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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니게이트를 아시나요? 예전에는 꽤나 북적거리던 탄광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텅빈 갱도와 황무지가 쓸쓸하게 펼쳐져 있는 곳이랍니다. 그곳의 황량한 황무지에서 저는 키트 왓슨과 존 애스큐라는 두 소년을 만났습니다. 황무지라 하면 허허벌판이나 붉은 흙먼지가 날리는 곳이 연상되는데 제목이 왜 ‘푸른 황무지’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환상적인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슬슬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토니게이트에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아직 친구도 없고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한 키트 왓슨에게 어느날 늘 고민이 있는 듯 어두운 표정의 애스큐가 다가와 말을 겁니다. 탄광을 두려워하면서도 갱도의 어둠에 끌려 자꾸만 들어가고 싶었다던 할아버지처럼, 어딘가 자신과 닮은 듯한 애스큐에게 끌리는 키트는 두려워하면서도 어느덧 데스게임의 칼끝이 자신을 가리키길 바라게 되지요. 학교에선 선생님에게 꼴통에 저능아, 학교의 수치라는 구박을 듣고 집에 가면 주정뱅이 아버지의 등살에 시달리는 애스큐. 키트에게 어릴 적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상황자체가 어둠이라고 말하는 애스큐의 슬픈 모습에, 예전에 탄광광부들이 보았던 갱도에 묻혀버렸던 소년 비다니, 만져주고 위로해주고 환한 곳으로 데려가주고 싶은 아이 비다니가 곧 존 애스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있던 암모나이트처럼 자신도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구해내지길 바라는 애스큐. 애스큐가 터뜨리는 분노의 말에는 서글픔이 묻어나고, 키트는 그의 두 눈 가득한 어둠속에서도 매달리고 싶어하는 간절한 눈빛을 알아채지요.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애스큐, 늘 소외당하고 외롭던 애스큐, 죽음과 절망에만 집착하는 애스큐. 애스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친구라며, 애스큐를 죽음이 아닌 삶으로 어둠이 아닌 빛으로 끌어주고자 하는 키트의 모습에 왠지 가슴이 찡해집니다. 과연 애스큐에게 키트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차마 말로 꺼내 할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황무지가 푸르러지듯이 애스큐의 눈에 드디어 떠오른 환한 빛과 환상적인 체험이 모두에게 가져온 따스함. 꼭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이 절묘합니다. 한편의 마술같은 소설을 보며 지금 살아가는 순간자체가 모두 마술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애스큐의 마음속을 녹여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키트가 부린 마술이 아닐까 하는. 탄광속으로 들어가 그 세월들을 1분에 백만년씩 거슬러 내려갈 수 있는 광부들은 시간여행자라는 할아버지의 말이나, 어느날 정신을 놓은 할아버지의 상태는 빛도 따뜻함도 돌아오지 않고 무엇도 자랄 수 없는 겨울뿐인 세상같은 거라는 식의 시적인 표현들도 참으로 멋집니다.
마지막이 되고 나니 결국 데스게임은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애들이 한 단계 성숙해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두운 동굴을 헤치고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은 마음속의 어둠까지 벗어버리고 더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눈을 가늘게 뜨면 과거에 황무지에 살았던 사람들을 보게 된다는 아이들과, 키트가 친구들과 강을 따라 걸으며 하는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다. 스토니게이트의 그들에게 찾아온 마음의 봄은 저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워줍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소중히 간직될 그들의 봄처럼, 저의 봄들도 늘 푸르디 푸르렀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