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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로맨스 소설일 것이라 오판했다. 결국엔 남편의 진정한 사랑에 보답하듯 뒤늦은 행복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서머싯 몸'이 보여준 키티의 시간은 비정상적인듯 현실적이다. 인물 그 자체를, 그 감정을, 더불어 상황마저도, 모든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준다. 그 무엇보다 섬세한 영화책을 보는 듯 했다. 다른 후기를 통해 이 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페인티드 베일'. 책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길 바라며 조만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 --------------- 나이에 이끌리듯 하게 된 결혼. --------------- 원장 수녀의 대사는 허를 찌르듯 날카로우면서 깨달음을 준다. 자신의 안정을 위해 봉사를 선택한 키티를 향해 내뱉은
현실을 당당하게 마주하기 무서워 대신할 것을 찾아 괜히 주변을 돌아보는 내 모습이 그려지며 키티와 함께 움찔 했다. 원장 수녀의 숭고한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은 키티를 향해 내뱉은
항상 마음 속에 안고 있으면서도 결국엔 행동으로 옮기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나를 바라보게 되며 또 다시 키티와 함께 경외감을 느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나 다양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싶게 잔잔한듯 역동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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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였다. 한 여자를 만나 자신의 모든 걸 걸었던 한 남자와 엄마의 결혼에 대한 닦달과 여동생의 결혼으로 인해 마지 못해 결혼을 선택했던 여자의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끝이 났다. 그 파국을 통해 사랑은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곱씹어보고 실패한 사랑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얻으면 좋으련만 키티의 참을 수 없었던 욕망과 그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통해 인간 내면에 감춰졌던 충동적이면서 동물적인 본능들이 내 마음 속에도 있다는 걸 알게 했고, 그 찜찜한 사실들이 나를 마구 괴롭혔다. 서머싯 몸의 소설 중에서 <인생의 베일>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원작을 토대로 한 <페인티트 베일>이 개봉하면서 소설 또한 많은 분들이 사랑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고, 그 재미 속에서 사랑이란 무엇이고, 용서란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지만 사랑은 아직도 어렵고 힘든 마음이자 복잡미묘한 감정임에는 분명하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키티, 월터, 찰스다. 키티는 월터와 결혼을 했지만 사랑은 찰스와 나누는 불륜녀로 나온다. 월터는 키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음에도 키티와 결혼을 하고, 키티에게 한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하지만 키티와 찰스가 몰래 나누는 사랑을 엿본 후 키티에 대한 마음은 사랑에서 증오로 변하고 급기야 죽으면서까지 키티를 원망하면서 그의 사랑은 막을 내린다. 월터가 죽으면서 남겼던 마지막 대사인 “죽은 건 개였어.”(259쪽)란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월터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키티의 마음을 알아버린 월터의 마음은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을 것이고, 이런 비참함과 함께 키티에 대한 사랑, 배신, 증오가 한데 모여 월터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월터에게 있어 죽음만이 자신의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을 감출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외과의 말이. 그가 실수로 감염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본문 269쪽 中) 월터가 죽고 난 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키티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 키티는 월터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월터가 죽고 난 후 그녀가 후회할 짓을 다시금 범한 것에 대해서는 그녀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발정난 한 마리의 미친개였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핑계를 댄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용서받지 못할 짓을 다시 한번 저질렀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을 통해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서머싯 몸의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내부의 알 수 없는 충동과 본능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적으로 저지르고, 그 실수를 통해 살아가는 우리들이야말로 인간의 굴레이자 인생의 베일인 것이다. 본인이 사랑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들어 올리지 말았어야 하는 오색의 베일을 들어버린 한 남자와 그 베일 뒤에 숨어서 사랑을 갈구했던 한 여자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듯하지만 아직도 내게 있어 사랑은 어렵고, 인생은 쓰디쓴 소주 같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들은 인생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는지 궁금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많은 분들이 인생의 베일 속에는 희망과 평화, 사랑과 행복 같은 달콤한 그 무엇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 베일을 걷어 냈을 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겪는 어려움(슬픔, 고통, 이별, 절망)들만이 있을테니. 도(道),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본문 235쪽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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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의 결혼에 초조함을 느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도망치듯 결혼한 키티 그러던 어느 날 남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유부남 찰스와 첫눈에 반하게 되어 불륜이 시작된다. 하지만 남편 월터에게 불륜이 들키자 찰스는 키티를 버리고 상처받은 키티는 월터와 함께 콜레라가 창궐한 곳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키티는 자연의 위대함과 수녀들의 숭고한 삶의 모습에 자신의 하찮음과 찰스를 향한 사랑이 무가치한 것을 깨닫고 상처를 치유하고 크게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눈앞에 극명하게 공존하는 그곳에서 스스로 정신적으로 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월터를 끝까지 사랑할 수 없던 키티 키티와 반대로 월터는 키티의 배신으로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키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월터 또한 키티의 외적 아름다움에 반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키티와 결혼을 원했던 것인데.. 그런 키티를 사랑하는 자신을 경멸하고 자신과 키티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메이탄푸를 향했고 점점 더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그러다 아빠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키티의 임신에 큰 충격을 받고 끝까지 자신과 키티를 용서하지 않은 채 자살을 선택한 월터 월터가 죽고 키티는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짐 정리를 위해 홍콩에 들르는데 그곳에서 찰스와 다시 한번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찰스와 맺은 사랑이 무가치하다고 깨닫고 찰스를 혐오하고 경멸했지만 욕망 앞에서 키티는 무너진다. 자신은 성장했다고 욕망에서 독립한 여성이 될 것이라 믿었는데 또다시 잘못을 저지른 자신이 더럽고 절망스럽고 혼란하기만 하다. 하지만 키티는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늙고 지친 아버지에게 화해와 용서를 구함으로써 다시 한번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속된 삶을 반성하고 스스로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가도록, 스스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이 되기를 깊이 다짐하며 키티는 비로소 성장한 어른이 될 준비를 마친다. 나도 키티처럼 많은 잘못과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해왔다. 인간이기에 앞으로도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진정으로 성장한 인간이 되어 주체적인 길을 나아가고 싶다고 다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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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책 정말 재밌다.
그저 ‘재미있다’라는 말밖에 더 형언할 표현이 떠오르지 않음을 자책하며 독서 모임에 이 책을 추천해 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고전소설은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인 간극이 너무 커 공감도와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잘 읽지 않았었다. 헌데 인생의 베일은 무려 100년 전에 쓴 소설임에도 이질감이 전혀 없이 다가왔는데, 소설의 배경이 중국이라서 익숙했던 것과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한 것 같지 않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해 여성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공감하고, 사랑과 시련을 겪으며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름답고 명랑한 키티는 허영심 많은 엄마의 기대 속에 사교계에 등장하지만 결국 나이에 쫓겨 도피하듯 결혼한다. 지루한 결혼생활을 보내던 그녀는 매력적인 유부남 찰스 타운센드로 인해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그러다 키티의 불륜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고, 찰스는 키티를 배신하며 키티의 정신세계는 산산조각이 난다. 아내의 배신에 깊은 상처를 받은 월터는 키티를 협박하여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 메이탄푸로 데려간다.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키티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사이에서, 월터는 매일 사투를 벌인다. 키티는 콜레라로 사방에 깔린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다양한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체험하고 편협했던 시각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광활한 자연 앞에서 용서라는 실마리를 찾음으로서 자신을 옭아맸던 잘못된 사랑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 사람들은 왜 아름다움에 쉽게 매료되는 것일까 월터는 분별력이 있고 유능하고 학식이 높았으며 배려가 깊은, 학식과 인격을 두루 갖춘 남자다. 그런 그는 사교계에서 만난 키티의 아름다움에 반해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키티에게 있어 결혼이 도피처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와 결혼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는 진심을 다해 그녀를 아껴 주고 헌신했다. 그러다 아내의 부정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콜레라가 창궐하는 곳에서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장면은 가슴을 쓰리게 했으며, “죽은 건 개였다.” 월터의 마지막 말에 소름이 돋았다.
한편 키티는 유부남 찰스 타운센드를 사랑하게 되는데, 파랗고 다정한 눈빛,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하는데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입담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키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그를 사랑하지만, 찰스의 배신으로 치를 떨며 그를 경멸하며 무가치하다고 결론짓지만 또다시 그의 품에서 육체의 희열에 굴복하고 본능 앞에 무릎을 꿇는다.
▶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에 대한 저자의 탄식과 미담 키티가 정신적인 성장을 한 곳은 호기심에서 갔던 수녀원 방문에서였다. 수녀들의 헌신적인 삶에 감동받은 그녀는 자신이 무가치함에 탄식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작가는 1925년, 중국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베일>을 발표했다. 그래서 인지 소설에는 그가 중국에서 본 열녀문이 등장하는데, 이 열녀문이 전하는 메시지나 원장 수녀님의 왕가 혈통 가문에 대한이 얘기는 여성의 복종이 덕망 있는 가문에의 미덕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콜레라로 죽을 수도 있는 곳으로 온 그녀를 의아해 하는 워딩턴의 질문에 “아내의 자리는 남편의 옆자리라는 통념을 따라야 했다.”는 말이나 “선생님이 집에 돌아갈 때면 부인의 사랑을 부인의 어여쁜 얼굴이 거기 있다는 게 커다란 위안이 될 테니까요.”, “그가 귀가했을 때 그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는 것보다 더 전념해야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라는 원장 수녀님의 말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않은 여성을 질책하는 듯 비쳐졌다.
이 소설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부분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소설 초반에 보여줬던 아버지의 모습은 현시대의 아버지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로 가족들의 사랑은 외면 받지만 아버지라는 책임감에 그들을 사랑해야하는 존재인 아버지. 사랑의 상처를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성장한 키티는 늙고 지친 아버지를 보며 지금까지 받기만 했던 사랑을 되갚고 싶다고 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땐 여성의 순종과 헌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가 싶었었다. 그러나 결말은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의 모습을 고발하면서 그러한 인간의 어리석음까지 사랑할 때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생의 베일이 쓰여 진 1920년대는 자주적인 여성이 흔하지 않았을 때다. 작가는 여성이 남성의 일부가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삶을 살며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에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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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내용으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는 소설이었다. 등장인물 중 월터에게 빠져들어 멋있었다가 아쉬웠다가 마음이 아팠다가... 소설이 재미있어 영화까지 찾아보았지만 등장인물이나 줄거리 등 소설이 주는 매력에는 훨씬 못 미쳤다. 다른 분들께는 영화보다는 소설을 먼저 읽으시길 추천한다. 이 소설을 통해 서머싯몸의 다른 소설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달과 6펜스도 구입했는데 곧 읽어야겠다. 인생의 베일을 통해 고전문학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미혼여성에게 추천한다. 결혼 전에 나의 배우자는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면 좋을까?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이 있다. |
![]() 월터와 키티 키티는 활달한 여자였다. 그녀는 하루 종일 재잘거릴 수도 있었고 걸핏하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침묵은 그녀를 당혹스럽게 했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무심코 일상적으로 던지는 말에 잘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발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사실 꼭 대답할 필요가 없는 말들이긴 했지만 대답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p. 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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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에서'의 작가 서머싯 몸의 장편소설이다. 그래서 인생의 베일이라는 생소한 작품도 선뜻 선택했다. 그 시대의 여성들이 그렇듯이 주인공인 키티도 엄마의 성화에 못이기고 나이에 쫓겨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유부남 찰스 타운센드와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성급한 결혼, 불륜, 배신, 그리고 남편의 보복까지 정말 읽기 힘든 단어들이 총 망라한다. 이렇게 힘든 삶의 굴레를 통해 진정한 그녀의 삶에 대한 고찰이 시작된다. 그녀는 어떤 성장을 보여줄 것인가. 남자에게 종속된 여자의 삶... 참으로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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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너무나 절절한 애정 스토리로 보고 가슴에 담아두고 명작 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내용은 다르다고 해서 피했는데, 결국 호기심에 구입하여 읽었고, 후회하지않는다. 한줄평에서 썼던 것처럼 키티는 오직 자신에게 집중한다. 결혼이 늦어지게 되는것이 두려워 대충 구색이 맞는 월터와 결혼하고, 타운샌드에 매력에 빠져 바람을 피웠으며, 그의 배신에 휘청여 될되로 되라는 식으로 포기한듯 죽음의 기운이 도사리는 곳으로 몸을 내맡기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휘둘리던 사사로운 감정과 대조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절대적인 선의에 인생을 바치는 숭고한 수녀들을 보며 자신도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재조정하고 일어서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하지만 키티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었던 월터는 상실감을 이겨내지 못하고,키티에게 서슬퍼런 분노를 쏟아내다가 키티가 임신하자 좌절감을 느끼며 자살을 해버리며, 결국 죽은건 개였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사람들은 불의라 보이는 소설을 읽을때 결론에 가선 모든것이 잘 풀리기를 기도한다. 나는 영화속에서 그 에드워드 노튼의 절절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기에 결말이 다르다는 이 소설은 마음이 아프겠다 싶으면서 읽었으나, 뭐 다른 의미로 아주 좋았다. 결국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받는 상처따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돌본 키티의 냉렬한 성장기. 상처를 회복한 자와 회복하지 못한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키티는 아주 기특하게도 자기 회생을 한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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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보게된 영화 '페인티드 베일'을보고 잔잔하지만 큰 감명을 받아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해서 원작도 궁금했고 읽어보고싶어졌다. 책을읽으면서 영화장면들이 생생히 떠오를정도로 원작에 충실히 영화화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역시 영화에 다 담지 못한 풍부함이 소설속에서 더 느껴졌다. 영화를 통해 이미 아는 내용이지만 단숨에 다 읽어버릴 정도로 흥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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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애인, 오직 애인 생각밖에 없었다.(23쪽)’ 도피하듯이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낯선 곳’으로 오게 된 키티는 타운센드에게 급속도로 빠져들고 만다. 비명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의 두려움을 맞설 만한 사랑, 오히려 남편과의 결별을 바랄 정도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인 사랑이 곧 찰스 타운센드라 확신한다. 하지만 가려진 베일 너머를 직관한 월터는 키티와 함께 또 한 번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월터 페인은 ‘매질을 당하는 개처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청하는 듯한 무언가가(50쪽)’ 키티의 신경을 거스르는 듯한 불편함을 넘어서서 결국 결혼에 성공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다 마지막에는 ‘죽은 건 개였어.(259쪽)’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서도 가장 아픈 캐릭터는 바로 월터일 것이다. 남편과 관계된 일이라면 ‘아무것도’ 원치 않았던 키티, 그녀는 남편의 침묵과 타운센드의 깊고 풍부한 목소리를, 또는 그밖의 많은 것들을 비교하고 결혼이라는 형식이 사랑없는 관계임을 공고히한다. 이는 메이탄푸라는 죽음의 도시에서 진정어린 존경을 받는 또 다른 남편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행복이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음에 절망하고 결국은 죽음을 선택한 월터. 화해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일부러 지옥을 선택한 것은 자존심일까 자만일까 어리석음일까. ‘나는 당신에 대한 환상이 없어.’로 시작해서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를 반복하는 월터의 선언은 애초에 베일 따위 없이 현실을 직시했지만 이는 오히려 엄격하게 스스로를 정죄하는 무기가 된다.
‘월터가 죽는다. 그녀가 딱 한번 품었던 생각에만 그쳤던 그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258쪽)’ 단 한 번 내뱉은 말이 부지불식중에 현실이 되는 비극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인간실격에서 요조는 ‘여자가 없는 곳으로 가겠다’는, 스스로도 ‘바보같은 헛소리’라 인정한 말이 정말이지 기묘하게 실현되었음을 마주한다.(인간실격,131쪽) 그 말이 요조를 이미 빠진 구덩이에서 더 깊은 함정으로 데려간다. 말이 아닌 생각에 머물렀을 뿐이기에 키티에게는 더 가차없게 느껴진다.
자기감정에 매몰되어있던 키티가 새로운 환경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아가 천천히 자신의 시야를 가리던 베일을 제거해나가는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남편의 고통이 무엇때문인지 조금씩 깨닫고 인간적으로 안타까와하고 그의 영혼의 평안을 위해 이별하는 마지막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한다. 키티의 행동에서 빛나는 용기를 볼 수 있었다. 비록 찰스와의 재회에서 이 용기가 단번에 스스로를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깨어있고자 부단히 의식하고 노력한다.
그런 과정이 자신의 내면아이뿐 아니라 아버지와 화해하고 이전과는 다른 관계, 비틀림없는 건강한 회복을 희망하게 한다.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퇴로를 끊어버린 남편과 불완전성에 절망할지라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선택하는 키티는 그렇게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자신을 허용하고 용서하는 일이 쉽지 않을지라도 타인과 화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임은 확인하게 된다.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도 풍성한 울림을 주고 수 많은 문장에 줄을 치고 간직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영화로도 만나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골드스미스의 시 ‘미친 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전문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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