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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라 일찍부터 아이를 영아어린이집에 위탁하여 키워야 했다.군립으로 영아반을 운영하는 곳은 장애아와 합반이었던 곳이었다. 장애아와 같은 반이라는 사실이 익숙지 않아서 처음에는 저어했지만, 장애아와 한 반을 하며 영아시절을 보낸 작은 아이는 유난히 타인에게 배려심이 깊고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나는 아마도 영아 때 장애아들과 같이 자라서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장애인들과 어울리는 일이 그닥 어색한 일이 되지 않아서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장애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읽어보고 싶었다. 자식이 장애라는 심정을 이 세상의 어느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그 사람들을 위로한다느니 , 아픔을 공유하고 싶다느니 이런 말들은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난히 장애아들에게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그렇기에 장애가족들은 더욱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 공감하는 것은 장애인의 시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마흔아홉 해를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지체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같은 장애를 가진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보니, 저자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달라 보이는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나 자신 스스로가 장애가 있었기에 장애를 가진 엄마들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장애아를 둔 ‘엄마’들의 삶이 남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장애아인 자신을 키우면서 오롯이 고통과 자식걱정으로 남은 여생을 보내시는 어머니의 삶과 장애아를 둔 12명의 엄마들의 이야기는 세상을 향한 소리없는 외침으로 느껴진다.
책에서는 다운증후군 지영 엄마와 승민엄마, 청각장애 연서 엄마, 뇌성마비 인해 엄마, 자폐장애 요섭엄마, 시각장애 민태의 이야기, 근육병 민서 엄마, 서버트증후군 순자 엄마, 지적 장애 병근엄마까지 엄마들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과 장애인들을 향한 세상의 편견과 더불어 무엇보다 정상인이었던 엄마입장에서 장애아이를 키우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비롯된다는 그네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나는 엄마다. 나는 엄마다. 나는 내가 아니고 엄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42쪽 몇 년전에 작고 한 故장영희 교수의 책은 무척 귀하게 여기는 책 중의 하나이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지만, 그런 장영희 교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엄마’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식 장영희를 업어오고 가며 학교를 다녔던 이야기라든지, 장영희 교수가 세상을 바라보는 투명하고도 순수한 싯귀들은 늘 가슴 깊은 곳을 후벼파곤 했다. 장애로 태어난 장영희 교수는 늘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칠 것 같은 괴물같은 삶 속에서 빛 동그라미를 만들며 생명의 약속을 지켜가는 것이 바로 ‘태어남’이라고 하였다. 태어남은 하나의 약속이다. 나무로 태어남은 한여름에 한껏 물오른 가지로 푸르름을 뽐내리라는 약속이고, 꽃으로 태어남은 흐드러지게 활짝 피어 그 화려함으로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리라는 약속이고, 짐승으로 태어남은 그 우직한 본능으로 생명의 규율을 지키리라는 약속이다. 작은 풀 한 포기, 생쥐 한 마리, 풀벌레 한 마리도 그 태어남은 이 우주신비의 생명의 고리를 잇는 귀중한 약속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남은 가장 큰 약속이고 축복이다. <내 생애 단 한번中에서> 안타까운 것은 장애아들을 둔 12명의 엄마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로 인해 아파하고 한때 자살을 꿈꾼 적도 있고,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대인기피증에 괴로운 날을 보내거나 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을 슬픔으로 받아들였을 엄마들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이 비통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난다는 것 자체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故 박완서 작가가 외동아들을 스물다섯에 잃고 나서 지은 <한말씀만 하소서> 라는 시는 자식 잃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어미의 애통함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그런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 친구 아들이 반송장의 상태로 누워있지만, 그런 아들이라도 있는 친구를 보며 자신은 아들을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지만, 친구는 아들이 그렇게라도 눈앞에 존재해주는 것을 보고 얼마나 큰 축복이냐는 말을 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이토록 강한 애착이자 집착의 상대이다. 장애는 그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의 말처럼, 그저 편견 없이 생명이라는 태어남의 가치는 우주신비의 생명의 고리를 잇는 귀중한 약속이라는 울림이 마음을 관통하게 하는 그런 책이다. 장애를 가진 엄마들을 마음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드는 책이자, 같은 엄마입장에서 힘내라는 격려와 위로를 건네고 싶다. 부디 힘내세요 ! 엄마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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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 질긴...고무신 같은...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마케터 노트
우선 엄마라는 단어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다. 그래서 그럴까 유독 ‘엄마’란 단어가 들어간 영화라든지 책은 마치 내가 주인공 같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역시 그랬다. 내내 ‘그래.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도 그랬다.’ ‘맞아, 우리 엄마도 이런데...’ 란 순간순간의 연속이었다. 장애가 있건 없건 엄마들의 마음이란 다 매한가지였다.
유독 뇌성마비장애가 있는 인해씨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엄마는 아침마다 책가방을 맨 인해 씨를 업고 길을 나섰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다 큰 인해씨를 업고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해 씨를 업어다 학교 의자에 앉혀 놓으면 일단 아침 일과는 끝이었다. 오후에 수업이 끝났다고 연락이 오면 다시 딸을 데리러 학교로 가는 생활을 육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매일 학교에 드나들면서 엄마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엄마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학교에서 인해를 등교시키느라 애썼다고 하얀 고무신을 엄마에게 상으로 주었다. 그 때 엄마는 알 수 없는 슬픔과 기쁨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 큰 아이를 업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느끼며 걸었을 한 걸음 한 걸음. 인해씨의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설움들을 토해내었을까 하얀고무신을 받아들고는 가슴에 품고 울었을 인해씨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디 인해씨 엄마만 그랬을까 여기 나오는 또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질기고 질긴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나는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못해서 ‘엄마’라는 신세계에 들어서지 못했으나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덕분에 감히 짐작한다.
그 깊은...혜안의 삶. 저자 김효진씨가 말하듯이 인생 절정의 순간에 깨닫거나 혹은 절망의 끝에서나 길어 올릴 수 있는 깊은 혜안. 다른 말로 모성(母性)이라 부르는, 엄마의 삶을 말이다.
2012년 7월 26일 부키 마케팅부 탱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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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은 견고하고 높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주홍글씨를 찍어 주는 우리 사회의 저급한 인식과 사람들의 눈높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을 쓴 저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엄마의 만화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이 세상에 드러내 놓고 싸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을 위한 개인의 성취물이 아니다. 그것은 금쪽과도 같은 내 자식이 이 사회에 하나의 인격체로 동일한 존재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엄마들의 바람들이 들어 있다. 사회 인식 저편에 아직도 어둡게 머물러 있는 후진적인 인식의 틀을 온 몸으로 깨부수고 있는 엄마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장애의 편견을 깨부수는 작업을 이제는 대중들이 흔들림없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우리와 같이 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일원이라는 동료의식과 동질감을 가지고 정책이나 실질적인 복지혜택, 취업, 결혼 등등 여타의 모든 것들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마땅히 그리해야만 하는 존엄성 있는 한 인간임을 동시대인들 모두가 자각하며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쉽지 자기 자식이나 부모, 형제, 자매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생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여기 실린 엄마들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장애, 장애인, 그들을 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것일지 이 책을 통해 살펴 보고자 한다.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 한 인간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 간단하고 단순한 것을 말하는 데 오랜 시간과 피 나는 노력이 들어간 엄마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전쟁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하는 눈물의 시간들이다.
1. 시선에 자유로울 권리 장애인들 대부분은 이 책에 나온 다운증후군 지영엄마를 비롯해서 발달장애 진석엄마, 자폐장애 요섭 엄마들 등등은 자식이 자유롭고 편한 시선에서 아이가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은 얼굴형태가 비슷하고 병증이 확연히 드러나는 장애라서 누구보다 차별이 심하다고 한다. 어느 것 하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나 의지를 관철시킬 수도 없고 일정 시간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모의 도움,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엄마의 도움 없이는 자립의지도 거리 활보도, 일상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니 그들의 불편함과 속울음은 아무도 알지 못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들을 보는 시선에 편견에서 탈피하고 같은 한 인격체로서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2. 지적장애인들의 성적인 권리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성인이 된 장애인들의 성적인 권리이다. 일각에서는 몰지각하고 무식한 일부 성인남성들의 무차별 성적인 대상이 되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무식한 짓인가. 한 인간을,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장애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고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는 그 무자비한 권력을 누가 쥐어 주었는가. 이 책에서는 성인이 된 자신의 딸이 자기 몸을 사랑하는 방법, 이성을 대할 때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에 대해 지도하는 엄마가 있다. 장애가 있으면 성적인 권리도 박탈되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반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신의 생각을 조금만 바꿔 보길 바란다. 누가 내 몸과 정신을 반강제적으로 소유하려고 들 때 우리는 물리적, 법적인 모든 것을 동원해서 응당 그 죄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지적장애여성들이 당하는 숱한 폭력과 수모 앞에 우리는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을 매개로 하는 남자들의 인식의 전환이다. 3. 동등한 의료혜택을 받고 싶은 사람들 이 책의 후반부에 보면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진석이의 치과 치료 장면이 나온다. 담당의가 예고도 없이 자리를 비우고 아이는 공포 속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도 출혈도 심했고 엄마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넘어 화가 치민다. 그 엄마의 말이 무척 공감이 가서 옮겨 본다. <장애아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길 원하거나 불쌍히 여겨 동정해 달라는 게 아니다. 장애로 인해 특별히 예민한 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뿐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엄마들은 몸은 이미 고단할 때로 고단해 있고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마음은 천길낭떠러지에 서 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건강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격려가 필요할 것이다. 4.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들을 응원하고 싶다. 가족 중에 자폐를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오랫동안 아이를 힘들게 키우다가 산골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렸다. 그만큼 사회의 인식은 단단하고 그들을 동정하거나 비웃거나 무시한다. 두 분 다 장애가 없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이 마치 자신들의 탓인 것처럼 비통해 하고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학교에 나가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연히 가능한 사회가 언제쯤 올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이 있었다. 나는 여기 이 책에 실린 엄마들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다가 가기를 바란다.
세상은 평범한 위로를 하고 끝내고 싶어한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얼른 나으라는 말, 폭염이 지속되면 건강하라는 말, 기쁜 일이 있으면 축하한다는 일상적인 말들을 건넨다.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부모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엄마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한 말들이다. 나와 당신, 그 사람이 똑같다는 생각이 절실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누구보다 약한 엄마들이 강하게 일어서서 현실의 어둠을 걷어내는 것을 보았다.그녀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엄마라는 이름에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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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내뱉는 말의 거의 90퍼센트는 '엄마'라는 단어일것이다. 아마도 전세계 모든 언어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불리우는 단어가 아닐까. 그만큼 흔하디 흔한 '엄마'라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책임의 무게만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군가의 인생 자체를 짊어져야 한다는 그 압박감은 생명을 출산하는 육체적인 고통에 버금가는 일이 될 것이다. 하물며, 책임져야할 그 인생이, 그 조막만한 손의 주인이 장애를 가졌다면,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러한 무게를 감당해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열 두명의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면서, 여태까지 읽었던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나 이상적인 것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두 다리가 없는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이상하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않고, 너는 그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를뿐이다 라고 일러줬다던지, 태어날 때부터 앞이 안보이는 아이와 함께 등산하고, 스키를 가르치고, 자전거도 타는 부모의 이야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탓일까.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장애를 일찍 발견하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이가 있는가하면 병원의 오진때문에 아이의 고통을 배로 만들기도 하고, 장애를 가진 자녀를 보살피는데 치중하다보니 다른 형제 자매들이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어 정신과치료를 받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더욱 더 진솔하게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들도 겪었던 시행착오는 다른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겪었던 수많은 불공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장애자녀들에게도 똑같이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함에도 '그런 아이를 낳고서 어디와서 큰소리냐'라고 말하는 교장선생님에게 당당하게 맞서야할 용기도 가져야 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라고 함부로 치료를 해서 입에서 피가 철철나게 만든 치과를 상대로 항의를 거듭한 결과 사과를 받아내기도 해야 한다.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구구절절 공감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장애자녀를 키우는 것은 엄마 혼자만의 몫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 물론, 엄마의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은 백번 인정하고도 남겠지만, 엄마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것은 도리어 그녀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이 책에 언급된 엄마들은 남편과 장애를 가지지 않은 또 다른 자녀, 그리고 그녀들의 부모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자녀의 양육문제 자체가 그들의 도움이 없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물며 장애를 가진 자녀의 양육이라면 더욱더 그러하지 않겠는가.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지만 모든 엄마가 강한 것은 아니다. 엄마도 한 사람의 여자요, 더 나아가 불완전한 인간이 분명하건데, 그녀를 슈퍼우먼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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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제 아이도 마음의 병이 와서 병원엘 다니고 심리치료를 받고 다닌적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장애를 가진 엄마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이해할수 있겠더라구요. 하지만 씩씩하고 꿋꿋하게 잘 키워내는 엄마들을 보다보면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닌거가지고 울고 불고 우울해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장애를 극복한 장애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들 뒤에서 묵묵히 세상과 연결을 해주는 다리같은 존재들.. 바로 그런 엄마들의 이야기를 아주 진솔하게 다룬 책이랍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기엔 아직 이세상은 너무나 부족한것 투성이.. 그런 부족함을 하나씩 채워나가려 하는 엄마들의 노력.. 그런 아름다운 노력을 보고 저는 희망을 얻고 많이 배우고 가게 됩니다..
여자로써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해보니 찡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정말 대단하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편견과 오해 속에서 상처를 많이도 받았을 텐데.. 아이들을 세상과 연결할수 있는 중요한 다리역할을 했던 그녀들.. 책속 그녀들의 찡한 이야기를 보고있노라면 나도 몰래 찡해지기도 하더라구요. 하지만 용감한 엄마들의 이야기.. 그래서 아름답고 감동적이지 않아 싶어요.~ 저도 우리 두 사랑스런 이쁜 아이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수 있도록 따뜻한 세상을 알수 있도록 그렇게 키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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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의 자신, 한 사람이자 여자인 자신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오직 장애아를 낳은 엄마로만 보는 듯해 싫었다. p 20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듯하지 않습니다. - 신영복 [함께 맞는 비] 중에서 P24 "엄마, 아픈 애한테까지 뭘 시켜요. 우리끼리 해도 충분해요." 언니들은 굳이 나까지 일을 시키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일할 사람이 없어 시키는 거 아니다. 쟤도 흙을 만져 보고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야지." P 53 ===================================================================================== 단도직입적으로...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디, 이 책을 장애아를 낳은 엄마들의 인생역정 스토리 모음집 정도로 치부하지 말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차분히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으로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이다보니....온갖 똑똑한 척들을 다하는 군상들이면서도....자기가 겪지 않으면 타인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를 '진실로' 가늠할 수 없다 - 물론, 본인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이고. 그렇다 보니 '조금은 특별한 자녀들'을 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식구들의 어려움에 대해....바쁜 일상속에서 생각해 볼 겨를도 없는 것이 현실이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기준으로 보면..한국에는 등록된 장애인수가 243만명에 이르고 있고- 이들은...분명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243만명과 얽혀 있는 그네들의 가족을 생각해보면...장애인들과 관련된 우리네 이웃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 때문에 도저히 못견디겠다. 얘가 그만두든지 내가 그만두든지 둘 중 하나다." 한 교사에게 이런 엄포를 듣고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 된 엄마도 있다....."어디서 그런 얘를 낳아가지고 말이 많냐."며 막말을 한 교장도 있었다. 교장 이하 교사들이 바뀌지 않으면 통합교육은 그저 무늬만 통합일 뿐이다. p125 자폐아에 대해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가 막무가내라고 생각하고 비난부터 하기 바쁘지만 언뜻 문제 있어 보이는 그 아이들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p 145 이 부분을 읽고...처음에는- 솔직하게..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본인의 주변에는 장애우를 둔 친척도, 가족도, 지인들도 없다. 그러나-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는 현실"이 몸서리칠 정도로 싫고-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저러한 말을 한 사람은 "무지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말그대로....그네들의 아픔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저러한 말들을 거리낌 없이 내 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어른들의 곁에 있는 아이들이 .... 결국, 나중에 성장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시나리오다. 그렇기에....부디 이 책을 남녀노소 두루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직접 겪을 수가 없다면....조금 다른 아이들을 기르는 어머니들의 노고와 가족들의 눈물과 그네들의 사랑을, 책을 통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어림짐작 하다보면..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 말이다. ........................................................ 장애아를 둔 엄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상처들이 가슴 하나 가득 패이고 패여있다. 처음 자신의 자녀가 장애아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하나씩 늘어가는 생채기들은 엄마라는 이름의 그녀들에게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게 하고- 결국 이것은 가족들의 해체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가 존재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고통과 힘겨움의 눈물들이- 어느 순간에서인가....자신의 사랑을 받고 자라나는 자녀를 보고 기쁨의 눈물로- 더욱 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노라는 다짐의 눈물들로 스스로 바꿔가는 어머니들의 모습에- 가슴 한 켠 아릿함을 느꼈다. 방긋방긋 웃는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아이의 눈이 참 슬퍼 보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슬퍼할 리가 없었다. 그건 순전히 엄마의 시선일 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슬픈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도 슬퍼 보이는구나!"..... 아이에게는 자식의 장애를 슬퍼하는 엄마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함께 할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80 한 걸음 한 걸음 이 길을 가면 된다 -...."우리도 이십 년 동안 이 아이 때문에 울었어요. 하지만 그 울음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더군요. 울 힘이 있거들랑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세요. p 37 너무나 흔하게 쓰여서 조금은 식상한 말이지만..그래도 이 말만큼 진실인 말이 있을까. "어머니는 강하다." 감히, 책 한 권으로 이 책에 나온 12명의 어머니들과 스스로가 장애우로 살아온 책의 저자인 김효진님의 아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책 덕분에, 분명...그네들의 삶의 작은 부분이나마 바라볼 수 있었고- 좀 더 '나와는 다른 이들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어머니들 모두가...우리들에게 거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더우기, 자신들의 힘든 생활을 토로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사회 구성원인 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과 함께 "배려"를 바라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 - 장애, 성별, 인종 등이 다른 - 을 이해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장을 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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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늘 집에서는 아빠보다 엄마를 찾았다. 그런 우리를 늘 서운하게 생각하시던 아빠. 그런 내가 이제 30대 중후반의 엄마로 살아간다. 엄마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가슴 시린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이제 곧 세아이의 엄마가 되고, 또 13년차 직장맘으로 삼남매의 장녀로 살아가게 된다 셋째는 2달이 재 남아있지 않아서 막내를 기다리는 마음도 남다르다. 게다가 나는 장애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어느날 사랑하는 아이와 만나게 되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맞딱뜨린 12명의 엄마들을 인터뷰하면서 본인이 지체장애를 지닌 저자가 들려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다.
비장애아이들에게나 동료들에게 장애이해에 대한 교육과 강의할 기회가 주어지면 늘 우리는 [예비 장애인]이라고 표현하곤한다. 정말 그렇다 그들이 장애를 간절히 원해서 된것도 아니고, 특히 후천적장애가 더 많이 발병한다. 그럼에도 장애에 대한 인식은 왜그리 팍팍한지 내가 제자들이랑 함께 다닐때면 얼마나 눈여겨 보고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장애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런 아이를 둔 부모라면 평생의 짐이고, 십자가라는 생각, 늘 긍정적인 학모라도 가끔씩 이유없이 찾아오는 우울증의 마음들, 장애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남매와 형제들이 심리적부담들. 그저 나는 내 입장에서 생각할뿐 엄마들의 마음에서 헤아리긴 당사자가 아니고는 짐작할 뿐이다.
12명의 엄마 중 승민이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의 상황과 비슷해서 더 공감이 되었다. 승민이의 누나와 형들은 승민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주며 가족으로 함께 공감하며 동생으로 아끼는 마음이 남다르게 묻어난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의 영향이 크리라 생각된다. 그런 긍정적인 형제속에서 자란 승민이라면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자라날 것 같다. 그리고 승민이로 인하여 그 가족은 더 단단해지며 여물어 갈 것 같은 기분좋은 좋은생각이 든다.
장차현실씨의 딸 은혜의 이야기는 익히 만화로 접해본터라 더욱 반가웠고 특수학급, 특수학교에서의 이야기가 더 피부적으로 느낄 수있는 경험들이 녹아나 있는 글들이라 엄마의 입장을 좀더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아직은 학령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학령기 이후의 삶도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가 더 관심있게 와 닿았고, 또한 60이 넘긴 엄마들에게는 장애가 있는 자녀들이 의지가 되고 용기가 된다는 내용은 내게 삶의 더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그만큼의 시행착오와 가슴앓이와 살아온 과정속의 치열함이 있었기에 더욱더 그녀들의 이야기가 가슴을울리고 또 살아온 삶에 대해서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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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인생 한국 사회는 장애인에게 열려 있는가?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을 질문들이다. 이 사회의 구조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최적화 되어있기는커녕 뿌리 깊은 불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장애는 행복과는 무관하며 고통, 불행, 비정상, 비극, 절망, 심지어는 죄와 동일시된다. 장애인은 분명 ‘일반’ 사회구성원과는 다르게 취급된다. 즉 ‘장애’라는 기표는 ‘차별’을 함의한다. 차별은 만연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솎아내어지고, 쫓겨난다. 차등대우는 장애인의 운명이다. 국가와 시장에서는 그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이미 사회구성원 전반에게 장애인은 성가신 존재로 인지된 지 오래이고, 정상인들보다는 덜한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미미한 제도는 있지만 소극적이며, 의식구조의 변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즉 사회구성원 다수는 장애인을 어느 정도씩은 차별한다. 이렇게 누적된 차별에 짓눌린 장애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이 성공한 장애인도 있지 않느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례로 만개의 비참을 가려 보겠다는 우의를 나는 헤아려 줄 수가 없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심 끄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TV에서 나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스타들은 사랑받는 사람의 전형이다. 또 재수 없긴 하지만 ‘범생이’들은 ‘요즘 공부 열심히 하니?’가 청소년들에 대한 인사로 통하는 사회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러나 무관심을 독차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부류가 있겠지만 그 전형이 장애인 집단이다.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 이러한 무관심에 훼방을 놓기 위한 기획은 간헐적으로 제출되는데, 최근에 출간된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러한 기획의 최신 버전이다. 특이한 점은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다운증후군, 시각장애, 자폐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등의 장애를 지닌 아이들 엄마 12명이 직접 전하는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숨은’저자이자 ‘엄마들’의 인터뷰어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 또한 어릴 적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마흔아홉 해를 지체장애인으로 살았다.
장애, 차별과 사랑 사이에 김효진이 전하기를 "처음 자녀의 장애를 알았을 때 그녀들은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슬픔을 맛보았고, 앞으로의 삶에 온통 먹구름만 가득한듯한 절망을 느꼈으며,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8p) 그녀들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왜 생명 탄생의 축복과 함께,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러한 감정의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어떠한 시선을 갖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장애인 혹은 장애인의 가족들에게 '좀 안됐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게나!'라는 식의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장애인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 냉소적으로 돌변한다. 존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복지도 비장애인 유권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는 즉시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비장애인의 눈치를 보며, 혹여나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살아간다.
한 사회가 어느 정도의 ‘평등에 대한 감각’을 지녔는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대우를 살피는 것이 유용하다. 한국 사회도 그들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줌의 제도를 마련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악조건’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이 사회는 권리보단 의무에 예민하기에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비장애인들이 제시하는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차별하기 좋은 대상이 된다.
차별에 대한 감각에서 평등에 대한 감각으로 평등에 대한 감각보다는 차별에 대한 감각이 돋보이게 된 아이들에 대한 교사 황주환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수행평가 시간에, 학습 장애가 있어 언제나 전교 꼴찌인 학생을 배려하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날선 고함과 손가락질로 나를 질타했다. ‘왜 그 아이만 특별대우 해주느냐’며 교사에게 퍼붓는 야유로 교실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들의 조롱과 이죽거리던 눈빛을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이들마저 이렇게 되어버린 세상, 12명의 엄마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소개하며 이 세상은 ‘독한 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차별의 반대편에는 사랑이 있는 바, 엄마들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려고 애쓰지만 “내 아이, 나 자신에 대한 일차원적인 사랑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견디고 있”다.(9p)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에 ‘고된 돌봄 노동’은 그녀들이 방전되기 이전까지 지속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은 장애인이 전부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렇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차별은 연대의식보다는 경쟁의식이 주입된 사회에서 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야말로 경쟁적인 구별에 취해있다. 얼마 전에 유행한 스마트폰 계급도, 노스페이스 계급도 등은 물론,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따라서, 집의 시세에 따라서, 학벌에 따라, 심지어 가지고 다니는 가방으로 인해 차별 받고, 특권 의식을 구가하는 사람들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우리가 그 사람들이다. 차별이 일상이 된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다양하고 정밀한 분류체계가 특권을 누릴 사람/차별 받을 사람을 나눈다. 이 분류체계는 폐기되기보다는 증식하고 있다.
누림의 시간 12명의 엄마들이 ‘장애아’를 낳은 ‘죄’로 육체적인 고생과 따가운 시선을 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전면화 되어버린 차별에 대한 감각이 완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는 만연한 '차별에 대한 감각'이 그저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 당장에 내일에라도 각자가 '의지'만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감각은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 채택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 체제가 구축해놓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존중받으며 살기 위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차별에 대한 감각’이 구성된 것이다. 즉 '차별에 대한 감각'은 '악한' 개인이 선택했다기 보다는 유도되고 길러진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겨눠야 할 과녁은 모세혈관이 아니라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임이 자명하다.
철학자 이진경은 “장애는 어떤 생명체가 흔히 ‘환경’이라고 불리는, 그가 살아야 할 조건과 만나는 곳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재고해야 할 것은 현재의 환경, 그리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환경’이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자유롭게 남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고통을 줄 수 있는, 그것도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그러할 수 있는 한국 사회, 그래야만 존엄한 삶을 ‘쟁취’할 수 있는 이 참혹한 서바이벌 세계라는 ‘환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또한 그것이 적용된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나는 그것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결투의 시간'은 '누림의 시간'으로, 즉 권리의 확장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하여 부재했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 애써 외면했던 것들, 그래서 바로 알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기억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들과 우리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 ‘그들’이 ‘우리’가 되는 시간을 요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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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가 뱃 속에 있었을 때 기형아 검사를 했었다. 하도 오래 전이라 임신 몇 주차에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아침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결과가 이상해 확인검사를 하고 있으니 일주일 뒤에 오라는 것이다. 일주일? 불안했다.
일주일 뒤에 갔더니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소견이 보이니 차 병원에서 양수검사를 하라고 했다. 일단 차 병원에 갔다. 여 의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양수검사 하기 전 동의서를 작성하란다. 내용은 양수검사 시 태아가 잘못될 수도 있으며 그 때 의사에게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는다,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주사기로 양수를 빼내면서 태아를 건드리게 될 경우 생기는 부작용이라나 뭐라나. 덜컥 겁이 났다. 그러면서 주는 힌트 한 가지, 간혹 피 검사를 한 번 더 하면 결과가 달리 나올 수도 있단다. 그래서 양수검사를 하지 않고 지난 번 개인병원에서 피검사를 의뢰했었던 검사센터에 직접 가서 재검사를 했다. 초조하게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다행히 이번엔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 기형아 검사를 시작으로, 태어난 아이는 신생아들이 걸린다는 거의 모든 병들을 두루 거쳤다. 출산 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가 병원에 신생아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검진을 하더니 황달이라며 당장 입원시키라고 했다. 신생아 황달이 끝났다 싶었는데, 보통 10개월내에는 신생아들은 자주 걸리지 않는다는 감기를 한 달만에 걸렸다. 그 뒤 자질구레한 병들로 병원을 들락거려 친정엄마의 속을 타게 만들었다.
2년 뒤 둘째를 낳았다. 한 달에 이십일을 병원에 다녔다. 둘이 번갈아가며 아팠던 것이다. 어느 날은 아이들 둘을 병원에 데리고 다녀와서는 감정이 복받쳐 엉엉 소리쳐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사는 게 지옥같애,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그 당시에 남편과 난 이구동성으로 " 누가 애 둘 낳는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거야"라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스스로 모든 걸 해나가는 나이가 되니 이제는 웃으며 그 때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 때 양수검사를 해서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그 아이를 지웠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낳았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2004년도에 선천성 혈관기형으로 내게 갑작스런 뇌출혈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난 오른쪽편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아직도 한 달 반동안의 기억은 전혀 없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 쪽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내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난 30대 후반에 그랬으니 정상인으로 살 만큼은 살았다 싶다.
하지만 동네 꽃길로 운동을 나가면 운동하러 나오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혀를 차신다. 젊은 나이에 안 됐다는 것이다. 어떤 꼬마는 길을 걷다가 내가 이상하게 걷는 걸 보고는 다시 한 번 더 돌아본다.
반 세기정도는 살았다는 나도 그럴진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엄마들은 자식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눈길을 어떻게 받아내고 있을까?
12명의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엄마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저자 또한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인한 지체장애를 갖고 있기에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그 엄마들의 삶을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애를 입고 나서 내가 느낀 건 장애에 있어서는 "역지사지"가 참 힘들다는 것이다. 같은 뇌병변 장애를 입고 있어도 다친 부위에 따라, 다친 상태에 따라 상대방을 온전하게 이해하기가 힘든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장애는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은 맞지 않는 말이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건강한 사람들도 뜻하지 않은 사고에 의해서 한 순간에 장애가 올 수 있다. 부디 사람들이 장애인을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또한 동정해야 할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않기를,...
언젠가 복지관 체력단련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아저씨는 중심상가의 한 건물에 전동스쿠터를 타고 들어갔단다.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버튼을 누를 수가 없어서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에게 "도와주세요"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한 번 쳐다보더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 천원을 살포시 건네주더란다. 아저씨가 너무 황당해서 "버튼 좀 눌러주세요"했더니 그 아주머니는 얼굴이 빨개지시면서 버튼을 눌러주셨단다.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 불쌍한 사람, 전생에 죄를 지어 벌을 받고 태어난 사람,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한다. 장애인도 물론 당당하게 살았으면 싶다. 하지만 실은 나도 당당하게 살고 있진 않다. 마음은 늘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자꾸만 움츠러드는 건 왜 일까?
어떤 중도 장애인이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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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나를 위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는 엄마들의 모습에 함께 웃고 울면서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다.
그냥 멀쩡한 아이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 책에 나온 12명의 엄마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키운다. 그것도 우리 나라처럼 힘들고 척박한 환경에서. 정말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음 아프고 때론 답답하고 속상했지만 그 모든 걸 힘차게 헤쳐나간 엄마들과 아들딸들을 보면 베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동안 내가 내 아이들에 대해 했던 수많은 불평불만이 이 책을 읽으면서는 배부른 투정으로만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이 엄마들처럼 뜨겁게, 힘차게, 사랑으로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결국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그것뿐인 것 같다. 답은.
한편, 책을 읽으며 사람들의 몰이해, 편견 등에 아파하는 엄마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우리 나라가 어서 교육, 시설, 인식 등 모든 면에서 장애인들이 살기에 힘들지 않은, 다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책은 전반적으로 좋았으나, 에피소드마다 섞여 있는 저자의 이야기가 좀 어수선하게 느껴졌던 게 좀 아쉽다.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자꾸 저자의 연결된 경험이나 상념이 섞여 나오니 가끔 헷갈리기도 했다. 차라리 저자의 이야기를 따로 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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