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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떠돌이 개들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천개산 패밀리』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떠돌이 개 똘이의 일생』이라는 제목을 보자 또 다른 떠돌이 개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텔레비전에서 개들이 좁은 곳에 갇혀 있는 개 농장을 본 적도 있어서 똘이에게도 그런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책을 읽었다. 똘이의 처음은 행복하지 않았다. 길에서 떠돌다가 병들어 죽을 수도 있었던 똘이를 청각장애인 부부가 발견해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부부는 똘이를 정성껏 돌보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그렇게 똘이는 떠돌이 개에서 한 가족의 똘이가 되었다. 부부에게 아름이가 태어나자 똘이는 아름이 곁을 지켰다. 아름이가 울면 부부에게 알리고, 마당에 나가는 것보다 아름이 옆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처음 자신을 구해 준 것은 부부였지만 이제는 똘이가 부부의 아기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똘이는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 다른 곳에 맡겨진 똘이는 결국 개장수에게 팔려 가지만 탈출한다. 그리고 다시 가족을 찾아간다. 그렇게 어렵게 돌아왔는데도 똘이는 가족 앞에 바로 나타날 수 없고 숨어서 가족을 지켜본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똘이가 위험에 빠진 아름이를 구하는 장면이다. 똘이는 자기 몸이 다칠 수도 있는데 아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나라면 먼저 내가 다치지 않을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 같다. 그런데 똘이는 자기 목숨보다 아름이를 먼저 생각했다. 이 장면에서 나는 ‘결초보은’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결초보은과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죽어 가던 똘이를 살려 주었고, 나중에는 똘이가 부부의 딸 아름이를 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했다. 똘이는 정말 은혜를 갚으려고 아름이를 구한 걸까? ‘예전에 나를 살려 주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갚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뛰어든 것은 아닐 것 같다. 아름이는 이미 똘이에게 지켜 줘야 할 가족이었다. 똘이는 은혜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위험하니까 뛰어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결초보은과 닮았지만 결초보은보다 조금 더 큰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은혜는 받은 사람과 갚는 사람이 있지만 가족은 누가 먼저 주고 누가 더 많이 받았는지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부부가 똘이를 구했고, 아름이가 태어난 뒤에는 똘이가 아름이를 지켰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면서 가족이 되었다. 책을 덮고 나니 똘이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한 가지 질문이 더 오래 남았다. 만약 부부가 똘이를 구해 준 적이 없었더라도, 아름이가 똘이의 가족이었다면 똘이는 뛰어들었을까? 나는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간 똘이에게는 이제 아무 은혜도 갚지 말라고 하고 싶다. 아무도 구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똘이가 좋아하던 산에서 마음껏 뛰어놀기만 했으면 좋겠다. 똘이는 이미 가족을 충분히 사랑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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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살구라는 고양이가 있다. 살구를 데려온 날은 7월 2일이고, 살구가 태어난 날은 5월 2일이다. 시골에 갔다가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보았는데 그중 하얀 고양이가 유난히 말라 있었다. 우리는 그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고 이름을 살구라고 지었다. 『떠돌이 개 똘이의 일생』의 똘이도 처음에는 가족이 없었다. 길에서 떠돌다가 청각장애인 부부를 만났는데, 그때 똘이의 몸은 설사가 털에 묻어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부부는 똘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수 있었다고 했다. 부부는 똘이가 건강해질 때까지 정성껏 돌보았고 ‘똘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처음에는 부부가 똘이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구를 1년 동안 키워 본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동물을 한 번 구해 주는 것도 어렵지만 그다음 날부터 계속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1년 동안 살구를 키우며 알게 된 꿀팁이 세 가지나 있다. 첫 번째는 츄르를 주면서 친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택배 박스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다. 박스를 엎어 놓으면 살구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아지트가 된다. 세 번째는 하루에 두 번 열심히 놀아 주는 것이다. 살구는 밤이 되면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낮에 충분히 놀아 주지 않으면 밤에 나를 괴롭힌다. 이런 것은 살구를 처음 데려오던 날에는 몰랐다. 같이 살아 보면서 하나씩 알게 된 것이다. 똘이도 그랬을 것 같다. 부부가 똘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간 날에는 서로 잘 몰랐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진짜 가족이 되었다. 부부에게 아기 아름이가 태어나자 똘이는 마당에도 잘 나가지 않고 아름이 곁을 지켰다. 아름이가 울면 부부에게 달려가 알리기도 했다. 부부가 똘이를 구해 주었는데 어느새 똘이가 가족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부부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가족은 똘이와 헤어지게 된다. 공장에 맡겨진 똘이는 다른 사람에 의해 개장수에게 팔려 가고, 그곳에서 탈출한 뒤 다시 떠돌이 개가 된다. 그래도 똘이는 가족을 잊지 않는다. 냄새를 따라 자신이 살던 곳을 찾아간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살구가 만약 우리 집에서 갑자기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면 어떨지 생각했다. 살구는 우리 집을 찾아올 수 있을까? 내가 버리지 않고 모아 둔 박스와 하루에 두 번 놀던 시간, 츄르를 주던 사람을 기억할까? 그리고 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살구는 우리 집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만약 내가 살구를 귀찮아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동물을 데려오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데려온 뒤에는 동물에게도 우리 집이 자기 집이 된다. 똘이에게 청각장애인 부부와 아름이가 그랬고, 살구에게는 우리 가족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귀여울 때만 같이 사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처음 살구를 데려왔을 때는 말라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데려왔다. 지금은 다르다. 살구가 츄르를 달라고 귀찮게 해도, 택배 박스를 차지해도, 밤에 놀자고 나를 괴롭혀도 살구는 우리 가족이다. 똘이는 가족을 찾아 먼 길을 돌아왔다. 나는 살구가 그런 길을 찾아 나서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앞으로도 하루에 두 번은 열심히 놀아 줘야겠다. 내가 편하게 자려는 이유도 조금 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