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가, 나를 찾아왔어"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밤의 가지에서,/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얼굴 없이 있는 나를/그건 건드리더군."(네루다의 <詩>)
인터넷의 드넓은 세계를 방랑하다가, 우연히 만난 詩. 그 감동적인 詩가 나를 파블로 네루다를 알게 했다. 네루다는 내가 처음으로 접하는 남미의 시인…, 아니 처음으로 접하는 남미의 문학이다. 며칠 밤 동안 조금씩 아껴서 읽은 그의 시는 낭만의 열정이 있고, 또 다듬어지지 않은 원시적 감수성과 환상이 살아있으며, 민중적이다.
이 책은 시선집이라 그의 시적인 세계의 변모를 조금씩 느낄 수 있는데, 그의 초기 시는 젊은이다운 연시이다. 19세에 펴낸 그 연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젊은 시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영사 자리를 주는 남미 정부들의 전통으로 그를 외교관이 되게 한다. 그의 연시들은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한 여자의 육체>)나 "가는 인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허나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라는 멋진 구절들을 품고 있다. 한편, 한용운적인, 즉 여성적인 울림의 연시만을 머리 속에 담고 있던 내게서 네루다의 "사방에서 나는 네 안개의 허리를 보고,/네 침묵은 내 애타는 시간을 괴롭힌다./내 키스는 닻을 내리고, 내 젖은 욕망은/투명한 돌의 팔이 있는 네 속에 둥지를 튼다."(<아 소나무숲의 광활함>)와 같은 거칠은 남성적 애욕을 담은 연시는 새로움이었다. 개인적으로 초기의 연시들과 <시인>, <詩>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시집 뒤의 대담과 정현종 시인의 해설도 유익한 글이었다. [인상깊은구절] "가는 인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그건 그렇지만, 허나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서 닿을 바람을 찾기도 했다."(<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
| 파블로 네루다.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시인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너무 늦은 나이에 그를만났다. 그리고 늦게 만난 아쉬움 만큼이나 그의 이 얇은 책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한때는 나에게도 가슴이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그 온기가 다 식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 시절만큼은 되지 못한다. 나는 너무 늦게 그를 만났던 것이다. 그러나 늦다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가장 빠른 시기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이라도 그를 만났으니 되었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뜨거운 열병을 앓던 시기에 그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찾아 몸을 불태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을 떠난 위대한 시인의 아름다운 글들은, 서서히 열정을 잃어가는 중년의 신사의 손에 들려 또 다시 아름다운 글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