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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들 친일 문인의 민낯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재미있게 읽어서 그 이후로 그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특히 아리랑을 읽을 때 주인공의 대화 도중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고 나면 친일 반역자들은 다 죽여야 한다는 말에 아주 통쾌했었다. 그러나 한강을 읽으면서는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절망감을 느꼈다.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름표에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형제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강은 조정래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할 수 없는 소설이 되었다.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을 읽으면서도 그런 절망감을 느껴, 좋아하면서도 좋아할 수 없는 책이 될 것 같다. 일제 식민지 시절 민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오직 자기 자신의 무사안일만을 원해 그 가진 좋은 재주를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일왕을 위해 봉사 해온 민족배반자들 특히 문인 28명의 행적을 추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행동과 작품을 보면 뼈속까지 일본인이 되고자 한 모습과 한민족을 제국주의자들의 총알받이로 만들고자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그렇듯 열망했던 일본 제국주의가 영원하기를 바랬지만, 사필귀정이라 결국 원자폭탄 2발로 무조건 항복을 하고 한국은 독립을 했다. 하지만 이런 독립의 달콤한 과실은 식민지 시절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변신의 천재들인 친일 반역자들이 다 차지해버렸다. 나라의 중요한 요직이란 요직은 모두 차지한 채 자신들의 과거를 지우고 숨기는 것을 넘어 왜곡해 버린 것이 지금까지 친일 부역자들의 모습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것이 부메랑이 되어 지금까지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친일부역자들이 즐겨하는 변명이 있다. 당시에는 다 그렇게 살지 않았나? 그들의 강압에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친일활동을 개시하는 시기들을 살펴보면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등 세시기임을 볼 수 있다. 일본의 강력한 힘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위의 말들은 다 자기 변명일 뿐이다. 그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마음이 앞선 것이다. 언제 이들이 누린 모든 것들을 불행으로 되돌려 줄까? 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이들의 글을 접할 때마다 그리고 독립 후 누린 부와 명예를 생각하면 부끄러움과 무기력함이 온 몸을 잠식한다. ‘역사는 그것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사람의 것이다. 35년여 질곡의 세월속에 얽히고 설킨 오욕의 역사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그것을 엄정하게 평가하게 될 때 부끄러운 우리 현대문학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174p) 작가의 말처럼 지금까지 우리들의 안이함을 반성하고 그들의 잘못된 언행들을 꼼꼼히 찾고 기록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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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일요일 아침의 대담프로(유희열의 대화의 희열)에서 작가 유시민이 7~80년대 학생운동하던 사람들이 변절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대화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내용을 옮기자면) " 나라와 사회 혹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생각에서 잘못된 것을 알고 그것을 바꾸려는 사람에게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있다. 내가 이것을 그냥 인정하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내 양심과 소신과 가치관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을 한다. 그러면 그것이 실패를 하더라도 속은 상하겠지만 스스로에게는 떳떳하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꾸려고 하는 것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공의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면 실패를 인정할 수 없게 되고 다른 방향으로도 어떻게든 성공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즉, 옮은 일 혹은 대의를 따르는 일이 개인의 양심과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행해지는 것과 개인이나 일의 성공과 결부되는 것의 차이를 말한 것이라 이해된다. 즉, 실패하더라도 옳은 일을 하는 사람과 꼭 성공해야 하는 사람의 차이를 말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일제시대에 민족에 변절한 친일문학가들의 내용을 다룬 이 책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애초부터 친일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주목받지 못한 젊었을때부터 친일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이들 같은 사람들은 어느 사회나 다 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세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크게 가슴아파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둘째는 일제 초창기에는 민족을 위한 일을 하다가 혹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변절한 경우다. 이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 주요한, 유치진등등이다. 이들이 변절하게 되는 계기는 크게 3가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만주사면(1931년)직후, 중일전쟁(1937년)직후, 태평양전쟁(1941년)직후다. 이 시기를 보면 한일강제병합(1910년)에서 대략 20여년과 30여년이 흐른 후의 시기가 된다. 이 시기는 일본제국주의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미명하에 승승장구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제식민지가 된후 2~30년이 흐른 후에도 일본제국주의는 무너질것 같지 않고 오히려 더 번창(?)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식민지조선의 해방을 위한 일본제국주의의 멸망은 아득한 일이 되어버린다. 세상이 특히 동아시아가 일본이 주장하는 대동아공영이라는 것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이 이루어질거 같다는 생각, 영원히 계속될것만 같은 일본제국주의를 바라볼 때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육사나 김소월처럼 항일과 민족해방의 길로 끝까지 나아가서, 성공이든 실패든 옮을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과 일본이 영원히 계속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때의 개인적 결단이 어떤 길로 나아가게 하였을까를 비교하면 그에 대한 해석은 매우 간단하다. 어떻게 하든지 성공이라는 것에 인생의 방점을 찍은 사람들 특히 사회적 이름을 갖고 있는 문인들의 선택은 당연히 친일매국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은 해방이후에도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성공이라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으로 해석이 된다. 왜 해방이후에 친일매국 문인들이 반성을 하지 않고 계속 뻔뻔하게 더 높은 자리 혹은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였는지를 알게 된다. 오로지 개인적 성공이 최고의 가치인 사람에게 민족이나 반성이나 후회는 있을 수 없으니까. 여담으로 1989년의 독일통일과 소비에트소련의 몰락이후에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이 변절의 다른 길로 걸어갔던 것과 친일매국문인들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모두에 말한 유시민의 변절에 대한 해석이 더더욱 이해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친일매국 문인들의 민낯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행위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쉽다. 하지만 왜 그들은 그렇게 하였을까 하는 속마음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겠지만 삶을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천하는 것과 '양심' 혹은 '올바른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천하는 것의 차이가 그들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무너져 버린 양심 ,올바름이 무너진 가치관이 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민족과 공동체에 얼마나 많은 폐혜를 가져 오는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사람은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삶의 궤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이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미덕이다. 더불어 친일매국문인들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해방후 친일파 청산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도 마찬가지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역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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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화가나는 [부역자들,친일문인의 민낯]을 만났습니다. 문인들중 일부는 친일이 있다는 것을 들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는 책을 만난건 이번이 처음이엿습니다.
책 속에서 만나는 친일문인들 중에는 오래전 국어교과서를 통해 만났던 문인도 있고, 한국 현대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 문인들 중 일부는 친일문인이였다니 적잔히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프랑스는 전후청산과정에서 문인들을 단죄하였고 일부를 사형에 처했지만 국내는 친일문인들 중 단 한 명의 문인도 단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문화훈장까지 받기도 하고, 또 일부는 금관문화훈장까지 추서되기도 하고, 정년까지 대학교수로 지내기도 하고, 또한 이들을 기리는 문학상이 무려 열 개나 운영 되고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학상들 중 잘 알려진 문학상을 대형 신문사에서 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문사라면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친일행적을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나는 일입니다.
책을 통해 만난 문인들 대부분이 놀라움을 주지만 이들 중 가장 놀라움을 주는 문인이라면 바로 서정주입니다. 국내 시인을 대표하는 인물 중 인데 조선 학생들에게 학도 지원병으로 나갈 것을 독려하는 시와 짐략전쟁에 복무하는 것이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라는 소설을 쓰는 활동을 하고 나중 1980년대에는 독재정권 지지발언까지 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인을 또 국내신문사에서는 문학상을 재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우리 현대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작가인 이광수.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그의 눈부신 친일 행적, 이광수와 함께 우리 소설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동인은 문학의 선동력으로 동포를 일제의 전쟁에 나아가게 해야 한다고 선전 선동에 앞장서며 행방 당일까지 친일의 길에 매진했던 일은 정말 놀라움을 안겨주는,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나게 하는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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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장호철 지음 인문서원 2019.05.01.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김동환, 김억,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유진오, 이원수, 정비석, 주요한, 채만식, 유치진, 최재서, 백철 등은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실린 친일문인 이다. 특히 이광수, 최남선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일제에 항거한 작가였다가 식민지 후반에 친일로 돌아선 인물이기도 하다. 자주 들었고, 교과서에서 배운 인물 들이었기에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이 책에 손이 갔다. 430 페이지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여 처음에는 멈칫하였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행적에 대해 알게 되니 마음이 안타깝고 손이 떨렸지만 금방 읽을 수 있었다.
p.030 나는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신념을 가진다. 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고, -심적 신체제와 조선 문화의 진로-<매일신보>(1940년 9월 4~12일자)
이광수는 살고 뼈까지 일본이 되느라 그의 문학을 친일의 제단에 바친다.
나는 이광수라는 작가를 참 좋아했는데 이 책을 읽고 많은 실망감을 안게 되었다. 그가 만약 친일로 살아가지 않고 조선을 위해 살아갔다면 어땠을까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면 일찍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어서 지금처럼 좋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상황이여도 그랬을까 내가 그들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감히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가 나의 신념이다. 하지만 국가를 버리고 친일 행동했던 그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 그때의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본다. 그들을 비판하지 않고 나는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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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장호철 지음 ∥ 인문서원 ∥ 2019.05.01.
친일문인,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늘 답답했고, 죄인처럼 쉬쉬했다. 동시에 누가 함부로 친일문인으로 재단할 수 있나. 국가의 공식적인 기관에서 객관적인 기준과 평가를 바탕으로 만인이 인정하는 결과를 발표해야 온당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저자 장호철은 밝히고 있다. 다른 시각으로 연구한 내용은 없었는가. 답답하고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친일인사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참회한 예도 드물지만, 후손이 선대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일은 아마 처음이리라. 김동환의 삼남 김영식은 부친이 친일문인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다’며, 역사적 평가에서 공과가 교차된 선친의 행적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분명 교훈이 될 것이라 밝혔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밝힌 친일문학인들이 다룬 글을 분석해 보면 그 내용은 대체로 ① 영미 英美는 귀축 鬼畜이라고 비난하거나, ② 대동아공영권 강조, ③ 생활 풍습 등 일본화 계도, ④ 천황 찬양, ⑤ 일어 사용(국어화) 주장, ⑥ 학병 권유, ⑦ 창씨개명 선전, ⑧ 내선일체 선동, ⑨ 동조동근 同祖同根 수용 등이다. ①과 ②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③부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살펴보면,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이름을 남긴 대다수의 문인이 친일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부끄럽고 서글픈 역사적 사실이다. 문인들은 두뇌가 명석하여 대세의 흐름에 순응한 것인가. 아님 문약 文弱해서 쉽게 변절한 것인가. 일제에 저항하며 고초를 겪고, 생명을 잃은 문인들은 소수에 불과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실린 작가 대다수가 친일문인이다.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김동환, 김억,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유진오, 이원수, 정비석, 주요한, 채만식, 유치진, 최재서, 백철 등이다. 이광수와 최남선은 일제에 항거한 작가였다가 식민지 후반에 친일로 돌아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대 최고의 작가가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에 수많은 고뇌를 했으리라. 총독부에 협조함으로써 대가로 받을 수 사회적 지위, 또는 풍요로운 경제적 이득이었을까. 그들도 가정의 가장으로서 궁핍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일까. 정말로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일본인들의 생활 풍습을 배워서 일본과 조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을까. 천황의 자식으로서 나라를 위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지하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을까.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 억울했을까. 궁금한 점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보통 사람은 대세에 잘 적응하는 존재다. 그들도 멸망해버린 조선에 대한 기대를 버린 것이 아니었나.
그 당시 일본제국주의에 합병된 조선은 스스로의 힘으로 재기할 수 없다고 스스로 단념한 것은 아닐까. ‘일본이 그렇게 빨리 패망할 줄 몰랐다.’라고 여류소설가 최정희가 말한 고백이 그들의 심리적 기저를 알 수 있는 핵심이 아닐까. 민족의 지식인으로서 처음에는 일제에 저항하다가 한 세대가 지나는 30여 년이 흐르자 그들의 마음속에 싹튼 ‘현실참여’, ‘현실적응’, ‘대체불가’, ‘독립 불가능’이란 참담한 의식이 솟아난 것은 아닐까. 대외 명분으로 조선 민족을 계몽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미국과 영국이라는 서양 세력에 ‘대동아공영제’로 맞서야 한다는 논리가 통한 것이 아니었을까. 일본, 중국, 조선이 힘을 합쳐 서구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한 것이 아닐까.
친일문인들의 행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기화로 더욱 강화되고 ‘내선일체’을 실질적으로 믿고 행한 것이다. 우리 힘으로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육사, 한용운 같은 분들은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해방 후 일본식민지 세력의 청산에 실패한 것이 우리의 잘못이다. 친일문인들이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는 일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프랑스 드골 정부가 나치에 협조한 인물을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한 것을 역사적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친일문인들이 행한 이후의 행적과 변명은 참으로 뻔뻔하고 반민족적인 행위였다. 이후의 정권에도 협조하며 자신의 문학적 명성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동시에 시대적 상황에 잘 순응한 유능한 인간이었음을 씁쓸하게 인정해야 하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 역사는 순환한다. 현재도 비슷한 일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시대건 권력과 금력의 양지를 찾는 지식인이 있으며, 고난의 들판을 맨몸으로 가는 소수의 진정한 선각자도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친일문인들의 행태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어떤 행보를 해야 하는가. 죽어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고,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있다. 나의 조상들은 식민지 시대에 무엇을 하였는가. 나는 친일파의 자손인가. 나의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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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에는 솔직하게 친일관계에 대하여 직접 겪어본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몸으로 직접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