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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목장 '밖'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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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도 엄청 길 뿐더러 캐스팅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고, 촬영에 이만저만 공을 들인 게 아니라서 아마 웨스턴 장르뿐 아니라 영화사상 불후의 명작 하나를 남기려고 작정을 했던 기획이지 싶다. 제목이 '툼스톤'으로 붙었지만 모티브만큼은 'OK 목장의 결투' 바로 그것인데, 제목을 그리 붙일 수 없던 이유는, '확고한 명성을 가진 고전'이 이미 사십 년 전에 나왔다는 것
"OK 목장 '밖'의 결투" 내용보기

러닝타임도 엄청 길 뿐더러 캐스팅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고, 촬영에 이만저만 공을 들인 게 아니라서 아마 웨스턴 장르뿐 아니라 영화사상 불후의 명작 하나를 남기려고 작정을 했던 기획이지 싶다. 제목이 '툼스톤'으로 붙었지만 모티브만큼은 'OK 목장의 결투' 바로 그것인데, 제목을 그리 붙일 수 없던 이유는, '확고한 명성을 가진 고전'이 이미 사십 년 전에 나왔다는 것 말고도 여럿이 더 있겠다. 그건 좀 뒤에 말하기로 하고.

우선 데이나 덜레이니(조세핀 마커스 역)과 함께 공연 다니는 남자 배우, '저렇게 예쁘게 생긴 놈은 처음 보네'란 야유를 들어 가면서 헨리 8세 연기(물론 셰익스피어 버전의)를 태연히 마치는 페이비언 역은 빌리 제인이 맡았다. 이게 가발인지 뭔지는 알 수 없는데 같은 해에 그는 잘만 킹 감독의 에로물 <레이크 칸시퀀스(한국어 제목 '호수의 정사')>에서 대머리로 나온 적 있다. 같은 해에 찍었는데도 분위기가 이렇게 다른 데 놀라며(대머리/장발의 문제가 아님), 이처럼 괜찮았던 그가 이후 여러 작품들에서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떠올리면 그저 경악할 뿐이다.

캐릭터 조세핀 마커스는 꼭 직업이 그래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사는, 분명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의식하며 일상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여성상이다. 다만 이런 성격이 작품 중에서 하는 기능은 그리 많지 않고, 이런 여성도 와이어트 어프가 괜히 꺼린다거나 편견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열린 성격이 우리 주인공에게 충분히 부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의 성격 구체화에 오히려 쓰이고 있다는 점이 한계라면 한계고 (반대로) 기교라면 기교다. 어차피 컨셉 자체가 여자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 영화에서, 남자들의 성격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 준다면 그게 미덕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은 필모그래피를 봐도 알 수 있듯 분야가 다채로워서 뭐가 대체 공통분모로 잡힐지 난감하지만,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구태여 뭘 들자면 남자들만이 거닐고 고뇌하며 피 터지게 싸우는 세계를 스타일리시하게 그린다는 점이겠다. 뭐 예를 들면 <람보 2>가 그렇고, 진한 우정과 연대가 묘사되지만 그저 감성에 호소할 뿐 철학과 세계관이 깊이 있게 전개되지는 전혀 않는다는 게 누구 눈에도 분명한 개성이다.

지난 3월 18일 'OK 목장의 결투'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와이어트 어프와 닥 할리데이 사이의 진한 우정이 배경에 대한 별 분석 없이 그저 감성적으로만 터치된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는 단점이 아닌데(감정에 이유를 댈 필요 없고 이유를 꼭 대지 않는 묘사라도 스타일만 좋다면 영화 속에서 얼마든지 환영), 1957년의 고전에서부터 한 발짝도 더 못 나간 답습이라는 게 아쉽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닥에게 (방금 의사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관계와 흡연을 깅권하는 케이트를 통해 '착취형 요부' 이미지를 부각한다거나, 아편 중독에 빠져 남편과 가족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매티 등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가득하기까지 하다. 단 앞에서 말한 대로, 명랑하고 선하면서도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자유롭게 제 삶을 영위하는 조세핀 마커스란 캐릭터 구축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균형을 잡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커트 러셀이 해석한 와이어트 어프는 그리 매력도 없을 뿐 아니라, 1957년작이 확고히 마련한 '버트 랭커스터의 원형'을 대체할 만한 어떤 장점도 못 갖추었다는 게 나로선 몹시 아쉽다. 와이어프 어프 캐릭터의 개성에 한정된 게 아니라, 영화는 이상하게도 악당 진영에 비해 '선한 우리편'의 존재감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못내 찜찜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카우보이스'의 개성이 '매혹적인 악역'이라는 건 또 전혀 아니고, 최소한의 금도도 룰도 없는(좋게 보자면 현실적이긴 한) 아주 막되어먹은 무리들이라는 설정이, 관객의 마음 속에 (활극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낭만을 송두리째 앗아간다는 게 영 또 성에 안 차는 대목이다.

카우보이 무리들은 물론 이 OK 목장의 결투를 소재로 삼은 어떤 영화에서도 갈데까지 간 말종으로 묘사되긴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들에 대적했던 어느 청년의 결혼식에 난입하여, 무방비상태로 있던 선한 이들을 죽이고(뒤에도 나오지만 언제나 기습이 이들의 특기임), 신부를 강간하는 등 서두부터 관객의 비위가 감당 못 하는 끔찍한 파국부터 '애피타이저(...)'로 제공한다. 극중에서 악당들이 저지르는 악행 못지 않게, 이런 과한 비극과 만행을 '장르 활극'에서 관객들에게 들이미는 선택도 만만치않은 '반칙'에 속한다. 이렇게 서두를 잡은 드라마가, 이후 두 시간 가까운 진행은 캐릭터들 사이의 교류와 우정과 갈등과 가능성의 모색, 남북전쟁 종료 직후 시대상의 섬세한 재현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는 점도 다분히 의외라면 의외다.

악은 악으로 갚으라고, 너무나도 많은 금도와 신사도와 도덕률에 얽매어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는 '답답한 와이어트 어프' 대신, 이런 행동력 있는 복수의 감행은 비슷한 말종이 나설 수밖에 없는데 그게 닥 할리데이이다. 와이엇 어프가 '도대체 자니 링고 저놈은 왜 저러는 거지?(진짜 몰라서 묻는 것임. 한없이 선한 그로서는 이해가 안 감)'라고 하자, 닥 할리데이는 거침없이 답을 내놓는다. '마음에 상처가 깊어서 그런 거야.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다스려지지가 않지.' 이건 닥 자신이, 알고 보면 링고와 정확히 닮은 영혼의 모양새라서 그런 정확한 답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1957년작과 큰 차이가 없고, 다만 발 킬머 버전의 닥 할리데이가 성공이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내가 봤을 때 발 킬머는 평소와 다른 발성과 말투, 뭔가 새침하면서도 툭툭 쏘는 듯한 표정과 제스처가 확실히 여태 다른 데서 못 보던 참신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긴 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무법자(확실히 매력적이긴 하다. 커크 더글라스의 고전 연기와 달리 막 참는 듯하며 땀을 송글송글 맺어 가며 기침을 하는 품도 그럴싸했다)가 매력적이었냐 하는 문제와, 닥 할리데이의 해석으로서 완성도가 있었느냐 하는 건 또 전혀 별개의 문제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건, 1957년작에서 닥 할리데이가 어느 정도는 와이어프 어프 진영(형제들)과 적대감도 유지하면서 아슬아슬 연합 전선을 유지하는 그 입체적 관계가 참 좋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별 동기나 입장 없이 와이엇 어프를 쫓아다니는 똘마니 같은 스탠스라서 그 점에서 크게 실망스러웠다. 뭔가 닥이 이처럼 순해지다(?) 보니, 케이트 역시 (3월 18일에 내가 쓴 리뷰 참조) 일방적으로 남자한테 학대 당하던 역이 정반대로 바뀌어, 죽어가는 닥을 더 곤경에 몰아넣고 재산이나 사취하려는 악녀 역으로 뒤집어진 점도 아주 흥미롭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활극으로서 단연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고전의 절제미를 송두리째 포기하고, 아주 범속하고 저질인 관객들의 선호를 대폭 대변하려는 듯, 최후의 결전 장면이 무지무지하게 길고 늘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엄폐 없이 적들 앞에 나서 총질을 한다거나 작전 전술 없이 사내 다운 패기만으로 닥돌한다거나(심지어 그 극악무도한 놈들도 이 페이스에 말려 수적 우위도 포기하고 바로 공정한 맞짱을 뜸 ㅋ) 하는, 진짜 수준 낮은 관객들이 마구 환호할 만한 마구잡이 결투인데, 긴장을 잔뜩 고조시켰다가 막판 짧은 시간 안에 확 풀어버리는 고전들과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1957년작도 그렇고 뭐 문예 속의 간류지마의 결투도 그렇고, 심지어 이 작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도 그러했음). 좀 기가 차기도 했지만 여튼 이런 영화는 이런 맛에 본다고 생각하고 그 나름으로 몰입할 수 있다. 물론 감독은 자신의 생각하는 최상의 비장미를 갖춘 활극을 찍는다는 의도지 코믹 이런 건 조금도 없다. 샘 페킨파는 그런 의식(코믹)이 조금이나마 있었을지 몰라도 이 사람은 지나름대로 빼박 진지충이다.

악종 링고에 놀랍게도 마이클 빈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2년 뒤 비슷한 컨셉으로 선보인 <더 록>에서 그 용병 연기와 대조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어프 진영을 자기 농장에서 재워 준 헨리 노인 역에 무려 찰튼 헤스턴이 나오며, 단역이지만 빌리 밥 쏜튼도 나오는 등 캐스팅만 보면 와 대체 이게 뭔가 싶을 만큼이다. 1957년작에선 와이엇(버트 랭커스터 扮)이 맏형이었던 것과 달리, 여기서는 큰형 버질이 하나 더 등장하는데 아주 투박하고 과장된 남부 사투리 연기를 선보이는 걸로 유명한 샘 엘리엇이 이 역을 맡아 끌고 간다.

s****o 2017.05.08.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