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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백선엽이란 사람에 대해 선지식이 없이 책을 펴게 되었다. 나 자신이 약간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 이분에 대해 좀더 알았더라면 내 아까운 독서시간을 할애 했을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기전에 여기 저기서 백선엽이라는 사람에 대해 자료를 모아 봤다. 최근 뉴스에서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모르는 내가 더 이상할 정도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선입견 없이 평전이니까 객관적 입장으로 그분의 삶을 적어나갔을 거란 생각으로 책을 폈다. 하지만, 절대 객관적이지 않는 작가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평전이다. 제일 앞 작가의 말이 내가 이분의 사상과 심성을 의심할만한 행적은 뺀 행적으로 우상화 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기와 평전의 차이점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린시절부터 전개한 느낌 자체가 우상화를 만들기 위한 위인전을 읽는 느낌이었다. 순전히 나의 개인 느낌이지만 왠지 정치적이고 약간은 시대적 계산이 느껴진다. 세상에 실수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 마는 일제시대 일본군에 끌려가서 목숨걸고 도망쳐 나온 사람도 있다. 독립운동은 못했더라도 내 나라의 주권을 찾고자 하는 이들을 방해하는 이는 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6.25도 정말 중요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내 형제끼리 싸우면서 잘 싸운거 보다 밖에서 들어온 적을 잘 무찌른 사람이 더 훌륭한 장군이 아닐까 싶다. 이승만을 도와 미국의 힘을 어쩌고 하는것도 나는 너무 싫다. 이승만 그분 또한 사견으로는 역적이다. 속된말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배신한 미군 앞잡이 정도이지 싶다. 정치든 역사든 100년은 지나봐야 제대로 된 심판을 받는다지만 지금도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지식인이라면 일본군 충신과 일제시대 순사들 등 일제 잔해가 우리역사에 끼친 악 영향은 아는 이는 알것이다. 그건 미군정 시절 미군의 편의에 의해 우리의 역사속 죄인들을 기득권에 안주하게 한 것이니 지금현재도 그 잔해들이 판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혹평을 한건 처음이지 싶다. 일단 나쁜인물이든 훌륭한 인물이든 우리의 역사니 알고 가는게 맞다고 보기 때문에 점수는 심하게 나쁘게 주지 않았다. 다만, 저자가 조금만 더 잣대를 기울이지 않고 바로 세워 줬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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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을 말한다 전쟁이란 무력으로 적과 싸우는 극한 상황이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이기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전쟁을 이끄는 군인은 강한 정신력, 명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또한 군대를 이끄는 장교는 소속 군인들을 지휘해야 하므로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전쟁만큼 리더십이 필요한 때는 없을 것이다. 백선엽은 6.25전쟁 당시 한국군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군인이다. 그는 1946년 국군의 창설멤버로서 부산 5연대장, 국군1시단장, 국군3군단장, 육군참모총장, 1야전군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탁월한 리더십으로 6.25전쟁에서 常勝의 장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백선엽을 말한다」는 6.25전쟁의 파워리더 백선엽장군의 리더십을 克, 知, 時, 勢, 習, 定, 亂, 鬪, 爭, 勝, 將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의 탁월한 판단력과 리더십을 통한 승리의 이야기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전쟁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백선엽은 1920년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백선엽의 아버지는 7살 때 돌아가셨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그의 어머니는 백선엽이 일곱살 때 생활고로 온가족과 함께 대동강에 뛰어 자살하려고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가난은 백선엽을 성숙하게 만들었다. 백선엽은 말이 적었으나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그는 평양부립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신문사설을 읽는 것을 즐겼다. 다양한 독서와 사색은 이후 큰 자산이 되었다. 백선엽은 약송보통학교, 평양사범학교을 졸업한다. 그리고 만주군관학교에 진학한다. 그가 군인이 된 것은 조선말 군인으로 참령이란 계급까지 승진한 외조부의 영향이 컸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재학시절에 전 세계에서 벌어졌던 유명전투, 전략가로 불렸던 군인의 전기, 군사서적을 탐독하며 전쟁의 기초를 튼튼히 다진다. 만주군관학교 졸업 후 장교로 간도특설대에 근무하게 된다. 백선엽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군복을 벗고 평양집으로 돌아온다. 백선엽은 평양에 돌아온 후 일주일간의 서울여행,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을 통해서 미국과 소련의 존재와 영향력을 체감하게 된다. 백선엽은 평양에서 조만식의 비서실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김일성이 북한을 장악하고 조만식은 김일성에 의해 감금당하게 되면서 백선엽은 1945년 12월 월남하게 된다. 12월 29일 서울에 도착하게 된다. 백선엽은 서울에 도착한 후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군사영어학교는 미군이 설립하였고 광복군, 만주군, 일본군 출신자들을 교육한 후 부산 5연대에 근무하게 된다. 1947년 1월 1일 진급하여 5연대장이 된다. 백선엽은 연대장으로서 부산항에 도착한 미군의 물자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여 분실률을 2-3%로 낮추게 된다. 이때부터 미군은 백선엽의 능력을 믿고 신뢰하기 시작한다. 백선엽은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다. 5연대장 시절 세계 최강의 군대였던 미군을 연구한다. 특히, 미6사단장 우즈 소장의 도움으로 미군의 무기와 전술을 배울 수 있었고 미6사단과 5연대의 합동군사훈련도 실시한다. 백선엽은 부산5연대장을 지낸 후 정보국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정보국장에 재직하고 있던 1948년 10월 19일 여수반란사건이 일어난다. 제주도 반란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 출발하려던 14연대내 좌익세력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여수반란 사건이 진압된 후 백선엽은 정보장교로서 숙군작업을 진행한다. 군대 내 좌익 세력을 제거하고 처벌하는 일이었다. 당시 좌익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박정희 소령을 구명하고 정보국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게 한다. 또한 좌익 혐의자 중 단순가담자를 선별하여 가벼운 징계를 내린다. 백선엽의 선량함을 볼 수 있다. 군대 내 좌익을 제거한 숙군 작업은 1년 후에 일어난 6.25전쟁을 생각하면 중요한 일이었다. 백선엽은 이후 광주5사단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당시 광주를 비롯한 지리산 일대에는 빨치산의 활동이 극심했다. 백선엽은 병사들에게 기본적인 사격술 등을 연마하게 하고 경찰과의 관계를 개선하였으며 민심얻기를 통해서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를 통해서 1949년 동계토벌작전을 벌였고 1950년 2월 5일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 백선엽이 일선 사단장으로 벌인 첫 전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백선엽은 광주5사단장을 거쳐 1950년 4월 22일 개성과 임진강을 방어하는 국군 1사단장으로 부임한다. 1사단장 재직시절 6.25전쟁이 일어난다. 전쟁 초기 개성과 임진강의 1사단 방어선은 무너진다. 전선 지휘관의 자질은 밀리는 상황에서 더욱 드러난다. 후퇴도 작전의 일환이다. 물러설 때 어떻게 물러서느냐도 군 지휘관이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백선엽은 흩어진 1사단 병사를 모아 북한군의 전진을 막는 지연전을 펼친다. 백선엽은 후퇴하는 상황에서도 작전의 기본이 되는 미군의 5만분의 1지도를 얻는다. 그의 전쟁 지휘 스타일, 싸움에 임하는 철학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선엽의 1사단은 상주에서 5사단 소속 병사를 흡수하고 미군으로부터 M1소총 등 장비를 보급받아 사단의 편제를 서서히 갖추게 된다. 미군은 왜관을 축으로 동쪽으로 포항, 남쪽으로 함안에 이르는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한다. 백선엽의 1사단은 수암산, 유학산, 가산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한다. 그 산록 아래 다부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1사단은 북한군 최정예3개 사단과 싸워 대구로 들어가는 관문인 다부동을 수호한다. 다부동 전투이다. 특히, 백선엽은 사장으로서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히들이 나를 쏴라. 나를 믿고 앞으로 나가서 싸우자”라고 하며 사단장 돌격을 감행했다. 1시단은 다부동 전투 승리와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진의 핵심으로서 평양 공격 임무를 맡았다. 1사단은 평양에 첫 입성한다. 백선엽은 1사단장으로서 압록강 수풍댐을 장악한 후 통일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다. 백선엽은 중공군의 실체를 파악하고 북진을 포기한 후 안전하게 1사단 전력을 유지한 상태로 후퇴한다. 후퇴는 패배가 아니라 작전이다. 중공군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게 된다. 백선엽은 이후 강릉에 1군단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군단장 취임후 군단 사령부를 강릉에서 전선에 가까운 주문진 모래사장으로 옮겼다. 현장성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중공군의 1951년 5월 16일 대공세는 대단했다. 3사단은 와해되고 말았다. 중공군은 백선엽의 1군단과 전투를 벌인다. 백선엽은 전략적 요충인 대관령을 선점하고 방어작전으로 승리한다. 백선엽은 휴전회담의 대표로 참석한다. 휴전을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과 휴전을 원했던 미국의 갈등상황에서 백선엽은 현명하게 활동한다. 백선엽은 휴전회담 참석 후 백 야전전투사령부를 이끌며 지리산에 은거한 빨치산을 소탕한다. 주안점은 민심을 얻기 위해서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며 법과 제도의 틀안에서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대형 포로수형소도 설치한다. 백선엽은 지리산 작전을 마무리 한 후 육군참모총장에 오른다.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보급물자를 확보하고 군 인사권을 행사하며 병력 양성과 화력 증강 등 군사일반에 관한 모든 것을 챙겼다. 미군의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한국군 증강계획을 세워 추진한다. 그리고 미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관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휴전에 관한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갈등, 반공포로석방 등 갈등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데 공헌한다. 백선엽은 1953년 1월 31일 별 넷의 장군이 된다. 당시 나이 32세였다. 「백선엽을 말한다」를 통해서 아직까지 살아서 6.25를 증언하고 있는 백선엽의 리더십과 용기를 느꼈으면 한다. 그의 리더십과 용기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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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의 자서전을 읽다보면 불행하든 안하든 어린시절의 시작과 왜 그가 그렇게 성장할수밖에 없는지 알수 있다. 한국사의 이름을 남긴 백선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책을 읽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그가 일제시대 동포를 안 기 보다는 일제에 앞선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될지 사실 많이 망설였다. 분명한 것은 그가 해명을 했음 에도 나는 백선엽을 위대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이 사람도 단지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책에서는 그가 성장하면서 군인이 될수 밖에 없었고 전쟁과 현대사를 거치면서 그래도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라는 말이 있지만 한 인물을 평가하기에 한권의 책으로는 부족함이 든다.
426페이지를 보면 "그의 계급장이 거저 얻어진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후에도 분명히 드러난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그것은 쭉 읽어보면 알수 있는 점이다. 마음속으로 정한것은 목표를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백선엽의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것은 성장과정에서 그의 어머니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어린나이에 신문사설을 즐겨 읽었다는 문장 이 이부분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유명하게 된것은 시대와 맞아 떨어지는점도 있지만 전쟁에서 그 위력을 나타냈다고 본다. 현대사회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좀 많이 나약해지고 있다.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길을 정하기도 하지만 도중 에 포기하고 일어나지 못한다. 비록 백선엽이라는 인물이 먼지가 나지 않는다고는 보지 않는다. 과거의 치부가 그의 모든것을 지울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점도 있다는 사실이다.
또 우리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다. 그래서인지 이질감을 얻을수도 있다. 6.25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피 터지 는 싸움이라는 사실과 그속에서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암울하고 미국에 의존하면서 살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조금은 알아야 할것 같다. 백선엽의 평전을 통해서 내가 얻고자 하는것은 한사람의 업적보다는 그사람의 가치관과 리더십 그리고 열 정이라는 점이다. 그 열정이 그를 오늘날 다시한번 현대사에 떠올랐고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대사에서 그의 일대기를 어느정도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보면 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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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해야하는지 전쟁을 겪어본 적도 없고 전후 경제발전을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세대들의 덕분으로 풍족한 문화적, 재정적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과거를 되돌아 볼 여유가 충분했음에도 국사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
특히나 고대에 관해선 시험범위에 넣어 중요성을 부과하는 반면 근대는 아직 역사적 잣대를 세우기엔 의견분립이 심해서인지 가장 자세히 인지하고있어야 할 범위이나 시험범위에서 제외되어있어 학생들로서는 그저 흘러보내기 쉽다.
가끔 의식있는 역사선생님들이 자료조사를 필요로하는 레포트를 과제로 내어주기는 하지만 시험으로 강조하지 않는 이상 관심을 두지않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제양식에 달하는 수준으로만 조사할 뿐 그 이상의 정보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수요가 없으니 출판되는 비중이 낮아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입시교육의 피해자로 그런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이나 사회적으로 빠르게 발전한 전산시스템으로 존립자체가 위험해진 출판사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런 상황에 누굴 비난할 수 있을까.
결국은 모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입장인지라 근대화를 다룬 서적이 적은 것에 대해 그저 안타까울 뿐인 와중에 <General Paik>은 자기계발에 목말라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리더가 갖춰야 할 소양과 방법에 대해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근대화까지 일깨워주고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백선엽장군의 어린시절은 그의 상황을 배제하고라도 결코 평범치않다.
어린아이치고는 지나치게 조숙하고 사색적인데 사교성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특별히 외로워하는 기색은 엿보이지않는다.
실제로 그가 느꼈을 고독에 대해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론 그 고독한 시간들 마저도 그가 리더로 성장하기까지의 훈련으로 느껴질 정도로 장군으로서 그가 가지는 존재감은 너무 자연스럽다.
북으로 남으로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 백선엽장군이 발길을 남기지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근현대사에 깊이 관계되는 인물인데 나는 그를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니 부끄러워 이 사실을 쓰는 손가락도 창피하다.
하지만 몰랐던걸 안다고 할 수도 없으니 그저 솔직하게 자국의 근대사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앞으로 좀 더 의식있는 시민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에 노력하도록 다짐하듯 적어본 것이다.
<General Paik>이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현수성이 간다>를 받아보고는 드라마틱한 인생을살기도 힘든 일인데 그를 딛고 일어서 리더쉽을 발휘하는 인물평전을 연달아 접하게 되다니 별것아닌 내 일상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더해진 느낌이었다.
위기의 시간에는 늘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신기하게도 그런 순간엔 적절한 인물이 슈퍼맨처럼 나타나는데 평소엔 그저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할 뿐 드러나지 않는다.
백선엽역시 그가 이룬 업적과 성과들에 비해 얼마나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억지로 피했다기 보다는 그저 능력의 어필에 급급한 출세지향적 인물이 아니라 본인의 역할에만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욕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도 미리 통관한 자만이 갖을 수 있는 행동이었을지도.
지금 사회적으로 멘토링이 이슈인지라 서점에도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에 대한 평전들이 자기계발코너에 넘쳐나고 있다.
확실히 세상은 넓고 멘토는 많지만 정신까지 교감하기엔 공유하는 역사적 사실과 잣대가 달라 적잖은 불편을 느끼기도 하는 만큼 우리는 자국의 멘토들에 대한 평전으로 영혼까지 교감하여 본받을 수 있는 필요가 있다.
엄한 타국 멘토들의 행적을 쫓느라 버거워하지말고 우리 현근대사의 상징적인 삶을 살아온 백선엽장군을 녹여낸 <General Paik>을 근대화에 대한 지식습득과 더불어 자기계발로 맞춤하기에 필독도서로 추천한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교과서에 실리지 않더라도 서점에 가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부족한 소양을 충족시킬 수 있다.
이런 세상이 그냥오지 않았음을 <General Paik>을 읽어가며 환기하게 된다.
백선엽장군의 영웅적 면모와 이름없이 지금 시대의 초석이 되어준 선조들의 희생에 대해 감사하게 됐다.
물질적으로 과거에 비해 크게 어려움을 모르는 지금이라고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경제적 과도기인데 전망에 대한 어두운 의견들이 많다.
하지만 어둠은 빛이 있기에 생기고 빛이 강할 수록 그림자도 강한 법.
현실에 대해 본인의 상황을 합리화하기 전에 상황을 직시하고 스스로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하는 것이 물론 쉽지 않다.
그렇기에 <General Paik>을 또한번 권한다.
전쟁이란 단어는 그저 뉴스에서나 접할정도로 평화롭게 성장한 탓에 신체적, 육체적으로 유약한 우리가 지금 우리의 역할을 얼마나 다하고 있는지, 얼마나 충족시켜야하고 노력해야하는지 떠오르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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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들어도 그 느낌은 잘 전해지지 않는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6.25에 대한 생각도 어느 순간 정지되어 버린 느낌이다. 나같은 성인도 6.25에 대한 감이 별로 없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더할 것이란 생각이 많이 든다. 6.25에 대한 무감각 상태에서 그것도 마침 6.25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손에 들게 된 책이 바로 [6.25 전쟁의 파워 리더 백선엽을 말한다]였다. 6.25에 대해 아주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 밖에 없었는데 백선엽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며 생생한 그 현장을 아주 조금이나마 더 상세히 접할 수 있게된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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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백선엽, 아 백선엽 6.25 남침 전쟁이 터졌다는 급보, 백선엽은 즉시 전선으로 달려갔다. 임진강 철교 앞에서 담배를 피워 문 백선엽. 나름대로 군인으로서 자질을 갈고 닦았던 백이었지만 8천여명의 1사단 장병만으로 몇 배의 북한군 병력에 맞서야 한다는 긴장감이 엄습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옆에 따라오는 고문관, 참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다리는 계속 떨리기만 했다 링 위의 권투 선수는 오르기 전의 공포와 실제 올라 섰을 때의 담담함을 즐겨 말한다. 강한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 올라설 때는 우선 두려움이 크게 찾아온다고 했다. 허나 정작 싸움이 붙었을 때의 심리적 작용은 두려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한 대. 두 대, 그리고 세 대 째 ... 담배와 함게 백선엽의 마음도 타들어갔다. 연거푸 피워 물었던 세 번째 담배가 땅바닥에 떨어진 그 순간. 그가 움직였다 거대한 운명의 바퀴가 움직이던 순간이었다 군대의 전쟁 또한 본질적으로는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인지 모른다 임진강 철교 앞에서 연거푸 담배를 피워 물었고 파평산을 오르며 두 다리를 떨었던 백 장군은 이내 전장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전쟁은 리듬을 탄다고 한다 한번 릴리면 계속 밀리는 게 전투이다 허나 밀림ㄴ서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닦았던 여러 가지를 제대로 챙기면서 적을 맞는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일명, 상승 과 하강 특히 지휘관의 경우 승패의 갈림길, 또는 패전의 암울한 그림자가 닥칠 때의 마음 작용은 어떤 것인가? 적에게 밀릴 때의 상황은 아주 어지럽다. 따라서 밀리는 상황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전선 지휘관의 능력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군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병력, 화력, 물자, 그리고 끝없는 훈련 사느냐 죽느냐를 두고 벌이는 전투는 단수한 주먹 싸움의 심리적 상태를 훨씬 넘어선다 생사의 갈림길을 앞에 두고 벌이는 전쟁은 훨씬 높은 차원의 훈련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공, 수가 싸움의 기본이듯 전쟁에서는 후퇴도 작전의 일환이다 후퇴를 패배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전쟁은 리듬을 타고 펼쳐진다 따라서 적이 우세하고 아군이 불리할 때는 물러서는 게 가장 나은 방책이다 물러 설 때 제대로 물러서는 게 군 지휘관이 갖춰야 할 요건이다 1950년 6월 임진강에서 한강 이남으로 밀려 내려가던 백선엽의 앞에는 거대한 역경, 그리고 반드시 이겨내야 할 과제가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루한 지연전, 좌절과 고립감, 패장이라는 수모, 흩어진 부하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전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웰컴 투 헬, 지옥의 입구가 열리었다 맹자는 그런 말을 했다 하늘이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주고자 할 때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어렵게 하고 몸을 고달프게 한다. 그런 시련 끝에 만들어지는 사람은 상대에 굴하지 않으며 태어날 때 지니지 못했던 능력까지 얻어 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그릇은 다르다 허나 그릇이 크더라도 스스로 갈고 닦지 않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는다 둘 다 중요한 요인이지만 장기적인 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큰 일을 해낼 자젹이 없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는 하늘이 맡길 대임을 충분히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 나아가 자신의 천부적 자질에, 고난의 역정을 이겨낼 후천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인물이었을까. 맹자의 말처럼 대임을 맡기 전에 그 심지를 더 단련시켜 얼굴과 몸이 앙상하게 마르는 형태가지 이르기 위해 그가 거쳐야 할 고난의 과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그리고 그 고난의 한 순간, 부산 교두보 전투 다 빼앗기고 부산 한 쪽만 남은 상황 백선엽의 뇌리에는 강력한 생각이 파고든다 ‘이 전선을 지키지 못하면 미군의 지원도 끊긴다 대한민국은 지도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패하면 미군은 떠날 것이고 한국 정부는 일본이나 미국으로 망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도 있었다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사단 씨피에서 연 회의. 백선엽은 비장하게 말문을 열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귀관들은 모든 힘을 바쳐. 마지막까지 싸워주기 바란다 ” 참모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짙은 비장감이 서렸다. 그들도 백선엽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후 펼쳐진 피비린내의 지옥도, 6.25의 판세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판이하게 달라지게 된다 과연 그는 어떤 생각, 어떤 행동으로 전쟁에 임했으며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되었는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꿔낸 명장의 이야기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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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시험지를 풀수 있을 정도로만 아주 띄엄 띄엄 한국사를 알고 있던 내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건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을 읽고서다. 여순사건부터 6.25까지, 좌익 빨치산들의 이념을 위한 처절한 투쟁과 삶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졌던가! 태백산맥을 읽은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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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케이비에스에서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 다큐 프로그램을 다뤘는데 그게 문제의 발단이 되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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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파워리더 백선엽을 말한다. 유광종 저 책밭 책을 받아보고 책 겉표지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평소에 구입을 하면 번거롭고 자꾸 벌어지고 해서 겉표지를 대부분 버리는 나로써는 좀 놀랐다. 백선엽의 대한 사진자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매스컴에 백선엽에 대한 말도 말고 탈도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말들이 오고가는지 내가 읽어 주리라 생각을 했다. 목차가 나오는 그곳에 목차 밑에 나오는 작은 문구가 이 책의 핵심을 보여준다. 백선엽은 평양 부림 도서관 단골손님이었다. 그곳에서 신문 역사 문학을 공부하고 더불어 영어공부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 중국, 일본을 다녀오면서 인간 백선엽으로서 다져졌다. 그러던 중 비행사 박승환의 서신연락으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을 했다. 군인으로서의 첫발을 디딘셈이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백선엽의 안전과 생사를 점치기 어려워졌다. 그는 서울로 와 군사영어학교를 나와 부산 5연대 장교로 입성했다. 그곳은 가가각색의 군복과 용어로 완전 개판 5분전 같은 곳이었다. 물론 다른 곳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곳에는 그는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창고지기 같은 업무를 맡으며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 봤던 그는 여순반란사건이나 숙군처리는 그를 한발 앞서게 했다. 그는 큰 전투 없이 지내온 그는 학습자 같은 사람이었다. 그를 알아볼 수 있는 고문관 하우스만의 대답이었다. P152 “백선엽은 매우 독특한 사람이다. 그는 친하게 지내는 최남근의 죄익연루와 처형과정에서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박정희와 관련해서는 매우 인간적인 자세를 보였다. 내가 한번은 백선엽에게 ‘왜 당신은 잘 알던 친구인 최남근의 사형을 방관하고, 잘 모르는 박정희는 살려줬냐’고 물었적이 있다. 그때 백선엽은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나느 그것을 지켰을 뿐이다’라고 말해 그가 공적인 일을 처리할때는 매우 단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보면 그는 아주 무서운 인물이다” 그의 싸움방법은 기초 쌓기(경찰과 신뢰 쌓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민심 얻기(주민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였다. 그리하여 빨치산 토벌을 성공한다.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처절한 전쟁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백선엽은 불안가화 무력감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뼈속까지 군인이었다. 지연전, 다부동혈투,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1.4후퇴, 지평리 전투 그리고 휴전 회담까지의 그는 빠지는 곳이 없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 육군 참모총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백선엽이 4성장군이 될수 있었던건은 미국의 무한신뢰가 바탕이 되어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그가 신뢰를 얻을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력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미국의 눈에도 보였던 것이다. 책의 중반이 넘어도 가족이야기가 없어서 결혼을 안한줄 알았다. 부인과 딸이 있었지만 그는 가족은 뒷전이었다. 지금도 부인은 구박아닌 구박을 한다고 하지만 그는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다시 그곳에 나가 싸울 것이다. 그는 군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다. 단지 휴전중일뿐이다. 내가 남편에게 즐겨듣던 군대이야기 아니었다. 이건 피와 땀이 흐르는 혈투 즉 전쟁이었다. 우리는 지금 안전 불감증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흥미롭게 이 책을 읽었다. 옆에 남편이 같이 읽지는 못했다. 남편에게는 “지금은 육이오가 났어 지금 조치원까지 내려왔어” 하며 중계를 하며 읽었다. 백선엽이 대해서 궁금해하며 읽어보고 싶다고 하더니 지금은 읽고 있는 중이다. 비무장지대는 세계최대의 지뢰가 묻혀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