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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리 다가오는 건, 그 무게감이, 그 사람의 경로와 행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노란색의 표지가, 그 위의 룰루랄라 스타일의 삽화가, 출판사 기획형 도서를 연상시키는 제목이, 요새 유행하는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류로 인식시켜서, 손쉽게 집어들어 첫 장을 넘기게 하지만, 이내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든다. 이 책은 그런 '류' 따위가 아니다. 지금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라는 녀석의 정체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굶어 죽을 거라는 공포를 이용한 지배'가 그 본질이다. 신자유주의를 이보다 명쾌하게 정의한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글쓰기를 계속 하기 위해서, 한심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실험을 시작하고, 그것을 관철해낸다. '쪼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사투리인지 속어인지 모르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그 스타일을 쉽게 버리지 않는 고집이 있다, 이런 의미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 곤도 고타로는, 쪼가 있다, 라는 말을 듣기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세상은 어느 방향으로 가건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다. 세상은 늘 추하고,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낙관주의에도 비관주의에도 빠지지 않고서 그가 시도하는 것은 '벗어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에세이에서 '개인은 집단을 결코 이길 수 없다'라고 했던 것처럼,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싸우지도,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않은 채, 슬쩍 비껴나서 자신의 '쪼'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개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명랑발랄하게 모색한다. 이 아저씨, 좀 멋있다. ps.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들해진 시점에 대한 한 마디. 왠지 그럴 듯 한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들해진 것도 그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부터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즈음까지만 해도 그는 차를 싫어하지 않았던가? ... 그 무렵 무라카미 하루키는 '설날이면 도쿄에서 차가 사라지기 때문에 나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에겐 조용하고 공기도 깨끗하다'라며 깔끔한 에세이까지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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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밥벌이 이튿날 아침.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푸르렀다. 야트막한 산의 초록 능선과 새파란 하늘이 칼로 베어낸 것처럼 경계가 뚜렷했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짓말처럼 평온한 가을날. "인간은 의미 없는 노동을 견뎌내지 못하는 존재다." "내가 그렇게 쉽게 세상으로부터 내쫓길 줄 아는가? 이 세상을 살아갈 빈틈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말겠다. 자아를 탐구 하겠다느니, 뭐 그런 거창한 생각은 없다. 영원한 틈새 찾기. 나는 '구르는 돌'이다. 그래서, 즐겁다. 그렇기에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 이게 아니면 삶의 의미가 없는, 자기 인생을 걸 만한 일을 찾아내라. 그리고 그것에 달라 붙어 물어 뜯다 쓰러져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런 자세의 한 가지 사례인 샘이다. 글을 쓴다는 일에 내 짧은 인생을 걸고 달라붙어 물어뜯다가 쓰러지겠다. 어떤 선물을 사서 건넬 때도 그게 돈을 주고 산 ‘상품’임은 틀림없지만 가격표를 살짝 뗀다. 마음을 전하려 선물하는 것이니 시장에서 얼마나 교환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드러내기가 민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능한 한 ‘상품’임을 숨기려는 것이다. 교환 경제가 아니라는 시그널이다. 자본주의가 갈데까지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가지 황금룰이 있다. .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꾸 거대해 져야만 한다. 자본주의란 ‘축적’이 전부다. 이것이 자본주의 황금룰 가운데 첫 번째다. . 두번째는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반 욕망’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망상에는 어느정도 개인차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이 지닌 방향성, 벡터는 우스울 정도로 똑같다. 결국 욕망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신자유주의 라는 녀석의 정체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굶어 죽을 거라는 공포를 이용한 지배’가 그 본질이다. 굶주림을 가져올 빈곤에 대한 공포라는 채찍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이다. 굶주림이 두렵다면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도, 아무리 노동시간이 길고 임금이 낮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일하라.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본질적인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나는 직장에서 벗어나려는 게 아니다. 어딘가에 기생하는 삶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는 에콜로지즘에 대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적 규범에 종속하도록 요구하여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현저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다고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자연에 순종하라고만 강조하면 개인의 자유나 개인의 존엄이 억압된다. 그리고 인류 운명도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극단적인 계율까지 생겨난다. 극단적이며 과격한 환경주의는 모든 자연 개조를 거부한다. 이 또한 형태를 달리한 원리주의, 파시즘 아닌가? 우리 인류는 유례없는 시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성숙하라는 통하라는 시험이죠. 자연을 성숙하게 만들고 통제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더 성숙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라는 시험인 겁니다. 농약의 독성이 얼마나 심한지 나타내는 수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ADI(acceptable Daily Intake)다. 일일 섭취 허용량을 뜻하는데.. 자주 쓰는 도구들은 제일 위에 있는 칸에 둔다. 어쨌든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어휘다. 이때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어휘들만 잘 모아 담아도 창피할 일이 전혀 없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간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근본 계기다. 만약 인간에게 그런 불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아마 질서나 노동도, 부의 축적이나 권력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존재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시작된 노동이 ‘참고 견디는 일’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소외 당한 노동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로 어느새 변화되어 있다. 논에서는 잡초 베기도 재미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0년. 이제 겨우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문장을 쓰기 전에는 내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장을 조립하면서 겨우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며 놀란다. 생각이 있어 문장이 정리되는 게 아니라 거꾸로다. 문장이라는 내 커다란 꼬리에 휘둘려 내 생각을 깨닫게 된다. 겉모습은 중요하다. 농부는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9할이라고 한다. 농기구도 깔끔하게 정리정돈. 글쟁이에게 도구란 뭘까. 바로 어휘다. 어휘를 도구 상자에 깔끔하게 정돈해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 한다. 첫째, 좋은 도구, 즉 어휘를 모은다 둘째, 항상 정리정돈 한다. 셋째, 풍부한 어휘를 늘 가지고 다니기 위한 근력, 즉 문체를 단련한다. 농부나 글쟁이나 다를 게 없다. 질퍽한 논에서 스쿼트를 하며 엉덩이를 적셔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2차 세계대선 이후 흑백 TV, 세탁기, 냉장고가 3종의 신기 컬러 TV, 자동차, 에어컨 식기 세척기, 슬림형 TV, 카메라 장착 휴대전화 2004년 이후 식기세척기, 생활 쓰레기 처리기, IH 인덕션 레인지. 그리고, 킥킥 웃었다. 창피하다. 하지만 젊은 여성을 웃길 기회는 별로 없다. 은근히 기뻤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세계는 진선미(眞善美)를 갖춘다고 했다. 결국 옳은 것(진眞)과 좋은 것(선善)만으로는 안되다는 의미다. 미(美)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내게 멋진 것, 즐거운 것이 아니면 아무리 옳거나 좋더라도 계속할 이류가 없다. 즐겁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없다. 멋지지 않으면 살아있는 의미가 없다. #최소한의밥벌이 #곤도고타로 #우석훈 앞으로 다가올 유토피아를 말하는 자는 틀림없이 그 세계의 독재자다. ? 한나 아렌트 이상적인 사회 같은 소리 하지 마라. 혁명 따위 개나 줘버려라. 사회나 세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꾸자. 혁명을 해야 한다면 사회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혁명해야 한다. 농사를 지으려는(지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쓰는 기준. . 신체적 강인함을 갖고 있을 것 . 동식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서도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것. . 인사를 나눌 줄 아는 능력, 즉 주위사람들과 원할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