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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많이 하고 읽은 책이다. 최근에 신자유주의에 위기가 닥치고 자본주의를 보완할 대안적 모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컨대 뜻맞는 사람들이 한적한 교외에 모여 살면서 농사짓고 생산자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가까운 도시에 판매하면 환경, 주거, 나아가 교육 문제를 비롯해서 아주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이나 어렴풋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한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뭔가 좀더 구체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이 책을 읽게 됐다. ‘협동조합’에 대해 거의 문외한인 상태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첫째, 이 책이 ‘협동조합’에 관련된 책이라는 점—책 제목에 ‘협동조합’이 들어간다—, 둘째, 그물코에서 출간된 책이라는 점—그동안의 독서 경험상 그물코에서 소개하는 책은 무조건 무조건 신뢰할 만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력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주로 영국과 제3세계 국가들에서 여러 기업, NGO, 정부기관 등에서 일했는데 그것도 고위직을 역임했다. 관련된 책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제목부터 misleading이다. 원제도 그렇고, 한글 제목도 그렇다. 원제는 <Co-operation-the beautiful idea>, 즉 <협동-그 아름다운 구상>이다. 그렇지만 원제에서 풍기는 것처럼 협동이라는 것이 왜 아름다운지, 구체적으로 말해 협동이 무엇이고 그것을 통해서 예컨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아름답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한글 제목은 co-operation을 ‘협동조합’으로 번역해서 ‘협동조합-그 아름다운 구상’으로 지었다. 그런데 이 책의 분석 대상은 ‘협동조합’이 아니라 ‘협동하고’(co-operative) ‘서로 돕는’(mutual) ‘협동조합적사업체’(Co-operative Mutual Enterprise: CME)이다. CME는 협동조합과 상조조합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책 제목은 ‘협동조합’ 대신 원제대로 ‘협동’으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분석의 수준도 모호하다. 이 책은 ‘협동’ 혹은 ‘협동조합적사업체(CME)’를 알기 쉽게 설명한 대중서이기에는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실무자들을 위한 교육서이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다. 이러한 문제는 부분적으로는 책의 분량이 짧아서 생긴 문제이지만, 짧은 분량 안에서 목적에 맞게 논지를 전개해나가는 저자의 역량 역시 부족해 보인다. 부연설명이나 논거 제시가 필요한 문장들이 계속 나열되어 몰입이 안 된다. 읽다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산만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그러나 책의 전반적인 구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협동조합적사업체에 대해서 이론적, 실천적 측면을 포괄하려고 한다. 우선 협동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한 뒤 협동조합적사업체가 어떤 모델에 기초하며 어떤 원리에 따라 어떤 요소들을 갖추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등을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한다. 협동조합적사업체가 그 존재가치를 상실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협동조합적사업체 본연의 특성을 부각시킨다.
아쉽게도 책 내용은 구체적인듯 하면서도 구체적이지 않다. 책 군데군데에 친절하게 사례, 표, 요약, 부연설명 들이 삽입되어 있지만, 언급된 ‘사례’들이 사례라기보다는 비유(그것도 축구의 비유—과연 영국인답다!)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사례가 언급된 경우도 대개 영국 사례들인데다가 너무 간소하게 설명되어 있어 영국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표, 요약, 부연설명 역시 그다지 일목요연하지 않다.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을 구입하면서 품었던 기대는 책을 읽은 뒤에도 그다지 충족되지 못했다. 번역이 다소 미흡한 것도 아쉽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56쪽. Free Membership을 ‘비조합원 이용 허가제’라고 번역했다. ‘함께하는 데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이라는 수식이 붙어 있으므로, 일종의 가입비에 해당하는 qualifying investment 없이 회원이 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면 문자 그대로 ‘무료 회원제’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비조합원 이용 허가제’라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제도에 따라서 아무런 투자 없이 조합원(회원)이 된 사람은 이미 조합원이다. ‘비조합원’으로서 ‘이용’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 하이픈으로 연결된 번역 문구가 너무 많다. 예컨대 ‘투자자-통제 회사’. 이것은 investor-controlled enterprise를 번역한 것인 듯하다. 영어에서는 종종 짧은 구를 하이픈으로 연결해서 형용사구로 만든다. 예컨대 ready-to-eat food라고 하면 ‘(조리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food (which is) ready to eat인데 명사 앞에서 수식하도록 만들어서 복문을 피하고 문장을 간결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이픈으로 연결되는 형용사구를 쓴 것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일일이 하이픈을 넣을 필요는 없다. ‘먹을-준비-된 음식’이라는 식의 번역은 굉장히 어색할 테니까. 그런데 역자는 이런 형용사구를 모두 다 하이픈을 넣어서 번역했다. 그밖에도 영어에서는 명사와 명사를 나열해서 합성어로 만들 때 하이픈을 붙이곤 한다. 예컨대 ‘조합원-지도자’. 이것은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 지도자가 아닌 조합원 중에서 뽑힌 지도자라는 뜻이다. 이 또한 우리말에서는 하이픈 없이 번역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 73쪽. 오해를 부를 만한 번역이 나온다. 협동조합적사업체의 특징 중 하나인 등가성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72쪽 하단부터 시작해서 “그렇지만 조합원들과 하는 모든 거래에는 모든 조합원을 동등하게 대하는 등가성을 적용한다. 이것은 영리 기업들의 개별 거래에서 작동하는 이윤 극대화라는 실천을 대신한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 몇몇 사람에게 비밀스런 ‘거래’를 제공하고, ‘시장이 원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요구하고, 같은 가치의 노동에 대해 다른 값을 지불하는 등의 일을 한다.”는 부분이 나온다. 볼드 처리된 부분에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서 누가 ‘~제공하고, ~요구하고, ~ 지불하는 등의 일을’ 하는지 불명확하다. 협동조합적사업체의 등가성을 다루는 반쪽 분량의 짧은 문단이라서 얼핏 ‘저게 등가성인가?’하는 혼란을 준다. 아마도 영어 원문에는 볼드 부분이 관계대명사 계속적 용법으로 앞 문장과 이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끊어서 번역하면서 주어를 생략하다 보니 혼란이 생겨났다.
- 저자의 문투도 조금 어색하다. 대표적인 것이 “~해야만 한다”는 번역. 역자는 should나 must가 나온 문장을 대부분 “해야만 한다”라고 번역했다. 이런 구문이 가끔 나오면 신경이 안 쓰일 텐데 어떤 경우는 한 페이지에 5-6번도 나온다. “만” 없이 “해야 한다”라고 번역한 경우는 20개에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잘못된 어법도 눈에 띄었다. 예컨대 ‘-데’ 띄어쓰기가 대체로 안 되어 있다. ‘-지’는 오히려 띄어 쓰지 말아야 하 곳에서 잘못 띄어쓴 곳이 몇 군데 있다. 이것은 국어 문법을 잘 모르는 역자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출판사(나 편집자)의 잘못이기도 하다. - ‘협동조합적사업체’라는 표현과 그 두문자어(acronym) ‘CME’을 항상 같이 붙여 쓴 편집 스타일도 부자연스럽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협동조합적사업체’인데 거의 항상 ‘협동조합적사업체CME’로 쓰이고 있다. (‘항상’이 아니고 ‘거의 항상’인 이유는, 편집자가 실수로 몇 번 누락했기 때문이다.) 한 번 ‘협동조합적사업체’가 ‘CME’라고 설명했으면 다음부터는 CME만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매 챕터마다 처음 나올 때만 병기해줘도 좋았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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