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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은 현실을 앞서가는 것일까. 현실과는 달리 소설 속에서는 '동성간에도 사랑이 가능할까'하는 식의 문제제기는 이제 고리타분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간의 관계 맺기를 소재로 삼은 소설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들이 강변하는 '사랑'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특히나 게이와 그를 사랑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현대소설이나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최근 헐리우드 로맨틱 코메디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많다.) 프랑스 여성 작가 클레르 갈루아의 '육체노동자'(열림원)에 등장하는 빅토르와 크리스틴 역시 사랑하는 사이다. 빅토르는 처음부터 죽은 상태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빅토르의 시체를 땅에 묻기 위해 영구차를 타고 가면서 지난 십여 년 간의 크고 작은 일들을 회상하는 크리스틴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빅토르는 저명한 문학비평가이고 크리스틴은 그보다 열살 쯤 젊은 작가이다. 시간적 흐름에 순종하는 서사구조에 익숙한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크리스틴의 심리를 좇는 소설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짧은 에피소드들 속에는 등장인물들의 애증과 갈등이 섬세하게 교차하고 무엇보다 빅토르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크리스틴의 애틋한 감정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크리스틴의 눈에 비친 빅토르는 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에 걸린 데다가 고집스럽고 신경질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단연 매력적이고 빛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크리스틴에게는 그동안 빅토르 외에도 스물 일곱 명의 남자애인이 있었고 빅토르에게는 세베르와 라이오넬 이라는 두 사람의 남자애인이 있다. 그러니까 빅토르는 살아 생전 두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를 애인으로 갖고 살았던 행복한(속된 말로 벅찬) 인물이었던 셈이다. 크리스틴은 몇 번이나 빅토르와 육체적인 사랑을, 혹은 그를 독차지하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빅토르에게 크리스틴은 양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소년 내지는 젊은 날의 분신과도 비슷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가 크리스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란 '죽은 다음에 결혼하자' 라든가 죽은 다음에 땅에 묻을 때까지는 오로지 크리스틴만 동행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긴 정도일 뿐이다.
크리스틴의 회상은 어찌 보면 십 년 동안 게이에게 농락(?)당한 가엾은 여자의 하소연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소설은 동성애자에 대한 도덕이나 가치판단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는 않는다. 자의식 강한 크리스틴에 의해 그려지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은 과장되거나고 미화되어 있고 유머스럽게도 보인다.(슬프지만 낄낄거리면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찬찬히 뜯어 읽으면 과감한 생략이나 한 줄의 대사로 함축하고 있는 구절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게이독자들이 읽기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으며 동성애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크리스틴의 모습이 기특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정지우 작가의 소설 '내 남자의 남자'의 게이들 역시 아름답거나 지적인 인물들로 묘사한 바 있다. 여성작가들은 게이에 대한 순정만화적 환상을 갖고 있는 걸까...? [인상깊은구절] 빅토르의 곁에 머문다는 건 이미 예술가의 손을 떠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 소박한 그림이 어린이 영상 앨범에서 나온 것이든, 권위있는 미술관이나 로제르에서 열리는 장인들의 전시 판매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이든, 진정한 예술 작품이든, 아니면 눈만 피곤하게 하는 졸작이든 간에, 그 어떤 것도 내 감정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주인공 빅토르는 상대(나)를 사뭇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살짝 뒤로 밀쳐내면서도 또한 서로의 거리가 마냥 멀어지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어느쪽으로 생각하느냐는 관점의 문제일 뿐이었다. .--- p. 15 인생이란 일종의 대형 백화점과 같다. 일단 그 안에 들어서면 물건을 구입하고 값을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