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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쓴 농사 일기 11 -손 모내기
이것은 평등의 바다 위에만 심을 수 있는 우리들의 소중한 자유다!
날라리를 불어라 풍물을 울려다오 자아아- 어어이 못줄을 한 번 넘길 때마다 너는 뒷산으로 매기고 나는 앞산으로 받아 희망은 가차워지고 절망은 멀어진다 누가 이렇게 논을 골랐다냐 등 나오고 배 곯으면 피는 커도 모가 녹는다 자아아- 어어이 또 한 번 줄을 떼세 한 발 한 발을 옮길 때마다 사랑한다사랑한다사랑한다사?랑 한?다고 외치며 너에게 다가가지만 네 것이어야 할 허리는 논둑에 붙들리고 눈은 푸른 하늘에 빼앗겼다, 나는 이네 내가 아니다 자아아아 어어이- 저 혼을 부르는 소리에 육심마저 내려놓고 한없이 낮아져서 밟히고 뭉개지는 흙과 함께 수평이 되어서야만 비로소 너에게 다가갈 수 있을 뿐,
그리하여 우리가 몸에 새긴 수천수만의 푸른 직립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이 모여 손으로 모를 내는 변산공동체. 변산공동체가 있고, 변산공동체학교가 공동체 안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변산공동체는 처음부터 정식 이름이 변산공동체학교였다. 삶터와 일터와 배움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산과 들, 갯벌과 바다가 가장 큰 배움터인 학교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진다. 그곳에 가끔 모내기를 하러 다닌다. 처음 모내기를 하면서 느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모내기를 하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만큼 아파서 저절로 막걸리를 마시게 되는데 그때 함께하는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린이고 늙은이고 할 것 없이 함께하는 모두가 귀하고 고마운 일꾼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손으로 모는 내는 일은 수평이 되는 일이다. 한없이 낮아져서 밟히고 뭉개지는 흙과 함께 수평이 되는 일이다. 그럴 때 너에게 다다갈 수 있고 우리의 몸에 새긴 수천수만의 푸른 직립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모내기는 심은 벼 한 포기 한 포기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서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와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박형진 시인은 오롯한 농사꾼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나라 어느 시인이 한결같이 농사꾼이었는가. “사내의 엉덩이가 / 이제 조금 펑퍼짐해졌다 / 단단했던 젊은 날의 그것이 / 호미 들고 밭고랑을 기는 동안 / 이슬에 적시고 소나기를 맞고 / 바람에 깎이고 햇볕에 삭아서 / 거름 더미의 흙처럼 낮아졌다(「시로 쓴 농사 일기 27 - 대지의 몸」).
사실 손으로 모를 내는 것은 이앙기로 하는 것과 견주면 시간과 경비가 더 많이 든다. 그러나 기계는 오직 기계적 계산만 있을 뿐이다. 시인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소나기 조금 온다더니 / 종일 장맛비처럼 오시는 날은 / 풋매실 땅에 구르고 / 오래 아닌 땐 굴뚝에 / 푸른 연기 오른다, 산 꿩이 우는 / 툇마루 기대앉으면 / 살구 광주리를 머리에 인 / 이웃 마을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것만 같다 / 저 삼한적三韓的 친구가 / 밀 냄새 보리 냄새를 풍기며 / 찾아올 것만 같다”(「시로 쓴 농사 일기 13 - 우중雨中」) 그리하여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면, 그리고 시큼한 갈꽃의 냄새가 풍겨오면 직감으로 보리 벨 때가 되었다고 느끼는 천상 농사꾼, 천상 시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