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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날아온 편지 요나스 하센 케미리, 『몬테코어』 인간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 기어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다. 연인, 가족, 친구 사이에서 상처를 주고받은 수많은 자들은 이 불편한 진실의 증인들이다. 마찬가지로 이 상처의 착종은 공동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진행된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열린 공동체일지라도 타인에 대한 멸시와 폭력은 늘 시한폭탄처럼 존재한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 때 개인이 한없이 잔인해지는 것처럼, 개인이 모인 공동체 역시 그러하다. 우리에게 아직 낯선 스웨덴 작가 요나스 하센 케미리(Jonas Hassen Khemiri)의 소설 『몬테코어』(민음사, 2012)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소설은 주인공 요나스(작가의 이름과 같다. 요나스 하센 케미리. 이 소설은 자전소설이다.)가 아버지의 친구 카디르와 주고받는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요나스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8년째 연락을 끊은 상태이다. 아버지의 친구 카디르는 요나스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를, 편지에 적는다. 요나스의 아버지 압바스는 튀니지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던 시기에 부모를 잃고 친구 카디르와 함께 고아원에서 자랐다. 부모가 프랑스에 협력했다가 동족들에게 죽임을 당한 기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압바스는 프랑스어를 버리지 않는다.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때문이다. 성인이 되자 압바스는 친구 카디르와 함께 지중해의 휴양도시 타바르카로 이주한다. 그 곳에서 압바스는 끊임없이 지중해 너머 유럽을 동경한다. 유럽의 선진국에서 온 여행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아랍 남자에게 호기심을 가진 유럽여자들과 동침하면서도 압바스는 사진기를 놓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압바스는 스웨덴 항공사의 스튜어디스인 페르닐라와 사랑에 빠진다. 압바스는 곧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페르닐라와 결혼하고, 아들 요나스를 낳는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스웨덴의 개방적인 이민정책과 복지혜택 덕분이었다. 스웨덴의 정책은 비록 선진적이었지만 압바스는 무수한 인종차별을 겪는다. 아랍어의 억양이 뒤섞인 그의 스웨덴어는 조롱받았고, 유럽에서 벌어지는 무슬림들의 테러는 압바스까지 경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게다가 페르닐라가 첫째 요나스를 낳은 다음에 쌍둥이를 임신하자 경제 사정은 극도로 악화되고 만다. 그러나 압바스는 시종일관 쾌활한 어투로 튀니지에 있는 친구 카다르에게 자신이 사진작가로 성공했다고 거짓 편지를 보내며 현실을 겨우 견뎌낸다. 압바스의 아들 요나스는 다문화 가정에서 성장한 탓에 어린 시절 언어장애를 겪고 보통의 스웨덴 아이들처럼 교육받지 못한다. 1990년대에 스웨덴의 경제가 악화되면서 극우 정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이민법이 강화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사춘기를 접어든 요나스는 혼혈아에게 쏟아지는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튀니지인도 아니고, 결코 스웨덴인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면서 1990년대를 아프게 통과한 요나스는 작가가 된다. 가까스로 운영하던 사진관이 극우 인종주의자들에게 테러를 당한 충격으로 실성하여 자신이 유명한 사진작가라는 착각에 빠진 아버지와는 여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다. 이 젊은 작가의 소설은 바로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다. 이 소설을 북구 선진국에서 인종 차별을 겪은 어느 청년의 가족사로만 이해하는 것은 실패한 독서다. 이미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다문화가정과 이민 2세가 있다. 물론 그들의 겪는 아픔과 차별에 대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상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요나스의 사연을 단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때 자신도 모르게 어떤 면죄부를 부여받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수전 손택이 말했듯이 우리는 타자의 고통에 연민을 느낄 때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우리 스스로가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기 쉽다. 이주민들과 그들의 2세가 겪는 정체성 혼란과 차별,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하여 말할 때 사람들은 연민의 시선을 취하며 공생의 가치를 말한다. 그러나 정작 가려진 우리 자신의 민낯은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받는 차별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순수 혈통의 스웨덴 친구를 사귀라고 종용하는 압바스의 모습은 맹목적으로 선진국을 동경하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이민법을 개정하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 이미지를 선취한 다음 외국인들의 값싼 노동력을 취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이민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선진국의 사례는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일제 강점기와 전후 경제개발 시기에 일본과 서독에 노동력을 팔았으며,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 외화를 획득했던 과거를 쉽게 잊고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혼혈아들을 차별하는 우리에게 요나스의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휴머니즘’, 그것은 백인들의 발명품이다. 그러므로 백인이 아니거나, 경제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국가의 인민들에게 휴머니즘이란 단지 수혜의 형식에 불과하다. 다문화 가정의 혼혈아들과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열등감으로 가득하다. ‘GNP인종주의’를 내면화한 한국인들의 무의식에는 그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과거를 지우고 싶은 강박증이 존재한다. 이주민들의 어눌한 한국어가 개그의 대상이 되고, 한국 문화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그들에게 적응과 찬사를 요구할 때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들의 초라함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무의식에 축적된 상처다. 1978년생인 혼혈아 요나스는 나와 동갑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요나스와 카다르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된 이 소설을 친근하게 읽은 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주민에 대한 스웨덴 인종주의자들의 테러가 절정에 치닫고 요나스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던 시기가 1990년대라는 사실은 내게 묘한 기시감을 선사했다. 나는 내 나라에서 피부색깔과 언어로 인하여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1990년대는 내게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사춘기를 통과하는 소년이었던 내게 1991년 5월의 분신정국, 같은 해 겨울에 소비에트가 무너졌던 일 따위는 그 의미를 몰랐기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리가 무너지고, 지존파에 의한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백화점이 붕괴되는 영화 같은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한 세계와 삶이 어떤 ‘우연’에 의해서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 IMF를 겪었고, 자본이 인종과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로 변질되는 과정을 체험하면서 20대를 보냈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방황했던 나의 10대와 저항의 낙서를 휘갈기면서 스톡홀름의 밤거리를 방황하던 요나스의 10대는 완전히 분리된 삶이 아니다. 우리는 우연하게 특정한 인종으로, 특정한 국가의 국민으로, 그리고 누군가의 자식으로 규정된다. 어쩌면 1991년 스톡홀름에서 인종주의자가 쏜 소총의 희생자는 바로 나였을지도 모른다. 요나스가 1991년에 서울에 살던 중학생이었다면, 신림동 헌책방 앞에서 최루탄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뛰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사소하고도 거대한 우연을 믿는다면, 인종과 국가와 민족, 종교의 이름으로 타인을 억압하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슬픈 일인지를 누구나 깨달을 수 있으리라. 지금, 당신의 태연한 삶 저편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선진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날아온 한 친구의 편지를, 나는 그렇게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