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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신]을 통해서였다. 전6권으로 되어 있는 그 소설이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호기심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론 잊어버렸으니 아마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판타지나 추리, SF를 총칭하는 장르소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이유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한때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류와 같은 소설들을 줄기차게 읽은 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시들해지면서 멀어졌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에 없지만 현실에 부딪히며 사는 것에 바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결과론적이지만 어렸을 때 푹 빠졌던 무협소설에 대한 기억이 한때나마 추리소설을 찾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던 관심에 없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다시 찾아온 호기심 때문이었다. 프랑스작가임에도 오히려 한국에서 더 인기가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으면서 왜 그가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지 궁금해져서다. 출판사의 마케팅 덕분일까? 아니면 그의 작품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일까? 그 궁금증에 이 책 [죽음]을 읽게 되었다.
‘누가 날 죽였지?’로 시작되는 소설은 인간의 사후세계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추리소설 작가 가브리엘 웰즈는 새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문장을 떠올리며 눈을 뜨지만 이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살해되었다고 믿는 웰즈는 우연히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매 뤼시를 만나게 된다. 뤼시는 사랑하는 남자 사미로 인해 교도소에서 복역 중 읽은 웰즈의 책 <죽은 자들>을 통해 심령사의 길로 들어선 영매이다. 사디를 자신의 하나뿐인 운명의 사랑으로 믿는 뤼시는 출옥 후 그를 찾지만 그의 흔적은 어느 곳에도 없다. 웰즈는 뤼시에게 자신의 살인사건을 수사해주도록 부탁했고, 대신 뤼시의 하나뿐인 운명의 사랑 사디의 소재를 찾아주기로 한다. 떠돌이 영혼이 된 웰즈는 저승에서, 그리고 살아있는 뤼시는 이승에서 각각 사람 찾는 일과 범인 찾는 일을 시작한다. 웰즈는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 영혼과 아직 환생하지 않은 떠돌이 영혼들의 도움으로 사디를 추적하고, 뤼시는 웰즈의 쌍둥이 형, 웰즈가 발표한 작품의 편집자, 웰즈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비평가들을 만나며 누가 범인인지를 찾아 나선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떠돌이 영혼인 웰즈를 통해 인간의 사후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이야기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 같다. 바로 글쓰기, 그리고 비평가와 작가에 대한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이다. 그렇게 보면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는 바로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 먼저, 글쓰기에 대해 저자는 웰즈의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소설이란 첫 문장과 이것이 닦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지막 문장이 전부이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강요받고, 선택은 곧 포기를 의미하며, 포기는 후회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글쓰기는 선택과 포기의 연속인 셈이다.
이 작품 역시 <누가 날 죽였지?>로 시작하여 <나는 왜 태어났지?>로 끝맺는다. <누가 날 죽였지?>는 이 작품의 첫 문장이자 인간인 웰즈가 새로 쓰려고 했던 소설의 첫 문장이고, <내가 왜 태어났지?>는 떠돌이 영혼이 된 웰즈가 새롭게 쓰려는 소설의 첫 문장이자,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저자는 <누가 날 죽였지?>라는 첫 문장을 쓰고, 그 문장이 닦은 길을 따라 범인을 찾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당연히 암시와 복선이 깔리면서 어떻게 하면 소설을 더 극적으로 반전시킬지에 대해 선택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갔다. 첫 문장을 쓰는 순간 그 길은 어쩌면 정해진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유감없이 나타낸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안 순간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던 웰즈는, 뤼시의 육체에 들어가 잠시 여자 가브리엘이 되었을 때에도 그간 자신이 겪은 일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써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오직 이 공간에서 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창조해낸다.’ (2권 185쪽) 아마 저자는 그것들을 창조해내기 위해서 작품 속 웰즈가 환생을 마다하고 떠돌이 영혼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웰즈 자신이 불러주면 뤼시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한다. <누가 날 죽였지?>라는 첫 문장이 닦은 길을 따라오다 보니 <내가 왜 태어났지?>란 문장을 만나고 말았다. 이제 다시금 이 문장이 첫 문장이 되어 새롭게 닦은 길을 따라 새로운 소설은 시작될 것이다.
저자는 또한 작품 속에서 웰즈와 장 무아지로 대표되는 평론가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혹은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에 대한 대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장르소설을 무시하는 평론가들에 대한 울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실제로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자꾸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굳이 많은 지면을 그 대립에 할애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쪽은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작품 속에서 웰즈의 말처럼, 대중의 지지를 받거나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거나 둘 중의 하나라면 저자는 당연히 대중의 지지를 받으니 그것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영혼의 관점과 육신의 관점을 따라 가던 책읽기가 중간중간 끊기는 것을 느낀다. 처음엔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너무 자주 나오는 바람에 오히려 이야기의 맥이 끊기곤 한다. 바로 책 속의 책으로 나오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때문이다. 어쩌다 한,두번은 이야기를 보충해주는 자료로써 흥미를 갖게 해주었지만 너무 자주, 그리고 때로는 길게 이어지는 서술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곤 했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책을 읽고 평가하는 것은 그 책을 읽는 독자 각각의 몫이란 생각을 할 때, 나에게는 자꾸 사족같이 느껴졌다.
책을 읽고서 책 제목이 왜 [죽음] 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아마 우리의 의식을 이루는 것은 영혼이고 육체란 단지 영혼이 한 때 머무르는 곳 이라는 저자의 생각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영혼과 육체의 분기점이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황당하게 들리지만 저자는 추리소설이란 장르를 빌려 자신이 생각하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은 걸까? 이는 역설적으로 현생에서의 ‘좋은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에서 영매 뤼시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육신을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존재의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이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라고 기도한다. 또 그녀는 ‘영혼이 머무르고 싶게 만들려면 육체를 잘 보살펴야 한다’고 웰즈에게 말하기도 한다. 이는 곧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 일게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헌데, 말로만 듣던 저자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왜 그가 한국인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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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웰즈! 법학을 전공했으나 작가로 데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고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자국인 프랑수 문단의 평론가에게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매년 꾸준한 리듬으로 신간을 발표해 대중에게는 사랑을 받고있는... 이 책을 쓴 베르나르와 매우 흡사한 경우다. 혹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아닌가? ㅎㅎ
이 작가, 가브리엘 웰즈가 "누가 날 죽였지?]"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눈을 뜬다. 그런데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해 병원을 찾지만 의사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려도.... 아무 이상이 없다.
죽은걸까? 그럼, 누가 날 죽인걸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매 뤼시 필리피니를 만나 소설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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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게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다고 해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점점 나이를 먹다보니 조금씩 죽음을 생각한다. 아직은 젊기에(?) 친구나 지인들의 죽음은 없지만, 친구나 지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생긴다. 그때마다 친구나 지인들은 아파하고 절망에 빠지고, 슬퍼하고, 그러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아직 나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는 삶을 억지로 연명하고 싶지 않은 나름의 이유 때문이다.
다양한 책을 읽다보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육신은 없고 영혼만 남은 세상을.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건 혹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덕분 아닐까? 육신과 영혼은 따로 떨어져 있고, 죽으면 영혼은 저승으로 가기위해 노력하는 걸까?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엔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라는 명제.
소설의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는 “누가 날 죽였지?”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눈을 뜬다. 웰즈는 죽음에 관한 장편 소설의 출간을 앞둔 추리소설 작가다. 평소 자신이 작업하던 비스트로 향하던 웰즈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으로 향하지만 아무도 그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지만 보이지 않고 창문에서 뛰어내려도 아무렇지 않다. 자신의 갑작스런 죽음이, 누군가 자신을 죽인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몇몇 용의자가 떠오른다. 이런 웰즈에게 다행히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매 뤼시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영혼들은 저승에 가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살면서 우리는 과학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떤 영혼이 온 힘을 다해 사건을 막은 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거라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몸은 죽었으나 영혼은 살아 있기에 죽음 역시 우리 곁에서 움직이는 거라면 조금은 무섭다. 웰즈처럼 자신의 죽음이 살인이라 생각해 그 죽음에 대해 파헤칠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한 것일까? 때론 세상은 너무나 억울해 억장이 무너지는 죽음도 있으니까.
이 책을 읽을 때 고유정 사건이 발생했다. 만약 고유정 전 남편의 영혼이 지금 그녀 곁에 머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눈으로 고유정을 바라보고 있을까? 세상엔 다양한 죽음이 있다. 천수를 누리고 간 사람도 있지만 억울하게 죽음으로 간 사람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다. 그들의 혼이 우리 곁 어딘가에서 떠다니고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때문에 나쁜 일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우리는 금새 잊고 만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생각. 그의 생각이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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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날 죽였지?”
“글을 쓸수록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살아 있다는 것, 그 명제야말로 가장 흥미롭다. 영성을 구현하고자 글을 쓰지만 의식을 가꾸고 의식을 구현하는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죽음을 질문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하다.”
『죽음』의 전작으로 3부작 『타나토노트』(1994), 『천사들의 제국』(2000)과 『신』(2007)이 있다. 『타나토노트』에서 저승을 탐사하고, 『천사들의 제국』에서 천사의 세계를 발견했다면, 『신』에서는 더 높은 단계인 신들의 세계로 나아간다. 특이하게도 3부작은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페르 라셰즈 묘지 입구
미카엘과 라울은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처음 조우한다. 페르 라셰즈 묘지는 파리 시내에 있는 정원식 묘지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발자크, 마르셀 프루스트, 쇼팽, 들라크루아, 비제, 몰리에르, 오스카 와일드, 마리아 칼라스, 모딜리아니 같은 문호와 예술가들이 묻혀 있다. 베르베르 작가는 묘지를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했을까? 페르 라셰즈 묘지는 『죽음』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용한 영매(靈媒)에게 갔더니 내가 110번 환생했고 그중 11번의 삶은 그야말로 '끝내줬다'고 하더라. 신기하게도 그 11번의 전생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져 작가로서의 현재 삶을 이루고 있다더라. 난 지금도 손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데, 전생에서도 손으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소설 쓰기가 내 운명임을 확신할 수 있어 좋다.”
그가 진료실에서 만난 여자는 영매 뤼시 필리피니였다. 스물일곱 살의 빼어난 미인인 그녀는 가브리엘에게 그가 쓴 『죽은 자들』을 난생 처음 빨려 들어갈 듯이 읽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뤼시는 현재 죽은 자들과 대화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이렇듯 가브리엘이 죽은 이유도, 죽은 뒤 영매 뤼시를 만나 자신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자신의 작품 때문이었으니 이것이 작가의 얄궂은 운명일까.
베르베르 작가는 『타나토노트』에서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또 ‘나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을 탐색했다면 『죽음』에서는 ‘나는 왜 태어났지?’, ‘지난 삶으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웠나?’와 같은 물음을 다룬다. “모든 질문은 그 자체가 이미 대답이란다.” (『신』 3권)
*2권에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 2권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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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위트가 넘치는 죽음에 관한 소설 타나토너트에서 죽음 여행이라는 소재였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을 죽음의 대상이자 소재로 삼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누가 날 죽였지” 라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시작된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그것보다도 흥미로운 건 자신이 죽게된 상황 자체를 기억 못한다는 점이다. 마치 죽음 이후에는 내세의 삶을 완전히 잊은 채로 환생한다는 설처럼. 중간중간 나타나는 문학계의 거장과 역사 속의 인물들과의 만남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전개에 양념을 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지루할 틈 없이 숨막히게 전개되어 단숨에 읽긴 했지만 리뷰를 보고 책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더이상의 스포는 생략하겠다. 예스24에서 보내준 사은품은 우연한 계기로 인지하게 되었다. 새벽에 잠이 깨어 불을 켜지 않은채로 서가에서 책을 찾으려는데 어두운 가운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만이 밝게 비추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야광 책커버. 밤에 읽을 때 빛을 발한다. 이 역시 역설적인 상황이다. 책을 읽으려면 불을 켜야 되는데 야광 커버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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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자신을 빼닮은 자전적 주인공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오직 이 공간에서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또 소설 속 여러 등장인물들은 가브리엘의 작품이 지닌 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대목에서는 베르베르가 스스로의 장단점을 나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조적인 유머로 승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베르베르가 제시하는 순문학과 장르 문학의 관계 새벽 1시. 혹시 문학이 구세주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프랑스 문학 중에서 가장 지루한 작품을 고르던 중에 「배꼽」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무려 1,500페이지에 이르는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이 독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종종 한 페이지가 넘는 긴 문장을 쓰고 있다. 작가의 재주 덕에 눈이 따끔따끔하면서 잠시 비몽사몽의 상태를 헤맨다. 눈꺼풀이 내려 붙는 사이, 그는 완벽한 권태의 순간에 찾아오는 달콤한 현기증을 경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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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가브리엘 웰즈. 직업은 추리 작가이고, 죽은지 얼마 안된 <신참> 영혼이다.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환성적인 모험이라고 소개되는 있는 걸 보고 책 내용이 엄청 궁금해서 구입했습니다. [누가 날 죽였지?] 소설의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는 이런 문장을 떠올리며 눈을 뜨는데 그는 죽음에 관한 장편소설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인기 추리 작가입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라는 궁금함과 소설이니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 이라는 사이에서 가브리엘이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의혹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매 뤼시 필리피니를 만나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기 시작합니다. 다음 권에서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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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 읽는 습관을 가질려고 노력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이 유명 작가인데도 이 분의 책은 "죽음"이라는 소설책이 처음입니다. 최근에 나온 "고양이"라는 책도 들어는 보기는 했지만 다른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인지라 무관심한 듯 넘어 갔는데 이 번에 "죽음"이라는 이 책은 제목에서 부터 호기심도 생기기도 했지만 너무 호응도가 높은 것 같아 구매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접한 첫 느낌은 이 작가님의 성향을 모르고 무턱되고 그냥 소설책 정도로 알고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책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작가님의 성향을 먼저 이해하고 두어 번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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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을좋아하는데 개미 이후 중학생아들의권유로 두권구매해서 잘봤습니다 .그의 필력이 돋보이기도 하구 자신의죽음을 파헤친 재밌는이야기. 간만에 잘읽었습니다. 주변에도 권유하고 싶은 책입니다. 다음번엔 어떤작품이 나올지 기대됩니다.ㅡ간단하고 명료한 날카롭고 경쾌한 필체를 가진 남자의 죽음이후 본인이 왜 죽었는지를 파헤치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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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영혼이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 다닌다는 다소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독자로서는 책장을 넘기면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읽을수록 판타지 영화를 한편 보는 듯한 느낌, 마치 내가 영혼이 되어 하늘을 떠다니며 죽음 이후의 세상을 체험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그의 상상력과 문장력, 탄탄한 스토리 전개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좋은 소설을 읽을때마다 느끼지만 작가들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에감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