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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에 대한 서평을 몇 번 보았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는지라 탄탄한 플롯으로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이런 성인용 그림 소설을 탐독해 보고 싶었지만 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 책방에서 <굿모닝 예루살렘(Chroniques de Jérusalem)>이란 책을 보다가 - 얼마 전 <예루살렘 전기>란 책을 읽었는지라 이 종교적 도시에 관심이 많다 - 그 책의 띠지에 적힌 "<쥐>의 아트 슈피겔만이 선택한 2012 앙굴렘 최고의 만화"란 카피가 눈길이 꽂혔다. 앙굴렘! 프랑스의 작은 도시이지만 일명 '만화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 아닌가. 년 초 어떤 신문에서 2013년 40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Angoulème 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에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한국만화특별전을 개최할거란 기사를 봤었는데, 이렇게 대단한 만화축제에서 최고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라 하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나가니 이 책은 그래픽 노블이라기보다는 '그래픽 다이어리'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 가게 된 작가가 1년 동안 분쟁지역에서 보고 겪는 생활적 체험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1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자신의 생생한 일상을 그려내는 르포 형식의 만화인지라 단편적인 듯하면서도 긴 호흡의 생각을 하게한다. 지금껏 읽은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관련 책들이 정치, 종교적 거시 담론에 의해 기술되어졌다면, 이 책은 그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불편과 현상을 통해 분쟁을 조망하는 미시 담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랄까, 이념화나 신성화로 부풀려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예루살렘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데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성장한 나라인지라 은연 중 이스라엘의 입장에 동조하는 시각이 있는 듯하다. 다른 관점에서는 개발독재시대 우리의 롤모델로 이스라엘 국민의 장점을 교육화한 여파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 조금만 냉철히 '팔-이'의 분쟁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이스라엘 편향적 인식이 정말 부끄럽다는걸 알게 된다. 도대체 팔레스타인이 과거에 한국인과 무슨 원수진 일이 있었나? 유대인의 선민의식 속에 타민족에 대한 배려가 있기나 한가? 이슬람이나 유대교나 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건만 그들의 티격태격에 우리는 왜 한 편을 들어야 하는가? 모를 일이다. 지금 그 동네의 현실을 보면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언제나 압도적이었으며, 평화협정이 맺어질 때도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2010년 1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면서 화학무기의 일종인 백린(白燐.White Phosphorus)탄을 사용했다는 기사를 보고서도 그렇게 옹호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책에 있는 대화 한편을 소개하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다른 민족에게 되풀이하는 거죠. 마치 매를 맞고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아이를 때리는 것처럼(63쪽)". 조금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만약 지금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로 내일은 다른 사람들을 박해한다면 우리는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저자의 발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홀로코스트 등 유대인의 박해를 접하게 되면 무한의 동정심을 느끼지만, 팔레스타인의 생존권을 무참히 유린하는 그들을 보면 그들의 진의를 폄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타 : 243쪽 하단 : 집행유예가 주워졌다. --> 주어졌다. 323쪽 상단 : 펠레스타인 --> 팔레스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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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이스라엘과 우리가 모르는 이스라엘. 우리는 중동의 분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얼까. 가끔 접하는 외신으로 미사일 발사와 보복 폭격 그리고 자살폭탄테러 그리고 또 보복, 서로의 보복이 끊이지 않아서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곳,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 이스라엘 하면 생각나는 것은 유태인, 홀로코스트 그리고 유태교가 아닐까? 또 유태인하면 생각나는 것은 악덕상인 셜록과 전당포나 은행 등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등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성경의 고향, 십자군 전쟁으로 기독교들과 회교들이 100년 이상 전쟁을 벌인 곳,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핍박으로 아우슈비츠의 연기로 사라진 수많은 유태인들과 핍박 받았던 유태인들 그들이 똘똘 뭉쳐 만든 나라. 유태인들은 게토와 수용소를 그렇게 증오했건만, 현재 이스라엘은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 게토로 만든 것 아닌지. 유태인,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은 이들은 그 아픈 기억과 고통을 평생을 짊어지고 살았고, 그들의 증언을 통해 그 참상이 비교적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새로운 차별인 유태인들의 팔레스탄인 차별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중동의 화약고이며 많은 회교국가에 둘러싸인 외로운 섬 같은 나라, 몇 차례 중동전쟁의 승리로 이제는 핍박하는 상황이다. 유태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이란 세 종교의 화합이 가능할까? 비행기에서 만난 홀로코스트 생존자, 동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종교로 얽힌 땅, 그 실마리를 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일상이 되어버린 군인과 경찰의 불신검문 그리고 총, 폭탄, 데모, 테러 등 밝고 잘 정리된 도시, 서예루살렘과 더럽고, 정리가 되지 않고 낙후된 도시 동예루살렘은 왜 그럴까? 1년간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살이가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곳은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금요예배를 위해 예루살렘 모스크로 가는 무슬림과 칼란디야 검문소, 그들이 제 시간에 모스크로 갈 수 있을까?
*검문소와 분리장벽, 검문소는 도로와 삶을 바꾸어 버린다. (로드-증오의 길 중에서)
인티파다(짱돌 전쟁)과 정착촌이라는 이름의 마을, 총에 맞서기 위해 돌을 든 사람들, 팔레스타인들을 쫓아 내고 그 자리를 불법점거하여 점점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위대한 이스라엘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전직 국무총리 에후드 올메르트의 말처럼 변화해야 하는데 변화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일상적인 엄격한 비행기 보안과 수시로 시행되는 도로봉쇄, 자유로운 국가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곳도 사람 사는 곳, 공원에서는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 어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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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고 넓은 도로는 이스라엘 전용도로, 밑의 구불구불한 도로는 팔레스타인들의 도로로 통행도 분리되고 있다.(로드-증오의 길 중에서)
새로운 거대한 게토 가자지구는 2곳의 출입구만이 열려있다. 거대한 게토를 만들어가는 도시를 가로막는 분리벽, 분리장벽이며 차별이다. 검문소 통과와 총이 익숙한 풍경과 서로 적대하는 사람들, 박해와 테러리스트들, 로켓과 폭격 그리고 이런 상황을 기록하는 기자들이 일상화되었다. 이런 증오로 평화로운 해결이 가능할까? 사상자를 비교해보면 얼마나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명피해대조표 100:1 정도가 될까?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시민권자도 팔레스티인으로 차별 받고, 심지어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본명이 버락 후세인 오바마이기에. 텔아비브와 기타 지역의 차이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수도 텔아비브는 발전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텔아비브 해변은 파라다이스였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탄압, 분쟁, 증오가 판을 치는 투쟁의 도시다. 이스라엘에도 평화를 위한 목소리는 있다. 침묵을 깬 BTS(Breaking the Silence) 이스라엘인이자 군인이었던 사람들이 안내하는 현실과 깃발관광(이스라엘 정착민 가이드가 주관)이 보여주는 또 다른 예루살렘 어떤 것이 진실인지. 이 책은 분쟁의 상황과 이스라엘, 유태교와 지역 명소와 관습들도 또한 잘 보여준다. 술에 취하는 부림절, 성경 속에서 본 사라져가는 사마리아인들 수많은 유태인분파와 기독교들 그리스도 묘와 다른 종파간의 갈등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준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떠날 수 없는 팔레스타인들 “내 집은 바로 여기예요. 절대로 나를 쫓아낼 순 없을 거다.”, 그들이 설령 어디로 간들 고국과 고향을 잃어버린 그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부터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지만, 누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역사는 이미 흘러왔으니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잡을지, 그리고 그렇게 간단히 판단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쉽게 해결이 될 것 같지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공존이 중요한 것 같다. 함께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분쟁의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다. 보복의 악순환만이 계속될 것이다. 이들을 보며 지구상에 마지막 분단국인 우리의 상황,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역시 고민거리인 것 같다. *예루살렘의 일상을 잘 보여주는 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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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 가서 아이들,아내 , 본인이 지내면서 겪게 되는 소소한 일상에 이해할수 없는 종교분쟁, 민족분쟁등등을 재미있게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심각한 비판이나 조롱도 없이 일상적인 작가의 생활을 보여주는 책속에서 때때로 어떻게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생활할까? 라는 의문점을 가진게 된다. 제3차 중동전쟁으로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이 나뉘어지면서 요르단땅과 이스라엘땅이라는 분단이 시작된다.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에서는 그냥 서안지구이다. 그럼므로 많은 이스라엘 사람과 그곳에 조금모여 살고있는 아랍인들이 있다. 서로 분리된 벽으로 소통하지 않는 그들의 일면들이 만화 가득하다.
교통- 이스라엘 버스 (예루살렘의 모든 마을을 경유한다. 단아랍인 동네를 제외하고) 아랍의 미니버스( 꼴랑 아랍인들이 사는 지역만 다닌다) 휴일 - 유대교+기독교- 토요일과 일요일에 쉰다. 이슬람교+ 유대교- 금요일과 토요일에 쉰다 이슬람교+유대교+기독교 - 금,토,일을 쉰다. 공공장소 통과시- 보안검색대, 무기소지증, 총 등등 팔레스타인 땅에서 사는 많은 아랍인들이 끊임없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강제추방당하고 도로를 봉쇄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어느순간 집에서 쫓겨나고 하는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멀게만 느꼈졌던 자살테러,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저자는 보고 느끼면서 어떤 말과 행동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가 만화 페스티벌에 다녀오기 위해 헬싱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스라엘 공항에서 많은 질문을 당하고 난뒤에야 서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 작가의 말에 의하면 북한에 들어가는것 보다 더힘들다고 한다(작가의 전작은 평양에 대한 만화도 있다)
더욱 놀라운것은 그토록 아랍사람들을 괴롭히고 차별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그들 자신의 행위에 비난을 가한다는 사실이며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언론또한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프랑스등 다른나라에서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거나 비난할때는 가만히 있지 않는 그들이 자국의 언론과 시민들은 그런한 폭력사실을 비난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에게나 민주국가지, 이곳에 사는 아랍인들에게는 그저 유대인의 국가일 뿐이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에게 유대인 학살을 당해야만 했던 그들이 또다른 방법으로 아랍인들에게 행하는 무차별 폭력과 추방, 도로 봉쇄, 가자지구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그들에게 휘두르는 억압을 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수 있다. 저자의 만화를 통해 본 아랍인들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분노, 고통보다는 뭔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온다. 역사의 반복, 매맞고 자란 아들이 그자식이나 아내를 때리듯이 사람과 사람사이 간에 일어나는 고통은 결국 연속적으로 반복되어 질수 밖에 없는 걸일까?
끝없는 종교, 인종전쟁으로 피페되어 가고 있는 분쟁지역의 그안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사람, 인간이 있는데 왜 우리는 조그만한 종교,피부색으로 서로를 죽여야 하는것일까?
나는 가끔 정말 신이 계신다면 지금의 시대에 신은 어디로 가신것인가? 라고 반문하게 만든다. 여기 저자도 이곳에 있으면서 자신의 무신론이 차라리 났다고 여길정도이니 말이다. 어째든 너무나 복잡한 그들의 세계의 이해할수 없는 한사람의 무종교인 동양인 여자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가 한없이 걱정되고 차별받고 있는 여성들이 걱정이 더욱 될 뿐이다.
왜 미스코리아, 미스유니버스 등등에서 세계평화를 외치는지 조금 이해할수 있다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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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만화가 있었나 싶었다. 숱한 만화 대상을 수상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사성 짙은 만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그냥 그저 그런 만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했었다.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만화를 벌써 두 번째 읽는다. 그만큼 읽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기 들릴 작가의 만화 터치가 아름답고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주는 내용이 고맙다.
이스라엘을 단순히 하느님의 축복이 어려 있는 땅이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이 강제로 뺏어가려고 하는 땅이라 여겼지만, 어쩜 원래 자신의 땅이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강제점령을 하게 되었을지.
거기에 누군가 지적한 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그렇게 학살당하고 능욕당했으면서 그것을 그대로 팔레스타인에 돌려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은 분명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왜 그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지 아쉽다. 그래도 몇몇 깨어 있는 이들은 화합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가장 화합의 상징이리라. 임진각에서도 공연했던 그들의 감동이 영원히 이스라엘에 울려퍼지길 기대한다.
이 책은 단지 한 사람이 읽고 덮어둘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또 다른 보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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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하면 떠오르는 것이 뭐냐 하면, <전쟁>이다. 대표적으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무대이기도 하고, 그 이전에 로마군단이 짓밟아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하게 한 곳이며, '중동 전쟁'이라고 일컫는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이 싸우던 곳이면서, 지금은 오래전부터 그 땅에서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늘상 총부리를 치켜들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테러>가 벌어지는 곳이며, <불법점거>를 한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는 곳이라고도 한단다. 허나 '누가' '누구에게' 테러를 벌이고, 불법점거를 했단 말인가? 예로부터 '힘 없는 백성들'이 살다가 지쳐서 결국 되는 것이 '산적'이고, '도적'이고, 그리고 '해적'이었다. 물론 그들이 벌이는 짓거리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도대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생계형 범죄>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 능력이 열악하여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나쁜 행동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범죄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을 어찌 처벌해야 할까?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엔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칼을 들고 있으나,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한 판결을 내려야하기 때문에 두 눈은 가리고 있다고 한다.(우리 나라는 버젓이 눈을 뜨고 있어서 불공평한 판결이 많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그러므로 10억을 훔치거나 10원을 훔쳐도 나쁜 짓임에는 틀림없으므로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해야 <정의>일 것이다. 허나 그들이 <생계형 범죄>를 벌일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간과한 채 무작정 단죄만을 일삼는다면 큰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삼척동자도 알만한 상식이다. 요즘에는 특히 말이다.
헌데 이런 상식이 <예루살렘>에서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팔레스타인 소년이 항의의 표시로 돌을 던지면 이스라엘군은 총을 퍼붓는단다. 그것도 모자라 한밤중에 가택수색을 하고, 심지어 탱크로 멀쩡한 집에 구멍을 내놓고도 '자국 국민의 안전을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선전하기 일쑤란다. 물론 짱돌 하나로도 덩치 큰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니 엄연히 '살상무기'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던진 돌멩이 하나에 이스라엘 시민이 무고하게 다칠 수도 있겠다고 우려는 할 수 있다. 허나 그 보복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나도 상식밖의 일이라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할 뿐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팔레스타인 소년은 왜 짱돌을 던졌을까? 그 의문을 풀어야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자매나 사촌지간인 친척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했을 때이다. 소년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난데없는 포탄세례로 돌아가시거나,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지는 검시검문 때 끌려가서 특별한 이유도, 해명도 없이 돌아오지 못할 때 짱돌을 던질 수 있다. 또 요즘엔 '방호벽'이라는 것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분리'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제멋대로 분리해놓았기 때문에 잘 다니던 학교를 갈 때나, 잘 다니던 직장에 출근할 때도, 심지어 내 집과 내 땅 한가운데에 '분리장벽'을 세워놓아 내 땅을 다닐 때에도 빙 돌아가야하거나 이스라엘 군의 허가와 감시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면 짱돌쯤 던지는 일은 일도 아닐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측에서는 다른 견해를 내세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네 차례의 전쟁을 통해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치뤘다는 것이다. 또 팔레스타인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지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폭탄테러와 자살테러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시도 편하게 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과격한 테러리스트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그만한 '수고'를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애초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아랍권 사람들이 '테러'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런 불상사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헌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네 차례의 전쟁 뒤에 평화를 갈구하는 쪽은 고향땅을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랍(무슬림)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강경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으며 될 수 있으면 이스라엘과는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고 싶어한다. 그런 상황인데도 유대인들은 '정착촌'이라는 미명 아래 팔레스타인과 무슬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어놓기 일쑤다. 이런 마을은 당연히 국제법상 '불법'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일부 과격하고 진취적(?)인 유대인들이 만들어놓은 불법 건축물들을 스스로 철거하고 이웃 나라 사람들과 불필요한 '분쟁'을 만들 요소를 없애야 할 것인데, 오히려 그들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란다. 그렇게 불법을 자행하고도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국제사회에 당당히 얘기하는 뻔뻔스러움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난 <종교>라는 것에 꽤나 독실한 편이다. 비록 내 스스로 독실한 신앙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그 어떤 종교를 망론하고 <종교인>으로 종사하는 분들을 매우 존경하는 편이다. 왜냐면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라고 하며 하릴없이 다투고 시기하는 짓을 멈추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왼쪽 뺨을 맞거든 오른쪽 뺨을 내밀어라..라고 말씀하는 것은 비단 예수님만의 목소리는 아닐 것이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이에게 우발적인 폭행을 가했을 지라도 <사람의 도리>를 안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든 종교가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니 다른 민족은 어떤 일을 당하든 나몰라라 하는 유대인들의 몰염치함에는 분노가 치밀어오를 뿐이다. 그리고 절대 해서는 안 될 생각이겠지만, 유대인들이 로마황제에게 미움을 받고, 히틀러에게 희생을 당한 것도 어쩌 보면 자기네만이 선택받았다는 <배타성>이 이웃과 화합하기는커녕 불화만을 길러온 것이 아닐런지...의심이 들 뿐이다. 시쳇말로 쎔통이란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유대인을 만난 적도 없고,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해서 애꿎게 미워할 것도 없다. 허나 유대인에 관련된 책은 참 많이 보았기에 그네들이 얼마나 위기에 처했었고,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또 우리도 그 비슷한 차별과 멸시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그 아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세계에 우뚝 서서 온 인류를 위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이 참 많은 것이 한편으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너무나도 몰염치한 행태를 일삼기에 절대 예뻐 보이지가 않는다. 아니 좀 심하게 말하면, 온 인류를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이 세상에 <깡패 국가>가 있다면, 그 가운데 <이스라엘>이 으뜸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다. 자신들이 당한 일이 아무리 끔찍했기로서니 그것보다 더 심한 짓은 다른 나라에게 일삼는 나라나 종교라면 이 땅에서 사라져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르는 끔찍함은 어떻게 보냐고? 물론 같이 사라져야 할 목록이다. 허나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쳐가며 저지르는 테러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정이 먼저 떠올라 마냥 미워만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자기 목숨을 내놓고서 '항의'를 하느냔 말이다.
우리도 일제시대에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과 같은 분들이 그러지 않았는가 말이다. 하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빼앗는 유대인들도 그런 마음으로 행동하겠지만, '없는분'이 저지르는 잘못과 '있는놈'이 저지를 범죄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어린 미혼모가 굶주린 아가를 위해 분유를 훔치다 잡혔을 때와 정여사가 백화점에서 산 명품백에 '브라우니'에게 먹일 개껌을 훔칠 때가 같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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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가 공존하는 땅. 잔인한 테러와 무자비한 공습에 떨어야 하는 곳. 종교와 민족이 다른 두 나라의 갈등 속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 수를 자랑하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거룩한 성지임에도 지금 그곳은 축복보다는 저주 받은 도시로 보인다. 도대체 거룩한 성지 예루살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면 누구라도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한쪽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자비한 횡포를 일삼는 정복자요, 다른 한쪽은 21세기 마지막 식민지로 표현될 정도로 불쌍한 피지배층으로 묘사되는 이유에서다. 특히 가련한 아이들의 희생에 대한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누구라도 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공습이 시작되면 한쪽은 무기를 옥상에 올리고 아이와 여자를 지하에 숨기는 데 비해서 다른 한쪽은 무기는 지하에 숨기고 여자와 아이를 옥상에 올려서 총알받이로 사용한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판단은 잠시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대신에 객관적으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종교와 민족을 떠나 현재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런 이유로 집어 든 책이 만화 '굿모닝 예루살렘'이다. 이 책은 기 들릴이라는 만화가가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살게 된 1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런 사심이나 개인적인 감정도 내세우지 않고 1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 보았던 내용을 비교적 담담하게 그렸다. 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맡기고 있었다.
작가가 살게 된 곳은 예루살렘 중에서도 팔레스타인 지역인 동예루살렘의 베이트 하니나에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 사택인데, 대형마트가 있고 잘 닦인 도로가 있는 서예루살렘에 비해 상당히 불편한 이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정착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소신이란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예루살렘에는 두 종류의 버스가 다니는 데 하나는 이스라엘 버스로 아립인 동네를 제외한 예루살렘의 모든 마을을 경유하고, 다른 하나는 아랍의 미니버스로 오직 아랍인들이 사는 지역만 다닌다. 또한 길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초라한 주택이 있는가 하면, 깨끗한 거리와 거대한 주택이 있기도 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상반된 모습이지만 모두 예루살렘의 모습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내용 중의 하나는 분리장벽과 관련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테러로부터 유대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예루살렘과 서안지구를 분리하기 위하여 2002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장벽이라는데 그 길이가 총 700km를 넘는다고 한다. 마치 거대한 수용소 같아 보이는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용도로 쓰이며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가자지구에도 세워져 있다.
작가는 충분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테마별로 그려나가지 않고 자신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8월부터부터 시작해서 떠나는 다음 해 7월까지를 월별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 해도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곳이 이스라엘이 점령한 불법 정착촌이든 아니면 늘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 팔레스타인 지역이든 말이다.
흔히 이스라엘에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만 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에는 그들뿐만 아니라 개신교를 비롯해서 로마가톨릭교, 에디오피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그리스 정교회, 콥트 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 여러 종파로 나뉘어 있으며 심지어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 우화로 유명한 사마리아인도 있다. 유대인이면서 개신교이거나 팔레스타인이면서 유대교를 믿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팔레스타인 사태는 종교 분쟁은 아닌 듯하다.
희한한 것은 이스라엘 정착촌에 사는 주민들은 일하지 않음에도 미국의 유대인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지원이 상당하다고 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그 모든 약속의 땅을 다시 차지해야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란다. 그 후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게 되고 그제서야 천년 왕국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얘기가 광신도의 광기를 보는 듯해서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예루살렘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러니까 5월에 작가는 정착촌에서 군 생활을 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직한 'BTS(Breaking The Silence)'라는 NGO 단체가 주관하는 투어에 참여한다. 그리고 6월에는 이스라엘 정착민 가이드가 주관하는 깃발관광에도 참가한다. 이 투어를 통해 저자는 같은 땅에 대해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전해 주는데 개인적 감정을 최대한 배제했기에 거부감도 덜하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서의 생활을 그렸지만, 단기 체류자의 시각일 뿐 실제 거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 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체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팔레스타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제삼자가 볼 수 있는 시각으로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전반적으로 보면 팔레스타인에 치우친 면도 없지 않지만, 저자가 주로 생활한 곳이 그 지역이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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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줌마가 무속신앙에 깊이 빠져 있어서 철마다 굿판을 벌이든, 앞집 아저씨네가 제사를 안 지내든, 뒷집 아가씨가 가슴에 손가락만 한 불상을 품고 다니든 아무 상관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가 지나다니는 길을 지나다닐 수 없다거나, 내가 가는 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 없다거나, 내가 이용하는 버스에 몸을 싣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종교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 종교 때문에 왕래할 수 없는 지역이 생기고, 종교 때문에 일상 속에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제약을 받아야 하는 생활이라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전이 있는 신의 땅이다. 하지만 성전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치열한 영토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신조차도 버린 땅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과 무슬림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철저히 배타적이며 무관심하다. 보이지 않는 장벽과 보이지 않는 국경과 보이지 않는 믿음과 모든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 예루살렘이란 그런 곳이다. 종교로부터 내외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곳. 그러니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억압된 삶을 살아갈까? 그런 곳에서도 생의 활기가 느껴지기는 할까? 라는 편견어린 우려가 무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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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만고의 진리를 증명해 주는 듯이 그곳의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잘 살고 있었다. 사실 예루살렘이라는 곳의 특수성으로 인해 사람 사는 모습이 조금 유별난 면도 있지만 말이다. 칼란디야 검문소로 가는 길에 만난 거대한 분리장벽은 답답하게 이어져 있고, 모여 있던 군중들을 향해 느닷없이 돌덩이들이 날라들고 군인들이 발사한 최루가스가 피어올라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동네지만, 그 와중에도 혼란한 군중 속을 헤치며 참깨빵을 팔아보겠다고 목청을 드높여 대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 이었다.
1년간의 북한 체류기 『평양』으로 유명한 만화가 기 들릴은 국경 없는 이사회에서 일하는 아내를 따라 1년간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된다. 어린 두 아이를 보살피고 아내를 내조하며 그곳에서 보낸 1년을 특유의 재치 있는 그림체로 기록해 출판했는데 그 책이 바로 『굿모닝 예루살렘(Chroniques De Jerusalem)』이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낸 르포르타주 만화로 작품성이 인정되어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유대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낸 만화 <쥐>로 유명한 아트 슈피겔만이 ‘2012 앙굴렘 최고의 만화’라고 극찬한 작품이기도 하단다. 설명이 엄청나게 거창하고 제목에서부터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오긴 하지만 사실은 별로 정치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않은 가벼운 예루살렘 체류기이다.
저자가 종교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 다분히 종교적인 곳에서 생활하면서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저 관찰자로서 서로 다른 신을 모시고, 서로 다른 기념과 의식을 치루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용히 스케치해 낼 뿐이다. 그것들은 이미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어떤 활동을 벌여도 성과가 좋지 않은 곳에 파견된 여러 나라의 체류자들과의 그들과 나눈 예루살렘 상황에 대한 대화를 그저 전달하는 식으로만 옮기고 있다. 어떤 뛰어난 기자의 보도문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생생한 예루살렘의 모습과 깨알 같은 논평들이 불편하지 않게 적혀 있는 것이다. 유난히 각주가 많고 컷마다 글씨가 빼곡하지만 그것은 치우치지 않은 시각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열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읽는데 눈이 좀 아프더라.
나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혹한 폭력을 깊이 혐오하는 사람이고, 대게 그런 문제의 가해자는 아랍권 국가들과 그들이 믿는 이슬람교라고 생각해 왔었다. 특별하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을 읽는 신자는 아니지만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내용들은 항상 그들을 가해자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만 은연중에 멋대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뜻밖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땅의 사정을 알게 됐고, 밀고 들어온 이들과 하루아침에 밀려 나가 이방인이 된 이들의 삶의 모습을 다룬 에피소드에서는 작가의 촌철살인에 멍해지기도 했다.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컷 마다 빽빽한 텍스트가 이해가 될 정도로 충실하다.
제3세계의 주민이 된다는 원인 모를 기대감은 얼마 가지 않아 공원도 없고 카페도 없고 넘치는 쓰레기 더미밖에 없는 상상도 못한 예루살렘의 모습에 커다란 실망으로 변해 버리지만, 그곳에 사는 그들의 삶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작가에게 정말 행운이었다. 그런 작가가 낸 책을 읽어본 다는 것은 편견과 무관심에 빠져 있는 독자에게도 행운이리라. 나는 퍽 행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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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일단, 만화로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내 눈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만화를 좋아하면서도 그 만화라는 장르의 대부분이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출판한 만화라는 것이다. 그 외의 나라들의 만화는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도 하고 보다 철학적이거나 딱딱하다는 점에서 잘 보게 되기도 한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곳에서는 거의 대부분 일본과 우리나라의 만화다 보니 말이다. 미국 코믹스를 보고 싶기는 한데 가격도 만만치 않고 딱히 볼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보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 '굿모닝 예루살렘'은 친근했다. 작가의 전작중에 북한도 있다고 한다.
아내가 국경 없는 의사회에 소속되어 있어 여러 나라를 장기간 체류하면서 그 경험을 만화로 출판 한 것인데 그러한 점이 더더욱 관심을 끌었다. 단순하게 만화가 아니라 약간 골치아픈 상황이나 나라에 대해 글로 길게 읽는 것보다는 어딘지 간단하고 핵심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만화 특유의 위트도 역시 기대를 했고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1년 동안 파견을 나가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만난 것에 대해 만화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몇 몇 장면은 글이 아닌 만화로써만 제대로 그 의미와 유머를 알 수 있게 그려져 있어 보는 재미가 솔찮았다. 늘 TV에서나 보던 그 중에서도 뉴스에서나 보던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새롭게 흥미로웠다.
예루살렘은 아랍안에 있어 여러 문제를 겪고 있고 문제가 많다는 단순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작,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적응하면서 살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북한과 대치를 통해 긴장이 고조가 되어 전 세계가 주목을 해도 정작 우리는 평소처럼 '왜 들 그래?'하면서 지내는 것과 아주 아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루살람의 사정은 우리 보다 더 복잡하고 얽혀 있었다. 단순하게 아랍의 한 지역을 유대인이 점령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또 유대인, 아랍인, 개신교인, 카톨릭교인, 사마리아인 등등 너무 얽히고 섥혀 있어 실타래를 푸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껴졌다. 문제는 저 들도 그 안에 들어가면 또 분파와 종교가 더욱 나눠져 있어 서로가 서로를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일촉즉발의 상태가 풀어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어 시내에서 총을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총을 숨겨 갖고 다는 것도 아니고 아예 대 놓고 다니고 그런 총을 보고도 사람들이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있다는 것을 보니 정말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그리 넓지도 않은 지역에 다닥 다닥 여러 인종과 종교인들이 모여 살다보니 엄청나게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서울에 1년만 살아도 가 볼 것이 많다고 느끼기는 하겠지만 예루살렘처럼 다양하고 흥미진지하고 여러 문화체험을 - 그것도 완전히 다르고 비슷하지도 않은, 또는 아주 아주 비슷한 - 할 수 있는 지역은 없지 않을까 싶다. 돌아 다니는 것도 쉽지 않고 벽이 세워져 있기도 하여 자유가 주워진 듯 하지만 통제된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줄이 쳐저 있어 그 줄을 벗어나면 안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싶다.
또한, 안식일이나 각종 절기에 맞춰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가는 모습도 책을 보는 나는 신기할 수 있어도 그 곳에서 살고 있는 타 종교인이나 인종 사람들은 엄청나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신념이다. 그것도 믿음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칠것 없고 불통의 대상이다. 이들과는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확고한 내 편 아니면 네편이라는 생각이 바로 모든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북한보다 더 이곳이 힘들다고 통행하는 것이 말이다. 그만큼 열려있는 공간 같으면서도 폐쇄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는 것도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또한, 외국에 갔다 오거나 할 때도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조금의 의심이라도 보이면 다시 심문이 이어지는 지역이 바로 여기다.
또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서는 수도로 여기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수도로 여기고 있지 않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곳으로 여긴다고 하니 골 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이스라엘은 수도로써 모든 수행을 하고 각국의 대사관은 예루살렘에는 없다고 하고 말이다.
예전에는 아랍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공존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아랍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숨겨주기도 한 지역이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지역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게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언론은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지역의 문제점을 이스라엘 언론은 공격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이스라엘에 대해 잘 못했다고 아랍이 오히려 잘 했다는 식의 논조까지 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강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딱 1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머물면서 제 3자의 관점이지만 무려 1년 이라는 시간동안 그곳에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활을 한 사람으로써의 시선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대인의 관점과 아랍인의 관점에서 같은 현상이나 지역을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보인다. 한 편으로는 작가가 무신론이라 더욱 객관적으로 쓸 수 있기도 했던 듯 하고 말이다.
덕분에 막연하게 알고 있던 예루살렘의 현장과 그곳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TV 뉴스로만 접하던 현장의 이야기를 그곳에서 살았던 제 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 보다 객관적으로 예루살렘을 저자인 기들릴과 함께 이곳 저곳 구석구석 저자가 갈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볼 수 있었다. 그곳에 살면서 생생하게 체험한 경험마저 느낄 수 있었다. 말이 필요없는 그림으로만 느낄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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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만화로 되어있어서 읽기가 편하다. 그리고 내용은 작가의 일상을 기록한 것이라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는 듯한 호기심도 생긴다.
이 책의 작가의 아내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하는데, 예루살렘에서 1년을 일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내를 따라 아이와 함께 작가는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1년간의 생활을 만화로 그려낸 책이다.
예루살렘하면 수 많은 인종, 종교, 전쟁 등 일반적인 나라와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도착한 예루살렘은 작가가 생각하던 곳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던 작가는 차를 구입하게되고, 그 차로 예루살렘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스케치를 한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검문소를 거쳐야하고 교통난도 겪게되고, 분리벽도 보게 된다.
작가의 예루살렘에서의 1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만화라는 장점 때문에 긴장감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이 책을 보면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얼마나 좋고 행복한 곳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책소개]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 가게 된 작가. 작가는 ‘제3세계’에 살게 된다는 막연한 기대만 품고 도착했으나, 이곳 예루살렘에서도 아이를 돌보고, 이웃을 만나고, 가끔 휴가를 떠나는 평범한 생활은 계속된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구나.”라고 생각할 즈음엔, 총을 들고 무기 소지증을 지닌 사람,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정착촌을 목격하는 비현실적인 일상도 경험하게 되는 곳. 예루살렘의 이야기이다. 그곳에서의 일상을 간단하게 담을 생각이던 그는 알수록 복잡해지는 예루살렘의 상황과 분쟁을 겪고 배우게 된다.
[저자소개]
기 들릴(Guy Delisle) [저] - 1966년 캐나다 퀘벡에서 출생. 쉐리던 컬리지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1988년 유럽으로 온 이후 [파피루스], [나무 오르는 고양이], [파리] 등 여러 TV 시리즈에 참여했다. 1996년, 그래픽 노블 [리플렉션(Reflexion)]을 시작으로 [알린느와 사람들(Aline et les autres)], [형사 모로니], [알베르와 사람들(Albert et les autres)]을 발간했다. 1년 동안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을 그린 [평양]과 이후 출간한 [굿모닝 버마(원제: Chroniques birmanes)]는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굿모닝 예루살렘]는 그리고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1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체류했던 경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재미와 볼거리가 가득해 출간 직후부터 많은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결국, 그 가치를 인정받아 출간된 지 2달 만에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애니메이션 감독,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만화 등 연관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바라기 프로젝트 [역] - 대한민국을 세계에, 세계를 대한민국에 소개하는 해바라기 프로젝트에서 만난 역자들이 좋은 만화책을 소개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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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예루살렘은 친근한 도시이다. 신앙생활이 꽤 되었으니 가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가본듯한 친근함을 주는 도시 중 하나이다. 그래서 신문지상에서 이 도시와 관련된 기사가 발견될 때면 남다른 관심으로 뜯어보곤 한다. 그런데 기사를 접할 때 마다 꽤나 당혹스럽다. 이유는 이내 알 수 있다. 내가 쓴 ‘낭만적 신앙의 안경’으로 예루살렘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은 세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근원지라 일컫는다. 종교는 본시 사랑과 평화를 지향한다. 그런 종교의 발생지 예루살렘의 지금 모습은 종교의 본산이라 일컫기에 많이 민망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분쟁과 파괴, 반목과 적개심, 그리고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진 땅이 성지(聖地) 예루살렘의 모습이다. <굿모닝 예루살렘>의 작가 기 들릴은 이 예루살렘의 민망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담담한 필치로 스케치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 한컷 한컷 안에는 현대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의 숨결이 생생하게 담아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정황을 3D화면으로 입체감 있게 보게 해주는 역작이다. 만화이지만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오래 붙잡아 두는 책이다. 다른 이들도 이 책에 대한 내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나보다. 이 책은 출간된 지 2달 만에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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