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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는 단어만으로 참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함에 덧붙혀 미워함이 생겼다. 누구에게라고 콕 찝어서 말하지 않아도 될 그들에게 난 어쩌면 아직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21c를 달려가는 지금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유유히 전해져 내려온 얄미운 감정이 조선만화를 통해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났는지도 모르겠다. 100년전 조선이라는 나라에 만화라는 단어를 처음 뿌린이가 다름아닌 일본인이라는 것에서부터 내 눈속에서 가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막대먹은 말을 하고 막무가내의 행동을 하는 그들에게 만화까지도 라는 의미가 깊이 베여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조선이라는 나라보다 강한 나라였으니깐. 지배자였을테니깐. 타국의 국모까지도 칼로 베고 마는 저질스런 인간이라는 탈을 쓴 나뿐놈들이니깐. 아~ 내 심성이 이렇게 까지 각박하고 너덜너덜 했었던가? 싶어지는게 심히 괴롭다.
조선만화를 만나면 요즘 우리들이 보는 만화책과는 180도 다르다. 단지 그냥 한컷의 수묵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런걸 굳이 만화라는 장르에 넣어야하나?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만화를 보면 요즘 한참 뜨는 웹툰에서처럼 시대상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아주 깊숙히 그 시대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아련하게 가슴앓이 할 정도로 충분히 담겨져 있다. 사진이 없던 시대이니 소중한 자료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손색은 없을듯 하지만 코끼리를 만져보는 시각장애인의 느낌처럼 조선의 입장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그려진 그림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시대적인 상황들을 해석하고 있다는 아픔이 있다. 한마디로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변기와 세면기라든가 유방의 노출처럼 그들은 그저 우리들을 불결하고 성적대상으로만 보았다는 것이다.조선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의 이면에는 무조건 게으르고 더럽고 부주의하고 무엇을 하든지 어떤모습이든지 그들에겐 그저 최하층민의 못난모습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이래서 국력을 길러야 하는게 맞다. 지난번 올림픽에서도 우리나라에게 보여준 불이익들이 그렇듯 국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게 귀한 자료로서의 소장가치를 논하기 전에 우리나라, 우리민족이라는 애국심(?)에 먼저 접근하는 그래서 괜시리 열받게 만드는 느낌이 강하니 조선만화를 눈으로만 읽은꼴이 되었다. 나처럼 눈으로만 읽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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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비교문화세미나팀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에 관한 지식을 어떻게 생산.분류. 유통 했는지를 연구하던중 도리고에 세이키가 그 시대에 "조선만화"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렇게 지금의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게 되었다. 어떠한 것으로 어떠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만화를 편집하고 만들어낸 이가 우리조선에 처음 만화라는 말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단다. 그 전까지는 만화라는 글이 없었다. 또한 그는 하루 이틀 조선에서 살고 지어낸 책이 아니라 일 이년이라는 긴 시간을 조선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나라의 만화를 적재적소에 지정하여 그것을 우리의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네가 쓴 글은 그냥 조선을 비하하고 자기네의 우월성을 강조한 듯 하다. 그림 하나를 놓고 자신의 관점에서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있다. 과연 그네가 일이년을 조선에서 살았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조선을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일본의 우월성을 내세우면서 조선은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둔함으로 미술이 무시되고 미라는 감념을 상실한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내용을 고스란히 조선만화를 설명하는 과정에 들어가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사람이 글을 사랑하고 책을 내는 문인이었을까란 생각이 머리를 파고 든다. 자신의 책을 사랑한 사람이 어찌 남의 나라 모습을 이리도 밟아내려 글을 쓸 수 있는지.. 제국주의 문인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 하다.
한일합방시대에 조선을 이해하고 조선풍속을 알려주는 만화를 책으로 엮어내었다기에, 또한 우리나라에 만화라는 것을 처음으로 심어주었다하기에 그나마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닌 듯 하다. 그야말로 그시대 일본제국주의 식민으로서의 삶을 그대로 살아간 사람인 듯 하다. 가령 그렇게 인자한 일본인 의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루타로 보듯이 말이다. 전형적인 식민주의 일본제국의 문인... 그의 관점에서 본 조선만화... 이다. 그래서 이책을 보면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위안부도 자기네들이 억지로 끌고갔다는 증거가 없다는 일본 우익을 보는 듯 하다.
조선만화는 100여년전 철저한 제국주의 일본의 한 문인이 조선을 자신의 삐뚤어진 관점에서 설명하여 놓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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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지만 생각할 여백을 갖을 필요가 없어 굳이 만화를 읽지 않는 내가 <조선 만화>하여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던 만화쯤으로 생각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사실 너무나 당황했다. 나의 세대만 해도 전쟁을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종교차원에서가 아니라면 일본이 그리 환영할 만한 인상이 남겨져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아무런 선입견도 갖지 않은 것에 대해 당혹감을 느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듯 하다. 그렇게 잊혀질 수 없는 나라이지만 굳이 지금에 와서까지 그 일들은 잊혀지지 않겠지만, 감정은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왔던 상황에서 <조선 만화>는 또 한번의 당혹감이랄까? 그렇잖아도 일본의 움직임이 그리 반갑지만은 이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 내 감정을 똑같이 대변해 주는 대목이 나온다. 183쪽에 인용된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의 한 대목이다. 화자 이인화는 처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받고 도쿄에서부터 시모노세키의 긴 여정에 오른다. 연락선에 승선한 이인화는 목욕탕으로 향하는데 이곳에서 우연히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주로 거간꾼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조선인'의 묘사를 듣게 되는데 '요보' 틈에서 지낸 자로 조선 사람들이 어떠냐는 상인의 질문에 "요보 말씀이에요? 젊은 놈들은 그래도 제법들이지마는, 촌에 들어가면 대만의 생번보다는 낫다면 나을까. 인제 가서 보슈."라는 모욕적인 답변을 듣는다. '대만의 생번이라는 말에 이인화를 제외한 욕탕의 모든 사람들이 비웃지만, 이인화는 이에 대해 한편으로는 반감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독약이 고구나 이어병"이라는 식으로 조선 민족의 자각을 촉구하는 대립된 감정을 느낀다.
모욕감과 자각이라고 정의하면 맞을 듯하다. <조선 만화>의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만화를 담당한 도리고에 세이키는 2년여 동안 조선에서 체류했던 체류하며 이 책을 발간한 재조일본인이었다. '만화'라는 용어가 사용된 용례가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알겠지만 만화의 프레임 안에 일본인은 부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화의 프레임은 야만, 불결, 태만, 비합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선 만화>에서 문화번역의 행위자는 보는 '시선'으로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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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비친 조선은 돈 세는 일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천박한 인간이었으며, 조선인의 식문화를 야만시하고 폭식과 불결로 비춰 본다. 조선인의 복장에 대해서도 합당치 않다고 심하게 논박하고 있다. 또한 조선의 온돌 주거는 불결하며 야만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침략자로써 "발밑의 흑점"이라고 표현한 조선이 왕을 상상하는 그들의 제국주의적 욕망이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p.178 이러한 기획은 무엇일까?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자신들의 위치=동일성을 견지한 결과였다. 그 하나는 조선에서 살아가면서도 조선인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가 일본인이라는 동일자 의식에 집착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조일본인으로서 직접 만들어낸 '조선에 관한 지식'을 제국으로 향해 발신하려는 스스로의 위치를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지구상에 동일한 문화와 생활풍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얼굴이 화끈화끈한 내용들을 읽으며 오히려 나 자신의 시각을 인식하게 되었다. 몇몇 나라들을 여행하며 그들의 생활에 대해 이해하려는 머리보다는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불결의 의미로 인식하고 그들의 문화 위에 존재하였던 나 자신을 말이다. 그리하여 나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에 가면 한국말로 욕을 하고 큰소리를 처가며 함부로 대하고, 나보다 발전한 나라에 가서는 "엄메 기죽어"가 되어 어찌할바 모르는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렸다.
우월한 문화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사람의 기준이며, 힘으로 상대방을 쓰러트렸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또 어찌보면 우리들의 문화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지적 앞에 얼굴을 붉히고 원래 그런것이라고만 하기 보다는 개선해 나가야할 상황들은 없는지를 자각하는 자세라면 오히려 우쭐한 상대방보다 더 큰 그릇으로 발돋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많은 여운과 가르침을 주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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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를 보는 눈은 정말 끝없이 관대하지만 같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났다고 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삐딱해진다. 이러한 시각은 나와 남, 비단 인간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특히 힘 있는 나라가 힘 없는 나라, 즉 강대국이 약소국을 바라볼 때는 더욱 편협해지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미개한 나라이니까’ 하는 식으로 한편으로 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만화작가가 <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에서 일본을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나라로 묘사하였던 것처럼, 일본 만화작가 역시 100년 전 조선의 모습을 참으로 희한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은 도리고에 세이키가 그린 <조선만화> 단행본을 번역하고 분석한 것이다. 도리고에는 2년 여 동안 조선에서 체류했던 화가로, 이후 1924년 일본 최초의 만화사를 그린 호소키바라 세이키와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일전에 혼마 규스케의 <조선잡기>(1894)를 읽은 적이 있는데, 글만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도리고에는 만화와 글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 그림은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과장, 왜곡 등의 가공이 가능하고,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이미지로 전달하므로 더욱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선조들의 일상을 엿볼 수도 있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면서,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지를 알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비판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조선에게서 배워야한다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곳곳에 주석이 상세하게 달려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번역으로 끝났다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기 어려웠을 단어들을 따로 설명해주고 있어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재미난 것은 당시 조선말을 소리나는 그대로 일본어로 표기한 부분이 자주 보인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한 일본인이더라도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번역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로 귀한 자료가 정성스럽게 번역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비교문화연구, 또한 우리 역사를 바르게 바라보는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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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에서 흥선대원군,고종 시대의 조선시대 말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모든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당시에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로 인해 약해진 왕권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리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 양반들의 세력확장의 기반이자 각종 경제적 폐단의 온상이었던 서원 정리
및 약해진 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한편으로 쇄국정책을 펼쳐서 우수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일합방이 된 것이 19010년이고...
그 당시의 일본인들이 본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잇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제 3자의 눈으로 보는 조선의 모습은 어떠할까? 라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들은 객관적인 눈으로 조선을 바라보았을까?
하지만 이 조선만화는 그렇지 않았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이 만화는 조선인의 차별적인 이미지만을 닮고 있었다.
일본은 문명인이고, 조선은 저속하고 미개한 민족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만화를 통해 일본인들은 식민지화 과정속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인 내용을 적용하고
자신들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리고 우수한 문명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한다.
식민지화의 정당화를 말이다..
조선의 각 계층의 모습 그리고 관습, 음식, 풍물들을 만화로 닮고 있는데. 그것은 조선의 미개함을
우숩게 풍자하려는 그들의 의도였던것 같다.
조선만화안에서는 결국 조선을 야만성, 미개함, 불경함, 악취, 태만, 폭식, 저능, 무사태평, 온순함등의
모습을 볼수 있을뿐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조선의 그당시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려는 독자들의 생각을 철저하게 실망감으로 바꾸게 된다.
실망감은 이후에 일본에 대한 분노로 변질되기까지 한다.
다양하고 차별하된 우리 조상들의 문명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이 조선만화라는 책을 보며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보기도 했지만,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이 한가지였다
"역사는 승자와 강자가 만들어 가는 것"
우리의 국력이 강했더라면 근대화를 일본보다 더 일찍 했더라면 그런 치욕의 역사를 당하지 않았을텐데말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일본보다 더 앞서고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여 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도 "일본만화" 라는 책을 출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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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한국의 풍속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그렸던 만화와 그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는 책. 이 책은 한국에서 '만화'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텍스트라고 한다. 당시 일본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 시각이 꽤 흥미롭다. '조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개'와 '야만'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데, 그 고정관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에 종종 나오는 '요보'라는 칭호 또한 단순한 칭호가 아니라 비하의 뜻이 담겨져 있음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이 게으르거나 비위생적이라는 선입견과 함께 '순진무구한 조선인'의 이미지도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지금의 우리가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것과 같은 것이리라.
슬픔을 바꾸어 즐거움으로 만드는 한인의 지혜는, 죽은 자의 영천을 승천하는 것이라고 낙관하는 기독교도에 비해 술이 있고 안주가 있는 점에서 대단히 훌륭하다. (68쪽)
요보가 큰 재목 위에 높이 올라 앉아 톱질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쾌한 기분이 들어 파안일소를 금치 못한다. 그것도 일에 집중하며 웅크리고 엎드려 있다면 재밌지 않지만, 예의 장죽을 물고 몸을 젖히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녀석 솜씨도 좋네 하고 무심코 지껄이게 된다. (116쪽)
물론 이 '순진무구'나 '유쾌' 또한 문명의 미숙한 단계, 그러니까 마치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을 대하는 태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귀여운 면도 있지만 여전히 혼내면서 성숙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이 책에는 <조선만화>의 원문 번역만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글도 포함이 되어 있어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된다. 하지만 해석의 영역에서 너무 나가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어찌보면 국문과와 사학과의 차이가 여기서 또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림에 일본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두고 타자화 등을 들먹이는 건 오버센스가 아닌가 싶다. 조선의 풍속을 알리는 그림에 일본인이 굳이 등장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일본인이 등장한 소수의 그림에서 의미를 찾아야지, 없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 같다. 어쨌거나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는데 재밌기도 했고 새로운 것들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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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즐겨 읽는 만화를 살펴보면 대부분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 작가들이 많다. 실제로 일본 만화가 재미를 더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선 아무런 부인을 하지 않겠다. 그런데 만화가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 일본이라는 점에서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선만화]를 읽고 나서 나는 한 독자로서 이 책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생각과 그들의 행동, 원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이 만화에서 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서 보여 지는 만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만화가 아니다. 그냥 어떤 그림 삽화 한 장만으로 그에 대한 제목과 해설이 담겨져 있고 단순하기 보다는 매우 복잡한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말풍선도 없고 색상도 없고 흑백의 사진 같은 만화 그림 한 장으로 무얼 얼마나 부연 설명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이 책에서는 상당히 자세하게 그리고 복잡하게 해석되고 있었다. 이걸 과연 만화라고 인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만화이든 삽화이든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건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인들의 생활과 관습, 놀이. 취향, 방법 등이 어떤 방식으로 비춰졌는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조선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들이 각인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알고 보면 이것 또한 역사에 파뭍혀 버린 우리 조선의 위대한 유산 같은 것을 일본인이 왜곡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째서 많은 나라 중에 일본인들은 우리 조선을 압박하고 괴롭히는 것일까? 단지 국력이 약하다는 이유 하나일까? 일본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조선을 삼키는 것일까? 만화의 부연 설명들은 참으로 염치없고 자극적이며 비하학적인 부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고기에 관한 그들의 생각, 마늘냄새와 고춧가루 냄새에 대한 고정관념, 조선 주식인 밥에 대한 갚어치 등등이 조선을 비웃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 만화에서 조금이라도 조선이 강세를 보일 것 같은 만화에서는 그 부연 설명을 생략하거나 회피하려 들고 있다. 또한 만화에서는 그 사람의 표정, 의상, 손짓, 몸짓, 풍경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었고 조선의 특징을 섬세하게 잘 살리고 있었다. 이 점은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타국의 나라를 자신의 생각이 아닌 만화가의 나라, 즉 일본의 입장에서 그린 점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는 만화이다. [조산 만화]는 만화로 치자면 상당히 어려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만화는 그 그림만 보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지만 이 조선만화에서는 부연 설명이 곁들이지 않으면 그 속뜻을 알기가 어렵다. 사실 ‘설명이 없었다면 있는 그대로의 조선만화를 사랑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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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란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을 보면서 조선의 풍속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표상된 사진들이, 가령 지게를 지고 있는 남자와 물동이를 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조선의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을 부각시키고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모습으로만 왜곡하여 외국인에게 전달하였는지 알수 있었다. 사진 속에 실린 인물들은 그저 한 개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 모두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꾸 각인시켜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더 스테리오 타입화되어 조선은 낙후되고 문명화되지 못한 국가이므로 식민통치가 정당하다는 이미지를 준 것이다.
사진엽서가 이렇듯 만화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용한 것이 일본인 도리고에 세이키에 의해 그려진 <조선만화>다. 역시 이 만화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조선인의 이미지로 식민통치가 시작된 이후 조선을 야만=미개로 표상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도리고에 세이키는 2년 정도를 조선에서 체류했던 화가로 당시 조선의 상황을 만화로 비평한 만화저널리스트였다.
그런데 <조선만화>는 제목과 달리 만화로만 구성된 책은 아니였다. 저자가 조선에서 머무르면서 보고 들은 풍속을 소개하는데 , 이를테면 당시 조선 사회의 계급과 계층, 음식과 놀이, 그리고 다양한 풍물 등을 다룬 50개의 제재를 설정하고 이미 그려진 '만화' 에 대해 공동저자인 우스다 잔운이 부연 설명한 '해설'을 덧붙인 형식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인들은 더럽거나 능력이 없거나 무식한 이미지였다. 39장에 있는 '변기와 세면기'라는 내용을 보면서 진짜 화가 확 치밀었다.
첫 시작이 '또다시 불결한 그림이 나왔다.' 이다. 사실 만화라고 하지만 일러스트 느낌이 난다. 우리나라 사람을 야만 미개인라고 하며 우리나라를 악취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상륙해서 먼저 야릇한 악취를 느끼고, 수도에 들어서서 분변이 길거리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가 변기와 세면기가 잡거하는 꼴을 보는데 이르러서는 실로 코를 막아 쥐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라고 끝맺음을 하고 있다.
다음장인 40장 쌀 찧기에서는 게으름을 부각했다. 쌀 찧는 남자 모습을 그려놓고 나태하고 게으르고 칠칠치 못하다고 표현했다.
45장 걸식 부분에서는 조선인들이 열등한 저급 생활을 하고 있다며 결국 조선의 근성이 거지 근성이라고 단정짓는다.답례를 하는 국민이 아니며 주의주장이 없고 절조가 없는 창부와 같다며 조선에서 오래 거주했다 해도 일본인은 한인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조선만화>는 조선은 천편일률적으로 열등민족이라며 도장을 꽉 찍어 이미지를 조작했는데 한 몫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을 미개한 조선을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읽으면서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근데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민성에 자조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거다. 스스로의 국민성 및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데 일제강점기 시대의 끊임없는 이런 쇄뇌교육과 왜곡이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나 선동가보다고 이런 만화 한 컷 한 컷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법이다. 가슴은 아프지만 이런 책들로 인해 어떻게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로 만든 것을 정당화하려고 철저하게 계획하고 있었는지 알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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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가 즐기는 만화는 매우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만화잡지에 연재되어 만화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의 손에 들려지기도 하고, 온라인에 연재되어 책으로 묶여지기도 한다. 약방의 감초처럼 많은 신문이나 일반잡지에서도 만화는 지면 속에 꼭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휴대폰을 통해 이동하며 즐기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공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오늘날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오락적인 측면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특징 너머로 동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며, <조선만화>는 바로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텍스트다. <조선만화>는 일제시대 당시 <조선만화>라는 타이틀로 발행된 만화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논의하고 있다. ‘100년 전 조선, 만화가 되다’라는 부제처럼, 일제시대 초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당시의 생활풍속과 관습 등을 담아낸 여러 장의 이미지들을 살펴보고, 거기에 담겨진 함의를 좇는다. 여기에서 특히, ‘조선만화’를 구성하고 그렸던 이들이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조선을 병합해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려한 일본인의 관점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이 책 <조선만화>는 조목조목 살펴나가고 있다. 책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조선만화 읽기’에서는 조선만화가 기획된 의도를 살펴보고, 그러한 의도를 통해 텍스트로 분석 시 어떠한 관점에서 읽어나가야 할지에 대해 적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두 번째 ‘조선만화’에서는 실제로 조선만화에 실렸던 이미지들과 해제가 담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만화로 읽는 조선과 조선 知’에서는 아카데미즘과 별개로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일제가 조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구별이 요구됨을 살펴나간다. 사실, 책 속에 담겨진 그림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만화’와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말풍선이 부재하고, 컷의 연결도 보이지 않는 등) 만화라기보다 오히려 삽화에 가까운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적 특징에 대한 문제는 별개로 친다면, 어쨌든 조선의 현실을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당대 일본인들의오만방자한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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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만화>는 일제시대 일본인이 바라본 조선의 문화를 만화와 해설이란 형태로 소개한 책이다. 도리고에 세이키가 삽화를 그리고 여기다 우스다 잔운이 해설을 달았다. 대신의 행렬, 온돌의 독거, 하이칼라 기생, 종이연 날리기등 50개의 만화가 이 책에 소개된다. 각각의 아이템은 식민시절 조선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들인데 상당히 부정적이고 하급 문화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못살고 미개한 조선은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도, 문화도 없는 후진국가이기에 아시아의 일등국가 일본이 근대화도 시켜주고, 보호해 줘야하는 당위성이 짙게 깔려있다. 전형적인 식민사관에서 쓰여진 글과 그림이라고 할수있다. 이 당시만 해도 만화라는 용어 자체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시기이기에 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조악하기 그지없다.
<하이칼라 기생> 편에 등장하는 삽화다. 우리 눈엔 그저 기생인가 보다~ 하겠지만 조선의 기생에 대해 소개한 이 만화에서는 기생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다고 했다. 인력거 위에서 거드름을 피며 지나는 양반을 내려다본다. 게다가 기생들의 남편은 기둥서방으로 일하고, 자식들은 거리에 나가 호객행위를 한다. 그러기에 조선에서는 아들 낳기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긴다고 했다.
<묘 앞의 통곡> 편이다. 성묘문화를 비꼬고 있는데 슬프지 않으면서도 곡을 하고, 슬퍼하는 시늉을 하는것이 기이하다고 한다. 서로 소리를 하며 노래 부르듯 통곡을 하고, 며느리들은 기교를 부려 통곡하는데 이를 보고 동네에 누구는 곡을 잘한다, 누구는 못한다 이런 소문이 돈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현상의 기원이나 독특한 문화에서 자생한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저 보이는 그대로 부정적인 해석이 주를 이룬다. 말미에는 "슬픔을 바꾸어 즐거움으로 만드는 한인의 지혜는, 죽은 자의 영령을 승천하는 것이라고 낙관하는 기독교도에 비해 술이 있고 안주가 있는 점에서 대단히 훌륭하다"라고 얼핏 긍정적으로 표현하는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죽은자의 영혼이 하늘에 오른다는 합리적인 기독교 문화에 비해, 슬픈 상황마저 술마시고 놀기위한 핑계로 삼을만큼 근본없는 문화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듯 보인다.
이들 조선 만화에 일본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린것처럼 보이지만, 해설을 읽고나면 조선인의 생각이나 시각따윈 철저히 배제되고 오로지 일본인이 바라보는 시각만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통해 조선만화가 그려진 목적을 들여다 볼수 있다 하겠다. 한편으로 드는 궁금증은, 조선과 일본은 비단 일제 식민시절뿐만 아니라 수천년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 존재하며 문물을 전해주기도 하고, 약탈하기도 하며 애증의 시간을 보내왔던 나라들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조선만화에 소개되는 만화와 해설을 보면 아주 생소한 나라, 처음보는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소개하는 분위기다. 이전에는 조선의 문화와 조선인의 생활상을 소개하는 책들이 일본에 없었을까?
한국인들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중 하나가 여기서 나타난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배워오기를, 중국에서 전래되어온 문물을 독창적인 문화로 발전시켜 꽃피웠고, 이를 다시 일본에 전해 일본 문화의 기틀이 됐다고 알고있다. 삼국시대 왕인박사를 비롯해 불교와 한자를 전해줬고, 인진왜란을 통해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도자기의 시초였다고. 또 일본 천황가도 백제인들의 후손이라는 유력한 설도 사실이라고 믿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양심적인 역사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그렇게 알고있지 않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임라일본부설이 정설처럼 굳어져, 삼국시대부터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해 백제, 신라등을 다스렸고, 한번도 외세의 침공이나 내정간섭도 받은적이 없는 독립국가로 이어져오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해 일류국가로 도약했다는게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이다. 아마도 이런 밑바탕이 있기에 <조선만화>에 나오는 조선문명의 미개성을 맘껏 조롱하고 있는건 아닐까?
독도를 둘러싼 근래 양국의 치열한 싸움이 연일 보도되는 시점에 이런 책을 읽으니 일본의 속내가 어떠한지를 조금은 알수 있어서 더욱 불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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