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십일조 제도는 지금도 유효한가?
"십일조 제도는 지금도 유효한가?" 내용보기
야훼의 밤이라는 소설로 유명했던 조성기씨가 목회자가 되어 이름도 '조누가'로 바꾸었음을 치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십일조를 성경사전에서 찾아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바치는 일(민 18:21) 유대인들이 바친 것은 일년 동안 모은 농산물, 가축등이었고 전리품도 십일조를 바쳤다(창 14:20, 28:22, 삼상 8:15-17)."이라는 설명을 볼
"십일조 제도는 지금도 유효한가?" 내용보기
야훼의 밤이라는 소설로 유명했던 조성기씨가 목회자가 되어 이름도 '조누가'로 바꾸었음을 치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십일조를 성경사전에서 찾아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바치는 일(민 18:21) 유대인들이 바친 것은 일년 동안 모은 농산물, 가축등이었고 전리품도 십일조를 바쳤다(창 14:20, 28:22, 삼상 8:15-17)."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에 의하면 십일조 본래의 의미는 초대교회 이후 많이 퇴색되어 종교집단의 치부의 수단으로 변질되었음을 고증하고 있다. 모든 소득에 대한 십일조가 아닌 토지에 대한-적어도 구약시대엔 토지 공개념이 실현되고 있었다- 십의 일조였기에 그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가 일부의 특권층의 전유물이 된 이후 희년의 정의는 소멸되고 대부분의 사람은 소작농이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를 근근히 연명하게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토지와 자산의 대부분은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있고 노동자와 소시민들은 투명한 유리지갑으로국가에 세금을 원천징수당하고 교회에 십의 일조를 권고받고 있다는 것이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 이후로 소멸한 구약시대의 십일조 제도는 이제 파기되었다. 오로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것을 나누어 공동체에 연보하는 것이 보다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깨어있는 기독인이라면 한 번쯤은 숙독할 만한 저작이다.

[인상깊은구절]
목회자들은 성경의 진리로 돌아가, 십일조 시대가 2000년 전에 골고다를 기점으로 이미 지나갔으며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와 아무 상관이 없음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성전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도록, 할례나 십일조의 멍에를 메지 않아도 되도록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음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속죄의 제사를 다 드리셨으며, 우리 예물까지도 이미 다 바치신 사실을 선포해야 한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주의 사업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욱 기꺼이 연보를 하게 될 것이다.
j*****7 2003.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십일조를 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 그대로 현실에 적용되기를
"십일조를 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 그대로 현실에 적용되기를" 내용보기
교회를 다닌 기간은 5년 정도. 그 기간에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십일조는 궁금한 것 중 하나였다. 일단 십일조라는 것이 성경 어디에 근거를 하느냐이고 실제로 십일조를 받았는데 그것으로 건물을 짓는 경우는 심하지 않느냐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십일조에 대해서 소설가이자 목사이기도 한 조성기 씨가 십일조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
"십일조를 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 그대로 현실에 적용되기를" 내용보기
교회를 다닌 기간은 5년 정도. 그 기간에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십일조는 궁금한 것 중 하나였다. 일단 십일조라는 것이 성경 어디에 근거를 하느냐이고 실제로 십일조를 받았는데 그것으로 건물을 짓는 경우는 심하지 않느냐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십일조에 대해서 소설가이자 목사이기도 한 조성기 씨가 십일조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증이 앞섰다. 저자는 십일조의 유래 중 성경에서의 유래라는 내용에서 기독교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일 바친 아브라함의 행위를 십일조의 기초로 잡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들어와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부터 십일조 관습을 알고 있었고, 그 관습을 따라 자연스럽게 존경스런 대상에게 십일조로 경의를 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준 것은 소산의 10분의 1이 아니라 전리품의 10분의 1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전리품의 10분의 1은 모세 오경의 전통적인 십일조 개념에 포함될 수 없다고 한다. 셩경에서 나그네와 레위인을 같이 다루고 있다고 하면서 레위인들은 토지분배에서 제외되었으므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토지 소산과 가축의 십일조를 모아 레위인들에 주었으며 이것이 전통적인 십일조의 유래라고 한다. 신약에서도 무서운 책망의 말씀에서 십일조를 다하더라도 사랑은 버렸다고 하는 말씀에서 십일조의 긍정을 찾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십일조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려움에도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가 성장 최고의 논리에 근거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저 교회 건물이 커지고 신도 수가 많은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 안에서 제대로 믿는 신도가 많아야 하고 양보다 질을 추구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십일조를 감사의 마음으로 내는 것은 그나마도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넘어갈 수는 있다. 그렇지만 복을 받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 야곱이 조건부 기도의 기원이 되겠지만 야곱의 기도는 배울 것이 못된다. 이렇게 조건부 십일조를 하는 것은 보험회사와 다를 바가 없고 그런 십일조를 받는 하느님은 뇌물을 받는 하느님이 될 것이니 그런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7*****0 2002.06.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