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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할 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세요! 라고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그만큼 유쾌한 글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어디에 있어도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답니다. * 책 제목이 왜 이렇지 하고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밸런타인데이 편에 그 이유가 나온답니다. 아마 내 미래의 모습을 미리 엿본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묘했다는 후문. * 다음은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군요! 과연 어떤 하루키가 기다리고 있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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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글인데도 너무 재밌게 읽었다. 1980년대의 하루키는 공장을 탐방하고 다녔군요. 무거운 내용의 책을 읽는 애인의 옆에서 '이건 너무 재밌는데' 하면서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어쩐지 '나도 하루키씨 정도는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시건방진 야망을 갖게 되는데 리뷰를 쓰는 지금도 '역시 나는 안되겠네' 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 미즈마루씨의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주 쉽게 그린 것 같아 보여도 역시나 어렵겠지요. * 역시나 몹시 재밌었습니다. 그럼 무말랭이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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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씨 정말 대단하네요. 술 마신 다음 날 12키로 달리기를 한다니요. 마라토너인 줄은 진즉에 알았지만서도 이런 사실은 저로서도 아주 당혹스러웠답니다. 게다가 금연과 흡연을 반복하는 삶이라니, 확실히 오묘한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 이사를 즐겨 다니는 것도 신기합니다. 그렇게 귀찮은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싶은데 단골 이발소에 가기 위해 1시간 30분의 대중교통을 감수하는 걸 보고 확실히 보통사람은 아니다 보통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무튼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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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하루키씨의 계절이 도래했다. 이름하여 여름의 책. 자두를 먹으면서 읽고 아이스 커피를 마시면서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애인과 닮은점을 자주 발견했는데, 이 사실을 전해들은 당사자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재밌게 읽고 있다. * 미즈마루씨의 그림을 처음 본 느낌은 진짜 대충도 그렸네 였는데 자꾸 보다보니 어떤 장신정신 이랄지 내지는 고수의 기운이 느껴진다랄지 묘한 아우라에 웃음을 지으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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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씨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이 편은 살짝 실망스럽군요. 아무래도 제가 너무 반복해서 하루키씨의 글을 읽고 있기 때문일까요? 다른 편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책이었어요. 잠깐 쉬어가는 기분이랄까요. * 다시 한번 스무 살 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해도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스무 살은- 그때는 그때대로 즐거웠지만-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그런 식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싶지 않다. 과거가 있기 지금의 내가 있다. 하지만 지금 있는 것은 지금의 나이지 과거긔 내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든 지금의 나와 잘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 그녀는 하와이에서 돌아와 일 년 후에 죽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 또래 지인과 친구의 죽음을 상당히 많이(평화로는 시절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경험했고 어떤 죽음이나 똑같이 슬펐지만, 삼십대 후반의 죽음에는 이십대의 죽음과는 또다른 슬픔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슬픔보다 분함이 앞섰다. 피차 지금까지 갖가지 시련을 겪고, 그것을 어찌저찌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는데, 왜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내 나이대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 죽음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기분으로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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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중 한 작품. 그 동안 봤었던 에세이 걸작선 중, 그리고 아직 모으지 못했던, 마지막 책이다. 다른 책들은 중고 서점에 많이 있는데, 이 책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은 중고 서점에서 찾기가 어려웠다. 있더라도 차비가 더 드는 먼 곳에 있기에. 그래서 이 책은 새책으로 구입했다. 7개의 공장을 견학하고 쓴 공장 견학기. 어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김중혁 작가의 <메이드 인 공장>(http://blog.yes24.com/document/10432067) 과 비슷한 컨셉이 아닌가. 하루키의 책이 먼저 출간되었으니, 아마도 하루키 빠(좋아한다고 어디선가 들었었는데, 이제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빠라고 쓰면 안될 것 같긴한데, 뭐 그래도 써 본다.)인 김중혁 작가가 하루키의 이 책에 대한 오마주로 <메이드 인 공장>을 쓴 것이 아닐까? 방문한 공장에 대해 의외로 충실히 쓴 견학기. 중간중간 삽화도 곁들여져 있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들은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충실한 공장 견학기이다. 제목인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은 아무래도 일본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조금 거슬린다. 일본 작가이기에 뭐 어쩔 수 없지란 생각도. 그래도 하루키의 경우에는 일본 내에서도 잘못한 것에 대해 분명히 말하는 작가란 사실은 변함없지만. 이 책은 하루키의 에세이이긴 한데, 그보다는 그냥 충실한 공장 견학기 정도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하루키의 글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 말이 어렵다. 공장 견학기라고 해도 역시 하루키의 글이라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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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짧은 글들은 하루키가 <일간 아르바이트 뉴스>라는 잡지에 연재한 것들이다. 잡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는 매체여서인지 글의 뉘앙스가 젊다. 물론 하루키도 당시에는 삼십대였으니 젊은 축에 든다고 해야 할텐데, 꽤나 나이든 사람인 척 한다. 그래서 거슬리다는 이야기냐 하면 그건 아니고, 그럴싸한 아저씨 놀이에 푹 빠진 모양이 귀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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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어는 공기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지역에나 그곳만의 공기가 있고 그 공기에 맞는 언어가 있어, 웬만해서는 그것을 거역할 수 없다. 먼저 악센트가 바뀌고, 그다음으로 어휘가 바뀐다. 이 순서가 반대가 되면 언어를 쉽사리 마스터할 수 없다. 어휘란 이성적인 것이고 악센트는 감성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25, <간사이 지방 사투리에 대하여> 중)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삼십대 일 때 잡지에 쓴 칼럼들의 모음집이다.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과 주로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을 결합시키면서 작은 주장들을 귀엽게 펼쳐 놓는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키가 손아귀에 쥐게 된 이야기들도 재미있고, 그가 털어놓는 일상의 여러 상황들도 재미있기 때문에 결국 칼럼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저절로 코멘트를 달고 싶게 만드는 글들이다.
“미국판 <플레이보이>지 표지 제목자 중 P자에 조그만 별이 몇 개씩 찍혀 있는데(1978년 이전의 <플레이보이>를 갖고 계신 분은 확인해보세요). 이건 편집장 휴 헤프너 씨와 플레이메이트의 그달 섹스 횟수를 나타내는 거라 믿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이건-아쉽게도-헛소문이다. <플레이보이>는 지역이나 용도에 따라 판을 달리하는데, 별의 수는 그 표시였던 것이다. 문학에 관계된 것으로는 ‘토마스 핀천은 J.D.샐린저의 필명이다’란 가공할 소문이 있다. 이것은 100퍼센트 거짓말로, 순전히 헛소문이다. 샐린저는 자기 집에서 통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핀천은 사진 한 장 공개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이런 소문이 떠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비밀 필명을 두 개 정도 갖고 있지만.“ (p.42, <소문!> 중) - 어렵사리 구한 <플레이보이>지가 이 아이에게서 저 아이에게로 건내지면서 점점 낡아가던 풍경에 대한 기억을 나도 가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 <플레이보이>지에 실린 단편소설 컬렉션인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익사체》를 읽었다. 마르케스와 보르헤스와 필립 로스와 존 업다이크 등의 단편이 <플레이보이>지에 실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어린 시절의 풍경 훨씬 이후의 이야기였다.
『케이스스터디: 모 편집자 이야기 나는 재즈를 아주 좋아하는 터라, 한 전위재즈 뮤지션의 연주를 테이프에 담아 일 관계로 XX씨(주: 고명한 재즈 평론가)를 찾아가는 김에 가져가 들려주었습니다. XX씨는 그 음악이 매우 마음에 들었느지 “음, 이거 아주 좋은데. 최고야” 하고 격찬하더군요.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그 테이프를 2배속으로 틀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차 싶어 “죄송합니다. 속도를 잘못 맞췄어요”라고 사과하고는 처음부터 다시 틀었죠. 글쎄, 잘못된 걸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잖습니까.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자네 날 놀리는 거야!” 하고 버럭버럭하는 거예요. 그 사람, 말은 그럴싸하게 하면서 실은 아량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 일화에는 아까 말했듯 수많은 교훈이 담겨 있으므로, 내가 찾아낸 것들을 조목조목 써보겠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 분들은 옳다고 보이는 것에 O표를 해주세요. ?전위재즈 같은 건 자기가 좋아하는 속도로 들으면 된다. ?뭐든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족하다. ?정확한 평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차 싶어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잘못됐다고 별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실수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게 상책이다. ?아량이 넓은 사람은 그리 말이 많지 않다. ?편집자는 상대에게 대놓고 험담을 하지 못한다. ?무턱대고 칭찬하고 나면 뒤처리가 골치 아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 짧은 이야기에도 배워야 할 것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교훈이 있을지 모르니까 찾아낸 분은 가르쳐주세요...』 (pp.57~59, <교훈적인 이야기> 중) - <교훈적인 이야기>에는 모 편집자가 겪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에서든 배워야 할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는 하루키의 자신감이 가득한 글이다. 나는 어지간하면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을 보는 걸 철칙으로 하는데, 어떤 책에서든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이 철칙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읽어야 할 책에는 한정이 없기 때문이다.
“... 저자 스즈무라 가즈나리 씨가 보내준 『아직/이미” 무라카미 하루키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책도 읽었는데,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나에 관한 비평서이므로 감상은 쓰지 않겠다. 자신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 왠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다. 아마도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세계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끔 독자를 만나 얘기할 때마다, 늘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마지않는 것이다.” (pp.180~181, <독서용 비행기> 중) - 하루키가 애초에 글을 쓰는 자신을 꿈꿔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해 불필요한 자존심을 부리는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일본에서는 노벨 문학상에 하루키가 이렇고 저렇고 운운할 때에도 설마 하루키 자신이 그걸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내 마음대로 믿고 있다. 하루키의 글이 일종의 현상이 되어 관련된 많은 책이 나온 것은 사실이겠지만 하루키가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금연에 대해 상당히 자신이 있다. 옛날에는 하루에 오륙십 개비를 피워대는 무지막지한 헤비 스모커였지만, 어느 날 딱 끊은 뒤로는 장편소설에 매달려 있는 몇 달 동안만 피우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피우지 않는 사이클을 지금껏 지켜오고 있다. 따라서 끊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금연회사’에 신청하지 않고도 담배를 끊을 수 있다.” (p.209) - 후배 중에 간헐적인 금연을 하는 이가 있고 그 후배는 명상을 주특기로 하는 이다. 얼마 전에는 전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내가 금연을 선언했다. 당장은 아니고 서서히 줄여가겠다고 하는데 지금은 하루에 두 개비를 피우고 있다. 하루키가 지금도 장편소설을 쓰는 동안만 담배를 피우고 평소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이클을 지금도 지켜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 김난주 역 /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 문학동네 / 278쪽 / 2012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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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나이로 열 살쯤이나 되었을까, 새로운 식구 고양이 들풀의 넘치는 에너지가 수면을 방해하는 요즘이다. 잠이 들기 전 침대에서 만끽하는 독서에의 집중도 힘들어졌다. 고양이 들녘이 십 년째 차지하고 있던 베개 위에서 밤마다 두 고양이가 다툰다. 책을 읽다말고 손을 뻗어서 싸움을 말려야하고, 두 고양이를 토닥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혀 주어야 한다. 진득하게 이야기에 집중할만한 여건이 되지 못한다.
“... 사회의 속도가 그 행복한 환상을 죄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환상 자체도 상품화되고 말았다. 오늘날 환상은 자본이 투하되는 새로운 프런티어이다. 요즘 시대의 환상은 공짜로 모두에게 고루 배분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하고 세련된, 그리고 아름답게 포장된 상품이 되었다...” (p.11)
읽다만 하루키의 산문집을 읽기에 적당한 시간이 된 것이라고 위무하며, 한 꼭지를 모두 읽는 동안에는 아무리 큰 소리로 싸워도 모른 척 해야지, 하면서 꾸역꾸역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읽었다. 잠시 집중하였다가 다시 그 고삐를 풀고, 서로의 목덜미를 아프지 않게 물고 늘어지는 두 고양이를 떼어놓고, 가만 어디까지 읽었더라 너스레를 떨면서 그 다음을 찾아 읽기에 적당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것을 챈들러 방식이라고 부른다... 우선은 책상 하나를 딱 정하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그리고 그 위에 원고지며(미국에는 원고지가 없지만, 그에 준하는 것) 만년필, 자료 등을 갖춰놓는다... 그리고 매일 일정 시간 - 예를 들어 두 시간이면 두 시간 - 그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것이다... 설령 한 줄도 못 쓴다 해도 아무튼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그동안 펜을 쥐고 어떻게든 글을 쓰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있어도 된다. 대신 딴청을 피워서는 안 된다. 책을 읽거나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고양이와 놀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거나 해서는 안 된다. 쓰고 싶어지면 언제든 쓸 만한 태세를 갖추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한들 쓸 때와 똑같이 집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얘기다... 그러고 있다보면 당장은 한 줄도 쓸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하게 굴면서 불필요한 일을 해봐야 얻어지는 건 없다. 이것이 챈들러의 방식이다.” (pp.42~43)
그러다 글쓰기와 관련한 챈들러의 방식이라는 것을 읽는데, 들풀이처럼 활달한 나이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글쓰기가 쉽지 않겠구나, 별무소용인 걱정을 한다. 절대 딴청을 피워서는 안 되는, 빈 노트를 눈앞에 두고 ‘두 시간’,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그 시간을 견뎌내는 일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하루키는 그런 시간을 적지 않게 거쳤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다. 시계의 태엽을 감는 것은 이를 닦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거나 아침에 신문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일상적 행위였으며, 우리는 태엽을 감는 행위를 통해 시계와 정을 나누었다. 그런 시대에 시계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옛날에는 종종 시계와 눈이 마주쳤다. 요즘에는 그런 일마저 없어져버렸다. 물론 우리는 매일 시계를 보고 있지만, ‘눈이 마주치는’ 느낌은 이제 없다. 사이는 좋아도 정열이 식어버린 연인들처럼.” (p.121)
그 적지 않은 시간에는 글을 쓰는 시간도 들어 있을 터이고 (제아무리 하루키라고 하여도)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도 들어 있을 터인데, 내 생각에는 글을 쓰지 못하는 그 시간조차도 하루키는 허투루 보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멍한 시간에도, 차마 당장은 글로 만들 수 없는 허무맹랑한 생각이나마,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어느 순간 곳간문을 열어 대방출, 소리 지르며 써내는 것 아닐까 싶다.
“나는 스스로도 몹시 조급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하고, 차분하지가 못하다... 대체로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빠르다. 천천히 식사를 즐기지 못한다... 술을 마시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그래서 진득하게 마시지를 못한다. 술이 센 것도 아니라서 혼자 마시고 싶은 만큼 얼른 마시고 그대로 잠드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상당히 비정서적인 성격이다.” (p.142)
읽고 두 고양이의 싸움을 말리고, 읽고 두 고양이를 쓰다듬어 달래고, 읽기를 멈추고 잠을 청하고, 두 고양이가 다시 싸우고 잠 청하기를 그만두고, 다시 읽고 또 싸움을 말리고, 읽고 두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고, 그러다가 책을 모두 읽었다. 곧이어 아내의 기상 시간에 맞춘 알람이 울렸고, 들풀이 때문에 수면의 질이 말이 아니야, 라고 울먹이며 아내는 일어났고, 그제야 두 고양이는 깨어난 아내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김난주 역 /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문학동네 / 199쪽 / 2012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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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하고 잠실의 다세대 주택 원룸에 혼자 살았던 적이 있다. 혼자 살고 있을 때, 나는 커티 삭을 마셨다. 조그만 컴퓨터 전용 책상에 앉아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나면 모니터가 파랗게 변하게 되는데, 전화선의 연결음이 띠띠 거리며 세계와 접속하기 위해 용을 쓰는 동안 나는 컵 가득 얼음을 그리고 커티 삭을 가지고 왔다. 한동안은 그렇게 커티 삭만을 마셨다. 커티 삭으로 취하면 기분이 근사했는데, 첫 번째 커티 삭이 두 번째 커티 삭으로, 세 번째 커티 삭으로 이어지면서 근사하였던 기분은 조금씩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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