날 오웰의 작품이 보내는 경고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조지 오웰은 1946년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해 1948년에 완성했다 조지 오웰은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1947년에 쓴 그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보면 작품을 통해 조지 오웰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가 더욱 뚜렷해진다
평화시대였다면 나는 화려한 책 혹은 단순한 묘사 위주의 책을 썼을 것이 틀림없고 나의 정치적 충성이 어느 쪽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았을 것이다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쓰여졌다 우리 시대처럼 소란한 세월을 살면서 이런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난센스이다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지금 몇 년째 나는 소설에 손대지 않고 있으나 곧 하나 쓸까 한다 물론 실패작일 것이고 모든 책은 실패작이지만 내가 쓰려는 책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언급했던 것처럼 오웰은 단순히 암울한 미래상을 예언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에세이를 통해서도 미루어 볼 수 있듯이 오웰의 1984는 명백히 정치적이다 그는 거대한 지배 체제 하에서 저항을 기도하지만 결국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파멸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세계가 어떤 방햐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면서 독자들의 비판적 의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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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고, 글을 쓰는가"라고 묻는다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재미로라는 말 밖에는 내세울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이 책을 다시 읽기 전까지는. 누구를 위해 이 일기를 쓰는가? 그는 별안간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세를 위해? 그는 잠시 일기장에 적힌 날짜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 원슨턴은 과연 자신은 무엇을 위해서 일기를 쓰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위해서? 아니면 가상의 시대를 위해서? 그의 앞에는 죽음이 아니라 무가 있을 뿐이다. 일기는 재로 변할 것이고, 그 자신은 어디론가 증발되어 버릴 것이다. 사상경찰만이 그의 일기장을 없애기 전에 한번 읽어 볼 것이다. 자신의 흔적도 사라지고 종이에 끼적거린 익명의 글마저 실물로 존재할 수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미래에 호소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 1984는 고전중의 고전이 되어 세계 100대 명작으로의 반열에 올랐다. 대부분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와 빅브라더가 현대 세계에 실재하게 된는 상황을 예언한 책 등 정치사회적인 면이 많이 강조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의 이유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외로움때문이다. 독서는 외롭다. 많은 책들을 골라서 읽지만 책읽기에 대한 나의 탐욕은 끊이 없다. 하지만 탐욕이 계속 될수록 갈증은 지속되고 외로움은 커져갔다. 도대체 이 책을 읽고 생겨난 지식 한두줄이 책읽기의 목적인가? 책읽기에서 생기는 외로움이 극에 달하자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리뷰라는 형식을 통해서 내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비록 그 목소리가 작고 작아 세상 많은 사람이 듣지는 못하지만, 가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책읽기와 글쓰기의 기쁨인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바로 그의 의식 속에 여차하면 완전히 지워져 버릴 그의 의식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만일 사람들의 당의 거짓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그리고 자유로와 지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것이다'라는 거창한 말처럼 책 한권이 지식이 나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 지배당하지 않게 책을 읽고 그 증거로 글을 쓰는 것이다. 비록 그 지식이 언젠가 나를 고문하게 될 '오브라이언'이 될 지라도 독서와 글쓰기에서 그 '오브라이언'을 찾게 되는 것이다. 둘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오간게 확실했다. 두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생각을 눈으로 전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당신의 편이오. 당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소. 또 당신이 뭘 경멸하고 증오하며 혐오하는지도 다 알고 말이오. 하지만 걱정마시오. 나는 당신편이니까!' 오늘도 책 한권을 통해 나의'오브라이언'을 만난다. 그 언젠가 오브라이언이 나를 고문할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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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는 조지오웰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예전에 읽었었는데 소장하고 싶어서 이번 기회에 구입하게 되었어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디스토피아의 양대산맥 소설 중 하나인 1984, 진짜 읽으면서 그런 미래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1984를 더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정말 잘 그려낸 소설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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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꼭 읽어봐야할 소설이다. 무서울 정도로 작금의 시대와 닮았다.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함께 읽기를 권한다. 『동물농장』과 함께 조지 오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
| 조지 오웰의 2번째 책이다. 얼마전 동물농장을 다시 읽고 1984도 읽고 싶어져 구매하게 되었다. 고전들이 그러하듯 읽어가는데 재미는 있지가 않다. 나이가 들어 좀더 많은걸 생각하게하고 느끼게 하는게 고전 소설인것 같다. 풍자와 비판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정도는 수긍하고 어느정도는 이해를 못하겠다. 사람마다의 이해력은 다르니까...그래서 책은 한번만 보아선 그 책을 읽었다고 할수 없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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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 시대 현실과 무척이나 닮은 꼴 중국이 각 나라의 부정선거에 개입하고 중국의 돈이 각 나라의 부패 정치인과 얽혀 더럽고 음침하게 세계 패권을 스멀스멀 장악하며 부동산 장악으로 그 나라를 망하게 하는 방식, 지금 현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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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이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던 1948년도의 앞뒤 숫자를 바꿔 1984년이라는 이름으로 불특정 미래 사회를 명명하였다. 그런데 미래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느닷없이 닥치는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이어지던 추세가 현재를 거치면서 연쇄적인 수순으로 미래를 낳기 때문이다. 미래란 현재의 연장이요, 현재라는 원인으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1948년 시점에 오웰은 조만간 닥칠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조짐이 이미 여러 군데에서 엿보였던 것이다. 정보를 장악하고 대중을 조작하려는 중앙집권적 전체주의 권력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던 때였으니.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정치적 메시지를 통해 대중을 계몽하고 선동하려는 데 있다고 고백하였다. [1984년]도 그런 차원에서 집필된 책이다. 정보를 독점한 권력이 조만간 대중을 세뇌시켜 저항할 의지를 잃게 만드려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종하며 폭력을 행사할 것이니 이를 직시하여 눈 부릅뜨고 이들의 행태를 감시하며 단단히 의식화하자고 일깨우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런데 문제는 조지 오웰이 그린 암울한 미래 사회의 모습이 오롯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과 개성 무시를 우습게 알고 집단적 통제를 통한 권위주의적 질서 유지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지배세력에 의해 조종당하는 디스토피아 말이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 미국이나 한국뿐 아니라 거의 지구촌 전역의 실상이라 할 것이다. [1984년]과 오늘날을 비기자면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특권 엘리트, 지배 계층이 빅 브라더이고 텔레스크린은 폐쇄회로나 정보 기기, 사상경찰은 국가 정보원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정보뿐 아니라 사상 같은 내면도 통제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여 이데올로기까지 순치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니 시대는 유토피아를 향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근대 사회로 퇴행한 셈이다. 인간의 정신 세계의 폭과 깊이, 삶의 질 수준은 더욱 왜소하고 초라하게 악화되었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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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체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이자, 권력이 인간의 자유와 진실을 어떻게 통제하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 현대 고전이다. 단순히 독재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를 통제하면 사고를 통제할 수 있고, 진실을 독점하면 현실마저 바꿀 수 있다는 무서운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읽는 내내 답답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자유와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
| 조지 오웰의 1984에는절대적인 권력자가 통제하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등장합니다.권력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날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시설 뿐아니라 개인의 사생활까지 통제합니다.이 책에 과거에 대한 날조를 끊임없이 진행하는 빅브라더를 등장시킨 것은 놀라움을 자아낸다.그 당시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수 있었는지...그들의 뉴스는 항상 수정되고 의견 나눌 곳이 없기에 사상도 혁명도 커지지 못합니다.앞으로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