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서른을 넘긴 나이에 읽게 되었다. 유명한 작품이어서 기대를 많이 했던지 아쉬운 점도 있지만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작품으로 볼 만하다.
바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존재 바다는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넓은 바다 위에서 고기 잡기를 갈망하는 노인 그러나 84일 동안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은 잡겠지 다시 내일은 이렇게 얼마나 기대했을까. 이제는 기력도 쇠하고 집에는 식량조차 없다.
그런 노인 곁에 착하고 자상한 소년이 따뜻한 위로이자 유일한 친구이다. 어부 중에 최고는 할아버지라고 지친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소년은 따뜻한 사람인 것 같다.
어렵게 잡은 커다란 물고기 잡으려는 자 잡히지 않으려는 물고기의 싸움이 시작되고 할아버지는 부상을 입고 남은 힘마저 다 쓰게 되었지만 결국 물고기는 상어 밥이 되고 만다. 할아버지마저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마음을 졸이며 읽었다. 비록 커다란 물고기로 남좋은 일을 시키고 말았지만 할아버지라도 돌아올 수 있어 다행아닌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 사실 물고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할아버지랑 같이 나갈래요" "아니야, 난 운이 없어. 내겐 더 이상 운이 따르지 않는단다." " 운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운은 제가 가져갈게요"
소년의 밝은 기운이 할아버지에게도 전해져서 다시 할아버지는 즐겁게 바다로 나갔을 거라고 믿고 싶다.
|
|
허밍웨이가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허밍웨이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은 없었는데 기회가 되서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니 책의 분량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방대했다.
|
|
세월의 흔적이 노인의 얼굴에 깊은 골을 남겼다. 한때는 그도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비록 지금은 운이 다해 주름진 얼굴보다 더 구겨지고 비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젊은 시절 그는 힘쌔고 운좋은 어부였으며 누구보다 바다를 사랑하였다. 일흔의 노인은 오랜 세월 동안 샇인 연륜과 삶에 보다 너그러워 졌으며 어찌보면 그는 삶을 달관하고 있다. 운 이란 바람처럼 왔다가 머물사이도 없이 지나가버리고 세월 또한 그러하단 걸 노인은 잘 알고 있다. 노인 산티아고는 벌써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지만 내일은 오늘 보다 나을 거라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운이 다했다고 쑥덕거리지만, 오늘 운이 나쁘다고 내일도 운이 나쁘리란 법은 없다며 그럼에도 변함없이 바다를 사랑하고 고기잡이를 나설 것이다. 그는 누굴 탓하거나 바다를 원망하는 법이 없다. 같은 마을에 사는 소년 마놀린은 노인에게 고기잡는 법을 처음 배웠고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길 듣길 좋아해 그의 일손을 돕곤 했다. 소년은 노인의 운이 다했다며 승선을 만류하는 부모 때문에 노인과 함께 배를 타지 못하지만 쇠약한 노인이 홀로 바다에 나가는 게 못내 가슴 아프다.
소년은 새벽잠에서 덜깬 눈을 비벼가며 노인에게 미끼로 쓸 고기를 건네며 이번에는 그와 함께 배를 타지 못하지만 다음엔 함께 가리라 마음먹으며 노안을 배웅한다. 산티아고는 혼자 먼 바다까지 배를 끌고 가 낚싯줄을 내린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의 낚싯줄이 팽팽해지고 노인의 배보다 훨씬 크고 힘센 청새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 낸다 노인은 이틀 밤낮을 넘게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다. 손에 쥐가 나고 낚싯줄에 쓸려 상처난 자리를 바닷물에 담구며 소년을 생각했다. 소년이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큰힘이 되었을까. 망망대해 위에서 그는 자신을 걱정하던 마을 사람들을 떠올리고 사람은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쏟아지는 햇살과 목마름에 지친 노인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가 불쌍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 죽을 힘을 다해 물고기와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청새치를 잡지만 기쁨도 잠시, 뱃전에 밧줄을 묶어 놓은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쫓아오고 노인은 혼신이 힘을 다해 물고기를 지키려 상어 떼와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벌인 사투 끝에 겨우 상어 떼와 멀어진 노인은 뭍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뱃전에 묶인 청새치는 머리와 앙상한 등뼈만 남아 있다. 어부들은 노인의 뱃전에 매달린 거대한 뼈를 보며 감탄하지만 마놀린은 노인 홀로 힘겨웠을 일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린다. 지친 노인을 위해 먹을 것을 싸 들고 산티아고의 집으로 간다. 노인은 돌아와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소년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잠이 든 노인의 얼굴이 아름다워보여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참 지나 사회생활을 하며 다시 읽게 된 노인과 바다는 한 노인을 통해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읽을 때마다 노인이 왜 그토록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잡은 물고기를 왜 그토고 연민의 시선으로 보았는지 이해가 된다. 그는 바다를 어머니로 생각했으며, 자신이 잡은 물고기에게 형제애를 느꼈으며 자신 또한 자연의 일부로 여겼음이다. 나이가 들 수록 노인의 삶의 지혜와 혜안이 그리고 그가 사랑한 바다가 마음으로 다가 온다. 마치 자연과 인간의 삶에 관한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하다. 노인의 절제된 감정과 잔잔한 독백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듯 하다. |
|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알 수 있을만한 명작인 <노인과바다>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아들녀석도 알고 있을정도 유명하다. 이제는 중학생인 아들에게 권하고 싶어 선택을 해본다. 두껍지 않은 책에 더 반가운가 보다.
84일동안 고기를 전혀 잡지 못한 노인이다. 노인에게 고기 잡는 법을 배운 소년이 챙겨주는 커피와 간단한 먹거리로 식사를 해결할 정도로 나약하게만 느껴지는 노인이 85일째 되는날 고기를 잡기위해 먼바다로 항해를 한다. 드디어 그 노인의 배보다도 낚시에 걸려든 커다란 고기와의 사투는 하나의 전투가 아닌 노인의 삶을 정리하는 하나의 인생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서로 견제를 하는 듯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노인 끝까지 고기를 잡기위해 끈을 놓지 않은 노인의 태도, 어쩌면 부질없는 일 일수 있지만 그에게는 살아가는 의지이기에 서로의 동행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한다. 망망대해에 고기와 노인 단 둘뿐이기에 노인의 혼잣말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노인에게는 하나의 성취물인 고기가 상어떼들에게 살점이 뜯겨나가는데에 저항하는 노인의 끊임없는 항쟁은 자신이 이기지 못할거란것을 알면서도 살아있다는 표현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결국은 고기를 팔아 돈을 만지고 싶었던 노인의 생각과는 달리 노인에게 남은것은 상어떼들과 싸우느라 없어진 노와 칼를 뺀 낡은 배와 커다란 고기의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노인은 패배를 인정하지만 소년의 눈에는 누구보다 고기잡이에 성공한 노인의 모습이 대단하게 보인다.
커다란 고기에게 무조건 힘자랑도 하지 않고 그 고기의 흐름을 역행하려고도 하지 않는 노인의 기다림이야말로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지혜가 될거란 생각이 든다. 자신이 이기지 못할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끝까지 상어떼와 맞서 싸우는 노인의 모습 이득이 없지만 자신의 성취감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고기잡이 무조건 빨리빨리만 외치고 눈에 보이는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면 도전도 하지 않은 요즘의 우리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보여준 노인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갖어야야할 성품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
헤밍웨이라는 작가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은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이 작품외에도 거의 모든 작품이 번역되어 있는데다가, 동일한 하나의 원전이 다양한 번역본으로 소개되어 있어서, 읽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다양한 번역서를 넘칠만큼 충분히 읽을수 있는 작품이 바로 헤밍웨이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편이라 분량도 많지 않고, 내용도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연령대가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유용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경우, 명작이라고는 하지만, 번역서이니 만큼 세부적인 사항에서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각주를 통해서 원작에 대한 이해를 돕고, 또한 삽화가 없기 때문에, 글자를 통해서만 작품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지만, 중고생이상의 독자들이라면, 소설의 진짜 재미를 느낄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내용과 줄거리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느낌만은 많이 달라진 듯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하루 하루 삶의 무게가 이전과는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양하지만, 쉽지 않은 우리 삶의 모습들을 다시금 떠 올리며,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될 때, 다시 한번씩 찾게 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
국어시간에 '문학'을 배우면서부터 '헤밍웨이'와 '노인과 바다'를 정말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찾지 않았던 이유는
교과서에서 강조할만큼 '딱딱할 것 같다'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그 편견으로 인해 이 책을 내 손으로 직접 찾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직접 찾았다. 이제야 이 책에 대한 나의 마음이 열렸다고나 할까?
이 책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사실 나는 고전이나 외국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조금 두려워한다.
내 스스로가 그 훌륭한 작품을 보면서 하품을 하고 집중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용기가 생긴다. 이 <노인과 바다>를 통해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짧은 단편의 <노인과 바다>이다.
책 표지처럼 해안가에 사는 한 노인이 평생 어부로 지내며
바다에서 생활하며 물고기를 잡는 내용이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이야기가 전부이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노인이 큰 몰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3일의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꼼꼼하게 썼다. 적어도 내가 느낀 그의 문체는 안정적이었다.
급박한 순간도, 지치는 순간도 모두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체였다.
낚시줄에 손이 갈라지고 피가 나고, 밤새 수많은 상어와 싸우고, 무사귀환 하지만
힘들게 돛을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가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부끄러워지는 내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조금만 힘들면 하기 싫고, 때려치고 싶고, 내가 이걸 왜 하나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에 대한 반성을 이 책을 통해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 만큼 일에 열정을 가지고 끈기있게 해낼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마을에서 노인을 관심있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이 3일동안 망망대해에서 그 큰 물고기를 잡고, 상어들과 혈투를 벌이고 돌아와서는 거의 영웅이다.
누구든 각자의 위치에서 열정을 가지고 용기있게 개척해나간다면 훗날 나 또한 내 위치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나의 현실을 비관하고, 일 하기 싫고, 게을러질 때 읽으면 정신 바짝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
|
예전에 중학생때 졸음을 참아가며 읽었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다. 또 졸릴까? 허무한 결말을 허무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읽어봐야 아는 법, 마침 책도 얇고하니 선선한 바람이 불다가 무지막지하게 비가 억수로 퍼붓던 날 난 이런 날씨와 꽤 어울릴 것 같다는 체면을 걸며 책장을 넘겼다.
너무나 유명한 헤밍웨이의 역시 유명한 노인과 바다를 다시 만나게 된 소감은 그때보다야 집중력이 생겨 졸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역시 알다가도 모를듯한 마음은 여전했다. 왜 노인은 고기를 잡을 확률보다 못잡을 확률이 훨씬 많은데도 고기를 잡으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까? 자신만의 싸움인지 아니면 녹이 쓴 자존심인지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까? 결과가 뻔하다고 손 놓고 있는 것은 의지의 상실이요 삶의 이유가 없을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다. 노인이 사투를 벌이고서도 결국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를 가져왔을때 그저 돌아오는 길에 침대를 생각했다는 그 모습에 예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묘한 여운을 느꼈다. 역시 난해하긴 했지만 다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원서로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도전해 볼 일이다.
|
|
이미 인정받은.. 그러나 아직까지 이해하기 난해한...작품 .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책. 이 바로 노인과바다이다.
내가 중학교..때 읽은 노인과바다와 고등학교때, 또 성인의되서 읽은 노인과바다는 각기 다른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리고..앞으로 몇년이 더 지난 후 읽게 될 노인과바다가 기대된다.
그 때면....그때면 작가의 의도를 다 파악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죽기전에 알아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이 책장을 덮게된다. |
|
따사로운 햇살 아래 드 넓은 바다위에서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늙은 노인의 이야기.. <노인과 바다>라는 명작소설을 이제사 읽게된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허나 한편으론 적절한 시기에 이 책을 읽게된 것 같아 다행과 감사를 느낀다. 산티아고 라는 늙은 어부는 84일동안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큰수확을 하는 다른 어부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한탄하고 비관할 법 했지만 이 별난 노인은 비관 대신 언제나 희망을 갖고 바다로 나간다. 85일째 되던 날, 그는 물고기를 낚을 채비를 하고 바다로 떠난다. 그러다 아주 몸집이 큰 물고기를 만나게 되는데 미끼를 잡은 물고기가 지쳐갈때까지 꼬박 몇날 밤을 배에서 외롭게 지낸다.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는 손과 얼굴 등을 다치며 몸이 성치않게 된다. 아무도 없는 드넓은 바다 위에서 외롭게 싸우는 노인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강렬한 햇빛이 노인이 흘리는 땀을 비추고.. 노인은 그 땀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는 앙상하지고 연약해보이지만 강렬해보이는 붉은 피부를 가졌을것만 같았다.
바다라는 광활하지만 한정적인 공간, 노인만큼이나 성치 못할것 같은 작은 배 한짝,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준비해둔 작살, 칼 같은 도구들만을 가지고 외로이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모습이 어느 젊은 어부보다도 냉철하고 대담하다고 생각했다. 여분의 먹거리를 마저 챙기지못해 끼니도 바다에서 그때그때 해결하고, 낚시줄이 모자라질때면 오로지 한 목표를 위해 모든 낚시줄을 걸 줄 아는 대범함! 이런 끈질긴 노력과 지구력의 뒷받침으로 마침내 고기를 낚는데 성공한다.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처해진 상황을 되감기해보며 반성을 하곤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실행하는 어떤 일을 끝까지 해본적이 별로 없다. 물 흐르는 대로 사는 거지 뭐, 하며 '포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았다. 가끔은 그것이 융통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난 실패자에 가까웠다. 원하는 한가지를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며 올인하는 법도 없었다. 그냥 관심가는 것은 이것 저것 찔러보다 흥미가 떨어질때쯤이면 관두는게 다였다.
허나 노인은 성치 않은 몸으로도, 언제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한 바다 위에서 한 가지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낚시질을 놓지 않았다. 아주 끈질기게 잡고있었다. 오른손이 성치않으면 왼손으로, 왼손이 성치않으면 오른손으로, 어떨땐 어깨에 걸쳐매기도, 어떨때는 발로 잡고있기도.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언젠가는 그것을 잡아올려 마을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했다. 긍정에 대한 유명한 책<시크릿>이 떠올랐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있으면 그 기운이 자신에게 깃들어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논리는 노인이 물고기를 잡고 그것을 배에 매단채 마을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발휘된다.
상어떼가 물고기의 냄새를 맡고 그의 배 주변을 맴돌때에도, 상어들이 물고기의 살점을 한 점, 한 점 떼어먹어 비로소 먹을 살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는 노발대발하지 않는다. 되려 배가 가벼워졌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이런말이 있다, " 좋은일이 있으면 나쁜일이 있고, 나쁜일이 있으면 좋은일이 생기는 법"이라는.. 그는 운수좋게도 지금껏 본적 없는 아주 큰 월척을 낚았고, 그것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익과 몇날 몇일을 배불리 먹을 생각에 아주 행복해 했다. 하지만 상어떼로 인해 그의 행복은 4분의 3으로, 절반으로, 이젠 제로에 가까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행복해한다. 억척스럽게도.
상어떼가 85일만의 행복을 가져가긴 했지만, 그는 다시 도전하고 꿈꿀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쁜일이 있었으니 언젠가는 다시 운수 좋은 날이 있을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과연 세상에 어느 사람들이 이 노인처럼 평온한 생각을 가지고 행복을 좇을 수 있을까? 앞으로 살아가며 얻게 될 행운보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에 대한 처지를 비관하며 목숨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목표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한다. 인간이란 욕심이 참 많은 동물이다. 만족할 줄 모른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열을 바란다. 지위와 명예또한 그렇다. 더 높이, 더 많이를 추구한다. 그 추구하는 과정은 노인이 물고기를 잡기위해 몇날 몇일을 사투를 벌이는것과 같은 일이다. 그 과정이 참으로 외롭고, 견디기 힘들다. 때론 술로 온몸과 정신을 망가트리기도 하고 인당수에 몸을 빠트린 심청이처럼 용감무쌍한 정신으로 죽음의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나도 한없이 내가 작아보이고, 연약해보일때가 많다. 지금도 혹시 내가 실패작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 내가 이시기에 <노인과바다> 라는 책을 읽고, 한번 더 용기를 갖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것 참으로 경이롭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 노인의 마인드를 절반만 닮더라도 언젠가는 작은 정어리와 만새기, 새우라도 낚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정어리와 만새기와 새우를 낚게 된다면 그 것을 미끼 삼아 월척을 낚게 될지 누가 알겠나! 작은 것에 치우치다 큰것을 놓칠 수 있단 말이 있듯이, 패배주의에 물든 현실속에 많은 사람들이 딛고 일어나 노인처럼 사자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어도, 자신의 정신만큼은 사자처럼 용맹하고 굳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면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작고 얇은 책이다. 하지만 두툼한 여느 책들보다도 더 교훈있고 지혜로운 소설이라는 것!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내 낚시대를 뻗어본다. 모두 낚여서 한번쯤은 들여다 보았으면 한다. |
|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의 최후의 역작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품으로 학창시절에 읽어봤었지만 성인이 된후에 다시 접하게 되니 생각의 깊이를 더해서 노인의 마음을 느끼면서 볼수 있어서 색다른 감동을 느낄수 있었어요. 84일째 물고기 한마리도 낚지못한 노인과 같은 배를 타지는 못하지만 항상 그를 옆에서 돌봐주며 말벗이 되는는 소년. 85일째 좋은 예감을 갖고 멀리 바다에 나가게 된 노인은 드디어 엄청난 물고기의 무게를 느끼며 큰물고기 임을 직감하고 온몸에 체중을 실어 줄을 당겨보지만 물고기는 꼼짝도 하지 않고 팽팽한 싸움이 시작되네요. 노인은 왼손에 쥐도나고 현기증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지만 겁내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네요. 적막감이 감도는 바다에서 홀로 외로이 노인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물고기와의 사투끝에 잡지만 그곳도 잠시 피냄새를 맡고 쫓아온 상어에게 공격을 받게 되네요. 상어들과의 처절한 싸움끝에 인간은 죽을순 있어도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며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네요. 결국 물고기와 돌아왔을때는 상어의 공격으로 인해 물고기 뼈만 남게 되는데... 집으로 돌아와 소년에게 녀석들이 이겼고 내가 졌다고 말하지만 소년은 물고기한테는 안졌다며 노인을 위로하네요. 노인의 끈기와 물고기에 대한 연민을 고스란히 느낄수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상어와의 생동감 넘치는 사투장면에서는 긴장감마저 느껴지네요. 노인은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통해 진정한 인간 승리가 아닌가 생각드네요. 자신의 일에 대해 끈기를 갖고 노력해야 하는데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해버리는 모습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네요. 할아버지를 동경하며 옆에서 지켜주는 든든한 소년과의 우정도 가슴뭉클하게 다가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