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봄비 그치니 전날의 애인들이 꽃등을 켜고 마중 나왔다. 수천수만의 애인들이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폭죽처럼 터지는 봄밤이 눈앞이다. 어찌할 것이냐. 몸은 벌써 봄을 떠나왔는데 저 애인들을 모두 껴안고 뒹굴 수 있는 뜨거움이 식은 지 오래인데. 혼자서 중얼거릴밖에, 무참한 봄. - 오광수, 「봄날의 애인들」
생명을 살리는 봄비가 내린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생명이 봄비를 맞고 기지개를 활짝 편다. 시인은 봄비를 맞고 피어나는 생명들을 “전날의 애인들이/ 꽃등을 켜고 마중 나왔다.”라는 문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날의 애인들은 봄비가 오면 어김없이 오는 애인들이다. 봄비를 맞아 촉촉이 물이 오른 생명을 그 누가 싫어할까? 꽃등을 켜고 마중 나온 애인들을 보며 시인은 비로소 따뜻한 봄이 왔음을 느낀다. 수천수만의 애인들은 차가운 계절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남았다. 몸속을 스미는 냉혹한 한기를 느낄 때마다 그들은 따뜻한 봄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따뜻한 봄이 오면 가슴 속 한기는 뜨거운 꽃으로 피어난다. “폭죽처럼 터지는 봄밤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생명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한겨울을 견딘 생명들이 그려내는, 폭죽보다 더 아름다운 저 세계를 보라.
봄을 맞은 생명은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아름다운 폭죽을 터뜨린다. 하늘을 수놓던 폭죽이 어느덧 땅으로 내려와, 지상은 말 그대로 꽃으로 뒤덮인 천국이 된다. 그런데, 새로이 찾아온 꽃 세상을 맞이하는 시인의 태도가 묘하다. 반가움에 목이 탈 정도여야 할 텐데, 시인은 “어찌할 것이냐.”라고 한탄하는 소리를 내뱉고 있다. 모든 생명이 자기를 뽐내는 계절에 정작 시인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몸은 벌써 봄을 떠나왔는데”라는 시구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마음은 봄을 맞아 붕붕 하늘로 뜨는데, 몸은 그런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겠다. 하긴, 봄비가 내린다는 건 꽃이 피는 새 봄이 왔다는 말이 아닌가.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봄비 내리는 시절이 다시 왔다. 청춘 시절에 맞았던 봄과 청춘이 스러진 지금 맞는 봄은 어찌 이리 다른 것인지.
마음은 시간을 살지 않는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을 살고 있는데, 그래서 봄이 오면 마음은 한없이 들끓어 오르는데, 봄을 벌써 떠난 몸은 다시 온 봄을 서글프게 맞이한다. 마음의 봄은 다시 왔지만, 가버린 몸의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봄비를 맞고 피어난 “저 애인들을 모두 껴안고 뒹굴 수 있는/ 뜨거움이 식은 지 오래”라고 시인은 한탄하고 있다. 봄과 여름을 저 멀리로 떠나보내고 서리 내리는 가을에 시인은 이르렀다. 밖으로 뻗쳤던 기운을 안으로 되돌리는 시기가 가을이다. 가을은 모든 열기를 열매를 익히는 데 이용한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한 가을이 마지막 힘으로 화려한 단풍을 피워낸다. 가을은 지나온 시절을 추억하며 남은 날을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화려함을 뽐내던 애인들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뜨거움이 식은 자리에는 추억이 남는다. 흔적으로 남은 이 감각으로 생명은 지금 이 순간을 견디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봄을 간직한 시인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몸을 껴안은 채 혼자서 서럽게 “무참한 봄.”이라고 중얼거린다. ‘무참(無慘)’은 비참하다. 애처롭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봄날의 애인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봄날, 시인은 봄비를 머금고 찬찬이 피어나는 수천수만의 애인들과 마주하고 있다. 지나간 마음은 돌이킬 수 있지만, 시간과 더불어 떠난 몸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다음 봄이 오면 무참한 마음은 더욱 더 시인을 괴롭힐 것이다. 돌려 말하면 이제 시인은 무참한 마음을 다스릴 방도를 스스로 구해야 한다. 시인이 어떤 마음을 먹든 봄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봄을 맞아 청년들은 온몸으로 애인들을 맞이할 것이다. 이것이 어길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순환하는 자연도 끊임없이 변한다. 자연 속 생명은 변화를 통해 다음 생명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젖힌다. “무참한 봄.”이라는 설움은 이리 보면 자연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없다. 자연은 봄이 오면 봄을 맞고 겨울이 오면 겨울을 맞는다. 봄이 오면 생명을 꽃피우고, 겨울이 오면 기운을 땅속으로 모아 생명을 보호한다. 자연이 펼치는 이런 사랑을 시인이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시인은 봄이면 피어나는 애인들과 하나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못한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지 않는 마음은 늘 꽃 피는 봄을 지향한다. 몸에 새겨진 이 마음의 결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봄은 “무참한 봄.”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로 모인다. 저물녘이 되어야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받아들일 순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