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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7일은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열두 번째 되는 기일이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는 기일마다 추모 행사를 연다. 추모 행사 뒤에는 ‘권정생 문학상’을 시상한다. 권정생 선생님 문학 정신을 계승하자는 뜻에서 제정된 상이라 작가들은 영광스러워하면서도 부담스러워한다. ‘권정생 창작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나 10회째를 맞이하여 올해는 이름을 바꿔 진행했다. 상금도 7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렸다. 영광의 주인공이 바로 표명희 소설가다. 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어느 날 난민』(창비, 2018년)으로 상을 받았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인연으로 읽게 되었다.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사회 문제보다 개인 내면을 더 살펴왔다고 했다. 그렇지만 사회 문제와 개인 내면이 어디 완전 분리가 되랴. 그렇더라도 소설집을 읽은 느낌은 작가의 수상 소감을 수긍하게 한다. 작가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7편의 작품 중 세 편(「그녀는 프로」, 「명찰놀이」, 「거돈사지」)에나 나온다. 작가의 둘레에 있을 만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도 세 편(「동조선 이야기」,「복구」,「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에나 나온다. 직업으로 따질 수 없지만 작가의 분신 같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지금 하는 일이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달리 그럴 수도 없는 불가피함 속에 있다.
- 「밤의 소리.mp3」: 고충실도 소리 풍경의 빌라 마당에서 심야에 이웃들을 향해 술수정하는 사내를 음향 전문가인 주인공이 지켜본다.
- 「그녀는 프로」: 올케는 1%라는 조카의 회복을 가능성으로 바꾸고 있는데 반해 주인공은 등단한 지 10년 동안 작품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포기의 타이밍마저 놓친 것인가.
- 「동조선 이야기」: 일본에서 혼자 살아가는 독거노인인 사촌 집에서 며칠 묵은 선아는 그의 허락 없이는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 「복구」: 출판 기획자와 시간 강사로 지내며 책과 함께한 삶이지만 책장이 무너지면서 이전 삶과 고별하고 싶어진다.
- 「명찰놀이」: 별 존재감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작가 수현에게 초등학교 때 존재감 없었으나 지금은 성공한 친구 정숙이 다가온다. 계산된 듯한 정숙의 호의가 수현은 불편하다.
- 「거돈사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진짜 모습을 보게 된 희곡 작가 a는 계속 시골 어머니 집에 머문다. 세 달째 돌아가지 않자 연극배우 후배들이 찾아와 어머니가 가던 폐사지에서 술을 마시게 된다.
한동안 그는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았다. 뭐든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일어나는 일투성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달은 그렇지 않다고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모든 건 제때 일어나는 거라고, 단지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성급해 시간을 못 맞출 뿐이라고, 그 간극이 가져온 불편을 회상이나 회한 같은 것들로 메우는 거라고…… 어머니의 죽음 역시 그럴지도 몰랐다. 가족들은 놀라고 당혹해했지만 당신 자신은 제때 모든 걸 내려놓으신 것 같았다. 그야말로 ‘떠나야 할 때’를 정말 정확히 알고…… (195쪽)
후배 한 명은 9급 공무원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고 하고, 날은 이미 저물었다. 달이 내려다보고, 천년 묵은 나무와 오백 살 묵은 석탑, 그리고 선배가 지켜보는 가운데 후배 둘은 폐사지에서 즉석 연극을 한다.
-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동 창업자처럼 젊음을 바친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이 되어 떠난 캄보디아 여행에서도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마지막 날 일정마저 어긋나지만 담담하게 돌아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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