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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작가의 <유혹> 1부를 작년 10월에 읽었었다. 처음 3권을 읽을 때까지 이 소설이 2부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3권을 덮으며 허탈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권지예 님의 <유혹> 4, 5권을 단 하룻밤에 읽어버렸다. 1부에서는 한국판 '섹스 인더 시티'를 표방하며, 주인공 오유미의 사랑(?)과 성공을 아주 속도감 있게 다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유미의 몸을 무기로 한 현란한 체위와 남자 후리기 후일담 정도가 되겠다.
약간의 실망과 또 약간의 므훗함을 두루 느끼며 읽었던 <유혹>이 3권을 끝으로 1부가 끝나버렸다. 전 3권의 소설인 줄 알았다가 된통 당한 셈인데, 2부를 읽게 되기까지 장장 9개월 이상을 기다린 셈이다. 또 정확히는 기다렸다기보다 2부가 출간된 걸 알고 알음알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라고 폄하하고 싶지 않다. 그런 평가를 받을 만큼 권지예 작가의 작품이 수준 이하는 아니기 때문에. 다만 21세기 새로운 여성상, 즉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한 아마조네스와도 같은 능력자라고 평하기엔 다소간 미흡하지 않을까? 1부에서는 성공을 위해 기자, 대기업 오너, 친구의 남편 등 수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하며, 오로지 '성공'을 향한 하나의 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객체화 시킨다.
2부에서는 공간만 프랑스 파리로 옮겨갔을 뿐. 전개 양상은 거의 비슷하다. 신랄했던 섹스신의 묘사가 다소간 줄었다. 내용상 미스테리를 표방한 채, 오유미 자신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 친구 지완의 남편인 인규와 바람이 났고, 당시 애인이었던 유진을 살해한 사건, 그리고 죽은 줄만 알았던 유진이 불구가 된 채 살고 있는 등의 다양한 사건이 줄을 잇는다.
그런 속에서도 오유미의 성공(?)은 온갖 우연과 행운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녀 특유의 자유분방한 섹스 어필은 과거 유진과 함께 한 파리 초기 유학시절부터, 대기업 오너의 강압(?)에 의해 도피처로 옮겨온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과연 그녀의 능력은 무엇일까? 아무리 연상하지 않으려 해도, '오유미=신정아'가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큐레이터라는 직업도 동일하고, 언론에 의해 재가공된 신정아의 모습(가령 경향에서 신정아 누드사진 공개로 파문을 일으켰던 일)이 마치 오유미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21세기 새로운 여성으로서의 능력(일과 사랑) 중에서 일과 관련된 특유의 감각 및 이해도는 '그냥 뛰어나다' 정도로만 언급된다. 그런 능력을 갖게 된 성장 배경이나 습득 과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몰락한 가정에서 자라 호스티스를 전전하던 철부지 20대 여성이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고, 한국의 미술계를 좌지우지할 만한 큐레이터로 성장한다는 설정 자체도 무리가 따른다. 몸 바쳐 남자 후리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한정한다면, 단연 오유미의 능력은 발군이다. 어떤 남자든(게이 제외)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날만큼 뛰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오유미 자신도 그걸 과신하며 지금껏 살아오기도 했던 터고.
속도감 있게 4, 5권을 읽었다. 몰입을 과하게(?) 했던 터라 하루도 안걸려 2권을 다 읽었다. 미궁에 빠졌던 오유미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이 밝혀지고, 미모의 능력자 오유미는 나이 마흔에 손녀딸(그녀의 딸 역시 오유미처럼 미혼모다)을 함께 돌보며, 봉사활동을 하는 걸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그 자리에 자신과 한 번 이상씩은 몸을 섞었던 모든 남자들을 병풍처럼 줄 세운 채로.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엄마 몰래 플레이보이 등의 빨간 잡지를 볼 때의 두근거림이랄까? 욕망에 충실했던 한 여자의 삶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지루할 틈이 없었지만, 읽고 난 후에 드는 허탈감은 달래지지 않는다. 그리고 '권지예'라는 쉰 살을 넘긴(뭐 나이는 중요하지 않지만), 나름의 작품관을 꾸준하게 어필해온 작가가 써내려간 5,000매의 분량이 다소간 아쉽다. 치열했으나, 그 치열함이 전해지지 않는 답답함. 시종일관 '신정아'를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도, 권지예 작가가 구현하고자 했던 21세기 새로운 여성상 혹은 독특한 칙릿과는 다소간 거리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럼에도 만약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다면, 적어도 <채식주의자> 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