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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생겨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은 철학자들이 언제나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라는 형태로 보여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이것은 철학자 뿐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끊임없는 사유속에서 증명되었던 진실처럼, 과거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언제나 이 물음으로 인해 진실을 찾아내듯이 말이다. 그런 사유속에서 증명된 가장 쉬운 예가 아마도 지구 중심의 사관이 진실인 마냥 인간이 오만함에 취해 있을 때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던 일이 아닐까 한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 , 그것은 우주는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우주가 중심이라는 쇼킹한 사실로 인하여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와 같이 현재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고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발견으로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우주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현대적 의미의 우주론은 아인슈타인으로 시작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로 인해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가 졸지에 설자리를 잃게 되면서 아주 작은 무언가가 대대적인 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탄생한 후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빅뱅이론이 과학적 창조론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현재 우주의 질량과 에너지에 맞먹는 엄청난 양의 원자재부터 확보해야하는데 빅뱅이론은 원자재의 출처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 다짜고짜 폭발부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빅뱅이론은 우주탄생의 청사진으로서는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등장한 것이 최근의 다중우주론이다. 이렇게 우주에 대한 시각조차도 단 하나의 우주가 아닌 다중 우주론의 가능성을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언제나 존재한다. 천동설을 깨고 지동설이, 상대성 이론에서 빅뱅이론, 다중우주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처럼 과학은 절대적이지 않다. 과학은 그만큼 유동적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프랑스의 자연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브 파칼레는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이다. 물론 나는 유신론자이다. 과학자이자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의 학문은 조금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 자아도취감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에 과학자들의 글은 자기기만 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브 파칼레의 글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명료하며 겸허하다. 광대한 우주 속에 낱알 한 톨 같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전재 때문인지 그에게는 어떤 기만이나 자아도취감은 보여 지지 않는다. 인간의 혼란스러운 정신은 과학을 다른 분야들과 함께 싸잡아 일종의 신념으로 보고자 한다. 과학은 종교와 달리 골치 아픈 질문 공세와 까다로운 검증을 사랑한다. 과학은 자신이 말한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앙이나 미신과 구별된다.
이브 파칼레는 생명의 탄생을 하나의 빅뱅이론처럼 물질이 복합되고 조직화되려는 내재적 성향, 엔트로피가 떨어져 죽음에 이르지 않게끔 맞서 싸우려는 성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생명은 기적이 아니라 충동에 가까운 양자 진공의 진동처럼 보는 것이다. 거대 분자들이 상하관계를 맺고 협력하여 전세포를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결국에는 진짜세포를 거쳐 생태계에 부합하는 유기체를 이루고 , 그 가운데에 인간이 탄생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라져도 북극성 주위에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요, 거대한 별 베텔게우스나 안드로메다 은하는 무사하고 평온하리라. ‘나비 효과’도 지구와 그 변두리 너머까지 작용하지는 않는다! 미미하도다, 인간이여! 그렇지만 한편으로 당황스럽다. 나의 유물론은 시적이면서도 반어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시 근원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하여 저자 이브 파칼레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원자론과 유물론을 계승한 책),에서 발췌한 시와 더불어 철학하는 식의 구성으로 첫장 137억 년 전, 우주는 양자 진공의 경이로운 진동에서 비롯된다. 무에서 태어난 우주는 여전히 팽창을 거듭하고 가속화되어 더욱 커 졌다. 그런 와중에 우주가 10억살이 되자 ‘별들의 시대’가 시작된다. 45억년이 되자 태양계가 생기고, 44억 5000만년에 드디어 생명이 깃들 수 있는 행성이 등장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우둔함과 영광이 하나의 이미지 속에 새겨졌다. 미세한 은 입자들에 대한 빛의 장난으로..........지구는 결코 엄청난 세계가 아니다. 기껏해야 엄청난 농담일 뿐.
우주 40억년이 되자, 세포가 형성되었는데 인간의 DN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과학자들은 DNA를 지닌 최초의 유기체를 바이러스라고 보는데 바이러스들이 많이 지니고 있는 핵산은 RNA다. 저자 역시 바이러스를 생명의 기원으로 보고 있는데 바이러스를 생명체의 토대로 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쇼킹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는데, 이것을 저자가 시로 표현한 부분이 참 재미있다. (저자의 위트가 보이는 부분이기도 ^^;;)
우리 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우리의 못된 성품도 설명될 텐데 우리 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치명적 질병이 되려나? 우리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의 아이러니에 빠지게 되려나?
우리 조상이 바이러스라면 우리 철학자들은 연회를 떠날 때를 알게 되려나? 그러나,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에는 이런 우주에 대한 사랑이 철학과 과학과 어우러져 우주의 위대함을 말하기엔 충분하지만, 슬프게도 오늘 신문에는 2011년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브라이언 슈미트 교수가 "우주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생명이 기적이 아닌 하나의 입자운동으로, 우주가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하는 이브 피칼레에 의하면 무에서 창조되었으니, 무로 돌아가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 이겠지만 결국 언제가는 사라져갈 운명은 인간만이 아닌 것이리라... 이브 파칼레의 책은 처음 접하였으나, 위에 말했듯이 굉장히 위트있고 재치있어 방대한 분량이지만 무척 쉽게 읽힌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시작된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는 루크레티우스의 시와 중간중간 철학자들의 사유와 과학자들의 우주론이 잘 어우러져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철학에세이이다. 저자는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에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시적 유물론’ 또는 ‘ 반어적 유물론’과 더불어 기획하였다고 밝히는데 그에게는 이제 마지막 ‘인간’에 대한 질문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 인간에 대한 물음은 그의 다음 책 <인간의 장편소설>에서 선보인다고 한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그의 특별한 사유가 돋보이는 책이었으며,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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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책이 책을 부릅니다. 관심이 가는 분야의 흐름이 자연적으로 형성됩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독서계획은 세우기가 힘듭니다. 대략 3~4주 간격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책상 한 곁에서 대기 중입니다. 요즘은 다른 책들과 섞여서 키워드가 ‘우주’인 책들을 자주 들여다보게 됩니다. 나 자신을 우주라는 공간에 던져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생각도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사형 집행 날짜를 며칠 안남기고도 같은 감방에 있던 동료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꾸 캐물었습니다. 그러자 귀찮아진 이 사내가 이 땅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은 철학자에게 핀잔을 줍니다. “곧 죽을 사람이 뭐 그리 알려고 해요” 철학자가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며 답을 합니다.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서..” 예..저는 이런 심정으로 책을 읽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책을 읽다보니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니 어쩐 일이지요?
셸러는 인간이 “그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동시에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한 잘 알고 있는”상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 하니까 좀 위로가 되긴 합니다. 셸러의 사상을 짧은 글로 다 표현 할 수 없고 이 리뷰에서 깊이 다룰 사항도 아닙니다만, 연관이 있기에 옮깁니다. 셸러는 신의 이념과 형이상학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종래의 형이상학은 신의 이념을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 또는 세계는 존재한다(아퀴나스)‘는 명제에 의거하려 추리하려 했지만, 신의 이념을 현상학의 상관적 고찰법에 따라 이끌어냅니다. 즉, 나의 ’모든 사랑하고 관조하며 사고하고 의지하는 것은 따라서 무엇보다도 신 속에서 사랑하고 관조하며 사고하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신의 영원한 이념 속에 뿌리박게 되고, 세계 과정에서 이념적 생성과정의 공동 형성자, 공동 창립자, 공동 수행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 이젠 분위기를 바꿔서 본론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브 파칼레,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이사람 참 까칠하네”입니다. 나꼼수나 딴지일보에 적응되어 있는 사람들에겐 “뭐, 이정도 갖고..”하겠지만, 내 수준에는 하도 까칠해서 어감이 좀 그렇지만 ‘까자남(까칠한 자연주의 남자)’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저자는 프랑스태생입니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다가 68혁명(이 부분은 나중에 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에 가담하여 격동의 세월을 보냈답니다. 그 후 프랑스의 유명한 탐험가인 자크 이브 쿠스토 함장의 탐사에 동참해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간 칼립소 호를 타고 항해하며 자연학자로서의 소양을 쌓았다고 합니다. 책도 수십 권 썼군요. 이 책의 제목은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썼다는 이야긴가요? 저자의 책 중 제목이 더 튀는 것도 있습니다. 『인류는 멸망하리라, 시원하게 잘됐다!』토종 우리말로 표현하면 '쌤통이다!' 가 되겠지요. (강대진 역/아카넷 /원제:De Rerum Natura)
저자 이브 파칼레가 루크레티우스를 향한 헌사(獻詞)같은 글이 이 책의 분위기를 그려주고 있는 것 같아 옮겨봅니다. 오, 루크레티우스여! 나의 터부 없는 쾌락을, 예술적 감흥을, 참으로 덧없이 지나가는 매순간을 음미하되
또 우리 마음에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신의 존재에 관한 우주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신은 논증으로 밝혀질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신앙만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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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다른 사이트에서 블로그를 하고 있을 때 이웃분의 한 분중에 천문학자가 있었다. 나는 그 분의 블로그를 상당히 좋아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분이 블로그에 올려 놓으신 사진들 때문이었다. 각 행성의 사진들을 소개하며 자료 사진을 해석해 놓은 글들이 많았다. 행성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내 존재가 왜 그리도 작게 보이던지. 광활한 우주속에 내 존재는 티끌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었다. 어두운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 달의 표면과 화성의 사진들은 나를 우주의 세계로 인도하고는 했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행성은 토성이었다. 아름다운 고리를 가지고 있는 토성의 사진을 나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바라보곤 했었다.
프랑스의 자연학자 이자 생태철학자인 이브 파칼레는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티투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를 오늘날의 책으로 다시 쓴 글로 루크레티우스에 바치는 헌사로 볼 수 있다. 책의 장이 시작될때마다 루크레티우스의 글이 적혀져 있고 또한 책속에서는 끊임없이 루크레티우스를 외치고 있다.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셔서 이 땅의 우주를 만들고 모든 생명체 까지 만들었다고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브 파칼레는 철저한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의 입장에서 우주의 기원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바라 본 것, 과학이 이미 입증한 것을 근거로 물질과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하였는지 그러한 과정들을 우리에게 말한다. 이 책은 그의 모든 문학적이고 시적인 언어, 과학적 지식, 신화와 철학적 사상이 망라된 작품이었다. 과학적인 지식이 나오는 책은 읽기전부터 꺼려하고 어렵게 느껴져 지레 포기했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더디되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우주의 기원과 생명에 관한 철학을 다룬 에세이를 내가 이렇게 즐겁게 읽을수도 있구나. 나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을 읽을 때 색연필을 들고 줄을 그어가며, 플래그를 붙이며 읽게 되었다.
모래사장에 언덕을 만드는 아이처럼 우주는 은하 뭉텅이를 만드네 (51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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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파칼레는 137억 년 전 빅뱅과 함께 우주가 생겼고 물질과 에너지등이 생겼다고 했다. 그후로 46억 년 전에 태양이라는 불이 생겼다. '외행성' 혹은 '기체 행성'이라고 불리운 네 개의 큰 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과 '내행성' 혹은 '고체 행성', '지구형 행성'이라는 불리는 네 개의 작은 행성 수성, 금성, 지구, 화성에 대해 그리스 로마 신화 그외 다른 나라의 신화를 설명하며 각 행성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44억 5천만년전 생명이 깃들수 있는 행성 지구가 등장했다.
우리는 지구를 '푸른 행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재 지구의 대양에는 14경톤의 물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지구 질량의 0.025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아주 적은 양,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물부족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이 지구 전체가 물이 없다고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지구를 잘 물려줄 수 있을까 싶다.
생명은 선택을 해야만 할 때에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명은 적자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인정사정없이 처단했다. 생명은 가장 뛰어난 설계, 성공한 생물들을 남기고, 편들어주고, 호라성화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낙서, 실패작, 범작, 환경 조건에서 더이상 들어맞지 않는 구태의연한 아이디어는 진화사의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526 페이지중에서)
이브 파칼레는 철학자의 호기심과 과학자의 논증으로 인간에게 제기된 3대 질문 중 두 가지에 답하고자 노력하였다고 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생명은 아름답고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다시 한번 루크레티우스를 인용하면서, "죽음에는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고, 존재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도 없으며, 태어남과 영영 태어나지 않음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음을 분명히 알자." (561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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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 처음 책 리뷰를 쓰고 있다. 이렇게 리뷰가 늦어지게 된 것은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를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읽은 뒤 감상이 간단하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복잡다단했기에 그것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바둑으로 치면 장고를 요하는 수였다고 할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긴 한 숨이 나왔다. 필자의 이력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와 생물, 인간의 탄생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상당히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에 필자 이브 파칼레의 내공을 확인하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다루는 내용 자체가 워낙 방대한데다 연도나 우주, 물리학, 생물, 지질학 등 학문적 용어가 많이 나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도 필자 이브 파스칼은 거침 없었다.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함과 그 반대의 초미시의 생명체며, 잘 이해되지 않는 숫자들이 등장하는데도 그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명징하게,때로는 하이쿠처럼 아주 짧게 시적으로 표현했다. 메시가 수비수 여럿을 제치며 드리블 하다 골을 넣듯 능수능란하게 풀어갔다.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도 못하면서도 독자들이 불평하지 않고 읽게 하는 마력이 그에게 있었다. 그만큼 그의 문체는 팔색조같았고, 이 책을 그 혼자서 다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힘겹게 읽은데 비해 연도나 종 이름이 하도 많이 나오고 까마득한 기원에 대한 내용이라 구체적인 사항은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주로 종교적인 상상으로 내겐 존재해왔던 태초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시적으로 다가왔다.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 이르는 과정은 지금까지 읽고 배운 그 어느 우주,생물학 책보다도 개괄적인 흐름은 신기할 정도로 눈에 잘 들어왔다. 특히 세포가 탄생하는 과정이나 유성생식이 나오는 부분은 무척 흥미롭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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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자연학자, 식물학자, 환경운동 보호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브 파스칼. 그는 존재의 근원을 좇는 철학자답게,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하는 의문에 대해 이렇게 과학적으로 파고 들어 우리에게 일러준다.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137억년 전이라는 상상하기도 힘든 시간을 거슬러가야 하는 우주의 기원도 40억년 전이라는 세포의 형성 시간도 그에게는 대단한 의미가 아니었다. 생명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충동에 더 가깝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기에. 생명의 탄생에는 운명의 손도 신의 손도 없었다는 것이다.
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아무 것도 계획된 것이 아니고,인간 역시나 종이고 물질일 뿐이라, 다른 동물보다 특별히 우월한 이유도 없다는 것이 그의 시종일관한 입장이었다. 실로 파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유물론적 입장에서 전개한 우주와 생명, 인류의 존재에 대한 주장이 낯설었기 때문일까. 이런 주장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인간의 위대함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숱하게 들어왔는데, '불멸의 영혼'이란 무의미한 자기 위안이라니. 그러면서도 인류의 존재가 한갓 원자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그 원자가 무엇인지 생각할 줄 아는 원자라는 인류의 특성을 잊지 않고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것을.
지극히 유물론자다운 그의 주장에다 생태주의자로서의 입장까지 보태지게 되면서 파칼레는 인류가 타 종에 대해 지배적 태도를 보이는 '인간 중심주의'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신랄하게 독설을 퍼붓는 쪽이다. 지금 인류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멸을 재촉하고 있다면서, 그는 일갈하고 있다. 인류가 멸망해도 우주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그는 생과 사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생명은 아름답고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의 결론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경지를 엿봤다면 내가 착각한 것일까 " 존재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도 없으며, 태어남과 영영 태어나지 않음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음을 분명히 알자."는 말에서 마치 죽음을 예감한 고승의 '오도송'이 느껴졌다. 이 무신론자의 결론에서 오히려 열반에 들고, 공으로 돌아가는 존재를 느꼈다면 아이러니 한 것일까.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는 종교와 달리 까다로운 검증을 사양하지 않고, 반항, 회의주의, 논쟁, 새로운 실험, 비판적 논증을 숭배한다는 과학자로서 논리와 철학자로서의 통찰력을 잘 드러낸 에세이였다. 실로 통섭의 진면모를 보는 듯 했다.
이 책을 덮고나니 무력감이 밀려왔다. 생명에 대한 철학은 커녕 죽었다 깨어나도 이 책에 실린 내용의 절반도 제대로 이해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필자 이브 파칼레의 내공에 압도된 모양이다.지적 자극을 받은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부족함만 뼈저리게 실감하고 말았는데..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읽은 뒤 뿌듯함을 맛볼 수 있는 깊이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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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 여기서의 생명은 인류의 탄생 보다 더 그 이전, 아무것도 없었던... 그러나 모든 것이 있었던..그 시작을 의미한다. 과연 그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종교적인 관점과 과학적인 시각의 차이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이것이다'라는 확신이 없었다. 종교적인 생명의 기원은 절대적인 것이기에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 잘 모르는 용어들과 이론들을 통해 설명되는 과학적 근거도 웬지 나와는 먼 일 같아.. 사실 그 기원에 대해서 궁금은 했지만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책 <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프랑스의 자연학자, 철학자 이브 파갈레의 생명에 관한 철학 에세이.. 철학하면 웬지 어렵다는 생각에 긴장부터 하게 되고 거기에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분야인 자연과학 그런 것들이 어우러진 에세이라... 사실 좀 생소한 분야여서 이 책을 읽기가 망설여졌었다. 하지만, "생명은 아름답고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137억 년간 생명이 써내려간 장대한 우주적 드라마! 라는 구절을 보면서 과연 137억년 전에 무슨일이?? 라는 호기심은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다. 더군다가 이 책의 저자인 이브 파갈레는 과학자라기보다 철학자이므로 그가 풀어나간 이 인류의 기원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영향을 받고 그것을 오늘날의 시점으로 다시 쓰고 싶어했다고 한다.. '오,루크레티우스여! 그대 덕택에 내가 보이지 않는 원자들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는 나를 시적이면서도 반어적인 유물론의 향기 그윽한 오솔길로 인도하였도다!
종교적인 관점이 아닌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과학적인 원리를 철학적인 언어와 문장으로 설명한 이 책은 단락별로 먼저 철학적인 사유를 제시하고 그것을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하며 마무리는 함축한 몇 줄의 싯구로 대신한다. 일방적인 철학서나 과학서보다는 유쾌하게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문적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우주의 탄생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폭발과 팽창으로 시작되었다는 빅뱅이론이 주류를 이루었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과학은 자신이 말한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않는다는 점.. 진리들을 수립하지만 그 중 어떤것도 '선험적'이라든가. 절대불변하다든가. 계시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 골치 아픈 질문 공세와 까다로운 검증을 사랑한다는 점..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절대적인 신앙과는 구분이 되고 어떤 가설이라하더라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그것이 검증되고 변화되고 또 다른 이론들이 주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주의 기원도 빅뱅이론의 헛점을 보완한 다중 우주론이 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시간과 흡수로 인행 팽창 그 위력을 통해서 생성된 많은 행성과 별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 그리고 그 축을 이루고 있는 태양조차도 이 우주에서는 그저 그런 별에 지나지 않을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그저 그런 별에 지나지 않는 태양의 소행성일 뿐이다. 그리고 그 위에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저 우주의 부스러기와 잔해 뭉치에 불과하다.. 그러하니 내가 전 우주인 양 자만하지 말고 오만하지 말며 겸손하라 경고하는 듯 하다.
45억년전 하늘의 출산에 의해 행성들이 생기고 44억년전에는 생명이 깃든 행성이 탄생한다 그리고 40억년전 드디어 생명... 의 탄생이라는 것에 이르게 된다 그 전의 이야기가 우주과학의 이야기였다면 드디어 생명과학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생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었던 물과 공기, 바다, 구름등의 생성과 고등생물로의 진화를 위한 8대 단계 를 이야기한다. 1. '자기복제 분자'단계 : 원시 수프 상태에서 자기복제가 가능한 거대 분자들이 출현한 단계 2. 자기복제 분자들이 고립에서 벗어나 지속적이고 일관된 결합을 통해 공통 과업을 수행하는 단계 3. 리보자임에서 DNA로 넘어가는 단계 4. 핵이 없는 단세포 또는 원핵세포에서 고등세포 진행세포로의 진화단계 5. 성(性)이 출현하여 피조물을 혹하는 단계 6. 세포들이 차별화되는 단계 7.고립된 개체들을 식물군, 동물군으로 모이게 하는 단계 8.고등영장류의 사회가 인간사회로 변한 단계
이렇듯 무에서 창조된 우주, 생명은 나름 팽창과 진화를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진화의 변화를 , 그 차이를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그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의 퇴적속에서 이 우주는 그리고 이 인류는 하나씩 그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지금의 인간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은 백뱅의 에너지와 소립자에서 태어난, 허다한 우연의 산물이다. 초신성 폭발,태양계의 형성, 혜성과 운석,액체 상태의 물과 대륙의 표류, DNA와 LUCA , 세균과 광합성이 배출한 산소, 자기권, 오존층, 세포핵과 성, 선캄브리아기의 빙하기, 원좌우대칭동물, 데본기의 육상생물 출현, 고생대 말과 중생대의 대 재난, 신생대 제3기의 포유류 뷰상. 젖과 털, 거대한 뇌 - 그리하여 우리는 광대한 세상을 관찰하며 (아리스토텔레스여!) 사유를 하고 우리 자신을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여!) 그뿐만 아니라 서로를 죽이고, 학살에 '영웅주의"니 '영광스러운 희생'이니 하는 이름까지 붙이게 되었다 ! 137억 년간 계속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앞으로도 계속될 장대한 우주의 드라마에서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도 될 수 없는 아주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 인 것 이다. 이러한 인간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그 부분이 저자가 지금 준비하고 다음에 발표할 책의 내용이라고 한다..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의 근원..
이 방대한 분량 내용을 한번 읽은 것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론적인 설명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과학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읽으면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유익할 듯 하고 철학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현상을 접합시켜 표현하는 부분은 언어와 문장의 묘미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웬지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이해해고 알아야지만 된다는 생각에 좀처럼 책 읽는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방대한 우주의 역사를 어찌 한권의 책을 통해 알고자 하는지 그것이 나의 과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완전한 이해가 아닌 경이로운 이 탄생에 대한 놀라움과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광활한 우주의 잔재,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 한 인류로서의 겸손함으로 그것을 바라본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유익한 책읽기였다.
저자인 이브 파칼레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에게 바치는 헌사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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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루크레티우스여! 그대에게 나의 죄 없는 황홀경을 바치노라. 나의 터부 없는 쾌락을. 예술적 감흥을. 사물과 사람에 호기심 많은 여행자로서의 소회를 바치노라. 숲, 사막, 산, 바다에 환장하는 자연학자로서의 경이로움을 바치노라. 참으로 덧없이 지나가는 매 순간을 음미하되 회백질을 욕되게 하지 않을 정로고만 살다 가고픈 어느 유인원의 넘실대고 굽이치는 철학을 그대에게 선사하고 싶다.. -이브 파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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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우리 과학계는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한국이 창조주의자의 요구에 굴복하다)”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로 시끄러웠습니다. “교과서진화론 개정 추진위원회”라는데서 압력을 가해서 우리나라 일부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서 시조새 부분이 삭제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서의 내용을 출판사에 맡긴 때문이라 합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490274).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에 해당하는 존재로 진화론의 상징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조새의 화석에 대한 논란이나 조류의 진화에 대하여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진화의 상징이라는 시조새 화석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므로 진화론 역시 논란이 많은 이론일 뿐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려는 창조주의자 혹은 지적설계론자의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계의 인식인 것 같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627019).
학생들의 교과과정을 두고 진화론과 창조론이 뜨겁게 맞붙는 나라는 미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전과학을 비롯하여, 천문과학, 지질학, 고생물학, 생화학 등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과학적 증거들은 우주의 생성을 비롯하여 생명의 탄생과 진화이론을 강화시켜오면서 창조론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면서 그동안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을 퇴출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해 온 창조론 지지세력은 이제 교과과정에서 공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마시모 피글리우치교수는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6607467>에서 2000년대 초반 펜실베니아 도버시 법정에서 벌어진 진화론과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의 격돌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2004년 10월 펜실베니아 도버시 교육위원회에서 “학생들에게 다윈의 이론 및 이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지적설계론을 포함한 기타 진화에 관한 이론들의 허점/문제를 알게 할 것”이라고 결정한데서 발단되었습니다. 피글리우치교수는 “지적설계론에 관해 간략히 분석해 보니, 이 이론이 초자연적 원인을 끌어들여 베이컨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 접근법을 위반하므로 과학이 아님이 드러났다.”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yes24.com/document/5882295>에서 사이비창조론 혹은 이를 변형한 지적설계론을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사이비과학으로 분류하고 있는 마이클 셔머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http://blog.yes24.com/document/2323650>에서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비하여 과학적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이 과학계에 제기하는 핵심적인 문제는 생명의 탄생과 우주의 시원에 관하여 분명한 과학적 증거가 있는가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담은 책들을 읽어왔습니다만, 최근 읽은 책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들어보면, <눈먼 시계공; http://blog.yes24.com/document/6265571>에서 리처도 도킨스는 바이오모프 모델을 이용하여 진화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전체에 담긴 생물체의 형질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가 자연에 의하여 선택되어 살아남게 되고 그러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가 종의 차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미생물학자 제럴드 캘러헌교수는 <감염; http://blog.yes24.com/document/2511513>에서 인간의 DNA의 반 이상은 감염에 의하여 인간염색체에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감염을 통하여 인간의 유전자에 삽입된 미생물의 유전자가 인류의 진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주의 시원과 생명체의 진화를 같이 다룬 대표적인 분은 칼 세이건교수입니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http://blog.yes24.com/document/2516235>이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http://blog.yes24.com/document/6241573>에서 태양계의 탄생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하는 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진화해온 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분자 생물학,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쌓아올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지구상에서 일어난 일을 뒤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은 우주의 시원과 지구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과학자들이 쓴 것들이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자연과학을 전공한 분들의 책은 대체적으로 전공용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글이 어렵고 딱딱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소개하는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소르본느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가 쓴 이 책은, 자연과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본 우주의 시원과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사유의 결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전혀 색다른 책읽기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파칼레는 시선을 태양계 넘어 우주의 시원으로까지 넓히고 있습니다.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우주 속에 태양계가 자리를 잡고 지구가 만들어지기까지 천문학을 비롯하여 우주물리학 등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37억년전 우주의 시원으로부터 인류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루기에는 원고의 분량이 지나치게 방대해진 탓인지 5억 4,200만년전 캄브리아기까지 지구상에 등장한 지구생명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세 가지 근본 관심 가운데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두 가지 질문은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를 통해서 그 답을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 질문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는 후속작인 <인간의 장편소설>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파칼레는 서문에서 시적이고 반어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이 책을 쓸 것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티투스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영향으로 받아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생명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생명체이기는 하지만 누구에게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잘것없는 물질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점도 깨닫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파칼레는 우주가 인간의 모태 혹은 활동무대로 쓰이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견해를 거부합니다. 즉 창조론은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체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자기중심적으로 쌓아올린 오만의 극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주의 기원이라고 할 137억년 전 빅뱅이 일어나는 시기에 “태초에는 말씀도 없고 신도 없었다.(37쪽)”고 일갈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도는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구나”라고 <도덕경>에 적은 노자의 사상에 대하여 “하늘보다 앞서 있었으나 비어 있었고, 아무도 그것이 무엇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니 정말 기가 막힌 직관(66쪽)”이 아닐 수 없다고 탄복하고 있습니다.
파칼레는 매 장의 글머리에서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내용을 인용하고 현대적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원자론과 유물론을 계승한 책으로, 원자가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 공간에서 상호작용하여 모든 사건이 발생한다는 원자론적 우주관을 담은 고전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중간에는 일종의 하이쿠라고 할 만큼 두 세 줄의 짧은 시를 넣어 본문을 요약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빅뱅에 관한 시는 “신 없는 신 / 전부이자 무(無) /말할 수 없는 빅뱅(38쪽)”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원에 일어난 빅뱅으로부터 소립자들의 작용으로 빛이 생기고 원시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우주가 확산되는 과정을 요약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레너스 서스킨스교수가 <우주의 풍경; http://blog.yes24.com/document/6412613>에서 상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소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우주에 물질, 별, 태양, 태양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지구에 생명이 등장하여 진화하는 과정을 손에 쥘 듯 그리고 있습니다.
고대 원자론을 확립한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지구라는 행성에 우리가 살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태양계가 은하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지구가 지금의 위치에 만들어진 우연(偶然)이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시지구에서 생명의 원천이 되는 유기물질이 만들어지고 이들 물질이 생명체로 발전해 나오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보다 구체적입니다. 유기물질로부터 유전물질이 만들어지고 유전물질이 단세포동물이 되고 단세포동물이 다세포동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우연도 작용하였지만, 지구환경의 급변이 계기가 되어 생존을 위하여 마련한 자구책의 결과였다는 설명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하게 된 몇 차례의 전기가 있었다는 것인데, “첫 번째는 137억년전 빅뱅과 함께 우리는 물질과 에너지로서 한 번 태어났고, 40억년 전에 리보자임과 핵없는 세포로서 다시 한 번 태어났으며, 10억년 전 진핵세포와 성(性)의 출현으로 세 번째 태어났고, 5억 3,000만년 전에 척삭동물 계열이 출현하면서 네 번째 태어났는데,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300만년이 조금 못 되었을 때, 호모(Homo)속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550쪽)”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중심의 사고를 벗어던진 저자는 진화가 특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존재가 진화(進化)에서 ‘정점’을 찍거나 ‘궁극’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지구생물들의 정점에 서 있는 인간도 고생대 혹은 중생대에 일어난 대규모 멸종을 통하여 사라진 생명체들처럼 어느 순간 지구를 떠나게 될 운명을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583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서 보면 태양계에 속하는 위성에 대한 설명이나 캄브리아기에 나타난 생물들에 대한 설명들은 어떻게 보면 사족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캄브리아기를 전후해서 등장한 생물들에 대한 설명은 명칭부터 생소한 탓인지 이미지조차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석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생물 가운데 상당수는 현존하는 어떤 동물과도 닮은 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전자변이가 일어나 진화가 시도된 생물군이 살아남지 못한, 즉 지구 생태계로부터 진화를 승인받지 못하고 폐기된 생물일 것이라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설명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물론 철학자로서 저자는 아이들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창조론이 여전히 권세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창조주의 의지에서 나왔고, 하느님의 법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권정치사회에서는 창조론 이외의 다른 이론은 설 자리조차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인 데이비드 밀스의 <우주에는 신이 없다; http://blog.yes24.com/document/3640767>에서도 천지창조에 신의 의지가 개입된 바 없다는 주장을 읽은 바 있습니다만,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에서는 물리학, 천체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유전과학 등 자연과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주와 물질,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장대하고 웅장한 대서사시를 철학과 과학 그리고 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필치로 펼쳐내고 있어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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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앞뒤 표지 표지만 보면 소설이나 문과 계통의 철학서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 쪽 마지막 쪽 찾아보기는 583쪽, 본문은 561쪽이다.
-첫 번째 생각(2012. 9. 10)-
이 책은 해나무 출판사 관계자의 서평 제안을 받고 읽게 되었다. 나는 서평 제안을 받으면 대부분 응락을 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책을 읽기를 즐겨하고 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편 나를 선택해 준 출판사 관계자의 마음에 보답하면서, 출판 문화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도 기쁨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드물게 내가 망설인 책이다. 우주의 역사라는 천체 관련 분야에는 문외한인데다 본문만 568쪽이라는 분량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선호하는 책은 300쪽 내외의 소설이나 수필류이다. 나의 독서는 주로 여행이나 거리를 걸으며 이루어지는데 350쪽을 넘어가면 들고 다니기 힘드니 휴대가 불편하다. 또 직장생활을 하는 환경에서 장편의 경우는 집중을 하기가 힘든 면도 있어서이다. 그것을 떠나서 대하소설이 아닌한 400쪽 이상의 교양서적을 읽은 적이 없다. 그런데 전공은커녕 평소에 관심도 없던 분야의 대작을 어찌 읽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신운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라는 제목이 낭만적이었고, 다음과 같은 책의 카피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생명은 아름답고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137억 년간 생명이 써내려간 장대한 우주적 드라마! -어느 곳을 펼쳐도 밑줄 긋고 싶은 철학적인 명문장들 -단단한 지성, 아름다운 문체, 깊은 통찰력이 만나다
이 글 어디에도 딱딱한 이과 계통의 내용이라는 암시는 없지 않은가? 창세기까지는 아니라도 신화와 문학 그리고 철학을 아우르면서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써내려간 장대한 서사시일 것이라로 기대를 하며 서평단을 신청했다. 혹시 난해하다고 하더라도 집중을 하면 이해를 못할 것이 없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몇 장을 넘기는 순간, 곤혹스럽기만 했다. 내가 읽은 내용이 정리가 안 되는 것이다. 책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나의 관념은 다음과 같다.
-의미가 없는 책은 없다. 어느 책이든 저자가 전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난해한 책이라도 끈기있게 50쪽 이상 읽자. 그러면 의미가 전달되리라. -혹시 이해가 안 된다면 세 번 정도 읽자. 독서백편의자현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느 책이든 저자의 메시지는 담겨있고, 좀 어렵더라도 독서백편의자현까지는 못하지만 두세 번만 읽으면 의미 파악은 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1부인 '137억년 전, 우주의 기원(72쪽)'을 완독하도록 감이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앞에 적은 책의 카피들이 거짓이거나 과장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네 줄의 카피 모두 공감한다. 우주적 드라마를 담은 글이 맞고, 어느 곳을 펼쳐도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철학적인 명문장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어쩌랴! 1부를 다 읽도록 내게는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 없으니….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고, 심지어 한참 책을 읽다가 잠깐 전화를 받거나 다른 일에 신경를 쓰면서 책을 내려놓은 뒤 다시 책을 들면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혼동이 된다. 나는 1부를 마친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았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기분이 아니라, 오래 전에 읽은 책을 펼친 듯 새롭기만 하다.
세 번을 읽었는데도 마찬 가지다. 나로서는 어떤 책을 완독한 뒤 다시 펼친 적은 있어도 마지막까지 읽기도 전에 앞 부분 50여쪽을 세 번씩이나 다시 읽기는 처음이다. 그래도 역시 이해가 안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주나 천체 과학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지식이 너무도 부족한 탓인 듯하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될 손님이 있다면 함께 다음 글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과학자들은 몇 가지 보편상수들에 기반하여 우주론을 수립했다. 광속c와 뉴톤 상수 G, 그리고 플랑크 상수 b가 그러한 보편상수들이다. 우주의 역사 초기에 물리학의 기둥 격인 이 상수들 중 어느 하나가 지금과 다른 값을 지녔다면 우주의 시작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1줄 중략)…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는 퀘이사들을 연구했고, 그 퀘이사들의 물질과 전자기파의 상호작용을 통해 c나 b가 가변적일 수 있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했다.(97쪽 6~13행)
글쎄, 이 글을 세 번이 아니라 30번을 읽는다고 해도 이 구절을 이해할 것 같지가 않다. '보편상수, 광속c, 뉴톤 상수 G, 플랑크 상수 b, 퀘이사 등'이 무엇인지 개념 자체도 떠오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우주론, 수십억 광년, 물질, 전자기파, 가변적 등'도 낱말이야 알고 있지만 우주나 천체과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글들이 다수 이어지고 있으니 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2부부터는 세 번 읽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책장을 넘겼다. 133쪽까지 2부 '빛의 백성들-130억년 전 별들의 운명'까지 모두 읽었으나 혼동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상태라면 마지막까지 읽어도 카오스의 이 혼돈은 끝이 없을 듯하다. 일단 여기에서 1차 리뷰를 통해 나의 상태를 남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오직 난해하기만 한 책인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처럼 이 책의 카피는 모두 맞다. 책을 읽으면서 웅장한 우주 드라마를 느끼면서 내가 창세기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는 듯했고, 장엄한 서사시를 대하듯 주옥같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문구를 보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번역서라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인이기도 한 어느 과학자가 자신의 전공분야를 인문학적인 면에서 모국어로 서술한 저서를 보는 듯한 마음이다. 외국인이 쓴 문학적인 소설이나 수필을 읽을 때도 옮긴이의 문체에 불만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역자인 이세진 씨에게 저자인 이브 파칼레에 못지 않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지금 2부 133쪽까지 읽었다. 한 4부까지 읽은 뒤에 그 때 변화한 내 마음을 덧붙이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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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며 과학이라는 것은 나하고는 너무 멀게 살아 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지만 학창시절 그 이후로는 과학서며 그외 관한 것에 귀를 닫고 살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래도 철마다 바뀌는 별자리는 찾는 것은 정말 좋아했다. 시골에 가면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는 정말 밤하늘에 별들이 너무도 많다. 분명 똑같은 하늘인데 시골에 가면 왜 그리 별이 쏟아져 내릴듯이 많고 반짝반짝이는지. 울집 막내는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게 별자리며 과학에 관심이 많아 방학기간중에는 꼭 과학특강을 받고는 했다. 그렇다고 딱히 과학적인 것을 하기 보다는 물로켓 만들기,밤하늘 별자리 관찰하기,비누 만들기 등등 그리고 자연관찰을 하러 생태공원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일부러 관심을 가지게 해서 된것이 아니라 시골에 가면 별자리가 많다며 관심을 갔더니만 벼랒리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 점점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지질 않았다. 수능이라는 벽에 부딪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게 되니 자연 관심이 사라져 버린듯 하다. 나와 막내가 보았던 별자리,수 많은 별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하여 궁금함을 가졌던 적이 있을까.문득 책을 읽다보니 너무 관심밖으로 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자연과학자이자 생태철학자인 이브 파칼레의 무신론적 이야기는 때론 시와 같기도 하고 때론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과학 철학 에세이다. 내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의 지식들이라 그냥 읽는 것으로 만족을 하며 읽었는데 단번에 읽어서는 안될 듯 하여 야금야금 읽게 되었다.그렇다고 그 모든 지식을 모두 꿰뚫게 된 것은 아니다. 한번 읽는다고 모두 둘 그런 그릇은 못 되니 그저 소설 한 편을 읽듯 재밋게 읽어 나갔다.우주 나이가 137억 년,그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언가 생겨나고 소멸하고 그렇게 이어언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이면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책을 그나름 그의 생각을 플러스 하여 좀더 현대의 책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책이다.
137억 년 전에 우주의 기원이 있었다면 130년 전,별들의 전쟁이 있었다는 것. 우리가 늘 바라보는 하늘에 별들은 늘 그자리에 그 별이 박혀 있는 듯 보이는데 그것이 생성과 소멸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별들의 생명 또한 인간의 생명과 무엇이 다를까. 이제 겨우 몇 십년 산 인간이기에 몇 백억년이란 어감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억겁의 시간 속에 별들이 별로 이어지고 아버지의 아버지로 아버지에 아버지로 이어졌는가 하면 어머니의 어머니로 이어져온 시간 속에 생성과 소멸을 거치 모든 것들이 소멸로 그친 것이 아니라 진화의 역사를 거듭한 장편 소설이 철학자의 논증에 의하여 그나름 과학적인 답을 주었는데 내겐 정말 어렵다. '우주는 어디에서 왔을까?' '생명은 어디에서 왔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또 어머니 쯤으로 대략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무에서 생겨난 유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유물론적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의 특별한 우주는 수많은 다른 우주들과 공존한다. 우리는 그 세계를 '고전적인'공간 3차원 더하기 시간 1차원이면서도 다른 6개 공간 차원들과 연결되는 '인터베이스'가 있는 '막'처럼 상상할 수 있다. 6개 공간 차원들의 존재는 계산을 통해 입증될 수 있으나 우리는 영원히 그 차원들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구성된 우주는 빅뱅에 선행하는 실체를 지닌다. 우리는 영원히 존재하는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있을까? 모든 것은 흘러가고 생과 사의 끊없는 연결 고리 속에서 새롭게 혹은 또 다른 종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변화를 거치고 빅뱅 시리즈들이 태어나는 것 같다. ' 우주는 프랙털이다. 우주는 무한히 쪼갤 수 있다.....쪼갠 것을 다시 쪼개고, 그것을 다시 쪼개는 식으로 해안선을 얼마든지 늘려나갈 수 있다. 위성에서 촬영한 지구 영상에서 어느 나라의 지도로, 어느 지역의 지도로, 그 후에도 갑,바위, 모래알갱이, 결정,분자, 원자,소립자, 궁극의 쿼크까지 파고들 수 있다.'
태어남과 죽음으로 다시 또 다른 생으로 태어나는 우주를 과학적으로 노래한 장편소설은 ' 시와 사랑에 빠진 과학은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가!' 그렇다.그는 생과 사의 반복 속에 137억년의 삶을 이어 온 우주가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시처럼 혹은 소설처럼 과학을 논한 우주는 '아름다움' 이었다. 인간의 삶 또한 생만 있다면 그것이 아름다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생과 사라는 삶과 죽음의 반복속에 거듭되는 서로 다른 삶 속에서 나와는 다른 삶에 깃든 무언가를 보며 우린 경이에 젖기도 하는데 그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우주의 나이만큼이나 장대한 그의 우주 이야기는 한 편의 대서사를 읽는 것처럼 철학적이면서도 아름답기도 하고 무척 어려운 과학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소설과 같아 흥미롭다. 때론 시가 때론 소설속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일까 무척 친근하게 읽을 수 있다. 한번으로 읽기 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날 때 몇 번 더 읽어보고 싶다. 우주장편소설을 마친 그가 인간 장편소설인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인간의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니 그 다음 책도 만나보면 재밌을 듯 하다. 우주를 좀더 거리감 있게 읽었다면 인간의 이야기는 좀더 가깝게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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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무척 흥미로운 책...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읽게된 나에게 이 책은 제목처럼 그리 쉬운 책은 아니었다. 아마도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흥미를 덜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과거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하곤 했었기에 더더욱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저자는 유물론자로 창조론 보다는 과학에 관심을 두고 모든 탄생을 바라보았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등... 그 학문들만 생각하면 참 지루할 것 같은데 이 책은 무척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 처럼 말이다. 중간 중간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때로운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 해설들이 낯설게도 느껴지지만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 그리고 미스터리한 일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다.
우주의 탄생, 생명의 탄생을 철학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의 지식에 또다른 지식과 물음들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저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믿고 있던 많은 지식들이 이 책을 통해 배경을 얻게 되었고 이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것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배움이란 끝이 없는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프랑스 자연학자이자 생태철학자인 이브 파칼레는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로 그의 시각을 따라하다보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시선에서 좀더 객관적인 시선이 되게 된다. 마치 내가 우주를 내려다 보고 있는 듯 우주의 탄생 모습들이 모이는 듯 하다. 과학적 시선으로 따라가다보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인데 현재의 모습들을 보면 가능한 그 모든것들이 경이롭고 신비하게 느껴진다.
왜 이제서야 이런 책들의 재미를 알게된 것일까? 이 책을 덮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 이면에는 또다른 사실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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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있었다."
책 띠지에 적힌 문구이다. 이 문장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저자는 무신론자이다. 그는 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운명도 없고 신의 손도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인류의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이미 내린 결정, 내리고 있는 결정, 앞으로 내릴 결정에 달린 문제다. - p.14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며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로에 가깝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며 인간이 사라져도 우주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은 덧없이 스치고 가는 과정이자 흔적이 지나지 않는다. 우주에서 무한히 일어나지만 정작 우주는 알지도 못하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우주는 신과 달리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는다(p.29). 저자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간은 보통 크기의 별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의 우둘투둘한 표면에 붙어사는 낱알 한 톨만 한 존재이다. - p.19
과학과 종교에 대한 비교가 인상적이다. 과학은 반항, 회의주의, 논쟁, 새로운 실험, 비판적 검증을 숭배한다면서 종교와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과학은 자신이 말한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앙이나 미신과 구별된다. (중략) 과학은 종교와 달리 골치 아픈 질문 공세와 까다로운 검증을 사랑한다. - p.34
우주는 137억년전 빅뱅에 의해 탄생했다고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저자는 137년에 탄생한 우주의 역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우주가 탄생한 지 10억년이 흐른 127억년 전에는 물질이 탄생했으며 46억년 전쯤에는 태양이 등장했다.
46억년 전 태양이 만들어지고 1억년이 지나고 태양계의 행성들이 정렬된다. 과연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있을 것인가 또는 태양계가 아닌 다른 은하에는 있을 것인가? 저자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화성을 설명한 대목에 주목했다. 얼마전 작고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라든가 조지 웰스의 <우주 전쟁> 등 화성을 소재로 한 SF소설과 영화를 언급하면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화성은 인간의 환상울 부추긴다고 이야기한다. 얼마전 NASA의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착륙하여 탐사를 시작하였다. 앞으로 2년뒤 2014년까지 화성 표면을 누비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태양계의 모습이 완성되고나서 10억년이 지난 35억년 전 세포가 출현한다. 즉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는 점점 줄어들고 산소가 늘어나면서 대기의 구성비가 고등세포들이 살기에 적합해졌다. 25억년 전 산소는 대기의 1% 벽을 넘어섰고 10억에서 8억년 전 사이에 드디오 산소가 10%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후 인간이 출현한 시대의 대기 중 산소인 21% 수준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러면서 단순 생물들이 진화가 시작된다. 생명이 점점 다양해 지면서 단세포 동물에서 다세포 동물로 발전하며 바다를 벗어나 육지로 올라오게 된다.
책의 성격은 생명에 관한 철학에세이를 표방하지만 상당히 과학적인 지식을 요한다. 우주의 관한 용어로 쿼크, 끈이론, 암흑에너지, 초신성, 웜홀 등 전문용어들이 언급되며 생명의 출현 이후의 내용에는 DNA구조라든가 생명공학 이론들이 등장한다. 전문용어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문장이나 내용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상당히 시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가득하다. 책의 초반부부터 마지막까지 언급되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구해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