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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게에 불행할 권리는 없습니다를 읽고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고, 오늘 선물한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를 읽으시면 좋겠어요” 북 카페 선생님이 책을 선물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한 권은 읽었고, 한 권은 있으니 중간에 있는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도서관에서 없으면 말지 하는 심정으로 검색을 했는데 책이 대여 가능을 나와서 빌려 왔다. 표지가 독일어로 되어 있어서 찾지 못하고 사서 분의 도움을 받아 빌려 왔다. 존엄을 말하기에는 분량이 적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프롤로그를 읽는다.
저자는 독일의 신경생물학자이다. 불안과 우울, 동기부여 등에 관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전한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마치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존엄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존엄이라는 나침반을 갖기 위해 책을 펼친다.
그렇다면 개인의 신념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실패’다. 실패보다 더 효과적이고, 한 개인이 형성한 이상과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다. 뇌과학적으로 인간은 자신이 형성한 신념을 잘 바꾸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넘어설 수 있는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가 실패이다. 그것도 그냥 실패가 아니라 완전한 실패.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하고 완전한 실패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신념을 수정할 생각이라도 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타인을 만남으로서 그 사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영향받는 것. 그것이 개인이 형성한 이상과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만남으로 다가갔는가? 수단이 되는 관계를 고상하게 감추고 사람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만났던 만남도 생각해 보았다. 좋았던 만남도, 가벼운 만남도,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픈 만남도, 또 나를 계속 성장시키는 만남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온 만남에서 더 이상 지우고 싶은 관계를 만들지 않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비록 아주 미약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며 배움의 눈으로 보기 위해 애쓰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전처럼 거슬리는 만남이 줄고 있다. 또한 나를 더 나아가게 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게 하는 만남으로 인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만남을 제공하는 멋진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이 풍선처럼 마음을 채운다.
태도도 자동으로 나타나는 뇌의 반응 중 하나다, 탐험을 좋아하는 것, 개방적인 것, 창의적 활동을 좋아하는 것도 뇌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행동 패턴이다. 요즘 들어 무심코 나오는 행동들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이제는 스스로 거슬리고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 본다. 태도와 뇌의 에너지 소비 최소화를 하기 위한 일관성 유지에 대해 읽으면서 자동으로 나오는 태도에 존중을, 배려를 담고 있는지 돌아본다. 자동적으로 나오는 태도가 나의 본래의 모습이므로. 꾸미거나 생각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나오는 태도에서 존중이 묻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존엄을 인지한 사람으로 더 이상 존엄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고 싶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자기 존엄성을 인식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재산이나 지위, 명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존엄함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 인간이 인간을 위해 책임을 지는 태도의 문제다. 얼마나 존엄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존엄성을 인식하는 능력은 재산이나 지위, 명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존엄하지 않는 저명한 학자의 태도가 거슬리고, 재산이 많은 부자의 말투가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 인간이 인간을 위해 책임을 지는 태도.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대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는가? 얄팍한 동정심이나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앞서 읽은 심리학 책에서의 내용이 이 내용과 연결되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그럼 어떻게 다른 사람을 대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존엄을 가진 인간의 모습인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는 있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존중하며 살아가겠다고. 지금의 내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한 선택들이 나타난 것이다. 많은 선택의 순간에 무엇을 위해, 혹은 무엇을 우선에 두고 선택 해왔는지가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생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는 있다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결정들을 해야 할까? 저자는 책에서 아주 쉬운 시도들을 쓰고 있다. 길을 가다가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할 수도 있고,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에 도전할 것을 격려할 수 있다고. 식료품도 조금 더 신중히 선택해서 고르고(환경을 위해),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면서 살아 있음을 느껴보라고 한다. 다시 움직이고, 노래하고, 춤추고, 산책하고... 매 순간 어렵지 않은 선택의 순간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며 존엄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한다. 실천 방법들이 구체적이고 어렵지 않아 도전 의욕이 생기는 문장이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의 질문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음에 놀랐고, 자동적으로 나오는 태도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중에는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존경심마저 느끼게 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뭐지? 도대체 무엇이 우리와 다르기에 이런 학자를 배출하고, 철학자들이 넘쳐나고, 모두가 반대했던 전범국가에서 함께 하는 동맹국이 된 걸까? 그 바탕에 존엄을 인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겠지. 존엄을 인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엄을 일깨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우선적으로 존엄을 인지하고 주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존엄의 태도를 선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존엄을 깨닫고 존엄한 선택들을 이어갈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사람과의 만남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것처럼 이 책과의 만남이 읽는 사람들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줄 것이다. 뇌에 대해서, 사소한 실천 팁을 알게 되는 것은 보너스의 기쁨을 줄 것이다.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엄함 속에 살아가는 것. 방향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향해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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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독일 저자 책이다. 이전 '지적인 낙관주의자'에 이은. 그런데, 실망이 너무 크다. 두 책의 공통점이 있다. 우선, 제목이 그럴싸하다(출판사의 마케팅 승리다) 앞선 '지적인 낙관주의자' 리뷰에서 얘기했듯이 굳이 지적(知的)이라 덧붙일 필요가 없는데 그 용어를 써서 좀 거슬렸던 부분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사는데 존엄하게 살란다. 두번재, 결국 핵심인데 내용이 빈약하다.그럴싸한 제목에 비해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새로운 유형의 빈약함이다. 있어보이는 화두를 던지고 선문답식으로 풀어가는데 그냥 자기 얘기만 줄기차게 하고 있다. 빈약함으로 인해 다 읽었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가끔 한국이나 일본저자 책들의 깊이 없음을 얘기하곤 하는데, 이건 또다른 형태의 실망감이다. (물론, 개인 취향의 문제일 수는 있다.각자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이 다를테니까) 아뭏든, 푸념은 뒤로하고 간단히 책 내용 정리하면, * 존엄이란 무엇인가? - 내면의 나침반, 내적표상, 개인 고유의 인간됨이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만드는 관념 * 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나침반을 통해 방향을 잃지않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탐색하며 사는 것 -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와 평가, 목적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 * 왜 존엄하게 살아야하는가? -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자신은 물론 타인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내면의 나침반이 필요하기 때문 미천한 이해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책 내용의 전부다. 더 많은 내용을 원한다면 직접 일독을 권한다.(책에 대한 만족도는 각자 다른 법) 다만, 개인적인 결론은 앞으로 독일책 살 때는 조심하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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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존엄을 인지하게 되고, 존엄하게 살고자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는 책. 더불어 누군가에게 존엄을 일깨우는 존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책. 뇌신경 과학자의 분석과 설명으로 듣는 뇌의 습성과 존엄의 관계와 인생에서 존엄을 일깨우는 만남과 실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된다. 지난날 처절한 몸부림도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위로도 받게 되는 책이었다. 이제 존엄을 일깨운 한 사람으로 존엄을 지키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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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자 게랄트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신의 내면의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을 물어 본다 즉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존엄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방향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존엄의 의미를 뇌 과학과 연계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뇌는 스스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위한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뇌는 다양한 단일 행동과 반응을 조화롭게 조정하기 위해 상위의 패턴을 형성하고 자동화 시키는 단순화 작업을 한다고 하였으며, 그래서 인간은 텅빈 박스여서 스스로를 채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나를 채울 수 있을까 저자는 이것을 존엄이라는 개념과 연결하여 이야기 했다. 먼저 실패와 만남의 두가지 경험을 제시하면서 개인의 자아상을 형성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이것은 사람이 만남과 실패를 하면서 내면의 기준과 자아상이 끊임없이 수정되고 그래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그래서 왜 나는 고정되고 안정된 인간이 아닌가 하고 자신을 질책 하는 것보다. 오락가락을 나의 내면의 나침반으로 삼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며 이렇게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어떤 일에 잘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에 공감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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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죽음이 존엄하길 원한다면 먼저 삶이 존엄해야 하지 않겠는가” 칸트에 따르면 존엄이란 "인간을 다른 창조물로부터 구분되게 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격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에 위배되지 않을"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존엄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타인에 의해서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함부로 대할 때에도 상처를 입는다. "자신을 벌레로 여기는 사람은, 짓밟히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할 수 없다"고 칸트는 말한다. -p73 저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배우는 과정이 충분히 주어질 때, 인간의 두뇌는 일관성을 가지고 더 효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함으로써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하면서, 조엄을 통해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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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셀러 선물로 구매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존엄하길 원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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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에게 ‘존엄’이란 어떤 의미일까? 잠을 자거나 쉴 때에도 20%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인간의 두뇌는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 이미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이때 혼란을 잠재우고 일관된 방향을 제시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필요한데, 게랄트 휘터는 뇌 속에 뿌리 깊이 형성된 감각인 ‘존엄성’이 그 역할을 한다고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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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파악할 수도 없는 속도로 급변하는 이 시대의 흐름에서 놓쳐버리는 것들....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도 어디에서 흘려버린 건지, 어디에서부터 보이지 않았던건지조차 알 수 없이 사라져버린 소중한 그 무엇. 그런데 때로 그게 뭐였더라....싶은 가슴한켠 허전하고 아련한데 온갖 문명의 신기한 물건들로 호기심을 채워보아도 채워지지 않는가장 깊은 내면 빈공간에서 전해지는 울림같은 공허함 이것이었다. 존엄. 북한 김정은 이름 앞에 붙는 그것이 아니라 인간다움 그 자체의 본능인 존엄 타인의 존엄을 무시하는 그 자신조차도 자신의 존엄이 이미 훼손되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채 살아가는 이 시대가 슬프다. 그러나 존엄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일어나야할 때라고 말하는 저자의 외침에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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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적인 행복- 존엄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관계망 속에서 수많은 유혹과 요구들이 우리들의 의도하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 내려 하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은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어떻게 행동해야 ‘나답게’,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일관성 있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여기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존엄’이다.
“존엄은 내면에 확신으로 깊게 뿌리 박혀 한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부여하며 그 고유의 인간됨이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만드는 관념이다.”
‘존엄’이라는 개념은 인류 역사의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가 전개되면서 ‘존엄’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나는 인류의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 ‘존엄’이라는 개념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노예나 농노들은 ‘존엄’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존엄’을 처음으로 이야기한 분은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모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에 존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중세시대에 인간의 존엄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한 전제였다. 칸트는 인격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명령으로 규정했다. “인류는 그 자체로서 존엄하다.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한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안에 인간의 존엄함이 있다.” 그러나 선언에 그친 인간의 ‘존엄’은 인간의 ‘존엄’을 극도로 말살한 두 번의 전쟁을 겪은 후 비로소 관념이 아닌 정치적인 실현이 되었다. 1948년 UN 총회에서 인권선언문이 채택되었고 독일의 헌법 79조는 모든 인간은“개인의 특성이나 신체적, 정신적 상태, 능력 혹은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존중받을 권리를 규정하였다. 이후 오늘날에는 ‘존엄’이 모든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 헌법의 핵심이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저자 ‘게랄트 휘터’가 ‘존엄’을 학습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 ‘뇌의 생물학적 특징’과 결부시키는 데 있다. 인간 ‘뇌’의 특징은 평생토록 학습할 수 있는 ‘뇌 가소성’과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려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만으로 살아갈 수 없어서, 개인이 한 사회 안에서 성장하면서 여러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특정 행동과 사고방식을 학습하게 되어 있다, 개인은 성장하면서 가족, 이웃, 나라, 세계 등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새로운 행동패턴과 가치관, 즉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개인이 다른 행동패턴과 가치관을 만날 때 자신의 정체성과 갈등과 혼란을 일으켜 과도한 에너지가 낭비되기도 한다. 이 때, 인간의 뇌는 기존의 가치관을 포괄할 수 있는 차원이 높은 상위 패턴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여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보다 차원 높은 상위 패턴으로 행동을 단순화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뇌가 지닌 생물학적 특성이다. 이것은 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발전하면서 사회는 서로 다른 사상, 이념과 부딪치면서 야기되는 갈등과 혼란을 피하고 인간을 하나로 엮어주는 상위 이념을 찾으려 하였다. 이것 또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이 개인과 사회의 상위 개념 또는 이념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이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은 인간 뇌의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이제 여기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다. ‘존엄’이다. 자신의 ‘존엄’을 의식하고 타인의 ‘존엄’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자신과 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할까? 여기에 대해 저자는 마지막으로 교육 문제를 이야기한다. 지금의 교육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수단화하면서까지 목표 달성을 위한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자신의 존엄이 훼손되는 것도 모른 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으로 가장 큰 효율성을 달성한다. 지금처럼 잘못된 현실과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 또한 교육이다. 그런데 ‘존엄’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은 ‘자신의 존엄함’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다. 먼저 깨달은 자가 스스로의 존엄함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이들의 존엄함을 일깨울 수 있다. 여기저기서 서로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고 ‘존엄’을 인정해 줄 때 우리 인류는 본능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는 있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존중하며 살아가겠다고. 자기 자신과 자여과 조화를 이루며, 신뢰 속에서 조금은 호기심 넘치는 삶을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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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존엄하게 산다는 것 - 지은이 : 게랄트 휘터 - 옮긴이 : 박여명 - 출판사 : 인플루엔셜 - 이익과 승리만을 바라는 현대사회속에서 모멸감없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이야기를 한다. 현대사회는 개인뿐만아니라 모든 조직체가 다른 대상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고 있다. 즉 자신이 아닌 남을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보니 자신도 남에게 수단으로만 보인다. 이러한 관계속에서는 그 수단이 없으면 또는 이용하고 나서 가치가 없으면 바로 다른 수단으로 교체하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 인간이 지금까지 이렇게 인간 외의 모든 대상을 이렇게 대하면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한 발전의 결과는 자연,환경 등 인간외의 모든 것의 파괴에 이르고 있다. 현대사회에 와서는 이제 인간까지도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에 이르고 있다. 기계화를 통해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대체화는 점점 늘어가고 인간은 기계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 교육은 어쩌면 존엄성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사화의 교육을 통해서 탄생한 엘리트들이 하는 일은 우리가 뉴스에서 보듯이 존엄하지 못한일들을 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인구의 1/4가 기아게 시달리는 그 옆의 초원에서 콩을 소를 먹이기 위해서 재배하고 있다. 글로벌 식품업체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사회에서도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존엄성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존엄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높고 엄숙한 마음이다. 존엄성을 인식하는 능력은 사람의 재산,지위,명예와아무 상관이 없다. 존엄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 즉 인간대 인간으로 책임을 지는 태도의 문제이다. 즉 얼마나 존엄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존엄하게 생각하고 대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기초가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남을 존엄하게 대할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힘들 일이다. 그렇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모이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은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