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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성 ‘샌님마님’
양반가문의 자손이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평생 먹고 사는 일에 구애를 받아야 하는 한 가정의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이야기로 귀결되어 다행이다싶다.
샌님마님(은애 친할머니이자 정선 친어머니)은 남편(응교)이 젊은 시절 학교 소사로 들어가면서 기숙사 식모로 들어간다. 이때 정선 나이 4살이다. 그 당시 소학교 기숙사에서 밥하고 빨래를 해주면서 생활하였다. 여 기숙사엔 12살 또래인 양주 학생, 춘천 학생, 마산 학생, 개성 학생, 광주 학생, 원산 학생, 인천 학생등이 있었는 데 지금 50이 넘은 상태에서 과거에 지켜보았던 연장선상에서 보면 족집게다 싶을 정도로 맞아떨어져 대체로 출세하거나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어 내심 한탄을 한다.
뼈대있는 가문의 자손인 샌님은 계속되는 악재(정선 오빠 둘은 일찍 죽었고, 정선이 시집을 갔지만 손녀 은애만을 남긴 채 29살 때 남편(사위)마져 급성폐렴으로 죽음)로 인해 정선은 딸 은애와 함께 샌님마님이 남의 밥이나 해주면서 식모로 어렵게 생활했듯이 남의 옷이나 수선해주는 삯바느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니 못내 우울한 것이다.
어느 날 인천 학생(50대)이 옷감을 가지고 왔다. 비록 백정 집안이었지만 지금은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데 올 때마다 예전에 그러했듯이 선물을 한 보따리씩 가져온다. 말하자면 급행열차 수임료 같은 거다. 은애 엄마(정선)의 바느질 실력이 출중한 지라 일감은 항상 밀려있고 따라서 새치기를 하려면 자연 삯도 비싸고 덤으로 환심용 뇌물(?)까지 준비해오는 것이다.
어떻든 인천 학생이 가져온 양떡(양과, 한과)을 양껏 먹은 터라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마침 깜깜한데 화장지(종이)마져 손에 잡히지 않아 닥치는 데로 사용하고 나니 아침에 난리가 났다.
다름 아닌 고급 옷감의 깃이었던 것이다. 이를 화장지로 써버린 것이다. 샌님마님은 낙심했지만 23살 난 은애는 할머니를 위로했다. 시장에 가서 사오면 된다고...
손녀 은애는 양재를 전공하고 있다. 할머니는 바느질과 다르지 않을뿐더러 인천 학생처럼 평범하게 좋은 집에 시집가서 살기를 바랐기에 못마땅해 하지만 그래도 양재라는 게 융통성 없는 바느질과 질적으로 다르고 디자인까지 가미되면 오히려 전망이 밝다는 손녀를 바라보며 다소 위안이 되어 희망을 품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