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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어떤 소설일까.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들을 사로잡을까. 사람의 이름인 진이 혹은 지니라는 제목을 가졌다. 예상했던 스토리는 아니었다. 진이 혹은 지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진희 혹은 진이라는 이름을 지니라고 불렀다. 내 휴대폰에도 지니라고 저장된 이름이 있다는 거.
생물학을 전공한 침팬지 사육사이자 연구원인 이진이. 스승 장 교수를 수행했던 왐바 캠프에서 보노보들과 안녕을 말하고 도착한 킨샤사에서 홀로 거리를 헤매다 철창안에 갇힌 동물을 만났다. 침팬지가 아닌 보노보였다. 커다란 눈이 마주친 순간 '난 진이야 이진이. 네 친구야.' 라고 말했다. 그녀 특유의 인사법 손가락 총을 쏘았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손가락 총을 쏘는 나를 발견한다. 하나의 모션이 하나의 감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 순간. 교감이라는 게 발현하는 순간이었다. 처음 만나는 순간 느껴지는 감정.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들. 그걸 우리는 소통이라고 표현한다.
한국과학대학교 영장류연구센터의 책임사육사로 일하던 마지막날 구조대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인동호 쪽 별장에 불이 났는데 그곳에 있던 동물들 중 유인원으로 보이는 침팬지가 나무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질 않는다는 구조요청이었다. 장 교수와 함께 그곳에 갔다가 동물들과 친화력이 좋은 이진이는 다시 손가락 총을 쏘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난 진이야 이진이. 네 친구야.'라고 말하며 파인애플 조각을 큰 장대에 끼워 보노보를 내려오게 만든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한 보노보를 파인애플을 따라 단계별로 나무에서 내려오게 해 구조했지만 구조대원의 마취총에 맞아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장 교수와 함께 연구소로 돌아오는 길, 차 보조석에 보노보를 안고 탔다. 코너에서 고라니가 나타났고 그것을 피하려다가 사고가 났다. 보노보를 안고 있던 진이는 앞 창문이 깨져 보노보와 함께 튀어나갔다.
소리에 민감해 모차르트라 불린 김민주가 등장한다. 모든 것이 부모 뜻대로 되지 않았던 그는 더이상 부모의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쫓겨났다는 게 맞다. 많은 직업을 전전했지만 그의 손엔 이만몇천 원 밖에 남지 않았고 영장류 연구센터에서 침팬지를 구경한 후 산 속의 정자에서 자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소리를 들었다. 운전석에 앉은 장 교수를 구했고 구조대에 연락했다.
나무에 매달려 눈을 뜬 이진이는 연구센터로 발걸음을 옮겼고, 자기가 네 발로 걷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인간이라면 이런 걸음을 걸을 수 없다. 자신이 보노보의 몸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급히 숙소로 들어가 필요한 것을 찾다가 다른 연구원을 맞딱뜨려 할퀴고 달아났다. 경찰과 소방대원은 보노보를 찾기 시작했다. 산속 정자에서 진이 혹은 지니로 불리는 보노보와 민주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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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 들어갔다는 건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꽤 자주 언급된 적이 있으나 인간이 동물에게 빙의되었다는 건 아주 생소했다. 아무리 보노보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영장류에 가깝다고 해도 말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듯 보노보 지니와 인간 진이의 영혼은 자주 왔다갔다 한다. 보노보의 몸에 진이의 의식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진이는 이 현상을 알라딘의 지니가 들어있는 램프 속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진이는 지니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상황을 꽤 자주 경험한다. 영장류 센터의 연구원으로서, 지니의 의식으로 경험했던 것을 민주의 메모장에 기록한다.
민주와 진이의 사흘 간의 이야기다. 어쩌면 죽음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인간에 사랑이야기이며, 어떤 생물체에게도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보다 근원적인 생명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과 교감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소통과 교감을 말한다. 작가가 그린 유인원 사육사로의 이진이는 동물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진이였기에 보노보나 침팬지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었고, 보노보의 몸에 그녀의 의식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건넨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내 일이 아니라며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인가. 내게 머물렀던 시간에 대한 깊은 상념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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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귓가에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Evening is the time of day I find nothing much to say...... 노래 제목은 클리프 리차드의 "early is the morning". 제겐 오래 전 본 임창정, 고소영 주연의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ost로 기억이 나지만, 정유정 작가가 이 노래를 들으며 <진이, 지니>를 썼다고 하기에 유튜브에서 찾아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왠지 정유정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때의 느낌을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동안 제가 읽은 독서 목록 중 가장 강렬하게 몰입하며 읽은 소설이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입니다. 책을 읽고 한동안 세령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였으니깐요. 7년의 밤 이후 출간 한 <28년>, <종의 기원>을 통해 악의 3부작을 완성하였기에 지난 5월 정유정 작가가 새로운 소설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를 하며 책을 구입했습니다. 책은 구입 후 바로 읽지 못하고 시간이 좀 흐른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정유정 작가는 소설 속 시공간을 최소화하여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데, <진이, 지니>도 주인공 진이의 사고 후 사흘간 벌어지는 이야기라 역시 몰입하며 읽었습니다. 특히 이번 소설은 그간 보여줬던 이기적인 악한 인간들이 아닌 따듯하고 선한 인간들의 이야기라 좀 다른 시선으로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소설은 진이와 민주의 1인칭 시점으로 장마다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클라이맥스까지 이끌어 갑니다. 소설은 주인공 진이가 콩고 왐바 캠프에서 한 달간의 캠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려다가 비행기 결항으로 킨샤사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동료들 선물을 구입하려고 호텔을 나선 진이는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를 피하려다가 우연히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밀렵꾼에 잡힌 유인원 보노보 지니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밀렵꾼의 보복이 두려운 진이는 인기척에 그 자리를 피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보노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테마파크 동물원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영장류 센터에서 사육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장류 센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기 전날 진이에게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나니 불이 난 별장에 침팬지를 구조해 달라는 119구조대 한기준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스승과 함께 급히 현장을 간 진이는 구조대를 피해 간신히 나무 위에 있는 동물을 발견하는데 그 동물은 침팬지가 아닌 예전 킨샤사에서 외면했던 보노보 지니였습니다. 탈진한 보노보 지니를 구한 스승과 진이는 치료를 위해 급히 어두운 길을 뚫고 영장류 센터로 향하지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진이와 지니가 차 밖으로 튕겨져나가게 됩니다. 이때 진이가 보노보 지니의 영혼으로 진입을 하게 되고, 진이의 육체는 사고 후 출동한 응급차에 의해 병원으로 향하게 됩니다. 교통사고 직후 사고를 목격하고 신고한 사람이 있었으니 취업준비생이었다가 집에서 내쫓겨 노숙자로 전락한 민주였습니다. 민주는 공익근무 시절 저소득층 도시락 지원일을 하다가 자신을 귀찮게 하던 해병대 노인의 도움을 미처 확인하지 않고 외면하게 되어 결국 해병대 노인의 죽음으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현장 근처에서 우연히 보노보 지니 몸으로 변한 진이와 만난 민주는 보노보가 진이임을(낮에 영장류 센터에서 마주친 경험이 있음) 알게 된 후 보노보로 변한 진이를 병원 응급실에 누운 진이에게 데려가기로 천만 원에 계약을 하게 됩니다. 민주와 진이(보노보 지니 몸을 한)는 함께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진이 육체에게 찾아가 영혼을 바꾸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데 보노보 지니 속 진이가 램프를 통해 지니의 기억 속 세상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게 되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진이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곧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한 진이와 민주. 과연 진이가 보노보 속에 그대로 남아 보노보의 삶으로 살아갈 지, 곧 죽게 될 자신의 육체로 들어가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지, 선택의 기로에 서며 마지막 인간으로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진이, 지니>는 그 동안 정유정 작가가 보여주었던 악의 3부작과는 또다른 따듯하고 다정한 소설이었습니다. 14년간 간호사 생활의 경험을 잘 살려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보노보의 탈출 장면 묘사가 현실감 있게 그려졌고, 죽음을 다루면서도 무겁기보다는 보노보 몸을 한 진이와 민주의 티격태격하는 모습, 민주가 파출소로 찾아 온 아버지를 배웅 하며 아르바이트로 받았던 농산물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이야기 등 중간 중간 유머스러운 부분도 괜찮았습니다. 거기에 전작에 나왔던 119 구조대 한기준의 출현은 반가웠구요. 무엇보다도 인간과 유전자가 약99% 비슷한 보노보와 인간의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물 같지만, 그 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의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3년에 1번 작품이 나올 정도로 다작을 하지 않는 정유정 작가지만 작가의 오랜 팬으로 다음에는 좀 더 빨리 정유정 작가의 작품을 만나보기를 기대해 봅니다.
ps. 정유정 작가가 <진이, 지니>를 쓰며 들었던 노래 클리프 리차드의 "early is the morning" 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유튜브 영상을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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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진이, 지니...세상 밖으로 나온 지니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그동안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악마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갔던 작가 정유정이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 다름 아닌 ‘빙의’된 인간의 삶과 동화된 또 하나의 생명체인 유인원 보노보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세상으로부터 ‘도태’ 혹은 퇴출된 한 남자의 이야기가 가미된다.
연결고리를 어떻게 매치시킬지 처음엔 의아하게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그렇구나’ 싶은 변곡점이 나타나면서 글이 술술 풀렸다. 그녀는 전형적인 무대를 예비해 둔다. 소위 준비된 무대 위로 연극의 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번에 마련된 장치는 무곡마을이다. 그녀의 소설에서 보여준 각각의 공간들이 여지없이 이곳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무곡마을, 인동호 별장, 영장류연구센터, 정주소방서, 정주의료원이 하나의 준비된 소품이다. 여기에 생활하던 사육사 이진이와 세상으로 내던져진 민주, 그리고 머나먼 고향 콩고를 떠나 이곳 별장에서 갇혀 지내던 보노보 지니. 이들은 교통사고를 기점으로 일시에 헤쳐 모인다. 물론 이전에 각각의 인연에 대한 언급이 초반에 소설의 씨줄로 출발한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센터장이던 장교수의 로드킬 회피, 교통사고로 지니와 진이가 빙의되고, 이를 민주가 목격하면서 치열한 3일간의 여정이 시작된다.
‘모차르트’로 불린 천부적 공감 능력(경청과 존중을 통한 소통)이 뛰어난 민주, 그리고 동물과의 교감이 뛰어난 진이. 둘 다 공통점이 있다. 보노보 지니 역시 자신의 동생을 향한 사랑은 인간 못지않은 헌신적인 공감력을 소유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 민주는 공익근무 시절 쪽방촌 해병대 노인의 외침을 무심코 넘겨 죽어가는 이를 외면했다는 고통. 진이는 콩고 왐바 캠프에서 마주친 보노보를 구하지 못하고 외면했다는 아픔. 킨샤사의 보노보 지니는 어린 동생을 보지 못한 채 머나먼 곳으로 잡혀왔다는 고통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소설은 중반 이후로 빙의된 진이가 자신의 몸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보이는 장면이 이어진다.
‘진이는 유체이탈을 해서 지니에게 빙의했다. 보노보 지박령(육체적 죽음을 맞기 전에 제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영원히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된다)이 되지 않으려면 다정한 그녀의 심장이 멈추기 전에 화엄법사를 찾아가거나 자기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P.211).
그러다가 지니 몸에서 벌어지는 두 영혼의 대결이 본격화되면서 처음엔 점령군 사령부라 여긴 진이, 곧이어 그게 아니라 오히려 지니 몸에 기생한 자신이 서서히 지니화되어간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지니에게 빚진 인생인지를 깨닫는다. 마침내 자신이 할 일이 무언지를 깨닫고....
한편,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은 죽음이 아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P.48)으로 여겨 방황하던 민주 역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야 협력한다’(P.164)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진이를 돕지만, 그녀의 삶을 목도하면서 서서히 ‘다정한 그녀’의 삶에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고 마침내 그녀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된다. ‘지니의 몸은 삶을 두고 벌어지는 두 자아의 전쟁터’(P.266)였고 이를 본 민주, 그리고 ‘삶은 살아있는 자의 것이며, 살아있는 동안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살아있는 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P.293)던 엄마의 삶의 방식에 진이 자신도 그런 삶을 살고자 했으나 지니를 통해 보다 숭고한 삶으로 거듭난다. ‘유인원과 인간이 동화된 완전체 호미노이드’(P.338)로 탄생한다. 비록 인간 진이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보노보 지니는 진이의 마음을 간직한 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소 지루하게 시작된 이야기가 감동으로 마무리되기까지 시공간을 오가면서 민주, 진이, 지니에게 펼쳐졌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종횡무진 전개되며 이들이 하나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살아온 시간에 비해 단 3일 만에 극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하나의 날줄이 완성된다.
그 감동의 서사 속으로 직접 빠져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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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은 욕받이다. 매일 아침 사장이 퍼붓는 욕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는 것으로 사무실의 일과가 시작된다. 하지만 멘탈은 최고다. 과장님은 그렇게 욕을 먹고도 사무실 밑으로 내려와서는 직원들과 실없는 농담을 한다. 과장님 말고는 아무도 웃지 않는 아재개그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들끼리 별명을 만들었다. 보살님이라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넘쳐나는 욕에 파묻혀 죽을 것만 같아서 안 그런 척 하시는 건지, 진짜 욕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다 보니 익숙해져 욕을 받아내지 않으면 뭔가 찜찜하고 개운하지 않아서 그러는 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게 한바탕 욕잔치가 벌어지면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 직원들의 기분과 사기도 축축 처진다. 서로 눈치 살피다 하나둘씩 담배를 피러 나가거나 용무도 없는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사건은 지난 주 화요일 일어났다. 평소 그렇게 사장의 욕받이로 활동하시면서도 보살의 경지에 이른 과장님과 함께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전 주에 다른 작업을 하며 왼손 엄지를 다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고장인터라 사무실에 있는 다른 자재를 가져와 교체해야 했다. 운이 없었던 건지, 재수가 없었던 건지 마침 그 자재만 없었다. 사장에게 전화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당일 오전에도 한바탕 욕잔치를 받으셨던 터라 내가 전화했다.
‘이번 한번은 내가 대신 욕받이 하자.’ 딱 이 마음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께서는 내게 휘황하고도 찬란한 욕을 퍼부었다. 나는 자재를 가지러 두어 번 사무실을 왕복했던 터라 자세한 작업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휴대폰에 통화중 스피커를 키고 녹음을 눌렀다. 이거 해봤어! 저거 해봤어? 묻는데, 나는 작업을 안 했으니 모를 수밖에. 과장님이 옆에 있는 걸 모르는 사장은 내게 쏟아냈다. 함께 그 소리를 듣는 과장님은 옆에서 자신의 폰 메모장에다 대답 내용을 적어 주었다. 한바탕 회오리 같은 욕 시전이 지나갔다. 결론은 교체해야 할 자재가 없다는 것. 수 십분 후 사장이 왔다. 자재를 사 와서 그것으로 교체했다. 또 다시 시작된 욕잔치. 어? 과장님은 왜 가만히 있지? 진짜 나만 욕 먹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과장님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거절당한 게 무안해서가 아니었다. ‘거봐, 안 될 거라고 했잖아’하고 말아버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더 매달려볼 여지가 없어서 그랬다. 배낭 안에서 잔뜩 긴장한 채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그녀의 실망감이 짐작돼서 그랬다. 숨을 죽이고 내가 어떻게든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그녀가 안쓰러워서 그랬다.” (p.317)
민주의 배낭 속에 들어가 숨을 죽인 채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그녀, 지니와 진이처럼 과장님을 생각한 걸까?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오늘은 내가 대신 욕받이 하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꼬여가고 면전에서 펼쳐진 욕잔치 앞에서는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과장님이 작업 하시고 저는 자재 가지러 갔다 왔는데요.”라고 했으면 더 나은 상황이 펼쳐졌을까? 선택의 기로는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너무나도 자주 출몰한다. 오늘 점심 뭐 먹지에서부터 지긋지긋한 회사 언제쯤 그만두지에 이르기까지.
“내가 무엇을 꿈꾸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뭘 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다루고 연구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그날 밤에야 알아차렸다.” (p.77) “불길 속으로 서서히 전진하는 관을 보자 어찌할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자전거를 멈추고 문을 열어 봤더라면…….” (p.91)
진이와 민주처럼 극적인 선택의 기로는 물론 더 어려울 거다. 돌이켜보면 후회만 남는 시간이다. 하지만, 얼마나 달라졌을까? 과거의 다른 선택으로 현재의 불만족을 대체할 수 있을까? 희망사항이다. 진이와 민주, 나와 과장님처럼. 사장이 제풀에 지쳐 나간 직후에라도 미안하다고 한 것이 과장님의 최선이다. 내가 그 다음 날 사장에게 사직서를 내민 것도, 민주가 노숙을 하고 진이가 영장류센터를 떠나려 한 것도 최선이다. 그게 최선이 아니라면 인생은 지나치게 비극이다.
“지붕이 있으면 어디서나 잤다. 비닐하우스, 폐가, 들판 거푸집, 터미널이나 병원 대리석 등등. 일회용 음식이나 통조림으로 허기를 채웠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어디에도 내가 찾는 것은 없었다.” (p.48) “볼 때마다 기억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사진 속 여자는 ‘다정한 그녀’였다. 사진 밑엔 그녀의 신상이 적혀 있었다.” (p.100)
그렇게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다. 지난한 고통을 감내하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순간을 잊어야 하루를 통째로 버텨낼 수 있다. 진이는 ‘다정한 그녀’로, 민주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마침내 어디에게 찾는 것이 없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처럼 꽉 들어찬 비극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그냥 사는 것이다. 아니, 살아내는 것이다.
“얼마나 후회를 하든, 해병대 노인의 부름을 듣던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에.” (p.91)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타임머신이다 4차 산업혁명이다 떠들어 대도 불가능한 일이다. 진이와 민주의 후회도, 나와 과장님의 후회도 소용없다. 착각이다. 혹여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을 거라는 헛된 기대. 그것이 나를 조금씩 좀 먹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출구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인격체로 그나마 버텨나가는 일상이 송두리째 망가진다. 경계해야 한다.
“막다른 곳에 불시착하는 때가 있다.” (p.7) “자네한텐 동물의 감정을 파악하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어. 알고 있을 텐데.” (p.79)
사실, 우리는 행운에 기대야 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월요일 오전부터 로또 한 장을 사서 지갑에 넣어두면 일주일 내내 마음이 든든하고 세상의 행운이 모두 내 것인 양 느껴지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귀인이 나타나 나의 빛나는 재능을 알려주고 지금 연봉의 수 배가 넘는 멋진 회사에 면접도 없이 쑥 하고 넣어준다면 정말 좋겠다. 물론, 그런 일이 실재한다면 말이다. 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아가’라는 호칭에 속이 거북했을까, 아니면 ‘착하지’라는 말에 비위가 틀어진 걸까. 진이는 꼭지가 돌아버렸다. 입술을 귀 밑까지 찢어 이빨을 모조리 드러내더니 창날 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벤치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p.198)
한숨과 후회와 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것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물고 뜯는 것의 일상이다. 몇 년 동안 한 사무실에 책상을 맞대고 앉은 동료가 사실은 수 년 동안 내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흔한 일이다. 오랜 투쟁으로 비로소 법적으로 정규직 신분이 된 노동자들의 회사 복귀를 가장 반대하는 무리가 바로 기존 노조의 노동자들이었다는 이야기도 흔하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너를 죽여야 하는 아비규환이다. 지니가 된 진이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영장류센터에 속한 전문가들도 손조차 대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도 그렇다. 아프리카 열병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야생 멧돼지를 궤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결국 사람에 의해 생긴 바이러스로 인해 죽게 된 그들의 삶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좀 더 고등한 동물이 살아야 한다는 진화론적 관점 내지는 현실적 판단은 전적으로 고등한 동물의 입장이다. 그들의 판단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의 마지막은 꽤 충격적이었다. 죽어가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응시한 채 죽어가는 진이, 지니에게 어깨를 건 채 끝내 소멸하고 마는 진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 낸 사회에 직격을 날린다. 바로 옆 사람의 어깨에 팔을 걸지도, 내 어깨를 옆 사람에게 내어주지도 못하는 나와 당신들이 맞은 어퍼컷이다. 슬픈 사실은 어퍼컷이 카운터블로우가 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맞은 직후에는 온 몸이 떨리고 소름이 돋았다. 이거 뭐야, 어쩌라는 거야 싶었다. 슬프게도 그 순간뿐이었다. 고작 10분 정도를 뒤척인 채 잠들었다. 그리고 숙면을 취했다.
모르겠다. 이게 이 책을 읽은 내 결론이고, 현재까지의 내 상황이다. 선택의 결과로 퇴사 했다. 뭔가 진이처럼 세상과 당신들을 향한 어퍼컷을 날려 보고 싶은데,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여전히 구인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어설픈 어깨 걸기를 시도할 능청도, 마주치면 인상 쓰기 바쁜 반려동물과 함께 걷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애기 이름이 뭐예요?”라고 할 오지랖도 없다. 현재까지는. 실수로라도 한 번 휙 지나쳐 버리는 일 없이 정확하게 또 다시 닥쳐오는 일상을, 그저 버텨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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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혹은 80이 되어서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평탄하게 살았어, 혹은 힘들지만 보람이 있었어. 이렇게 기억하게 될까? 10대에서 20대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는 대학을 힘들게 다녔지만 그 또한 추억이 되어 버려서 그 자체를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30대는 아이를 키웠던 시기였기에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나마 나는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지 않고 내가 키웠기에 그 시절 또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40대인 지금은...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 고가의 취미 생활을 한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인생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이 또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사실. 이런 상황들이 변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내 바람이지만...이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오늘,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유인원 책임 사육사로서 마지막 출근을 했던 날, 진이는 침팬지 구조 요청을 받는다. 이 요청에 스승 장교수와 함께 인동호 주변에 있는 별장으로 간다. 구조 작업을 하려는 순간 진이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짐승이 침팬지가 아니라 보노보임을 알게 되고, 잊으려 했던 반년 사건이 떠오른다. 진이는 정신을 집중해 보노보를 구출하려 노력한다. 이때 보노보는 마취 총에 맞고 진이는 의식을 잃은 보노보를 안은 채 장교수의 차에 탄다. 이 차안에서 장교수는 보노보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어떠냐며 지니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그때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다 장교수의 차는 미끄러지고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난다. 이 사고로 진이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나와 다른 사람의 영혼이 바뀌는 건 드라마 같은 데서 본 것 같은데 보노보와의 영혼 교차는 새롭다. 보노보 아니, 우리가 말하는 동물이나 짐승에게도 그들 나름의 지나온 생이 있을 것이다. 반려 견은 반려 견으로의 생이, 야생 동물은 야생 동물로의 생이. 어떤 생이 좋으냐고 물어 봤을 때 어떤 것도 좋은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죽을 때까지 반려 견으로 살다 죽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야생 동물로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 생이 날것 그자체로 힘들 수도 있지만. 야생동물로 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간 세상으로 오게 된 보노보의 생과 진이의 인생. 진이의 인생 또한 결코 평탄하지 않았기에 두 영혼의 교차는 묘한 슬픔을 동반한다.
가능하면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한 선택을 믿고 그것만 바라보지만 때론 뒤를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 내가 선택한 이 인생에 만족한다. 평범해서 아무것도 내세울 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사한 일이 많았으므로. 오랜만에 찾아온 정유정 작가의 이번 이야기. 결코 쉬운 주제는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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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의 작가 정유정. 개인적으로 인간의 내면 묘사는 정유정이 최고라 생각한다. 어찌나 디테일하게 묘사하는지, 게다가 필력도 대단해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하다. 때문에 분량이 어떻든 책을 붙들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기존의 보였던 장르물이 아니라는 소개글이 약간 불안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정유정은 정유정이었다.
한국과학대 영장류연구센터 사육사 이진이, 박사과정을 위해 간 콩고 킨샤샤에서 납치된 보노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일을 관두기로 한다. 마지막 날 늦은 시각 소방대원으로부터 침팬지 구조 요청 전화를 받는다. 스승 장 교수와 현장에 도착해 보니 침팬지가 아니라 보노보임을 알아챈다. 마취총에 맞아의식을 잃은 보노보를 품에 안은 채 차의 조수석에 앉아 센터로 향하는 길, 장 교수는 보노보에게 ‘지니’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 때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다 큰 사고가 나고 의식을 잃은 '진이'이 영혼이 보노보 '지니' 몸 속에 들어간다.
혼재한 두 영혼이 교차하는 혼돈과 혼란 속에서 '진이'는 진짜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때 행운(?)의 동반자가 있었으니 서른 살 백수 김민주다. 집에서 쫓겨나 각지를 방랑하다 머문 지역 무곡. 모차르트만큼 밝은 귀를 가진 터라 사고 현장을 신고하고 '진이 지니'를 만나 함께 한다.
『진이 지니』는 인간을 주제로 한 판타지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무게감도 묵직하다. '진이'를 통해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경쾌하게 써내려갔다. 그럼 보노보는 왜? 보노보는 인간과 유전자가 98.7% 일치한다. 인간만큼 공감능력과 연대의식이 뛰어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 보노보를 통해 공감과 연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시간적 길이인 '사흘'은 저자의 개인사와 연관되어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저자의 어머니 '마지막 사흘'에서 나왔다. 그 때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판타지와 현실적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등장 인물들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유정 특유의 이야기 전개능력은 두 말 할 필요 없고. 보노보 ‘지니’와 사육사 ‘진이’, 그들을 통해 성장하는 ‘민주’. 감동적이고 압도적인 소설이다.
ps. 영화 <7년의 밤>이 '왜 원작만큼 재미 있지 않지'란 생각을 항상 지니고 있었습니다. 『진이, 지니』를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엔 작가의 맛깔스런 말솜씨가 빠져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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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의 작가 정유정 소설가의 신작 『진이, 지니』 이번에는 나를 어떤 세상으로 던져 놓을 지 책 표지만 보고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소설이다. 제목을 보고 ‘젊은 여자들의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전히, 정유정소설가 특유의 이미지와 공감각의 활용은 눈이 읽어가는 속도보다 빨랐으며 앞부분 폭풍우 장면은 시각과 청각을 같이 사용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진이” 가 나오고 보노보 “지니” 가 있으며 그 사이에 간장종지의 소리를 이겨내고 삶의 잔인하며 찬란한 빛으로 걸어들아가는 “민주”가 나온다. 왐바 캠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킨샤사 시내에서 ‘불타는 다리를 건너버린 “진이”를 한국의 ‘무곡’ 으로 그곳에서 ‘인동호’로 보내버리고, 서울에서 시작한 “민주”는 ‘무곡’에서 ‘불타는 다리’를 건너버린다. 자, 다리는 건넜고 이제 어떻게 할거야? 라고 묻는 순간, 이런 ?? 정유정작가는 이번에는 나를 판타지 속에 밀어 넣었다. 전작 『28』 에서는 그래도 거리를 두더니 그렇게 거리를 벌려 놓았어도 난 ‘스타’와 ‘링고’를 사랑했었다고. 이번에는 “진이” 와 “지니” 사이로 나를 던져 넣었다. 전작과 달랐던 점은 『28』은 검은색 아스콘에 다리를 휘어 감고 나를 깊은 절망으로 인도했다면, 이번 작품은 확실히 달랐다. 절망은 존재하지만, 따뜻했다. 작가는 쉼없이 손바닥을 쫙펴고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공존”이라는 화두를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 - ?? 지구 위에서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나는 “독점” 하는 존재가 아닌 “공존” 하는 존재로 살아가려면...끝임없이 깨어 있어야 한다. - - ?? 202페이지 : (앞부분중략) 그들이 동물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에는 동물의 반응이 너무나 재미난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녀에게 인간의 쾌감중추를 간지럽히는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든가. ?? 336페이지 : (앞부분중략) 마지막 지적 대상은 목젖이었다. 턱이 쩍 벌어졌다. 비명 대신 시디신 토사물이 솟구쳤다. 나는 목응 감싸 쥐고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몇몇 동물원에서는 아직도 침팬지 쇼를 한다. (중략) 조련 도구가 회초리와 목줄이라는 애기도, 춤 선생은 아마도 그곳에서 온 모양이었다. (중략) 지니를 밀림 밖으로 끌어내고, 바다를 건너 지구 반대편까지 배달시키고, 인간이 하는 짓을 제대로 흉내 내지 못한다 하여 지적하는 막대기로 교육시키는 사피엔스라는 문명인이. - - #정유정 #신작 #진이지니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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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은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판타지 장르를 차용하여 이제껏 그녀가 선보여온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풀어낸다. “어떤 장르든 가리지 않고 이야기에 적합한 방식이라면 가져다 쓴다”는 정유정의 말처럼, 그녀는 처음 시도해보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고 과감하게, 하지만 그 누구보다 정교하고 부드럽게 상황과 인물을 매만진다. 이야기는 진이와 민주의 입을 통해 전해지지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은 보노보 지니이다. 미완의 인간인 진이와 민주를 긴밀하게 연결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하고, 그들을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통로가 되어준다. 진이와 민주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어루만지고 성장의 동력으로 작동하여 스스로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 것. 치열했던 삶의 끝자락에서 진이와 민주가 한 선택은, 지니만을 위한 선택이 아닌 그들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게 진이와 지니, 민주를 둘러싼 관계들에서 번져나오는 빛이 단비처럼 쏟아져 들어오며 따뜻하고 섬세한 작품이 탄생했다. 모두가 기다려온 이야기꾼의 귀환이자, 아름답고 힘 있는 서사의 완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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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같으면 주말동안 푹빠져서 밤새 읽었을테지만 지금은 조금씩 아껴 읽고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 끊기가 어려운 책이지만 짧은 시간에 다 읽어버리면 또 신작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까봐 그러질못하겠네요 처음 신문기사로 책의 내용을 접했을땐 웬 뜬금없이 보노보얘기지? 라는 의문이 들어서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역시 우리작가님은 그런 의문을 여지없이 깨버리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장면이 상세히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는듯한 묘사는 변함없이 최고~특히 중간중간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이들의 속마음을 재밌게 표현한 부분이 너무 좋습니다 (갠적으론 다시 내 심장을 쏴라 분위기로돌아온듯한 기분..종의기원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현실을 부정하고픈 강한충동이..ㅠ) 작가님의 친필싸인까지 있는 책이라 더없이 소중하고 기쁨을 주는 책이네요 벌써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다음 작품은 조금 빨리 써주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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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정유정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좋아하세요? 야구?'라고 말이다. [7년의 밤]에서 포수를 했던 주인공이 나와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었는데, 이번 [진이,지니]에서도 야구를 통해 다양한 표현을 나타내고 있다. 아래 3구절 보다 몇개 더 있던것 같은데, 되돌아보니 어딘지 모르겠다. 마치 경기를 끝내고 타석을복기하려는 타자가 몇개의 타석이 도저히 기억이 안나는 것처럼..
'나는 휴대전화를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았다. 홈스틸을 감행하는 3루주자처럼 가게를 향해 내달았다. 간판 앞에 도착하며 나도 모르게 세이프를 외쳤다.'
'내 인생에서 홈런을 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연치 않게 바가지 안타를두어 개 얻은 적은 있지만, 이젠 타석에 설 기회조차 사라졌다. 타석에 서겠다는 의지도 물론 없었다. 내 삶에서 은퇴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마지막 선택이 남았을 뿐..'
'그녀는 진이가 아니었다. 지니였다. 잠시 2군으로 좌천됐던 선수가 1군 경기로 복귀한 셈이었다.
사회 부적응자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은 죽음이 아니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지쳤고, 피곤했다.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이렇게 떠돌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으면 어떻하나, 하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어둠의 바닥에 잠든 채, 살았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내 삶을 끝내도 좋을 것 같았다." 라고 말하는 사회부적응자인 민주가 나온다. 정유정의 소설속에서 이런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평범하게 생활하지 못하고 밑바닦까지 내려가 있는 인물들 말이다. 그런 인물들이 가끔은 대타로 나와 홈런을 치듯이 이런 인물들이 없다면 삶 또한 다양함을 잃을 뿐 아니라, 삶이 마치 밝기만 한 것으로 착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부적응자로 나오는 민주, 그러나 이 소설후에는 조금으 나아지는 삶을 살지 않을까? 여때까지 도움을 받고 수동적으로 살아왔었다면 짧은 사흘동안 남을 도와주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환타지
소설이 개연성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질 수 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야기했듯이 소설의 성공적인 요소로써 적절한 '환타지'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차사고로 인한 진이가 지니속으로 들어간 설정이 이 소설의 핵심 환타지일 것이다.
철장에서 철장에서 철장에서..
진이가 첨 보노보 지니를 만난 곳은 지니가 철장안에 갇혀있을때, 민주와 진이가 서로 만난 곳은 영장류 센터의 철장을 사이에 두고 눈빛 교환까지.. 그리고 민주와 보노보인 지니의 최후의 만남도 지니가 케리어에 갇혀있을때. 이들의 세 주체의 첫 만남과 마지막 만남속에 철장이라는 요소가 등장하는 것이 작가가 일부러 설정한 것이었을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없는 존재, 아니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 철장이라는 인위적이고 패쇄적인 장치를 통해야만 만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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