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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에서 난세중의 난세로 불리는 춘추전국시대란 책이름에서 연유했다. 춘추시대가 공자가 편수한 [춘추]가 다루고 있는 시기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졌듯이, 전국시대라는 말 역시 [전국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에서 연유했다. 헌데 이런 [전국책]은 그 내력이 불분명한 책이라고 한다. 서한의 유향이 한나라 황실의 서고에서 내용은 비슷하지만 이름은 각기 다른 여러 판본을 발견했다고 한다. 유향은 그 판본들의 내용을 나라별, 시간순서대로 편집, 배열하여 33편으로 확정한 후 이름을 새롭게 [전국책]이라 지었다. 유향은 자신이 편집한 글들이 주로 군주들에게 등용된 유세객들이 제시한 책략과 계획이라 생각했기에 본래의 명칭중 하나인 [국책]에 시대를 주목하여 한 글자를 덧붙인 것이다. 유향은 이런 [전국책]의 시대적 범위를 춘추시대 이후부터 초한의 시작까지 245년간의 일이라 기술했다. 이후 북송대에 이르러 증공이 그때까지 전해진 [전국책]의 내용을 보완하여 총12개국 486장으로 편제를 새롭게 꾸몄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전국책]이다. 여기서 12개국이란 동주(東周)와 서주(西周), 그리고 전국7웅인 진(秦), 제(齊), 초(楚), 조(趙), 위(魏), 한(韓), 연(燕)나라와 그밖에 소국이었던 송(宋), 위(衛), 중산(中山)을 말한다. 동주와 서주는 천자가 있던 곳이라 하여 앞에 위치하지만 전국시대에는 소국에 불과하였다. 나머지 나라의 순서는 힘의 강약과 멸망한 시점에 따라 정해졌다. 즉 강하고 오래간 나라일수록 앞쪽에 배치되었다.
이 책 [전국책을 읽다]는 중국의 학자 양자오가 ‘중국고전을 읽다’ 시리즈의 한권으로 펴낸 책이다. 시리즈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양자오는 이 책에서 먼저 전국시대의 시대적배경과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전국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주장한 내용이 어떤 환경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전국책]을 사서(史書)로 볼 것인지, 아니면 종횡가의 말을 기록한 자서(子書)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전국책]이 형식면에서 볼 때 전국시대에 벌어진 수많은 복잡한 사건을 하나하나 기록한 문헌이지만, 기록된 내용은 각 나라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었던 사건이라기보다는 각 나라의 정치와 군사에 대한 종횡가 책사들의 유세와 그 영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즉 [전국책]이 강조하는 포인트는 종횡가들이 주장했던 말과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국책]은 당시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특정사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어떻게 일어나게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각 편마다 주인공이 있으며 그들은 대부분 모사(謀士)나 유사(遊士)였다. 이들 모사와 유사를 합쳐서 종횡가라 했고, 이들이 주장한 합종연횡의 외교 전략은 모두 진(秦)나라의 흥기와 관련이 있었다.
당시 진나라는 기존 봉건질서와 그 논리를 부정하고 뒤집는 상앙의 변법으로 부국강병의 기초를 닦았고, 이런 진나라의 흥기는 동쪽 여러 나라에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 진나라를 중심에 두고 유사와 모사 즉 종횡가가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종횡가들이 주장했던 합종은 동쪽의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책략이고, 연횡은 동쪽의 나라들이 진나라와 동맹을 추진하여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책략이었다. 그래서 종횡가들은 각 나라를 돌며 합종 혹은 연횡의 책략을 가지고 군주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 유명한 소진과 장의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등장한다.
소진의 이야기는 전국시대의 특수했던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진이 처음 진혜왕에게 설파한 것은 봉건적 종법제도의 모든 규정을 부정하고 전쟁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무력지상주의를 통한 연횡이었다. 그러나 진혜왕에게 거부당한 소진은 연횡을 버리고 합종의 실천자가 된다. 이처럼 전국시대 유사들은 원칙도 신념도 없이 성공하기 위해서 군주를 설득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 신경 쓴 현실주의자들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또한 소진의 가족이야기는 비단 유사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부와 지위가 혈연보다도 중요함을 말해준다. 이는 기존의 종법규범이 사회의 상하층 모두에게 효력이 없었음을 보여주며, 출신배경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적 유동성이 정점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당시의 종횡가들은 대부분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신분으로써 말의 권위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말의 기교에 공을 들여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논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끌어들였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축소, 왜곡, 과장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날조까지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중국에서 수많은 난세가 있었지만 어떤 난세도 전국시대만큼 길지 않았고, 정치적 기회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되지도 않았고, 언어와 문자의 표현이 그토록 놀랄만큼 변화하지도 발전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전국책]은 그런 난세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을 담고 있으며, 그런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때 [전국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책]에는 소진의 합종이야기가 나온 다음에 장의의 연횡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장의가 소진보다 앞선다고 한다. 소진이 진혜왕을 만났을 때 이미 연횡은 진나라의 국가전략이었으며, 진혜왕이 거부한 것은 연횡이 아니라 무력지상주의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또한 장의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진과 초의 전쟁, 진과 조나라 사이에서 벌어졌던 장평대전 등은 모두 장의 사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는 장의의 견해에 더 강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후대의 편집자가 추가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국시대 유사와 모사의 역할 중 하나는 수많은 견해를 만들어 내어 난세 속에서 군주들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이유와 핑계거리를 언제나 역사에서 찾았고, 이것은 어느 것이 근거 있는 사실이고 어느 것이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국책]은 전국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종횡가들의 빼어난 말과 책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편집자는 연대를 바꾸거나 표현을 과장하고 극화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래서 [전국책]은 사서가 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전은 과거의 역사적 문헌인 동시에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한 지혜를 담고 있는 동시대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전에서 현대에도 유효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는 고대의 환경 속으로 들어가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그래야만 고전을 읽음으로써 현재의 나를 성찰하고 가치 있는 삶의 태도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동양고전을 읽기에 앞서 그 고전이 씌여진 배경과 시대의 상황을 중시하는 이유라고 한다. 나 역시도 많은 동양고전을 읽고 있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면들을 발견하곤 한다. 쓰는 사람마다 다른 새로운 독법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하고, 고전이 주는 지혜의 다른 면들을 깨우치기도 한다. 어쩌면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써 갖는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동양고전 속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지혜는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성공을 위한 처세술이 아니기에 책을 읽을 때마다 수정하고 새롭게 추가하는 것이 유쾌하기만 하다. 내일은 또 다른 동양고전을 읽고,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이 사실은 어느 한 사람의 독법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바로 책읽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