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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종교인은 어떤 특정 정치색을 띈다던지, 혹여 개인적 소견이 있더라도 그것을 대중에게 드러내지 않았으면 하는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것이 어떤 종교이든 그분들은 자신이 믿는 신을 따르는 신자들을 안내하는 분들로서 , 조금더 신과 가깝게(?) 영적 교감을 하는 분들로서의 소명을 다해주시며, 이세상을 밝게 빛내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해 주심을 내심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그 일조가 정치적 소견을 뚜렷하게 드러내거나 정치인들의 뒤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처럼 비춰지길 바라지 않는것은 말할것도 없음이다.
이번 저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는 읽으면 읽을수록 조금 쇼킹(?) 한 책이었다. 어느 책을 읽으면서인가 이책에 대한 추천글을 읽고 내희망목록에 넣었던 책으로, 희망도서 신청으로 알림을 받고 빌려온 책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책이고, 추천글도 좋았던 터라 읽어보고 싶었었다. 지은이 박승찬 교수는 서울대 식품공학과 졸업뒤 가톨릭 신학부에서 신학공부 중 중세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독일에서 석.박사(중세 철학)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이자 성심대학원장을 역임, 한국중세철학회 회장역임, 한국가톨릭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1600년전 인물이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와 비교될 수 있는 로마 제국 말기의 격변기를 살았던, 가장 영향력있는 그리스도교 사상가로서, 헨리 채드윅은 "고대인들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만큼 인간의 감정을 반추해 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없었다"라고 평가한다. 그는 중세 거의모든 학자에게 800년 동안 최고의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그의 이론을 현실에 맞추어 설명해주는 부분은 , 어려운 고전을 접하기에 힘든 부분을 쉽게 접할수 있게 해주어서 좋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책 중반부를 넘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한국의 예를 들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특정 성향에 치우친다고 느낄 정도로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여서 독자로 하여금 불편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견을 책에다 저술할정도로 강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러한 노골적 정치적 견해를 어필해는 저자의 도서를 교양부문 우수도서라고 선정한다는 것역시 선정 기준에 대한 믿음에 의구심이 들게 한다.
뭐... 읽다보니 , 책에 대한 아쉬운점도 이렇게 표현하게 되기도 한다. 어찌됐건 중세철학의 전문가인 교수님의 저서를 통해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삶의 궤적과 그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또 느낄 수 있게 된건 참 좋은 기회였다. 이책을 통해 그의 저서인 <고백록> <신국론>을 읽고 싶게 되었다는건 또하나의 수확이 아닐까 ^^ .
*테르툴리아누스는 "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신앙만이 최고다 " 라고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신앙을 보증하기 위해 철학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론>을 쓰면서 굉장히 많은 철학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방식이 신앙만이었다면,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로마 문화에 들어가서 이성으로 설득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했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작업을 이루었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스도교가 전해질 수 있었다.
* 아주좋은 외제차가 있어 시속 100km도달에 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자. 단 이차에는 조향장치가 없고, 속도를 내기 위해서 브레이크도 빼놨다. 이래도 타고 싶을까? 신앙은 이차처럼 굉장한 힘을 갖고 있다.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곤경을 극복할 수 있게 힘을 주기도 하나, 맹목적인 신앙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반성은 신앙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아주 좋은 차에 있는 조향장치, 브레이크가 신앙안에서 이성의 역할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규정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을 수 있고 지상적인 육체를 사용하는 이성적인 영혼"을 인간이라고 규정, 영혼을 인간과 동일시하는 것이 그리스 철학의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면, 아우-는 "이성을 소유하며 육체를 다스리는 일에 적합한 어떤 실체"가 인간이라고 하였다.
*아우-가 가장 먼저 하느님을 체험한 것은 바로 어머니 성녀 모니카를 통해서이다. " 눈물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눈물로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가 아우-에게 하느님을 체험하게 해준 사람이었다. 저자역사 주변에 '나는 누구인가?'를 찾도록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아우- " 이성을 탐욕의 동반자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그 자신의 의지 또는 자유선택뿐이다-자유의지론" 또한 이러한 의지가 잘못된데에는 " 이렇게 하느님을 외면하고 눈을 돌리는 것은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에 의한 것이다 "라고 분명히 밝혔다.
*질서의 혼란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비교
*아우-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대의 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란 하느님의 인도를 따르고 하느님께 사랑과 존경을 드리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필수적인 조건이다. 결국 아우-가 찾아낸 것은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필요도 없었고 자유의지도 주실 필요가 없었지만,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한 인간에 대한 큰 사랑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아우-도 때로는 이것이 위험한 선물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실수 하더라도 올바른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그대로 남기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히로시마 원폭, 1,2차 세계대전, 등 무고한 선량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느님은 고통받는 인간들과 함께 고통받고 계셨다" 또한 그는 "하느님께서 왜 이고통들을 허락하시는지 나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그의 마지막 답변은 '모르겠다'이지만, 하느님이 틀림없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실 것이라고 여운을 남긴다. 전체적인 우주질서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아름다운 수를 놓는 작업에 비유할수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가 놓인 밑면을 바라보면 아름답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 아우-는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밑에서 바라보는 인간이 볼때는 그 깊은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모르는 상태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보라는 말을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선한이들에게도 고통이 다가옴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고 아우-는 직접적인 자기 죄가 아닌것에 대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원죄론'이라는 이론을 들였다. 아담과 하와로 상징되는 원조들, 앞선 사람들의 죄가 계속해서 유전되듯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훨씬 더 죄를 짓기 쉬운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죄론은 그 이후에 많은 논쟁을 거쳤지만,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여기서 하느님이 세상을 좋게 창조하셨다는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수 있다. 그러나 원죄론에서는 "하느님은 모든것을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원조들이 자유의지를 통해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지음으로써 우리들의 본성이 손상되어 버렸다" 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이 원죄론으로 표현된 어려운 상태, 즉 욕망에 끌려다니느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에서 종교가 갈라진다. 어떤 특정 종교에서는 인간이 충분히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우리 힘만으로 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사슬을 끊어주기 위해서 하느님이 이세상에 오셨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을 통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행복을 위한 조건
*우리안에서, 생각속에서 무엇을만날때 행복할까? 아우=는 우리가 내면에서 진리와 지혜를 소유하게 되었을때, 이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지혜를 가지지 못해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내적 교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말씀이 담긴것이 바로 성경이고 이에 따라 내면에서 진정한 지혜를 발견하게 될때, 참된 행복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창조에 대한 질서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기에 세상을 발전시키는 직업은 잘못된 것이 아닐뿐더러, 자신에게 부여된 소중한 소명이라 하였다. 그래서 아우-는 세속적인 직업을 갖는것을 권장하고 오히려 그것을 질서에 맞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인간적인 육욕, 명예와 쾌락추구의 번뇌를 보며 보통인간에 다르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에 현자에게서도 동질감을 느꼈다 ^^) 그의 마음에서 두가지 의지가 충돌했다. 아는데도 행하지 못하는 갈등속에서 그는 좌절했다 "도대체 주님, 언제까지입니까?........내일 또 내일입니까? 왜지금은 아닙니까? 어째서 바로 이 시각에 저의 추접을 끝장내지 않으십니까? <고백록 > 이라며 울부짖었다.
*"밤이 물러나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