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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새니얼 호손'의 또 다른 명작. 이 작품은 화려한 문체를 자랑한다. 그래서 그냥 삼키듯이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되새김질을 하며 읽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초자연적인 요소와 사실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로맨스 형태. 시종일관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공포스럽기 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지나간 세대의 행동이 아주 먼 훗날에 좋은 결실이나 나쁜 결실을 맺을 수도 있는 씨앗이라는, 그리고 사람들이 편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한때 일시적으로 수확한 씨앗들과 함께 이후 계속해서 자라날 열매를 심고 그것이 후손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진실로부터 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p12.13 당시 가장 현명하고 냉정하며 성스러운 사람들이었던 성직자와 판사, 행정가 들이 단두대의 가장 가까운 주변을 둘러싸고 서서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보면서 가장 크게 박수치며 환호해 놓고는, 자신들이 끔찍한 잘못을 했다고 고백하는 일에는 더뎠다.---p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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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이라는 지붕의 형태를 알게 되었다는 게 참 좋다. 그림으로도 사진으로도 근사해 보이는 구조다. 이렇게 생긴 지붕의 비교적 거대한 건물에서 있었던 역사, 인물들의 삶과 죽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인연 혹은 악연. 그래서 일곱 박공의 집을 주인공의 하나라고 하는 뜻도 알겠다. 세상에는 이런 식의 주인공과 같은 건물들이 더러 있으니까.
작가 이름이 낯익고,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끼친 바가 컸다는 게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였다. 글쎄, 환상 혹은 추리 기법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모르겠고(내 독서력의 부족 탓),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묘사만큼은 확실히 닮아 있다. 두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메리카 땅. 유럽에서 찾아간 사람들이 빼앗다시피 점령한 땅. 먼저 점령하고 나중에 점령하고 그러면서 죽고 죽이고. 오랜 시간이 저마다의 원한이 겹치는 채로 흘러 갔던 듯하다. 누군가는 살아남았고 살아서 영광을 되찾거나 새로 얻었고. 미국이라는 나라, 역사를 제대로 더 알면 소설도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에 비해 그들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바람이 영 일어나지 않으니 이건 이것대로 섭섭할 일이다.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의 기본 줄기는 복잡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단순하고 분명하다. 작가의 표현만 지극히 장황할 따름이다. 일곱 박공의 집, 이 집의 구석구석을 작가를 따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그것도 영 유쾌하지 않게. 그러니 피비와 홀그레이브의 만남마저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다. 그게 또 낭만의 사랑이라고 해도.
문장 하나하나를 읽는 것,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데에 인내심과 주의력이 필요하다. 나는 여러 번 뭉개지는 경험을 했다. 다 읽고 나니 대견해진 기분까지 절로 들었고.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번역. 이게 읽는 데에 가장 큰 방해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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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를 인상깊게 읽었다. 나이아연대기 원작자라고 해서 더욱 인상깊었다. 《일곱 박공의 집》은 루이스의 추천도서이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책을 잘 추천하지 않는 편이지만, 일곱 박공의 집만큼은 사서 읽으셔도 된다고 안심하고 권할 수 있어요.'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새니얼 호손 소설이란 데서 《일곱 박공...》이 마치 나를 부르는 듯했다. 박공...gable, 맞배 지붕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삼각형의 벽면(네이버 어학사전). 박공이라는 단어가 낯설기는 했지만, 알고보니 뾰족 지붕 집인데, 일곱 박공이니, 뾰족 지붕이 일곱개나 되는 커다란 저택이다. 작품에서 일곱 박공의 집은, 인물들 못지 않게, 인격을 갖추고 기억을 간직하고 의지와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 묘사된다. 그렇게 느낄 만큼, 묘사가 정교하고, 뭐랄까, 흡인력이 있달까. 일곱 박공의 집이 지어진 배경에서부터 불운하고 단명한 삶을 살았던 후손들, 후손들의 후손들인 남매지간 노인 둘과 조카딸, 그리고 일곱 박공 저택에 원한을 가진 인물의 후손의 후손까지, 200년에 걸친 조상들과 현손들의 이야기다. 귀족과 평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땅에 금을 그으면 내 땅이 되는 시대, 재산을 지키려다 자식을 잃는 부모, 막대한 재산을 두고도 비명횡사, 막대한 부모의 재산 앞에서 요절한 아들, ...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20) 역사는 길었으되 현손들이 조상과 조상의 유산(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에서 벗어나게 된 과정은 수개월 안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식의 동화스럽고 교훈적인 결말이 다소 아쉬운 감이다. 그러면서도 불행했던 남매 노인 둘과 빛나는 햇살같은 조카딸, 대척점에 있던 적대자의 후손이 화해하고 결혼에 이른다는, 단순하고 간략한 스토리인데,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장면들의 긴박감이 곳곳에 스며있고, 긴 영화끝에 안심과 안도같은 위안이기도 했다. 누가 말하고 있을까... 특히 핀천 판사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시체를 관찰하면서, 관찰자의 조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독자에게 관찰자의 생각을 전해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책 앞 부분에서부터 마칠 때까지, 누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내내 궁금했다. 200년 된 느릅나무와 일곱 박공의 저택을 보러 가고 싶단 생각까지(끝내 화자話者가 밝혀지지 않음...아마 작가?). 궁금해서, 더욱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단 묘미가 있다. 나니아연대기의 저자, 루이스가 추천한 책이고,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헌사를 정도였다고 하니... 단숨에 독파한, 오랜만에 만난 고전의 즐거움이었다. |
| 나다니엘 호손 작가의 '일곱 박공의 집' 후기입니다. 뉴잉글랜드의 오랜 저택과 그것을 물려받은 가문에 얽힌 이야기로 탐욕에 대한 우화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읽으면서 특히 감탄했던 것은 만연체로 빽뺵하게 들어찬 모양의 문단이지만 우리말로 쉽게 술술 읽히는 번역가분의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편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