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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 들려주는 미역창고(美力創考) 열두 마당
"바닷가 작업실에서 들려주는 미역창고(美力創考) 열두 마당" 내용보기
김정운 작가는 《남자의 물건》에서 2012년 이어령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무렵 작가는 다 때려치우고 한 일 년 쉬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 나라현립대 명예학장으로 있던 이어령 선생을 찾아갔더니 대학에 추천장을 써주더란다.작가는 2000년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명지대 대학원에서 여가경영학과을 신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2012년은 작가 나이
"바닷가 작업실에서 들려주는 미역창고(美力創考) 열두 마당" 내용보기

 

김정운 작가는 《남자의 물건》에서 2012년 이어령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무렵 작가는 다 때려치우고 한 일 년 쉬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 나라현립대 명예학장으로 있던 이어령 선생을 찾아갔더니 대학에 추천장을 써주더란다.

작가는 2000년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명지대 대학원에서 여가경영학과을 신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2012년은 작가 나이 딱 쉰이 되던 해였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지난 50년’ 동안 떠밀려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50년’ 동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2012년 1월 나라에서 혼자 지내며 글을 썼다. 그리고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아름다운 개울이 흐르는 논길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 상상이 간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그런 풍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이 배우고 싶어졌다.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 입학한 작가는 일본화를 전공했다. 4년 뒤 돌아온 그는 일본 유학 생활에서 느끼고 쓴 생각과 글을 모아『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펴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외로워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격하게’ 외로워하라고, 사람도 좀 적게 만나고, 바쁠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으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마스크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 작가는 자신이 낸 책(벌써 6권이다)의 거의 모든 표지에 자신의 사진을 실었다. 예외가 두 권 있다.『가끔은 격하게』에 자신의 그림,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를 실었고, 이번 신간 표지는 여수 바다와 추상을 오버랩한 것이다. 신간의 표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간은 추상하면서부터 창조적이 되었다. (84)

파도칠 때는 그냥 가만히 듣는 거다. 그대가 파도칠 때, 나도 그랬다.” (120)

 

 

그래, 이번 신간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파도와 추상.

독일어에 '슈필라움(Spielraum)'이란 단어가 있다. '놀이(Spiel)''공간(Raum)'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말에 정확히 대응되는 말은 없지만, '활동의 여지''여유 공간'으로 옮길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작가에 따르면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심리적 공간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서구의 근대 부르조아 출현 이후에 생긴 가장 큰 주거상의 변화는 남자의 방의 출현이다. 공간이 곧 의식을 결정한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 준비를 하는 김정운 작가


공지영 작가 역시 딸 위녕에게 보내는 글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원한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공 작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쓸쓸함 속에 잠기고 싶어질 때면 피지 섬, 그 열대의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일층은 맛있는 에스프레스 커피와 빵을 파는 곳, 그리고 이층은 레스토랑과 술집을 겸한 카페, 그리고 삼층은 엄마의 집필실 겸 거처. 너희들을 모두 성장시키면 그런 곳으로 이민을 가서 삼층집을 짓고 싶었어. 아침에는 일층에 내려와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시장에 들러 싱싱한 해물을 사고 저녁에는 맛있는 해물 요리에 향 깊은 포도주를 먹고 그리고 올라가서 자는 거지. 창마다 남색의 바다가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말이야. 아침에는 피아노 곡이 울리게 하고 해 질 녘에는 트럼펫을 듣고 깊은 밤에는 원주민 남자가 직접 부는 색소폰을 듣고......”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중에서

 

물론 방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방을 빼곡히, 그리고 신명나게 채울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파도와 노을로 맞이할 수많은 날들을 위한 의미와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을 선택했다. 그리는 주제는 사물이다. 사물은 사물이되,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창으로 들여다보는 사물이니, 추상에 가까운 사물이다. 공 작가라면 소설이 아닐까.

독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슈필라움을 이야기하듯, 뇌과학자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몸이 아플 때 발코니가 넓고 창이 커서 나무와 꽃이 잘 보이는 공간에 있으면 더 빨리 치유된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통영에 있는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기관으로 어린이와 부모를 대상으로 생태학습과 바다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나는 여기서 장엄하고 멋진 노을을 보면서 언뜻 슈필라움을 맛보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통영 한산도에서 여수까지(그래서 한려) 펼쳐진 바다를 아우른다. 바로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은 확 트인 공간에 맞춰 설계돼 자연과 바다의 풍미를 온새미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몇 채의 독립된 생활관도 운영하고 있어 며칠 머무르며 지낼 수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노을이 장관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 넘실대는 바다색,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나는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바다 속에 잠긴다. 잠시 고요한가하면 이내 흔들리면서 공진하고 교감하게 된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에 갇혀 숨막혀하던 내 몸과 마음이 비로소 숨을 쉬고 내면의 파동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보는 '창틀'은 내가 결정한 거다.

잘 안 보인다고 '남 탓' 하지 말아야 한다." (88쪽)

 

요즘도 혼자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 외롭고 낯선 공간에서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279~280)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 조너스 솔크는 장소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는 1950년대 백신을 연구하던 도중에 교착 상태에 빠졌다. 잠시 기분전환을 위해 안식년을 신청하고 그는 이탈리아의 아시시라는 마을로 날아갔다. 아시시는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곳으로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솔크는 강렬한 태양과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하릴없이 지내다 문득 어떤 영감을 얻었다. 얼마 후 연구소에 돌아온 그는 백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솔크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과 함께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고 근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신의 이름을 딴 솔크연구소를 세웠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솔크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솔크연구소에서 바라보는 노을 풍경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 정신건강전문의이자 신경건축학을 전공한 에스더 스턴버그 박사는 우리가 아름다운 경치나 숲과 바다 같은 풍경을 볼 때 엔도르핀 분비가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평화와 고요를 가져다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치유할 힘을 얻으며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게 된다. 어떤 면에서 자신만의 평화와 치유 장소를 찾는 것은 행복을 누리는 지름길이다. 사실 자신에게 알맞은 치유 장소를 찾는 것 자체가 곧 행운이다.

작가는 여수에서 남쪽으로 배를 타고 한 시간 더 가야하는 섬에서 다 쓰러져가는 창고 하나를 비싸게 주고 구입했다. 뭍에서 일군을 구해오고 자재를 들여와 새로 뜯어고치고 리모델링해서 올해 초 자신만의 공간을 완성했다. 이름하여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 사고를 한다는 뜻이다. 미역을 채워두던 창고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 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 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문화 연구소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 그동안 시간time’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space’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 (203)

 

사실 여수행은 작가가 꽤 오래 전부터 꿈꾸어오던 일이었던 모양이다. 여수 바닷가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 3년 전 일이요,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다 다 쓰러져가는 창고를 발견하고 어디 홀린 듯 빠져들었다. 이렇듯 작가는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고, 새롭게 해석하며 부단히 뛰어들어 몸소 체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림 그릴 때, ‘오리가슴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지적인 오르가슴, 예술적인 오르가슴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부터 사용했다. 진짜 즐거움은 공부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근사한, 기발한 발상인가.


바닷가 작업실에서 작가는 앞으로 10년간 해야 할 일의 계획을 짠다고 했다. 가령 슈베르트의 연가 '겨울나그네'를 번역, 해설하고 각 노래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그리는 것 같은 일이다.

계획은 벌써 착수되었음이 틀림없다. 책의 구성을 보면 사계절 1224절기를 본 따 12장과 24 키워드로 이루어졌다. 24 키워드는 24곡으로 짜여진 겨울나그네를 떠올리게 한다.

여수 바다에 물때가 있다.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번씩 반복되면서 만조와 간조 시각이 매일 정확히 49분씩 늦어진다. 이를 소홀히 하면 어떻게 될까? 작가가 오리가슴으로 이름붙인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치자. 자칫 바닷물이 빠졌을 때 수백 미터 앞까지 밀려갈 수 있다. 배를 갯벌에서 끌고 올 수 없으니 몇 시간을 그냥 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바다에서 선주로, 어민으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배움이 필요한 법이다. 육지에서 해오던 방식대로 살라치면 숱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바다에 순응하고 자연에 귀기울이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어야 비로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책은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질투열등감을 내려놓자고 우리를 다독(‘꼬이면 자빠진다!’ )이는가 하면, ‘성취경쟁의 규칙에서 벗어나 조그만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갖자고도 말한다(‘열 받으면 무조건 지는 거다). 바닷가 작업실에 있으면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구나 싶다.

 

 

나는 작가의 그림 미역창고에서 고흐의 노란 방을 떠올렸다. 고흐는 아를에서 2층 집에 노란 방을 구해 정착했다. 그는 자신이 세 들어 사는 건물과 노란 방을 몇 점 그렸지 않았던가. 또한 나는 김정운 작가의 책을 통해 뇌의 공간적 전환, 즉 인식적 전환intellectual turn을 얻는다. 작가의 글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달리 볼 수 있는 창을 얻고, 그 창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한다.

작가는 지적 호기심이 일 때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작가가 던져주는 지적 자극으로 충만할 수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또 다른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어 더 없이 좋다. 앞으로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 창고(創考)에서 우리에게 어떤 미역(美力)을 선사할지 기대가 자못 크다.

h*******c 2019.06.30. 신고 공감 2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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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김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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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에 맞춰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바닷물로 인하여 갯벌은 항상 변화한다. 하루에 이러한 변화는 2번 볼 수 있으니 잠깐 지나쳐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갯벌의 변화를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꾸준히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도 있다면 사색에 잠기어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운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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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때에 맞춰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바닷물로 인하여 갯벌은 항상 변화한다. 하루에 이러한 변화는 2번 볼 수 있으니 잠깐 지나쳐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갯벌의 변화를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꾸준히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도 있다면 사색에 잠기어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운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그러한 것들을 오롯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여수에서 그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바다를 보면서, 또 지금은 '미역창고(美力創考)'라는 그만의 바닷가 작업실을 만들어가면서 보내는 그의 전혀 다른 시간은 나를 사색의 물결로 채우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다시 여러번 들춰보는 것도 어쩌면 당장은 이 책으로 인한 사색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 벗어나서 여수에서 살면 뭐가 좋은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저자는 "인생을 바꾸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을 꺼냈다고 한다. 굳이 이 말이 철학자 알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시 공간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표현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바로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임에 반하여 저자는 공간은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방법 또는 수단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공간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주변에서 미친짓이라고 말림에도 불구하고 여수 끝자락의 섬에 새로운 작업실 '미역창고(美力創考)'를 만들고 있는 그는 진정으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우리가 삶에서 목표로 하는 공간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으로서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슈필라움(Spielraum)과 거리가 멀다라는 점은 문득 삶 자체에 괴리감마저 느끼게 된다. 정확히 슈필라움(Spielraum)에 해당하는 우리말의 표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괴리감은 이 시대에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 베텔하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이러한 공간의 부재를 통하여 슈필라움(Spielraum)을 '여유 공간'이 아닌 최소한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라고 재정의를 하는 부분은 이 책과의 만남으로 잠겨버린 '나'라는 갯벌이 언제 그 변화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지 쉽게 가늠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심지어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가족과의 공간이 우선이라는 기존의 상황은 저자의 아래와 같은 결심이 그저 있는 자의 여유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지금 이 섬의 미역창고(美力創考)에 작업실을 짓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할 것임이 분명하다. (중략) 아무리 괴롭고 문제가 많이 생겨도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서 왜 행복한가의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 p. 61 中에서 -

 

 사실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그리 색다른 개념은 아니지만, 저자는 그 공간의 물리적인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이 책에 대한 인세를 미리 받아서 그만의 작업실을 구축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눈으로 보이는 그러한 물리적인 공간이 만들어낸 사색의 물결이 어느새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저자의 생각이 공염불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눈으로 직접 그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시나 소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단정적 표현들 때문이다. 삶의 무게에 주눅 든 개인들은 감히 할 수 없는 통찰적 선언들을 작가들은 앞뒤 안 가리고 과감하게 내던진다.

 - p. 64 中에서 -

 일상의 다양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글로나마 해소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이러한 표현은 그가 시나 소설과 같은 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덧 우리는 이 책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된다.

 

 같은 시간에 속해 있다면 쉽게 알 수 없는 부분을 저자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품격을 충족시키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여타의 글들은 이러한 부분을 깊이 다루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하여 다소 어려운 표현들을 동원하여 보여주지만, 김정운의 그곳에서는 그러한 것조차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유시민 작가나 혜민 스님과 같이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을 자신의 외모와 성별로 매우 간단하게 극복하면서도 정작 이상순의 따뜻한 인상과 매력은 그의 어떤 것으로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상순의 아내가 이효리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이 만류하는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려는 그의 괴짜스러움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 인생을 자주 꼬이게 만드는 '질투' '열등감'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그가 그곳에 있기에 생각해 낼 수 있는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동시에 이런 여유가 그의 행복에 대한 심리학의 깊은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그가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내면을 향한 칼끝을 바깥을 향하는 것이다. (중략) 열등감은 외부로 투사하여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기 때문이다.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깊이 박힌 대못'처럼 그저 성찰의 계기로 품어야 한다.

 - p. 99 中에서 -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에서 질투와 열등감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인간이 타인과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극복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정작 극복할 수 있는 아픔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순응하려는 모순적인 상황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 발 비켜서서 이러한 것들을 '마음속에 깊이 박힌 대못'으로 수용한다. 이러한 대목들이 아마 저자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왜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그의 공간이 책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애서가에게는 분명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그의 '미역창고(美力創考)'는 그가 보유한 많은 책들과 함께하는 공간이기에 책을 통한 그의 행복론 역시 곧장 나를 이끌리게 한다.

 '침 바르기''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중략) '침 바르기'라는 존재 확인의 최후 보루가 독서라는 이야기다. 침 바를 일이 없으니 그렇게들 '분노와 적개심의 침'만 사방에 퉤퉤 뱉는 거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침바르기'가 동반되는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이다.

 - p. 127 中에서 -

 

 한국의 독서 실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우리의 시간 속의 현상을 그는 그의 슈필라움(Spielraum)에서 '침 바르기'라는 행위를 통하여 책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사람의 선택을 받는 책이 거꾸로 '침 바르기'를 매개로 하여 '존재 확인'이라는 의미로 연결할 수 있다라는 것이 어쩜 이렇게 물흐르듯이 연결시킬 수 있을까? 애서가로서 책을 읽을 때, 침을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은연중에 가끔 잘 넘겨지지 않는 책장을 살짝 찜을 발라서 넘기는 행위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메타 인지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오롯이 책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실제로 수많은 책을 소유한 그가 발췌독을 주장하는 대목 역시 나와 그가 속한 시간의 괴리감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었다. 아직까지는 읽기 시작하면 무조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인데, 저자는 오히려 정독이 다양한 책을 접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 지적하고 있으니 그러한 괴리감을 단번에 좁히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지적과 함께 바로 이 책을 어느 부분부터 넘겨보더라도 상관없게 글을 썼으니 그의 공간을 짓는 것처럼 실천으로 옮긴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이 책으로 인하여 생성된 사색의 물결로 덮인 나의 갯벌은 아직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단정할 수 없다. 그가 여수의 다양한 모습과 계절의 변화를 통하여 담론을 이끌어낸 것처럼 나 역시 내가 우선 살고 있는 곳을 직접 둘러보면서 바라보지만, 아직 큰 변화를 감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긴 바닷물에 잠긴 갯벌의 변화는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관찰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니 나 역시 내 주위의 이러한 모습을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곳의 변화만큼이나 내 자신의 변화 역시 그토록 빨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그래서, 잠겨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 전혀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그 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과 여운에 빠지게 된다. 읽을 때마다 달리 드는 생각들은 물때를 맞춰 변화하는 여수의 바다처럼 시시각각 많은 의미로 새롭게 보여지는 내용들로 인하여 이 책은 지금까지 여러번 넘겨보게 된다. 삶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읽을 때마다 나 역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져간다. 물론 저자처럼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여 온전히 나에게 맞춰 꾸밀 능력과 여유가 당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것처럼 일상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픈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통하여 그곳에서 나름의 시간을 보냈다면, 거꾸로 나만의 시간을 통하여 기존의 공간을 나만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거실 테이블은 낮에는 아이와 학생들이 아내와 함께 공부하는 공간이지만, 심야와 새벽에는 온전히 비어 있는 곳이다. 이 시간을 활용한다면 이곳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변화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저자와 같은 나만의 공간을 언제 확보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 불확실성을 희망삼아 현실을 활용하는 것이 나로서는 최선일 수 있으니 말이다.

 

g*******7 2019.06.24. 신고 공감 16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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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슈필라움에서 삶을 성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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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그러니까 한 10년은 지난 것 같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남자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확인을 하기 마련인데, 개발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남자들은 그것이 어렵다며 따라서 잘 놀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결론이 인상 깊어 지금까지 얼핏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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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그러니까 한 10년은 지난 것 같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남자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확인을 하기 마련인데, 개발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남자들은 그것이 어렵다며 따라서 잘 놀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결론이 인상 깊어 지금까지 얼핏이나마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 후로 저자의 책을 찾지 않을 것을 보면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찾아 읽게 된 것은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란 글귀가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독일어인 슈필라움은 여유 공간 혹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우리말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우리에게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었거나 아니면 그러한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라고 그는 해석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아파트라는 건축양식이 우리를 지배하면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사랑방과 내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이 주어졌었고, 설사 집안에 그런 공간이 없더라도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그런 공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 비로소 그런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지 싶다. 현대에 들어 옛날과는 다른 삶, 즉 끊임없는 경쟁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우리는 소위 ‘좋은 삶’과 그것을 이루어준다고 생각하는 ‘욕망’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생각이 미치면서 내 주위에 나를 성찰해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지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음을 발견하고서야 그런 공간을 찾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돌연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떠밀려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만의 일을 찾아 유학길에 오르고, 돌아와서는 충동적으로 전혀 연고도 없는 여수에 머무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만의 공간인 작업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고 했다. 이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저자가 자기만의 공간에서 쓴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저자의 생각과 거의 비슷해서였다. 저자는 자신만의 슈필라움이 필요했고 그래서 작업실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거창하지는 않았다. 그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회사를 관두면서 나 역시 충동적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연고가 전혀 없다는 것도 저자와 똑같다. 허름한 농가주택을 구입해 개조하면서 맨 먼저 만든 것이 서재였다. 안채와는 떨어져 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책이지만 그것들을 모아 내 기준대로 책장에 꽂고, 커다란 책상과 의자와는 별도로 앉은뱅이책상도 마련하였다. 관심이 없는 tv 같은 것은 아예 들여 놓지도 않았다. 그리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의 시선도 느끼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싶으면 읽고, 잠이 자고 싶으면 자고,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몸에 베인 강박관념과 타인의 시선을 떨쳐내고 나답게 사는 법을 생각해보고 싶었기에 때때로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책을 보면서 저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에세이들을 읽는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생각해본다. 그의 글 한편에 눈길이 머문다. ‘은퇴하면 바로 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은퇴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기준이 그 시절의 가치에 맞춰져있다.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우리 모두가 지금 아무 생각 없다. 바로 앞선 세대의 노욕을 보면서,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던 것이 짤리고 보니 다 이해 된다고도 했다. 특히 정치, 경제권에서 저렇게까지 하고 싶을까 했던 선배들에게 주어진 그 기회가 부럽다고도 했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195쪽) 우리라는 단어를 나로 바꾸면 바로 내 얘기가 된다. 그러기에 더욱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말 마냥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최소한이나마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원하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곤 한다.

 

집에 딸린 조그만 밭이 있다. 텃밭이라고 하기엔 조금 넓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기엔 형편없이 작은 규모다. 그 밭에 이런저런 작물을 심으면서 노동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평생을 책상에서만 앉아 일을 했는지라 몸으로 하는 일은 힘들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내가 언제 이렇게까지 땀을 흘리며 몸으로 일해 본적이 있었는지에 생각이 미친다. 아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싶다. 연고가 없는 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인 남성들은 평생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 하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며 평생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211쪽)는 저자의 말이 공감이 가는 이유이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 가능하면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꾸는 것이 가능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비가 온다. 그동안의 더위를 씻어내는 단비다. 이제는 바람도 멎었고 주위가 조용하기만 하다. 서재에 앉아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정원이 평화롭기만 하다. 커피 한 잔을 곁에 놓고서 젊은 날, 도시에서 살며 내가 소망했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시 돌아보며 지금의 내 삶은 어떤지를 성찰해본다.

k*****1 2019.06.10. 신고 공감 1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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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공간충동의 기록 -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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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카메라에 빠져서 꽤 비싼 돈을 주고 니콘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을 찍어러 다닌 적이 있다. 여행 갈 때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찍고, 예쁜 거리를 보면 찍고... 아무튼  꽤 많은 사진을 찍은 것 같다.  그 당시 촬영한 슬라이드 필름들과 함께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을 상자 하나에 담아 안방에 잘 모셔두고 있는데 얼마 전 아내가 책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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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카메라에 빠져서 꽤 비싼 돈을 주고 니콘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을 찍어러 다닌 적이 있다. 여행 갈 때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찍고, 예쁜 거리를 보면 찍고... 아무튼  꽤 많은 사진을 찍은 것 같다.  그 당시 촬영한 슬라이드 필름들과 함께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을 상자 하나에 담아 안방에 잘 모셔두고 있는데 얼마 전 아내가 책상에 쌓여있는 책들과 함께 답답하고 걸리적 거린다고 얼릉 치우라고 핀잔을 줬다.(벌써 여러번이지만 한 귀로 계속 흘렸는데 그날 따라 좀 심하게 핀잔을 줘서 맘이 좀 상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자는 내 옷장으로 옮기고 책들 중 오래된 책은 기부, 나머지 새책들은 거실 책장 위로 피신시켰다.

 

 집 사정상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없는 처지를 한탄하던 중 만난 책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슈필라움 '미역창고 이야기'인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이다.

  '놀이Spiei'와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우리말은 없다고 한다. 평소 점잖은 사람들도 자동차만 타면 절대 안 비켜주는 이유가 자동차 운전석만이 자기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런 현실에서 저자 김정운이 어떤 연고도 없이 충동적으로 내려와 살게 된 여수에서 나만의 공간인 '미역창고'에 자리 잡기까지의 '공간충동'의 기록인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책은 여수의 사계절 풍광 사진과 함께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작가의 유쾌한 글들로 인해 책장이 술술 넘기게 된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 글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듣고 싶은 내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저자는 여수에 내려가 횟집을 하다가 망해 창고처럼 버려진 곳을 싼 월세로 얻어 화실을 만들고 창문 너머 바다가 좋아(동해나 제주도 바다도 좋지만 수시로 변하는 뻘이 있어야 진짜라 한다.) 서울의 집을 완전히 정리하고 여수에서 후반기 인생을 보내리라 결심하게 된다. 저자는 집주인에게 시세의 두 배를 주겠다며 집을 팔라고 몇 번을 부탁했지만 집주인은 자녀들과 외딴섬에서 행복하게 사는게 자신의 꿈이라고 하며 거절해 결국 그 집 구입을 포기 하고, 월세를 소개해 주었던 박화가의 도움으로 바로 눈 앞에서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바닷가 화실을 갖고 싶은 저자의 소망대로 여수 남쪽 섬의 낡은 창고를 시세보다 두배나 주고 구입하게 된다.(몇달 후 친구를 위해 인근 섬의 땅을 알아보던 중 부동산 중계업자에게 그 낡은 창고를 시세보다 두배나 주고 산 정신 나간 사람이 있다고 비웃음을 받게 되지만 저자는 어릴 때부터 꿈꿨던 바닷가 땅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구입한 여수 남쪽 섬 작업실 이름을  '미역창고'!'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 라고 폼나게 짓게 된다. 바닷가 섬에 작업실을 짓는 여정은 육지보다 비싼 건축비와 한창 공사 중 태풍이 불어 자재가 다 쓸려 가는 사건도 발생하지만 자신의 소망대로 천장을 높게 만들고 벽 가득 책장을 만드는 등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 책장을 만든 후 빈 책장을 채워가는 모습은 자동차 운전석만이 나만의 공간인 나에게 자연스럽게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된다.

 

 

 

 

 책은 저자 김정운이 자신만의 공간인 "미역창고"가 자리잡아 가는 이야기 뿐만아니라 문화심리학자답게 사회 현상에 대해서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들어 오늘날의 엄청난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낡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냐는 이야기로 1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아는데로 '증기기관' 때문이라는 것은 다 알지만 2차, 3차, 4차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분명하지 않고 왜 매번 '혁명'이라고 하는지 애매하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나 또한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바프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지만,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대변혁 시대에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저자 말대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한 관심가는 내용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는 이야기인데, 나처럼 책 한권을 완독해야만 책을 다 읽었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으로 아무리 책 값이 올랐다고 해도 가성비 높은 여가생활은 책 만한 것이 없었을 듯 싶다.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띄엄띄엄 골라서 읽으라고 목차도 있고, 색인도 있는 거다. 하루에도 수만, 수십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느 세월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골라 읽는 '발췌독'이야말로 '의미 구성'이 가능해지는 주체적 독서법이다. 책은 진짜 재미있고, 정말 중요한 것만 끝까지 읽는 거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어디 가지 말고 계획한 휴가비로 책이나 수십 권 사서 읽자! 이왕 돈 쓰는 김에 내년치 휴가비도 앞당겨 폼 나는 '프로이트식 카우치'도 장만하자! 침을 마음껏 바를 수 있는 책이 그래도 싸다! - P. 131

 

 김정운의 자기만의 공간인 '미역창고'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하루에 배가 세번만 다니고 그 섬에 내리는 승객이 저자 한명 밖에 없을 때가 많은 외로운 여정이지만, 빈 책을 채워가며 늙어가겠다는 저자의 포부답게 이 땅에 자기만의 공간이 자동차 운전석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첫 발걸음의 시작인 것 같다. 비록 구매가보다 수리비가 더 들었지만 지금 자신만의 배 '오리가슴'을 타고 여수 바다에 떠 있는 저자의 꿈을 응원하며 다음에 여수 남쪽 섬 '미역창고'에서 집필 할 김정운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9.06.24. 신고 공감 1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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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나만의 주체적 공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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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필라움이란 “심리학자의 눈에는 ‘슈필라움’이라는 단어가 아주 특별하다. 흥미롭게도 독일어에만 존재하는 이 단어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p. 6] 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한국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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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필라움이란

 

심리학자의 눈에는 슈필라움이라는 단어가 아주 특별하다. 흥미롭게도 독일어에만 존재하는 이 단어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놀이[Spiel]’ 공간[Raum]’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p. 6]

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한국어는 없다. 아니, 한국어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의미하는 슈필라움의 공간은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가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거나 그러한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p. 6] 

 

왜 그런 것일까? 과거의 주된 주거형태였던 한옥이나 현재의 주된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그런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한옥의 사랑채가 그런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곳이 다른 이로부터 격리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은 아니다. 바깥주인이 주로 거처하면서 외부의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이니만큼 오히려 사무실에 가까운 업무공간으로 느껴진다.

아파트의 안방도 마찬가지다. 부부 공동의 공간은 되겠지만, 어느 한쪽만의 은밀한 공간으로서의 안방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슈필라움을 대체할 한국어가 존재하지 않을 수 밖에.

 

어쩌면 사춘기 때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공간을 갈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슈필라움, 독일식 AT필드 

 

슈필라움을 가지려면 일단 물리적 공간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물리적 공간이 꼭 건축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그 공간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취향과 관심 등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슈필라움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인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AT필드(Absolute Terror FIELD)’와 비슷하다. 마음의 벽이라고 볼 수 있는 AT필드는 로서 있게 해 주는 힘이자 타인과 구분된 인간의 독립된 자아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슈필라움은 감시로 여길 수 있는 타인의 시선이 함부로 나에게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다. , 사회생활을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쓰는 가면을 더 이상 쓰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막말로 홀딱 벗고 자연의 상태 그대로 있을 수도 있는 공간인 셈이다.

그렇기에 숨막히는 도시생활을 벗어나 텃밭을 가꾸는 귀농생활을 꿈꾸는 것도 슈필라움에 대한 갈망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물론 농촌의 좁은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면 귀농이 슈필라움에 대한 해답일지는 의문이지만…….

 

어쩌면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나만의 슈필라움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슈필라움이 없다면 AT필드가 중화되어 버린 인류처럼 내가 아닌 전체를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릴 테니까.

w******f 2019.06.16. 신고 공감 12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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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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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문화심리학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엉뚱함과 진지함이 어우러진 재미있던 글로 기억한다. 이 책 또한 그랬다. 제목에서 벌써 낭만이 느껴진다. 바닷가 공간에 작업실이라니! 뭍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 흐를 것 같다. 아무 연고도 없는 여수 바닷가에, 어릴 적 좋아하던 꿈을 위해 화실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를 들려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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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운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문화심리학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엉뚱함과 진지함이 어우러진 재미있던 글로 기억한다이 책 또한 그랬다제목에서 벌써 낭만이 느껴진다바닷가 공간에 작업실이라니뭍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 흐를 것 같다아무 연고도 없는 여수 바닷가에어릴 적 좋아하던 꿈을 위해 화실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는 멋진 뜻이 담긴 공간여수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직접 그린 그림도 눈을 즐겁게 한다이 책은 저자가 슈필라움을 꿈꾸며 살아온 지난 몇 년간의 삶을 조선일보에 연재했고그 글들을 모아서 출간했다고 한다.


 생소하고 낯선 단어 슈필라움(spielraum)’이 왠지 근사하게 느껴진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단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인데 그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고 했다우리에게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었거나 그런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도 예전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시내 접근이 용이하면서도 약간 변두리라도 공기 좋은 곳마루가 있는 주택이며 마당도 있었으면 좋겠다아니다마당이 있으면 쓸고 관리를 해야 하니까 일이 많아지려나조그마한 텃밭이 있어서 채소를 가꾸어 먹어도 좋겠다거기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방해받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글을 쓴다면 엄청 잘 써지지 않을까새벽에 일어나서 시원한 공기도 느껴보고저녁 해질 무렵이면 아름다운 노을도 볼 수 있고 얼마나 좋아이런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역시 남자가 쓴 이야기라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특히 한국 남자들의 슈필라움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할 수 있었다자동차 운전석에 대한 애착이나 자연인’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를 알게 되어서 너무 웃겼다버지니아 울프가 저절로 떠올랐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으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던초고속 성장을 경험한 우리 사회의 사회심리학적 문제는 슈필라움의 부재에서 찾는다남녀를 떠나 심리적 여유 공간이나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물이 들 때가 있고나갈 때가 있다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당연히 있다이 물때와 같은 시간마저 통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항상 잘되어야 하고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p44)


 여수에서 정착하기 위해 배 조종 면허까지 따는 등 발품을 팔아 준비하는 과정은 제법 진지하다바다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선 그 정도는 해야겠지만역시 아무나 못할 일이다. ‘물때라는 말도 뭍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하루 중 밀물과 썰물이 있고 물이 들고 빠지는 사리와 조금이라는 이 물때와 우리의 에서의 시간기다림에 대해 성찰이 느껴져 좋았다역시 장소가 바뀌면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겠다물의 흐름을 보고 느끼며 기다림을 배우고 둥근 마음으로 변화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이미 있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는데여기서 낯선 단언적과 담론적이란 단어가 나온다문학과 예술이 단언적이라면 학문은 담론적인 것이라 한다. ‘산업혁명’ 자체가 과학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지식혁명인데 어떻게 낡은 개념인 산업혁명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담론적이어야 할 학문적 개념을 단언하며 혼란을 부추긴 상황을 질책하는 것 같다너무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단언적인 삶, ‘나다운’ 삶을 살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깊이 공감했던 문장


공연한 불안의 개념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 개념들을 가나다순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개념의 개념화’, 즉 메타 개념화라 할 수 있다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인 자기 성찰’ 또한 이런 메타 개념화의 한 형태다개념화된 불안을 다시 한 번 상대화하면 불안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더 이상은 정서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정리되지 않은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른다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힘으로 도무지 감당하기 힘들어진다.(P83)


조금 틈만 생기면 걱정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난다. 거의 쓸데없는 걱정이 대부분이라는데. 그래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불안의 개념화, 이 방법으로 소중한 시간을 벌어야겠다.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P115)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공간은 매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의식을 변화시킨다오늘날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그동안 시간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P203)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된다. ‘직선의 모더니티는 평균수명이 채 50세도 안 되던 시절의 이데올로기다. (중략평균수명 100세 시대에는 하면 된다가 아니다되면 하는 거다부딪히면 돌아가는 곡선을 심리학적으로는 관대함이라 한다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못하는 거다이렇게 곡선의 섬에서 직선의 삶에 관한 메타 인지적 통찰을 얻는다.(P231)


내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면열이면 아홉이 꼭 물어봅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말문이 콱 막히는 질문입니다그런 질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단언컨대책은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닙니다앞으로 읽으려고 책장에 꽂는 겁니다책장에 책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P273)


빵 터졌다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지만 신간에 자꾸 눈이 가서 이래도 되나 했는데 이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언젠가는 꼭 읽을 테니까책이 가득한 책장을 보는 뿌듯함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살던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분명히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 같다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는다경제적인 여건도 받쳐줘야 하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좌절해야 하나아니다현재 살고 있는 집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면 된다자신이 원하는 곳에 꿈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여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짧은 인생이니까지금 여기서 소박한 공간이나마 만들어 놓고 꿈을 키워나가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면 된다나는 이렇게 위안을 삼으려한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저자의 외국어 실력이다세상에나는 겨우 일본어 공부 하나로 쩔쩔매고 있는데 모국어 외에도 3개 국어라니

100세 시대의 무기는 외국어 공부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그래서 좀 더 분발하기로 했다.


 저자의 바닷가 작업실을 엿보는 것은 부럽고도 동기부여가 되는 시간이었다신혼시절 1년 넘게 여수에서 산 적이 있다.(그때는 여천이었다.) 그 동네 작은 기차역이 아직도 있는지 아름다운 절 향일암은 어떻게 변했을까 문득 궁금하다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펼쳐지는 도전적인 삶그 이야기를 공유한 저자에게 감사드린다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푸른 바다와 대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미역창고에서 창조하는 좋은 책과 멋진 그림 많이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리뷰 대회를 계기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h*****7 2019.06.29. 신고 공감 1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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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나만의 공간에서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나만의 공간에서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내용보기
1.아이들은 부모나 형제들로부터 독립된 ‘자기 방’이 처음 생기면 너무 행복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다. 딱히 숨길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타인들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슈필라움’을 지키기 위해서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의식’을 공간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은 이렇게 아주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나만의 공간에서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내용보기

 

1.

아이들은 부모나 형제들로부터 독립된 ‘자기 방’이 처음 생기면 너무 행복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다. 딱히 숨길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타인들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슈필라움’을 지키기 위해서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의식’을 공간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은 이렇게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슈필라움’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단어다.

 

…중략…

 

유명 디자이너의 비싼 인테리어 가구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슈필라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취향과 관심이 구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던 나의 꿈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거나, 내 소유의 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나만의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진정한 내 ‘슈필라움’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슈필라움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져가는 저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에세이다. 그것도 바다사진 가득한.

 

저자가 찍은 사진들과 또 때때로 들어가 있는 저자의 그림을 보다 보면, 이 여름, 어딘가 모를 상쾌함이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새로운 기운들이 솟아난다! 그래서, 금방 읽어버렸다. 길이가 짧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나의 독서욕구를 자극해 그의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허헛! 나 최대한 천천히 읽었다고요……

 


2.

온 사회가 관음증이다. 소셜 미디어는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의 주인들에게 어제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시로 알려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시시콜콜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노출증이다. 관심이 전혀 없는데도 자꾸 보라고 한다. 결국 훔쳐보고야 만다. 관음증과 노출증은 동전의 양면이다.

- ‘눈이 작은 사람은 만만하지 않았다’ 중에서

 

→ 어쩌면, 에세이를 읽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도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 나의 삶을 보이고 싶고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교묘하게 맞물려 에세이가 탄생하고 또한 에세이가 잘 팔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에세이를 쓰는 자체를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희망을 갖게 되기도 하고, 에세이를 통해 삶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에세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다는 인식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에세이가 마음의 평화를 주기도 한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처럼.

 

이 속에는 바다 같은 평화가 있어서 좋다. 저자의 많은 생각들, 저자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저자의 에피소드 등은 그냥 일상이고 그 속에 평화스런 삶이 있다. 이렇게 보니, 나의 삶도 지극히 평화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격정적으로 살아온 삶은 아니었던 거 같은 이 느낌은 뭘까.

 


3.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란을 삶는다.

 

내게 삶은 계란이다!

- 당신의 행복 따윈 아무도 관심 없다 중에서 -

 

→ 때로는 이건 아니다 싶은데, 눈 감아버릴 때가 있다. 기분은 나쁘고 더럽지만, 내게 아주 큰 피해를 주는 게 아닐 때 그렇다. 그렇게 기분이 더러운 날은 며칠이고 참고 견디지만, 좀처럼 기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럴 때 무언가를 하면 흥분상태가 되어 실수를 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음번에 그런 상황이 오면 반드시 적절하게 따질 거라고. 또다시 그런다면, 나는 당신을 신고하겠노라고. 식어간, 삶은 계란 두 개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무조건 용서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세상엔 용서만으로 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4.


한국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큰일이라고 아주 정기적으로 호들갑이다. 독서율에 관한 통계 자료들을 검색해서 자세히 살펴봤다. 뭐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다. 매번 ‘꼴찌 증명의 기준’으로 동원되는 ‘OECD 평균’에도 그리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보다 독서율이 높은 나라는 주로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과 같은 북유럽의 나라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다. 일단 겨울이 무지하게 길다. 오후 두세 시면 깜깜해진다. TV도 너무 재미없다. 대부분 토론프로그램이다. 드라마도 보고 있기가 참으로 딱한 수준이다. 한국처럼 ‘출생의 비밀’ 따위는 그리 큰 문제 안 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긴 겨울밤, 붉은 백열등 불빛 아래 책을 읽는 것이 우아하게 폼도 나고, 시간도 잘 간다.

 

…중략…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띄엄띄엄 골라서 읽으라고 목차도 있고, 색인도 있는 거다. 하루에도 수만, 수십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느 세월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골라 읽는 ‘발췌독’이야말로 가능해지는 주체적 독서법이다. 책은 진짜 재미있고, 정말 중요한 것만 끝까지 읽는 거다.

 

-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중에서

 

→ 나도 공감한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보이는 곳에서 읽지 않아서 그렇지, 책 읽는 사람들은 내 주위에도 많다. 드러내질 않을 뿐이지. 책을 읽는 사람은 최소한 1주일에 한권은 읽는 듯 하다. 도서관에 가도 카페에 가도 전철에서도 책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고 하는데, 이북을 읽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서점도 많고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우리나라 독서인구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문제는,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안 읽는다고 한탄하고 있는 부정적인 시각이 문제다. 책의 종류는 다양하고, 다양한 책 중 어느 책인가를 읽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제, 우리도 패러다임 전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 책 많이 읽어요! 그러니, 보다 더 많이 응원 좀 하자구요~  책 권하는 사회, 어떤가요!

 

 

5,


난 살면서 ‘올 한 해 경기는 아주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경제 전문가의 에측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경제의 미래는 항상 나쁘고 어렵다. 그들의 예측이 옳았다면 한국 경제는 이미 망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는 매년 성장했고,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골프 드라이버 광고야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경제 전문가는 왜 그따위 ’거지 같은 미래 예측‘을 하는 걸까? 욕먹지 않으려는 거다. ”나빠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가 경제가 좋아지면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좋아졌으니 남 탓할 이유가 없는 거다.

- 냉소주의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아무리 경제가 좋아도 누군가에게는 항상 경제가 어렵고, 누군가에게는 항상 경제가 좋다. 하루하루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사회단체나 정부의 정책이 풍요로운 경제고, 사업하다 망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망친 경제다. 그러니까, 경제가 어렵다느니 하는 전문가의 말에는 신경써야 할 이유는 없다. 어떻게든, 지금의 나에게서 풍요의 법칙을 찾아보려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 나도! 그렇다. 지금의 경제? 나쁘지 않은데, 뭐가 나쁘다는 건지? 실감할 수 없으면, 공감도 가지 않는다.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냥, 내가 지금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에겐 풍요로운 경제라 할 수 있는 긍정적 인식, 그것이 중요하다.

 

 

6.

’자기만의 방‘ 출입문은 꼭 밀어서 여는 문이어야 한다. 조금씩만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당겨 열면 방 안이 한번에 다 들여다보인다. 그래서 침실 문이 죄다 밀어 여는 방식인 거다. 한 번에 다 보이면 서로 낭패다.

타인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주 천천히 밀어 여는 거다. 사랑할수록 조금씩 밀어 여는 거다.

-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 중에서


→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던 나의 꿈은 나의 프라이버시와도 직결된다.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고 나의 할 일을 하고 싶었다.누군가의 사랑이란 걸 받는다는 걸 느끼지 못했던 청소년 시절, 나는 정말 나만의 방이 아니라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에서야 꿈을 꿀 수 있었단 거겠지!

 

 

7.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저녁노을 앞에서의 하염없음‘과 같은 공간적 오리엔테이션의 변화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동반한다.

-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중에서

 

→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고 난 후의 지금은 난 아주 느낌이 좋다. 나만의 ’슈필라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이 공간에서 멀리 볼 수 있는 나의 삶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날의 아픔, 지난 날의 불쾌함, 지난 날의 서러움, 그런 것들 모두 이 공간에서 날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당당하게 내게 주어진 길을 향해 걸어야겠지. 나만의 작업실에서도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나만의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른다. 내 삶을 돌아보게 했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내게 그렇게 시간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나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어우러져 또다른 시간의 흐름이, 또 다른 슈필라움이, 이 글을 보는 그대에게도 전해져 흐르길.

 

 

 

h******o 2019.06.09. 신고 공감 10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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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에서도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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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가 교수직을 그만둔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할까? 라는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많은 책이 나왔지만 손이 가지 않았고, 이 책으로 처음 저자를 만났다. 안정된 직장, 힘든 길은 나의 잣대일 뿐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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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운'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가 교수직을 그만둔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할까? 라는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많은 책이 나왔지만 손이 가지 않았고, 이 책으로 처음 저자를 만났다. 안정된 직장, 힘든 길은 나의 잣대일 뿐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우월한 '마스크' 때문은 절대 아니다. 표지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슈필라움의 심리학]에서 슈필라움은 생소한 단어였다.

 

 놀이 (Spiel ) 와 공간 (Raum )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p6

 

 그는 '공간충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 .  저자는 그런 완벽한 공간으로 여수의 '미역창고 美力創考  '를 선택한 것이었다. 바닷가에 딱 붙어있는 100평 남짓의 다 쓰러져가는 미역창고를 발견했다. 남쪽 끝 여수에서 배 타고 또 한 시간 걸리는 섬에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을 말리는 사람들, 나도 굳이 왜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내세우는 이유를 듣고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오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도록 난 한번도 내 구체적 '사용가치'로 결정한 공간을 갖지 못했다. 이 나이에도 내 '사용가치'가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하고, 추상적 '교환가치'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면 인생을 아주 잘못 산 거다. 추구하는 삶의 내용이 없다는 뜻이기때문이다. 섬 작업실 공사의 경제학적 근거는 이렇게 간단히 정리했다. -p 60

 

 무엇보다 심리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맘에 들었는데,'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그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한 일에 대한 후회'가 낫다는 것.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서 왜 행복한가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낼것이다. -p 61

 

 나도 사용가치에 무게를 두기에 외부의 바람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지만,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은 끊임없이 하고 있기에, 그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선택하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 간다면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섬 생활에서 외로움에 대한 극복 방법은 조금 신빙성은 없어보이지만, 생각은 자유고,  선택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나름 괜찮은 방법일 수도.

 

 '미역창고 美力創考 '라는 이름의 작업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조금 긴 - 에필로그]에 실려있었다. 지리적 특성상 돈도 많이 들고, 많은 난관들이 있지만, 그곳에서 그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이 되었다. 내 마음도 붕붕 떠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미역창고 '에서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는 자신의 슈필라움 '미역창고'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번역 해설하고 각 노래에 맞는 그림을 크게 그리려한다는 그의 꿈을 듣는 순간, 역시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구나 싶었다. 책을 쓰고, 그 수익으로 빈 책장을 채우고, 그 책을 바탕으로 또 좋은 책을 쓰는 선순환을 바라는 그의 꿈도 꼭 이루어지기를.

 

  그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었나보다. '미역창고' 이야기만 실컷 했다.  [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나름 화가' ] 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정말 와 닿는 글, 마음에 드는 그림도 많았었는데 말이다. 24개의 키워드로 쓰여진 글과 그에 어울리는 그림들. 스스로도 말했듯이 딱히 화풍이랄 것 까지는 없었지만, 메세지만큼은 아주 정확하게 전달하는 그림은,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군데 군데 터져나오는 웃음 코드로 인해 몇 번을 멈추고 남편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자기야, 자기처럼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대, 그래야 말년의 꼰대를 면할 수 있다는데. " 남편도 수긍을 하고는 뭘 배울지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냥 툭툭 던지는 농담조인듯 한 말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냥 웃어넘겨 버리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내면을 향한 칼끝을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 이슈는 양국단에 치우친 이들의 이해하기 힘든 공격성과 적개심에는 이같은 '투사'의 매커니즘이 숨어있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여전히 적을 만들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들이다.그러다 죄다 한 방에 훅 간다. 열등감은 외부로 투사하여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기 때문이다.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곳에 깊이 박힌 대못'처럼 그저 성찰의 계기로 품어야한다.-p 99

 

 지금의 사회를 둘러보면 저 글의 의미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부터라도 구조적인 문제라든지, 사회문제라든지,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이라든지 하면서 책임을 전가시켜서는 안될듯하다. 문제가 해결이 되기보다는 내 마음 속에 분노만 더 커졌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프란츠 카프카, 슈테판 츠바이크와 같은 인물들의 문학적 사유의 원천이 '유대인 열등감' 이었다는 말은 의외이긴 했지만, 인종적 열등감을 풍요로운 상상력의 원천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느닷없는 질문으로 조급해진다면 음악회를 찾는 게 좋다. 몸으로 느껴지는 음악은 삶의 시간을 여유롭게 만들어준다.-p 144~145

 

 문화와 예술의 존재 이유에 관한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했다는 그의 자신감에 힘을 더해주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볼 참이다. 김정운 작가의 글은 처음이었는데, '문화심리학자'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현 모습에 대해서도 , 나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많은 질문 또한 던져볼 수 있었다는 것도 좋았던 점이었다. 여수는 세 번 가봤다. 향일암엘 들르고, 게장을 먹기 위해서 간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미역창고'라는 슈필라움에서 책과 그림을 만나고 있을 작가를 떠올리는 것이 추가되었다.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라는 말을 종종하는데, 그러고보니 그때의 나만의 공간이 '슈필라움'이었던것이다. 나에게 슈필라움은 당연히 서재다. 집안 일을 하는 시간이나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고개를 돌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기도 하고, 창 옆에 놓여 있는 화분에 한참동안 시선을 두기도 한다.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 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오늘도 이 공간에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내 '슈필라움' 에서 나도  저자처럼 멋진 꿈을 한번 꾸어보고 싶다.

 

 

 


 

 

 

이 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읽었던 책이라고······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기에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생각났던 책이었는데,)

결국은 구입을 했다.

그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 몇년간 본 책 중 가장 흥미로웠다.

모름지기 문화사는 이 책처럼 재미있어야 한다.

- 김정운 ( 문화심리학자 )

 

그 책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1913

1913년 세기의 여름

 

 



YES마니아 : 로얄 j*****3 2019.06.30. 신고 공감 1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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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에 있을 때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나만의 공간에 있을 때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내용보기
그냥 바보가 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원들끼리 하는 얘기다. 어제 점심 때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디에서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오래 앉아 일하면 뇌세포가 파괴되고, 수명이 짧아진다는 보도 내용을 인용하며 이래선 안 되는데, 하고 걱정만 한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하니 말이다. 일상이 바뀔 일이 없으니, 탈출구는
"나만의 공간에 있을 때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내용보기

그냥 바보가 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원들끼리 하는 얘기다. 어제 점심 때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디에서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오래 앉아 일하면 뇌세포가 파괴되고, 수명이 짧아진다는 보도 내용을 인용하며 이래선 안 되는데, 하고 걱정만 한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하니 말이다. 일상이 바뀔 일이 없으니, 탈출구는 없는 셈이다. 그렇게 포기하고 살면,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될 거다. 뇌세포도 파괴되고 건강이 나빠져 수명도 짧아질 거다.

 

소설을 읽으면 뇌기능이 활성화 된다고 해서 좀처럼 안 보던 소설책을 집었다. 막힌 뇌회로를 뻥 뚫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책 읽기도 쉽지 않다. 시간 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 평일엔 일하느라, 주말엔 아내가 시키는 일 하느라. 책을 읽지 못할 핑계거리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명상이 좋다지만 아예 엄두도 못낸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하라리는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한단다. 자신을 관찰한 덕분에 집중력과 명정함을 얻게 된다고. 그러지 못하는 나는 그냥 생각없는 사람으로 산다. 

 

'심리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_(p.11)

 

자주 하는 생각이 내가 된다. 내 생각을 안 하면 딴 생각을 내게 주입하게 된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새긴 무의식에 의지해 사는 우리다. 잠깐이라도 정신 차릴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일상의 방향을 정한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느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하루 종일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는 직장인에게 '여유'가 절실한 이유다. 사색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시간이라도 다르게 써야 한다. 평소와 전혀 다르게 쓸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이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으며, 성찰을 위한 '여유 공간'에 대한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슈필라움Spielraum'이라는 단어는 생소하지만 대충 감은 잡힌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고 했던 김정운 소장이자 화가의 의도를 내 맘대로 정리했다.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가지라는 것. 일단 책에서는 물리적 공간을 많이 이야기한다. 여수, 그리고 미역창고. 그의 말마따나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면, 심리적 공간은 자연스럽게 확보될 것 같다.

 

이 책은 그의 '슈필라움'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미역창고로 가는 길.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 내 맘대로 해도 누가 뭐라 안 하는 공간. 거기에 있으면 사색하고 성찰하고 대화하며 잃어버린 나를 찾게 되는 공간. 그리고 중요한 것,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공간.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직장인들 소망은 비슷하다. 그냥 떠나고 싶다. 날씨만 좋아도 마음은 이미 딴 곳에 가 있다. 그런데 실제 떠밀어 보내면 오래 못 있을 거다. '할 일'이 준비 안 됐기 때문이다.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_(p.206)

 

저자처럼 물리적 공간을 만들기 힘든 나는, 일상의 공간을 억지로 내 것으로 만들어 쓴다. 그것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출근해 독서하고, 글을 쓰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혼자 깨어난 집, 혼자 출근한 사무실. 타인의 시선이 없는 시간대의 공간이다. 그때 떠올리는 생각, 정리한 글은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때만 깨어나는 나만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매일 그 시간, 그 공간을 내 것으로 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지 않으니 그렇게 떠밀려 살면서 우울했던 겁니다. '먹고 살기 힘든데'라는 핑계로 내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소홀히 했기에 그렇게 짜증만 내고 살았던 겁니다._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중에서.

 

직장인에게 중요한 건, 일단 여유 시간을 만들 것, 그리고 뭘 할지 정하는 것이다. 바쁘게 살면 몸도 마음도 생각도 사는 틀에 맞춰진다. 그런 악순환을 벗어나는 길은 내적대화가 가능한 시간, 생각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럼 알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잘 할 수 있는 게 무언지. 여유 공간, 여유 시간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여유'는 단순히 휴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운동을 하든 내게 의미 있는 활동으로 채우는 것이다.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공간 이동을 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떠날 형편이 안 된다면 말이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한 발짝만 물러설 수 있으면 된다.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에 활용해 보는 것. 그 시간엔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며, 내게 의미 있는 활동들로만 채운다. 어떨 땐 집에서, 어떨 땐 사무실에서. 공간을 바꿔서 얻게 되는 실질적인 여유 같은 건 없겠지만 말이다. 이렇게라도 애쓰며 '좋은 삶'으로 한발 다가 선다. 저자처럼 공간 이동만 할 수 있으면 몇 걸음은 더 갈 것 같다.

YES마니아 : 골드 l*****j 2019.06.24. 신고 공감 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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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주보며 공간을 꿈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나'를 마주보며 공간을 꿈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내용보기
어느 날, 그림이 배우고 싶어져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그림을 배웠으되 꾸준히 그리지 못한 이가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남쪽 바닷가에 작업실을 얻게 되고 그곳이 마음에 든 나머지 임대가 아닌 구매를 하려고 하였으나 집주인의 거절로 이내 좌절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화가의 도움을 받아 여수의 어느 한적한 섬마을 바닷가에 더는 사용되지 않는 미역 창고를 구매,
"'나'를 마주보며 공간을 꿈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내용보기

어느 날, 그림이 배우고 싶어져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그림을 배웠으되 꾸준히 그리지 못한 이가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남쪽 바닷가에 작업실을 얻게 되고 그곳이 마음에 든 나머지 임대가 아닌 구매를 하려고 하였으나 집주인의 거절로 이내 좌절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화가의 도움을 받아 여수의 어느 한적한 섬마을 바닷가에 더는 사용되지 않는 미역 창고를 구매, 그곳을 작업실로 삼아 전반적인 개보수를 거쳐 '미역창고(美力創考 -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는 뜻, p80~81)'라 명명하며 드디어 그토록 꿈꿔오던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다.

 

 

이 이야기는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에 몰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며 나만의 공간과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나와 관계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나만 생각한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나를 오롯이 마주볼 수 있다.

 

이렇듯 '바닷가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나'라는 존재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

본인 스스로 감우성을 닮은 외모라 칭하며 '내 엄청 예쁜 강아지'인 잘생긴 반려견 '셰틀랜드쉽독'이라면 여자들이 능히 자신에게 말 걸어올 거라 자부하는, 다소 짖궂게 느껴지기까지하는 이 남자는 오래 전, 독일에서도 유학을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독일의 학문과 연관된 용어랄까 내용들이 이야기 내내 등장한다.

 

그중 공간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슈필라움'이다. 이 독일어는 우리나라 말로 대체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데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일어로 '놀이'란 뜻의 슈필(Spiel)과 '공간'이란 뜻의 라움(Raum). 이 두 단어의 합성어로 독일어에만 있는 단어다. 이는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말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남자는 자신의 슈필라움에 대해 말한다.

 

아무리 보잘 것 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p18

 

어쩐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남자는 어째서 그런 공간을 원하게 된 걸까? 그리고 우리에게 왜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만한, 힌트가 될 만한 몇몇 글들을 만나보면 다음과 같다.

 

'물 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이 들 때가 있고, 나갈 때가 있다.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가 당연히 있다.
이 '물때'와 같은 시간 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
항상 잘 되어야 하고, 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 p57~58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날아다니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의 고리를 의식할 수 있는 '자기 성찰'에 인간 창조성의 본질이 있다. p73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 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다. p87~88

 

'공간충동'입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p366

 

내 공간충동의 최종 목적지는 '자신과의 내적 대화', 즉 '생각'입니다. p413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p415

 

이밖에도 답과 힌트가 될만한 글들이 참 많았다. 그런 글들을 읽으며 나도, 주위사람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달까. 그리고 바닷가 작업실을 가지게된 남자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간의 부재는 마음을 병들게 하고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며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의 소통마저 방해하는 게 아닐까...?

 

늘 짜여진 일정에 따라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혼자만의 공간을 부정당한채 설령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더라도 온전히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못한 채 무언가를 찾아서 자꾸만 헤매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프다.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도 하지 못한 채 끙끙 앓기만 한다.

 

더는 내 마음 다치지 않게 아프지 않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꿈꿔보면 어떨까? 꼭 바닷가 작업실이 아니더라도 내가 즐겁고 행복할 그 무언가를 반드시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마음에 가만히 귀기울여보자.

 

누구나 한번쯤 간절히 바래온 공간,
살아오면서 가졌던 온갖 모든 로망을 집대성한 공간.
과연 나만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

 


여수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만끽하며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삶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즐거울 듯 하다.

 

 

참으로 다양한 빛깔을 가진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심리학이란 커다란 테두리에 음악과 미술을 넣고 거기에 자신의 일상과 가족과 친구, 지인의 이야기를 맛깔스런 양념처럼 버무려놓았다. 사회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끔 매워서 마시게 되는 물과도 같았고 거기에 멋진 풍경이 담긴 사진과 남자가 직접 그려넣은 그림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덤이었다.

 

꼭 어느 남쪽 바닷가의 미역창고가 아니래도 어떤 공간이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고 그로인해 힘과 용기를 얻어 내가 '나'인채로 그 공간을 통해 여러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면 참으로 만족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꿈과 희망을 품은 채 지금도 애쓰며 가꿔가는 공간이 여수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나'를 마주보며 '나'에게 귀기울이며 앞으로 만들어 가게될 공간을 꿈꾸는 이가 있다.

 

상상만으로도 두근두근 설레는 나의 슈필라움, 나의 놀이터를 기대하며...!

 

 

 

k****e 2019.06.29. 신고 공감 8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