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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Millennium - the film part3 - 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 Nest/ Luftslottet som sprangdes,Luftslottet som sprängdes, 2009 감독 - 다니엘 알프레드슨 배우 - 누미 라파스, 미카엘 뉘크비스트 10부작이 되어야하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안타깝게 3부로 끝나버린 슬픈 작품. 리스베트와 미카엘이 파헤치는 사람들의 치부와 사회악 그리고 그런 자들이 벌을 받는 것을 더 보고 싶지만, 이번 작품으로 끝이 났다.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를 보는 순간에는 '이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영화가 짜임새가 허술한 것도 아니고, 배우들의 연기가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두 시간 이십분 가량의 상영시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영상물을 볼 때 내 한계는 한 시간 삼십분이다. 소설은 두 시간도 읽을 수 있는데 말이다. 2부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은 리스베트. 그렇다고 이번 편에서 편하게 노느냐? 그렇지 않다. 2부 결말에서 그녀가 한 행동이 우리가 보기엔 정당방위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살인이었기에,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 가두려는 세력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숨기는 걸까?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미카엘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정부 도처에 은밀히 암약해있는 비밀 조직의 음모에 맞서는데…….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기적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많이 나빴다.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린 여자아이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의사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소녀를 유린했다. 그리고 그것이 발각 날까 두려워 정상인 소녀에게 정신병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그것도 행정부와 경찰은 물론이고 각계각층에? 무기밀매라든지 인신매매, 마약밀매, 폭력 등등을 저지르면서? 추악하다, 진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더니, 나쁜 짓도 해본 놈이 잘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걸 밝히려는 미카엘과 밀레니엄잡지사를 막으려고 압력을 가한다. 미카엘이나 리스베트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은 거의 한두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협박메일은 기본으로 미행, 가택습격에 무차별 총격까지. 그 뿐인가? 2부에서 나왔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여전히 리스베트를 노리고 있다. 영화는 미카엘이 경찰 특별수사팀과 함께 비밀 조직 섹션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과 리스베트의 재판 과정 그리고 섹션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2부에서도 그랬지만, 각각의 사건들은 상당히 짜임새가 있고 빨리 진행된다.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게 하나로 모이면……. 너무도 긴 상영 시간이 문제인가 보다. 아니면 내 체질적인 문제일지도. 보면서 생각하니, '벌집을 발로 찬 소녀'라는 제목과 영화 내용이 잘 맞아떨어졌다. 열 두 살이었던 리스베트는 벌집을 찼다. 그런데 그건 비어있는 게 아니라, 구석에 처박혀서 30년이 넘게 오랜 시간동안 묵은 벌집이었다.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오래된 벌들이 붕붕거리면서 주위를 더럽혔다. 그녀도 벌에 쏘이는 피해를 입었다. 누군가 그것을 치우고 깨끗이 청소를 하며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야했다. 그것을 해낸 것은 바로 미카엘을 비롯한 밀레니엄 잡지사의 직원들이었다. 물론 경찰도 같이 도왔지만.
꼭 목숨을 걸라는 건 아니지만 언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권력이 부패하면 어떤 인권유린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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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블로그 O] ![]() 제목 : 밀레니엄: 제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Luftslottet Som Sprangdes, Millennium-the film part3-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 Nest, 2009 원작 : 스티그 라르손-소설 ‘벌집을 발로 찬 소녀 Millennium, Luftslottet Som Sprangdes, 2007 감독 : 다니엘 알프레드손 출연 : 미카엘 뉘키비스트, 누미 라파스, 레나 엔드리, 아니카 할린 등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작성 : 2013.10.25.
“아무래도 원작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흥 감상-
‘영화 밀레니엄 이어달리기’라는 것으로, 다른 긴 말은 생략하고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부에서 피의 진함을 확인하는 딸과 아버지의 처절한 싸움 이후로 계속되는 이야기는, 응급실에 실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리스베트’로 시작의 문을 엽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아버지는 물론 배다른 형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군요. 한편 ‘리스베트’의 자서전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정부의 음지에서 살아 숨 쉬는 종양을 까발리려 노력하는 ‘미카엘’의 모습을 교차하지만…….
다른 건 일단 그렇다 치고 이 작품의 작은 제목은 ‘바람 치는 궁전의 여왕’아니었냐구요? 음~ 그 제목을 알고 있는 그대는 분명 구판본으로 이 작품의 원작을 만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겸에 구판본과 제판본의 제목을 한번 옮겨보는데요. 1부는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로 변동사항이 없고, 2부 부터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로, 3부는 ‘바람 치는 궁전의 여왕’이 ‘벌집을 발로 찬 소녀’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으흠. 아무래도 영화와 함께 책이 다시 나오는 과정에서 제목이 바뀐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스웨덴어의 원제목을 번역하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달라구요? 으흠. 구글 번역기에 문의를 하니 ‘거로 공기 성’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넣어보니 Luftslottet는 ‘소녀’, Som는 ‘으로’, Sprangdes는 ‘폭발’이라고 알려주는데요. 나름 직역을 해보면 ‘소녀의 폭발’ 또는 ‘폭발하는 소녀’가 아닐까 하는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전문가 분들의 도움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제목에 대한 것은 그 정도로 하고, 이번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구요? 제목이 작품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단 ‘내용’에 더 집중을 해보겠습니다. 이번 세 번째 이야기 또한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앞선 두 이야기보다 더욱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인 탓에 솔직히 지겨운 기분이 없지 않았는데요. 죽음에서 부활한 ‘리스베트’의 재활과 재판, 그리고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문을 닫는 ‘밀레니엄’과는 달리 그래도 끝까지 투쟁하는 ‘미카엘’의 모습이 진지하긴 했지만, 별다른 액션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이런 상태로 10부작까지 나왔다면 저는 아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계속해서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영화는 이번 세 번째 작품을 통해 마침표가 찍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리스베트에 대한 법적인 문제도 해결이 되었고, 더 이상 생명의 위협을 받을 일이 없게끔 떡밥이 회수되었기 때문인데요. 뜻하지 않은 원작자의 죽음으로 인해 뒷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으흠. 조만간 원작으로 이번 작품을 만나보고 마음속에 피어나는 의문점을 해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은, 영화에서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말이지요.
그럼, 오늘 밤늘은 영화 ‘손도끼 3 Hatchet III, 2013’를 장전하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밀레니엄’은 리메이크보다는 연속극으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하는 작은 소망을 적어봅니다.
덤. 며칠사이 기온이 뚝 떨어진 기분입니다. 이번 겨울은 창문을 샷시로 바꿀 것인지, 아니면 비닐 장막을 설치할 것인지 고민이 되는군요. TEXT No. 10월 파워문화블로그 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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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같은 제목의 영화 '밀레니엄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스티그 라르손이 쓴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간다. 물론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몇몇 부분을 수정하고,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바꾼 부분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단지 줄거리르 따라갔다는 것만으로 그 작품의 핵심을 제대로 옮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또한 바로 이 '밀레니엄 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특히나 영화의 마지막 편으로 스티그 라르손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공개한 이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 모습은 상당히 불만을 이야기할 부분이 꽤 많이 존재한다. 물론 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이 세 번째 영화에서 우리는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이전의 두 이야기에 비해서 더 많은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인물의 관계와 성격에 손을 댄 부분은 그대로 이 영화를 꽤나 답답한 영화로 만들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