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가장 핫한 '애정소설'을 꼽으라면 <춘향전>을 꼽는 이들이 많겠지만, 나는 단연 <구운몽>이라 말할 것이다. 왜냐면 <구운몽>은 로맨스소설 코드의 정석이랄 수 있는 '잘난 남주'와 '예쁜 여주'가 등장하며 잘난 남주는 '하는 일'마다 대성공을 이루어 출세가도를 달리고, 예쁜 여주는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재주와 지혜마저 빼어나니 읽는 내내 흐믓하게 읽어낼 수 있어 '최고의 읽는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볍게 읽을 수 있는데도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이 적절히 녹아 있어 읽고 난 뒤에는 '철학적 사유'까지 즐길 수 있으니 단연 최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대부분 '작가미상'인 한국고전소설에 비해 '서포 김만중'이 임금(숙종)에게 바른말을 간언하다 유배형을 받은 뒤 절해고도에서 홀로 계신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해 하룻밤에 지어낸 소설로도 유명하니, '표현론적 관점' 뿐만 아니라 '반영론적 관점'으로도 소설을 감상할 수 있기에 읽는이로 하여금 다채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할 수도 있다. 거기에 김만중이 이 책 이외에도 <사씨남정기>, <서포만필>과 같은 책들을 펴낸 까닭에 '작가의 생각(의도)'를 비교분석하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으니, 여러 모로 <구운몽>은 읽는 가치와 함께 재미까지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우리 문학인 것이다. 여기에 '순한글문학'으로 펴냈으니 그 가치는 두 말할 것도 없다.
먼저, 장자의 '나비의 꿈'을 이야기 하련다. 바로 '꿈과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깨어보니 자신으로 돌아왔더라는 이야기다. 분명 장자와 나비는 '별개'이건만, 꿈이 진실인지 현실이 진실인지 '분별'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을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구운몽>에서도 성진은 불가의 몸으로 팔선녀를 희롱한 죄로 '양소유'라는 인간으로 환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시에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 다시 불가의 몸으로 되돌아와 큰 깨달음을 얻고 속세를 떨쳐내고 부처로 귀의하였다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도 완독을 한 뒤에 '성진의 삶'이 진실인지, '양소유의 삶'이 진실인지 속속들이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운몽>은 분명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유쾌한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그렇게 인간세상에서의 '해피엔딩'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로다는 '색즉시공'의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일반독자들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온갖 부귀영화가 다 부질없으니 '인생, 뭐 있어? 그냥 즐기는 거야!'라고 살라는 것인지, 만 가지 근심이 허황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무소유의 삶'으로 안분지족하며 살라는 것인지 헷갈리기 딱 좋다. 이를 김만중의 삶에 빗대어 분석한다면 나라에 충성하고 임금께 충신이 되길 마다하지 않은 결과가 '유배의 삶'이었고, 그 덕분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는 '불효의 삶'을 살았으니, 김만중은 실로 '인생무상'을 제대로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관점에서 김만중은 '유학자의 삶'을 살았으나 '불가의 도리'를 깨달아 덧없는 삶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이려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구운몽>은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의 사상이 적절히 배합되어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중에서도 '입신양명'에 최선을 다하는 유가의 삶과 '색즉시공'의 깨우침을 목표로 삶은 불가의 삶의 '절충'을 모색한 점이 단연 으뜸이다. 도교의 색채는 신선과 선녀의 등장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극적으로 살려내고, '몽유계 소설'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낸 것으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러니 어떤 사상에 더욱 큰 가치를 두고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난 '유교의 코드'로 <구운몽>을 읽어내는 것이 요즘 MZ세대들에게도 취향저격일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의 젊은이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는 것보다 '하나뿐인 인생'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싶기 때문이다. 추호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으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나 역시 '성진의 삶'보다는 '양소유의 삶'에 더욱 열광하는 독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개 서생에 불과한 양소유가 천부적인 재능을 뽐내며 '하는 일'마다 천복을 누리다 승상의 지위까지 얻어 최고의 명예를 다 누리는 삶을 누가 마다할 것이냔 말이다. 더구나 어여쁘고 어진 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하나가 아니라 여덟이라하고, 절세가인의 부인들이 시기와 질투로 싸우기는커녕 사이좋은 자매처럼 화목하게 지낸다니 '가정의 평화'는 모든 사내가 꿈꾸는 최고의 이상향이며, 그 자녀들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출중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니 얼마나 즐거운 소설이냔 말이다.
헌데 말이다. 과연 현실에서 '여덟 명의 아내'가 절세가인의 미모를 갖추고 재벌 못지 않은 부와 유명 아이돌 걸그룹의 멤버일 정도로 재능을 갖추고도 자매처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이는 '일부일처제'였던 조선시대에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구중궁궐에 사는 임금도 '수많은 여인네'를 제것(?)처럼 여겼으나 그속에서 피어나는 암투는 늘 피비린내를 풍겼다는 사실만 보아도 비현실적인 요소다. 진정 소설의 허구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불가한 현실을 꿈결처럼 창조해낸 김만중은 정말이지 최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속에선 절대로 불가한데도 '현실'처럼 그려놓았으니 얼마나 대단하냔 말이다. 물론 <구운몽>에서 '양소유의 삶'은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런 '비현실적인 요소'쯤이나 얼마든지 허락될 것이다. 여자들도 <꽃보다 남자>과 같은 드라마를 꿈꾸며 빵빵한 꽃미남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하지만 꿈같은 현실은 매정한 현실에선 결코 '재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양소유의 삶'을 꿈꾸며 '성진의 삶'에 깊은 고민을 더할 수밖에 없다. 과연 어디까지가 나에게 허용된 '욕심'인가? 따위의 고민 말이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은 욕심이 과해서 '무욕의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깨닫기보다는 더이상 버릴 욕심조차 없는 '무소유의 삶'을 강제하기에 욕심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비극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를 테면, 지금 사는 현실은 10억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매주 로또를 구매하는 '200만원짜리 인생'을 살지만, 가혹한 현실은 10억이 없으면 살맛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들어 '실현되지 않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마는 비극의 연속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진의 삶'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한낯 꿈에 불과한 '10억짜리 인생' 따위는 잊고 내 수준에 딱 맞는 '타협의 삶'을 최선을 다해 즐길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양소유의 삶'을 포기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비록 이번 생은 '성진의 삶'을 살 운명일지라도, 운명처럼 찾아오는 '양소유의 삶'이 끝자락일지언정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 그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은 '팔선녀의 아내'를 맞이할 수 없어도 '팔선녀' 같은 하나 뿐인 아내와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가끔 선녀처럼 보이지 않으면 어떤가. 가끔일망정 선녀처럼 보이는 마누라도 없이 쓸쓸이 늙어가는 나도 있는데 말이다. |
|
강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꼈고, 『구운몽』은 여러 번 읽어서 잘 알고 있는 작품이니 어렵지 않을 듯해서 선택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구운몽』에 대한 여러 추억이 떠올랐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고교시절이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고전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는 소개가 되었으니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나의 학창 시절은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시골에 있는 모교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었으니, 이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었다. 고교에 진학한 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을 때는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세로 쓰기에 딱딱한 문체로 된 문장이 흥미를 반감시켰던 듯하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니 원서로도 읽어 보았으나, 당연히 재미가 없었다. 담담한 문체로 내용만 전달하는 옛 문체의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에로틱한 상상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듯이…….
이 책에 흥미를 느낀 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 교재연구 차원에서 여러 자료와 함께 읽으면서부터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이 흥미진진했고, 남성인 입장에서 주인공이 부럽기도 했다. 물론 성진의 삶은 전혀 닮고 싶지 않았고 양소유의 생활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팔선녀가 하나같이 빼어난 미인들이라서가 아니다. 질투나 갈등이 없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것이 인심이라는데, 여덟 명의 빼어난 여성들이 한 남자의 사랑만 바라보면서 낭만은 모두 누리면서 화목하게 생활하다니……, 역대 어느 제왕도 누리지 못한 행복이 아닌가. 천국이 있다면 그런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둘째, 성진과 양소유를 인간적으로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원작 속의 성진은 완벽에 가까운 모범생이다. 인간계로 떨어진 것은 그야말로 아차 실수……. 용왕이 권하는 술을 마신 뒤 약간의 호기를 부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성희롱을 한 것도 아니다. 선녀들에게 길을 빌리자고 한 뒤 나뭇가지로 꽃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구슬로 바꾸어서 건네는 말 그대로 청춘의 로맨스였을 뿐이다. 성진은 그것도 잘못이라고 밤새 참회를 했지만, 한밤중에 육관대사의 부름을 받고 연화봉에서 쫓겨났다. 인간계의 양소유로 환생한 뒤의 성진은 여전히 모범생이었다. 그가 팔선녀를 탐한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양소유가 유혹을 한 것은 정경패 한 명 정도이고, 다른 일곱 부인은 대부분 여성 쪽에서 먼저 찾아왔다. 심지어 제2부인인 난양공주마저도 그녀가 스스로 신분을 숨긴 뒤에 양소유와 정경패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금지옥엽의 공주의 신분임에도 사양하는 양소유의 2처가 되기를 자청했다. 다른 6첩의 경우도 난양공주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들은 정처가 아니라 첩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성진을 꽃을 탐하는 나비같이 표현했고, 팔선녀들도 나비를 유혹하는 꽃인 양 그리고 있다. 어찌 보면 저속한 듯하지만 고전으로서의 품격은 모두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판본을 통해 읽은 구운몽이 열 권 가까이 되는 듯한데, 삶의 이치와 불교의 세계를 가장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이 작품인 듯하다. 그런 이치는 다른 판본에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판본을 읽을 때는 그런 재미없는 대목은 건성으로 읽었을 테니 인상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적인 성진의 깨달음이기에 변화가 강렬했나 보다. 신부님이나 스님 같은 성직자가 좋은 말씀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때 흔들렸던 사람이 변화를 보일 때 더 극적인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셋째, 참고 자료가 좋았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장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의 세계와 배경을 들려주는 자료를 덧붙였다. 선구적 민족 문학의 김만중, 어머니 윤 씨 부인과 만중의 효행, 고전 소설 한눈에 알아보기, 『구운몽』 가슴으로 읽기 등의 자료를 통해서 작가와 작품과 배경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이런 참고 자료는 '서울대 선정 문학 고전'시리즈의 특징으로 다른 시리즈의 작품에서도 실려 있다. 그것이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또 다른 차원을 생각할 수 있는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고 할까.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초등학생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대학생이 읽어도 유치하지 않다. 『구운몽』은 한국인의 필독서이니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겠지만, 이 책의 강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어떤 독자라도 후회하지 않을 듯하다.
다만 그림이나 대화의 표현에서 좀 지나친 면이 있는 듯하니, 고등학생……, 최소한 중학생 이상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이성을 만나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너무 일찍 그런 것을 알 필요는 없을 듯해서이다. |
|
김만중은 1637년에 태어나 1692년에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이고, 아호는 서포이며, 시호는 문효이다. 조선 후기 숙종조의 문신이자 우리 고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적 문장가이다.
김만중은 우리말 문학의 독자성과 의의를 선구적으로 주장하여, 중국 문학을 절대시하고 무분별하게 한문학을 모방하는 풍조를 비판하였다. 우리 노래를 한시로 바꾸면 그 말씨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으며, 비록 무지한 백성들이라 해도 제 나라말로 노래할 때 절로 감동을 전할 수 있다고 하여 한문학을 숭상하는 중국 문화 사대주의를 배격하였다.
이와 같이 성리학과 한문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민족 문화와 국어 문학의 독자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직접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같은 국문 소설을 지어 온 나라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단테가 중세 라틴어 종교문학을 거부하고 제 나라말로 [신곡]을 지어 르네상스를 이끈 것과 같은 근대적인 각성을 보여 준 것이다.
~~~~~~~~~~~~~~~~~~~~~~~~~~~~~~~~~~~~~~~~~~~~~
소설은 고대 설화에서 비롯하였다. 설화는 신화, 전설, 민담을 말하는데, 신화는 시조의 탄생과 나라의 건국 과정에서 영웅적 신성미가 후대 소설에 전승되기도 하고, 전설은 비현실적인 내용과 함께 교훈적 의미가 소설에 반영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설의 형성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민중의 다양한 상상력이 모여 형성된 민담인데, 여러 인물들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줄거리는 소설에 필요한 허구적 요소를 잘 갖추고 있어서 소설 형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 후기 들어 사대부들 사이에 소설의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본격적인 양반 소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작이 바로 [구운몽]이다. 실학자 가운데 박지원은 [허생전] [양반전]처럼 지배층을 비판하는 한문 소설을 지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선 시대 평민들은 서로하를 [춘향가] [수긍가] [심청가]와 같이 독특한 판소리 양식으로 전승시켜왔는데, [홍길동전] [구운몽] 같은 양반들의 한글 소설이 보급되자, 전기수(직업적으로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 세책가(소설을 빌려 주는 업소)가 등장하고, 방각본 소설(상업적인 소설 출판)이 성행하면서 양반 소설을 모방하기도 하고, 판소리 사설을 변용한 판소리계 소설을 탄생시키면서 19세기를 소설의 시대로 만들어 낸다.
[구운몽]은 장편의 국문 · 양반 소설로서, 한몽 구조를 가진 몽자 소설의 효시요, [금오신화]를 계승하여 신선계와 귀신을 넘나드는 전기 소설이고, [홍길동전]을 계승하여 양소유가 영웅적 일대기를 보여 주므로 영웅 소설이며, 토번과의 전쟁담이 펼쳐져 전쟁 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 양소유와 여덟 처첩간의 애정이 중요한 골격을 이루므로 애정 소설임이 분명하고, 나아가 사상적으로 불교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장르적 성격이 다양한데, 그 작품성 또한 주체적인 문학 의식을 바탕으로 비교할데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 우리 고전 소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현실과 꿈을 오가는 환몽 구조를 채택하였다. 이 환몽 구조의 특징은 현실 속의 주인공이 갈등을 겪다가 꿈속에서 다른 성격의 인물로 환생하여 일생을 살지만, 다시 깨어나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 구조를 말한다.
[구운몽]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환몽 구조가 이중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실의 주인공 성진이 꿈속에 양소유로 환생하는데,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어 성진의 현실 속 무대인 용궁과 연화봉을 다녀오는 장면이 들어 있다. 또 하나, 인간이 꿈속에 신선 세계를 경험하는 다른 몽유 구조와는 반대로, 꿈의 세계로 되어 있는 양소유의 일생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현실 세계로 되어 있는 천상계는 오히려 신비롭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의 [소설변증설]에 의하면, 만중은 큰 아들이 먼저 세상을 뜨고 만중조차 유배를 당하자 무척 상심했을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유배지에서 [구운몽]을 지었다고 한다. 또 만중은 화려한 벼슬길에도 불구하고 멀리 절해고도에 귀양을 가서는, 부귀영화가 모두 부질없는 것이며 현세의 고통도 잠시일 뿐이란 뜻을 자신도 되새기고, 어머니에게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만중은 [구운몽]의 대부분을 조선 시대 사대부로서의 이상적 가치관을 양소유를 통해 드러내는 데 할애한다. 입신양명으로 충절과 효행을 충실히 실천하는 양소유의 일대기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유교적 이상주의와 부합된다. 꿈은 인간의 보편적 갈망이므로 성진의 꿈을 통해 보여 주는 세계가 곧 작가의 주제 의식을 설명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고전 소설이 그렇듯이 [구운몽]도 중국을 무대로 삼았다. 고전 소설의 작가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것은 주제 의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문학적 방편이다. 사회적 정치적 비판 의식을 드러내는 데 조선을 직접 배경으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중국 중심 문학관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국문 소설을 지어 우리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이다.
[구운몽]은 후대의 문학과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성진과 양소유, 팔선녀와 여덟 부인을 소재로 하여 시조와 가사가 지어지고, 후대의 다른 소설 작품에서 미인의 상징으로 팔선녀가 거론되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사랑의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음미되었다. 또 주요 대목들은 민화로 그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런 민화들은 십장생 민화와 같이 부귀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구운몽]에서 차용한 예술적 이미지와 소재를 활용하여 다양한 예술적 양식으로 재창조하였던 것이다. 누구나 양소유처럼 극진한 부귀와 공명을 누려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구운몽]의 변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과거에 비해 훨씬 진지한 문제의식과 개성적인 연출로 소설, 영화, 연극, 만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변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